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에서 자라는, 할머니의 ‘토종씨앗’

텃밭에서 자라는, 할머니의 ‘토종씨앗’​

글 최규화 (인터파크도서 <북DB> 기자)/ realdemo@hanmail.net 

아내는 지역아동센터 선생님으로 일하다 첫째 아이를 임신한 뒤로 전업주부로 살고 있습니다. 아이에 대한 관심만큼 아이의 삶에 영향을 주는 '세상'에 대한 관심도 많은데요, 아이 키우는 일에 매여, 그 많은 '할 말'들을 풀어놓을 기회가 없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거리로 나온 '앵그리맘'들의 마음 또한 그랬을 겁니다. 아내의 일기를 통해 그런 엄마들의 속마음을 들여다보고, 우리 사회에 대한 시선을 공유하려 합니다.  

# 아내의 일기

  호진이랑 시장 가는 길에 옆집 아저씨를 만났다. 올 한 해 옥상 텃밭에서 자주 만나고 이런저런 얘기 나누었던 아저씨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뵙네요.”

  “그래유. 근데 밭은 왜 그렇게 해놨대유?”

  얼굴이 화끈거렸다. 사실 텃밭 농사를 쉽게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농사가 잘 안 됐고, 마지막에 씨를 받아보겠다고 해바라기 꽃만 자르고 줄기는 꺾어둔 채로 밭에 방치해놨다. ‘올라가 봐야지’ 하면서도 ‘좀 더 마르면 뽑아버리자’ 하고 미루던 차였다. 그런데 밭이 왜 그러냐고 정곡을 찌르시다니. 변명이라도 해야 했다.

  “해바라기가 잘 안 뽑혀서 좀 말려놓으면 잘 뽑힐까 싶어서요.”

  “밭 안 쓸거유? 안 쓸 거면 내가 뭐 좀 심어놓을 테니까 갖다 잡숴유.”

  “그러세요. 저희는 내년에나 다시 시작하든가 하려고요. 뭐 안 챙겨주셔도 되니까 부추랑 미나리랑 도라지만 놔두시고 나머지 땅은 쓰세요.”

  부추, 미나리와 도라지는 옥상 텃밭에서 3년째 살고 있다. 우리가 지금 이 집에 살기 전에는 할머니가 우리 부모님과 사시면서 텃밭 농사를 시작하셨다. 할머니는 이 집에 이사 오시기 전에 영주 풍기에 사셨다. 이사 온 뒤 풍기에 한번 가셨을 때 부추, 미나리, 도라지를 캐 오셔서 옥상 텃밭에 심으셨다. 그 다음해에 부모님과 할머니는 갑자기 이사 가시게 됐고, 대신 우리가 이 집에 이사 와서 사는 동안 이 세 작물들은 알아서 잘 컸다. 물론 옆집 아저씨가 오며 가며 물을 챙겨주신 덕도 있을 것이다. 

  올 봄 호진이와 같이 농사를 시작해봤다. 부추, 미나리는 알아서 자기 자리를 잡아 크고 있었고, 나머지 공간에 열무, 상추, 쑥갓, 깻잎, 방풍나물, 방울토마토, 딸기, 해바라기, 봉숭아꽃 씨를 사다 심었다. 부추, 미나리는 별로 손이 안 가는데 나머지 채소들은 왜 그렇게 손이 많이 가던지. 또 비만 왔다 하면 어쩜 잡초들은 ‘폭풍성장’을 하는지, 옥상 텃밭에 올라가면 잡초 뽑으랴 호진이 보랴 정신이 없었다.  

  할머니는 이 집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췌장암 판정을 받으셨다. 할머니 병문안을 가면 웃으며 얘기 할 수 있는 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호진이 얘기, 그리고 또 하나는 옥상 텃밭에서 농사짓는 얘기. 호진이가 할머니를 낯설어 해도, 할머니는 호진이를 보시면 얼굴에 웃음꽃이 피셨다. 옥상 텃밭에 할머니가 심어둔 부추, 미나리, 도라지가 아직도 잘 크고 있다고 말씀드리면 그렇게 자랑스러워 하셨다. 풍기에서 가져온 건데 정말 좋은 거라고, 뿌리째 파서 서울에 사는 고모한테도 좀 갖다 주라고도 하셨다. 그땐 ‘미나리가 뭐 다 똑같은 미나리지 뭐. 서울에서 씨 사다가 심으면 되는 거 아닌가? 할머니도 참 별나다.’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올 한 해 농사를 짓다보니 얘들은 좀 달랐다. 일단 모양이 다르다. 줄기가 시장 것보다 길지 않고 색도 더 짙었다. 꺾어서 냄새를 맡아보면 향도 더 진하다. 부추는 향도 좋고 매운 맛이 많지 않다. 신기한 건 할머니가 애초에 심어두신 밭고랑에 계속 자리 잡고 3년째 알아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부추, 미나리, 도라지 이 세 놈은 할머니의 유산 같아서 밭에서 계속 잘 키워보고 싶다. 

  예전에 텔레비전에서 제주도에 있는 토종씨앗도서관을 본 적이 있다. 제주도에서 계속 자라온 작물을 나누고 각자 키운 뒤 또 나누는 활동을 했다. 부천에는 그런 곳을 찾기가 어려울 것 같고 ‘언니네 텃밭’에서 토종작물 지키기 운동을 하고 있으니 참여해봐야겠다. 

 

# 남편의 반성문

  한글날 연휴 때 가족들과 전남 무안에 다녀왔습니다. 우리 가족은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에서 운영하는 ‘언니네 텃밭’의 ‘언니네 꾸러미’를 받아먹고 있거든요. 언니네 텃밭은 도시의 소비자를 농촌의 여성농민 공동체와 연결해주고, 그곳에서 기른 건강한 제철 농산물을 정기적으로 받아먹을 수 있게 하는 사업입니다. 이번에 무안에 간 것은 공동체의 여성농민들이 소비자 회원들을 초청하는 행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붉은 흙의 논밭과 갯벌이 바로 곁에 있는 신기한 풍경도 봤습니다. 갯벌 너머 서해로 떨어지는 저녁 해도 정말 아름다웠고, 부천에서 무안까지 7시간 운전의 피로를 잊게 하는 맑은 공기도 참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1박 2일 동안 건강한 먹을거리와 따뜻한 잠자리를 제공해주신 여성농민들의 인심은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가기 전에는 대학 시절 다니던 농활처럼 ‘빡세게’ 고구마도 캐고 무화과도 딸 줄 알았지만, 다행히(?)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이미 우리 가족이 나눠 가질 만큼 고구마도 캐놓고 무화과도 따두셨더군요.

  우리 가족을 포함해, 그날 행사에 참여한 예닐곱 가족들은 무안의 갯벌도 돌아보고, 여성농민들과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는 시간도 보내고, ‘꾸러미’ 생산지도 방문했습니다. 우리 집으로 배달되는 농산물이 생산되는 텃밭을 돌아보는 동안, 안내를 맡은 여성농민 분이 이런저런 설명을 참 많이 해주셨습니다. 흔히 뉴스에서 본 농촌 생활의 어려움, 농민들의 고충 같은 이야기들이 나오고, 이어서 토종씨앗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우리가 국산인 줄 알고 먹는 농산물들이 다 국산인 건 아니라는 말이었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고 더 들어보니, 이름부터 맛까지 정말 ‘한국적인’ 청양고추조차 국산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청양고추의 종자는 이미 초국적 종자기업인 몬산토의 소유가 돼버렸다는 것입니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초국적 종자기업들이 국내 종자기업들을 줄줄이 인수하면서, 국내 종자기업들이 갖고 있던 종자들이 모두 그들의 소유가 돼버렸습니다. 그래서 우리 농민들은 우리가 대대로 먹어온 ‘국산’ 작물들을 농사지으면서도, 초국적 종자기업들에게 꼬박꼬박 로열티를 지불해야 하는 처지가 됐습니다.

  씨앗을 한 번 사다 심으면 열매에서 새 씨앗을 받아서 계속 농사를 지을 수 있지 않냐고요? 그러면 참 다행이겠죠.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들은 유전자 변형을 통해 씨앗이 한 번밖에 싹틀 수 없도록 막아놓았습니다. 1회성 품종을 재배하는 농민들은 해마다 비싼 씨앗을 새로 구입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해외로 빠져나가는 로열티가 한 해에만 200억 원 정도나 됩니다.

  초국적 종자기업들은 종자를 독점하고, 그 종자를 재배하는 데 필요한 농약 등 화학약품의 판매까지 장악하고 있습니다. 농민들은 1년 내내 농사지어서 씨앗값, 농약값으로 기업 좋은 일만 시켜주는 셈입니다. 다음 세대를 생산할 수 없게끔 유전자가 조작된 씨앗, 화학약품에 의존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진 씨앗, 품종의 다양성을 버리고 다수확과 편의성을 중심으로 획일화된 씨앗, 하나의 ‘상품’으로 전락한 씨앗들은 결국 우리 가족과 국민의 건강을 해칠 수밖에 없겠죠.

  아내가 텔레비전에서 봤다는 토종씨앗도서관도 그런 까닭 때문에 생겼습니다. 텃밭 농사를 짓는 ‘도시농부’들이 중심이 돼서 토종씨앗을 지키고 확산시키기 위해 토종씨앗을 빌려주는 곳입니다. 씨앗값은 씨앗을 빌려서 키운 작물에서 다시 씨앗을 받아 돌려주는 것으로 대신합니다. 아내가 텔레비전에서 본 제주뿐만 아니라 홍성과 안양과 수원 등지에도 토종씨앗도서관이 만들어졌다 합니다.

  세상에는 참 눈에 보이지 않는 소중한 것들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토종 작물에서 씨앗을 채종하는 것도 참 힘들다고 하더군요. 토종씨앗을 채종하기 위해 고생하고 있다는 무안 여성농민 분은 “옛날부터 농사지어온 할매들이나 할 수 있지, 농사짓는 사람 중에도 젊은 사람들은 일부러 하라 그래도 못해요” 하고 그 어려움을 표현했습니다. 우리 밥상에 흔하게 올라오는 나물 하나, 밥 한 그릇에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의지’가 담겨 있다는 사실, 이제 밥상 앞에서 조금 더 겸손해져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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