메르스보다 무서운 `유체이탈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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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쓰는 아내 훔쳐보는 남편]

메르스보다 무서운 '유체이탈병'


글 최규화/ realdemo@hanmail.net (인터파크도서 <북DB> 기자)

아내는 지역아동센터 선생님으로 일하다 첫째 아이를 임신한 뒤로 전업주부로 살고 있습니다. 아이에 대한 관심만큼 아이의 삶에 영향을 주는 '세상'에 대한 관심도 많은데요, 아이 키우는 일에 매여, 그 많은 '할 말'들을 풀어놓을 기회가 없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거리로 나온 '앵그리맘'들의 마음 또한 그랬을 겁니다. 아내의 일기를 통해 그런 엄마들의 속마음을 들여다보고, 우리 사회에 대한 시선을 공유하려 합니다.  

#1. <아내의 일기>

  오늘도 호진이와 빌라 옥상에 있는 텃밭에 올라갔다. 해바라기는 호진이 키만큼 컸고, 뒤늦게 뿌린 열무와 상추, 쑥갓도 제 속도대로 크고 있다. 시댁에서 가져온 방풍나물도 건강히 잘 자라고 있고, 몇 년 전 할머니가 심어두신 미나리와 부추는 텃밭의 주인처럼 한 자리를 차지하고 튼튼하게 자라고 있다. 윗집 언니가 선물처럼 방울토마토도 세 그루 심어줬는데, 어찌나 잘 자라고 열매도 잘 맺는지 모른다. 몇 개 달린 열매가 빨갛게 익기만 기다리고 있다. 호진이도 호시탐탐 열매를 노리고 있다. 잘 익을 때까지 호진이의 손아귀에서 보호해줘야지. 


옥상 텃밭을 시찰(?)하는 호진이. 뒷짐진 손에는 뭘 뜯어 쥐고 있는 걸까?

  어제 열무도 뽑아두고 상추랑 쑥갓도 좀 뜯어놨으니 할 일이 별로 없었다. 호진이는 어느새 흙을 파내서 돌멩이를 찾아냈다. 조그맣고 동그란 게 예쁘다. 물을 주려고 호스를 가져오자 또 제가 하겠다고 달려든다. 호스를 줬더니 큰 물 웅덩이를 만들어놨다. 팔을 쭉 뻗어도 겨우 텃밭에 닿을 정도니까 당연한 결과다. 잠시 한눈을 판 사이 웅덩이에 손을 담가 철벅거리며 논다. 그래도 흙 안 퍼먹는 게 어디인지. 옆에 있는 큰 대야에 물을 받아줬다. 난 정자에 앉아 호진이를 구경하고 호진이는 쪼그려 앉아 손을 담갔다 뺀다. 돌멩이도 물 속에 담궜다 뺐다 한참을 찰방거리며 논다.

  텃밭이 없었으면 요즘을 어떻게 버텼을까. 호진이는 한창 바깥구경 하기 좋아하고 걷고, 뛰어다니길 좋아했는데 메르스가 너무 겁이 나서 밖에 못 나간다. 호진이는 답답하다고 현관에서 신발 신고 현관문을 두드리지만, 그나마 옥상에라도 갈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장 보는 것도 일주일에 한 번 남편에게 호진이를 맡겨놓고 다녀와야 한다.  

  텃밭에서 채소를 기르려고 해도 물 주고 잡초도 뽑아주고 영양분이 부족하면 비료도 줘야 한다. 그 작은 생명도 그러한데 인간이라는 생명을 지키기 위해 '그분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본인들이 무엇을 해야 한다는 존재라는 건 알고 있을까. 예전에 개그콘서트에서 개그맨 박성광이 외치던 말이 생각난다. “국가가 나에게 해준 게 뭐가 있냐!” 차라리, 뭐 안 해줘도 되니까 해나 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정부는 초기대응도 잘 못하고, 관련기구를 여섯 개나 만들어놨지만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고 누구 하나 제대로 된 해결책을 마련해주지 않는다.

  매일 일어나 포털사이트의 뉴스를 본다. 오늘(6월 19일)까지 확진환자 166명, 사망 24명, 격리 5930명. 사망하신 분들은 제대로 된 장례절차도 없이 그대로 비닐팩에 싸여 화장된다. 확진환자들과 격리된 분들은 또 얼마나 불안할까. 현장에서 전염될 위험에 노출된 채 환자를 돌보는 의료진들은 무슨 죄가 있어 그 가족까지 따돌림을 당해야 하는 건지. 언제까지 우리는 이런 불안과 공포 속에서 살아야 할까. '자체격리' 되어 집에만 있게 되고,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이 자꾸 환자와 사망자가 늘어나는 걸 보면서 점점 우울해진다.    

  한때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책 ‘살아남기 시리즈’가 떠오른다. ‘무인도에서', '방사능에서', '로봇 세계에서' 살아남기란 제목이 참 어이없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에게 “이럴 일 없거든~” 하면서 만화책 그만 읽으라고 했는데 정말 살아남기가 전 국민의 과제가 될 줄이야. 

  호진이는 요즘 왼쪽 어금니가 자라나고 있다. 그래서인지 짜증도 좀 늘었다. 밖에 나가면 좀 덜한데 집에서 그 짜증 받아주려니 점점 '멘탈'이 붕괴되고 있다. 남편은 이직 후 출근시간은 더 일찍 당겨지고 퇴근시간은 더 늦어져 호진이를 남편에게 '토스'할 수도 없게 됐다. '독박육아'를 해야 하는 이 시점에 집에만 있어야 한다니, 이 비극을 언제까지 견뎌야 할까. 이번 주말엔 또 뭘 하면서 시간을 때워야 할까.  


메르스 때문에 집 안에 '자체격리' 된 호진이. 옥상 텃밭은 호진이의 유일한 놀이터다.

#2. <남편의 반성문>

  지금 제 머릿속은 네 글자로 가득 차 있습니다. '독, 박, 육, 아.' 아내의 요즈음 상황을 정말 잘 표현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멀쩡히 다니던 신문사를 그만두고 엉뚱한(?) 일을 시작한 저 때문에, 아내는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오로지 혼자 호진이를 돌봐야 합니다. 예전에는 퇴근 뒤에 한두 시간이라도 호진이랑 놀아줄 수 있었는데, 요즈음은 한창 새로운 일을 익히느라 밤 9~10시를 넘겨 집에 오기가 일쑤입니다.

  게다가 생각지도 못한 메르스의 습격. 저희가 사는 부천에도 확진환자가 생겨서 아기 엄마들의 불안은 더 커졌습니다. 병원에 가는 것은 당연히 무섭고, 대중교통을 타는 것, 아이를 데리고 시장 한번 나가는 것까지 겁이 납니다. 아내는 그동안 낮 시간에 또래의 아기 엄마들과 함께 키즈카페도 가고, 서로의 집에 놀러도 다니면서 아이를 함께 돌봤습니다. 길지 않은 시간이라도 그렇게 수다도 떨고, 정보도 공유하고, 음식도 나눠 먹으면서 생활의 '활력소'로 삼아 왔는데, 이놈의 메르스가 그것마저 할 수 없게 막은 겁니다.

  아내를 비롯한 여러 아기 엄마들을 집 안에만 '자체격리' 하도록 만든 메르스. 그런데 메르스보다 더 미운 건, 사태를 이렇게 '재앙' 수준으로 키운 '그분들'의 뻔뻔함입니다. 사태의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자기 잘못은 쏙 빼놓고 여기저기 남 탓만 하고 있는 것이죠. 대한민국 정부의 최고책임자인 대통령부터 그렇습니다.

  6월 16일 박근혜 대통령은 메르스 때문에 휴업했다가 수업을 재개한 한 초등학교를 방문해 학부모와 교직원들을 만났습니다. 나중에 청와대가 서면으로 브리핑한 그날 비공개 간담회의 주요 발언은 "정부에서는 더욱 적극적으로 선도적으로 정보를 공개하고 심각한 것은 빨리 국민들께 알려나갔으면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학부모가 대통령한테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요청한 것인가 했더니, 웬걸 이 말은 박근혜 대통령의 말이었습니다. '나에게 쓰는 편지' 같은 건가요? 발언 속에서 대통령의 책임감은 전혀 찾을 수 없습니다.

  메르스 사태 해결의 주체로서 대통령의 책임을 잊은 발언은 이것이 처음이 아닙니다. 6월 1일 처음으로 메르스를 언급한 박근혜 대통령은 "초기 대응에 미흡한 점이 있었다"며 정부의 대응을 질책했습니다. 국민들은 이것을 '유체이탈' 화법이라고 비판했죠.

  심지어 6월 17일에는 대통령이 삼성서울병원장을 만나 사과를 '받기'에 이릅니다. 삼성서울병원장이 "대통령님과 국민 여러분께 큰 심려를 끼쳐드렸다. 너무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고, 박근혜 대통령은 "투명하게 공개해서 빨리 알리고 (메르스가) 종식으로 들어가도록 책임지고 해주기 바란다"고 질타했습니다. 이런 걸 '피해자 코스프레'라고 하나요? 국민에게 사과를 하고 다녀도 모자랄 판국에, 오히려 사과를 받으러 다니고 있습니다. 국가의 방역체계를 삼성서울병원이 책임지고 있었나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일입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도 대통령과 '피해자 코스프레'를 함께 하고 있습니다. 6월 14일 김무성 대표는 “메르스가 적기에 빨리 진압될 수 있는데도 이렇게 빨리 병을 키워서 문제를 만든 데 대한 책임은 반드시 지우도록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모르고 들으면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의 말이라고 착각할 정도입니다. 집권여당 대표로서의 자기인식은 온데간데없는, 책임감도 없고 '영혼'도 없는 껍데기 같은 말입니다.

  6월 16일부터 18일까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정지지도가 29%로 조사됐다고 합니다. '콘크리트 지지율'로 표현되는 30%대의 지지율 벽마저 무너진,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 가장 낮은 지지도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해 부정적으로 답변한 사람들 중 33%는 '메르스 확산 대처 미흡'을 가장 큰 이유로 꼽았습니다. 몇 주째 '혹시 내가……' 아니면 '혹시 우리 아이가……' 하는 불안감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국민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표현된 숫자입니다.

  무능함은 연민이라도 불러일으키지만 뻔뻔함은 무엇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지금 청와대와 새누리당에는 메르스보다 더 치명적인 질병이 유행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질병의 이름은 '유체이탈병'쯤 되겠군요. 다행히 이 병에는 '민심'이라는 백신이 있지만, 문제는 환자들이 자기 병을 고칠 마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병이야말로 환자 한 사람의 안전만이 아니라, 죄 없는 5천만 국민 모두의 안전을 위협하는 진짜 재앙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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