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이권은 큰 특권으로... ‘졸부 천국’의 단면도

작은 이권은 큰 특권으로... ‘졸부 천국’의 단면도​​​

글 최규화 (인터파크도서 <북DB> 기자)/ realdemo@hanmail.net 

아내는 지역아동센터 선생님으로 일하다 첫째 아이를 임신한 뒤로 전업주부로 살고 있습니다. 아이에 대한 관심만큼 아이의 삶에 영향을 주는 '세상'에 대한 관심도 많은데요, 아이 키우는 일에 매여, 그 많은 '할 말'들을 풀어놓을 기회가 없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거리로 나온 '앵그리맘'들의 마음 또한 그랬을 겁니다. 아내의 일기를 통해 그런 엄마들의 속마음을 들여다보고, 우리 사회에 대한 시선을 공유하려 합니다.  

[# 아내의 일기]

  호진이를 낳아 키우면서 알게 된 인터넷 카페가 있다. 호진이가 감기로 힘들어 할 때 카페에 글을 쓰면 엄마들이 위로해주고 본인들이 생각하는 좋은 병원을 추천해 주었다. 육아가 힘들다고 넋두리를 늘어놓으면 나와 같은 처지의 엄마들이 공감해 주고 다독여줬다. 잠이 안 오는 새벽에는 나처럼 잠들지 못하는 엄마들과 수다도 떠는 편안하고 즐거운 곳이어서 하루에도 여러 번 카페에 들락거린다.

  그곳엔 규정들이 몇 개 있는데, 본인이나 지인을 홍보하는 글은 절대 쓰면 안 된다. 등급을 올리기 위해 성의 없는 글이나 덧글을 쓰면 통보없이 삭제된다. 그리고 비방, 분란을 유도하는 게시글, 마녀사냥을 하는 등의 게시글도 삭제된다. 이런 규정에 숨막혀 했던 때도 있다. 인터넷 카페 가입하고 활동하기가 이렇게 힘들었던 적이 있었을까. 초반에 규정을 잘 몰라서, 과외하고 있는 친구를 추천했다가 삭제당하고 경고를 받은 적도 있다. 열심히 활동하고 ‘등업’ 신청했는데 거절당한 적도 여러 번이다.

  그래도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이 카페에는 믿을 만한 정보가 정말 많았다. 개인 업체나 지인 업체를 홍보하는 글은 용납하지 않기 때문에 엄마들은 카페에서 추천된 식당이나 병원 정보를 비롯해 각종 정보들을 얻었고 신뢰했다.

  이랬던 카페가 작년 카페지기가 바뀌면서 달라졌다. 제일 큰 변화는 협력 업체였다. 카페 회원에게 좋은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소개하겠다는 취지로 업체를 모집했고 카페엔 협력 업체의 홍보글도, 그 업체를 이용한 후기도 늘었다. 상처 치료에 좋은 한방 자운고 연고나 비염이나 코감기에 좋은 청비고도 알게 되었고, 협력 업체에서 파는 아귀포는 쥐포보다 부드럽고 더 고소했다. 법률, 병원, 맛집, 의류, 생활 용품에 차량 관리에 관한 업체 등 다양한 분야의 서비스를 좀 더 싸거나 좀 더 친절하게 받을 수 있었다. 그 외에도 회원들이 만족할 만한 업체들의 서비스가 많았다.

  그러다 일이 터졌다. 카페지기가 일방적 공지를 남긴 것이다. 협력 업체에 대한 전반적 설명과 더불어 ‘매년 카페지기 신청자가 없는 상황에서 운영자 자리에 사람을 끌어 앉히다보니 다들 너무 힘들어한다. 이제 카페에서 수익이 발생하는 만큼 1년마다 바뀌는 카페지기가 아닌 지속적으로 책임감과 안정감으로 카페를 끌어나갈 일꾼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투표없이 내년에도 본인이 카페지기를 하겠다는 결론이었다.

  이 글엔 늘 수고하는 카페지기를 응원하는 회원들도 있었지만 비난하는 회원들도 많았고, 그 일방적인 공지마저 남몰래 수정되는 기이한 일까지 벌어졌다. 공지가 수정된 직후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글과 수많은 덧글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어물쩍 연임하려는 카페지기를 두고 볼 수 없다’는 말과 함께 ‘협력 업체로 돈 좀 벌더니 욕심이 생긴 게 아니냐’는 등의 글이었다.

  이때부터 규정에 있던 ‘분란 유도 게시글 삭제’ 규칙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카페지기를 비판하는 글은 빛의 속도로 삭제되었고, 강제 퇴장 조치로 회원 수가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불통은 이틀째 계속되고 있다. 그렇게 이틀 동안 카페회원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고 최고 등급인 ‘여신’ 등급의 회원들이 강제 퇴장을 당하면서 카페 회원 수는 계속 줄었다.

  카페 회원들이 카페 정상화를 외치며 원하는 것은 ‘진실 규명’이다. 협력 업체를 통해 얻은 수익과 지출을 공개하고 정말 카페지기를 하려는 사람이 없는 건지 투표로 밝혀 보자는 것이다. 다행히 지금은 마구잡이 글 삭제나 강제 퇴장이 멈춘 것 같다. 전 매니저의 중재로 운영진 교체와 ‘유감이다’ 정도의 사과는 받아냈다. 강제 퇴장 당했던 회원들도 하나둘 다시 돌아오고 있다. 이젠 ‘머리’ 격인 카페지기의 사과를 기다리고 있지만 아직 묵묵부답이다.

  카페 회원들의 의견은 카페에서 수익을 내지 말라는 건 아니다. 수고하는 운영진에게 수익이 조금 돌아가도 괜찮다. 하지만 그 외의 수익에 대해서는 공개해 달라는 요구를 이렇게 묵살하고 ‘불통’으로 일관하는 운영자를 보는 마음이 씁쓸하다.

 


 

[# 남편의 반성문]

  코미디가 따로 없습니다. 지역마다 있는 ‘엄마 카페’들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다보니 종종 이런 일이 있나 봅니다. 올 봄에는 김포에 있는 한 엄마 카페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협력 업체와 관련된 이권, 그리고 운영자의 불투명한 운영과 비판적 회원들에 대한 무차별 징계. 오늘 아내 일기에 등장하는 이야기와 판박이처럼 닮아 있었습니다. 심한 경우에는 협력 업체와 짜고 회원들을 상대로 ‘사기’를 친 인터넷 카페 운영자들이 법의 심판을 받는 경우도 종종 일어납니다.

  아내가 활동하는 카페는 회원 수가 5만 명 이상 된다고 합니다. 한 지역의 여론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숫자죠. 자본주의 세상에서, 사람 모인 곳에는 ‘돈 벌러 오는 사람도’ 모이기 마련입니다. 그렇게 이권이 생기면 특권으로 이어지는 것도 당연한 순서입니다.

  비단 인터넷 카페뿐만 아니라, 이권과 특권 때문에 공동체가 망가지는 경우를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아파트 운영위원회나 부녀회 같은 거죠. 그들만의 이익을 위한 치졸한 이익집단이 되는 것으로도 모자라, 경비나 청소 노동자 같은 상대적인 약자들을 괴롭히기도 합니다. 탈법과 위법으로 이권을 도모하고, 그 이권을 지키기 위해 집단의 운영원칙까지 저버리면서 특권세력이 되기도 합니다. 그곳뿐이겠습니까? 친목단체든 시민단체든 정당이든, 이런 폐단의 사례가 없는 곳이 없을 겁니다.

  한국 사회를 설명하기 위해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졸부’입니다. 한국 사회는 졸부들의 천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열심히 일해서 가난에서 벗어나고 여유를 누리게 된 사람들을 싸잡아 비난할 생각은 없습니다. 제가 말하는 졸부란, 자신의 부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는 사이에 갑작스럽게 부자가 된 사람들, 오직 돈을 벌기 위해서 살아오느라 그 과정에서 배워야 할 것들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을 말합니다. 여기서 ‘부’ 대신에 ‘권력’이라는 말을 넣어도 상관없습니다.   

  부와 권력을 쌓아가는 데 있어서 지켜야 할 원칙들, 토론과 합의의 과정, 존중과 공존의 가치를 우리 사회의 졸부들은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런 졸부들을 감시하고 견제해야 할 국민들 역시 ‘나도 저런 졸부가 되는 길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만 먼저 배울 뿐이었습니다. 작은 부와 그것이 낳은 권력을 최대한 맛보고 휘두르려 하는 ‘갑질’, 이권과 특권을 강화하려는 목적을 위해 민주주의든 소통이든 귀찮은 건 적당히 무시해도 좋다는 ‘불통’, 인성의 깊이가 부의 높이를 따라잡지 못하는 ‘천박함’. 이것들이 졸부근성의 핵심입니다. 아내가 활동하는 카페 운영진들이 보여준 모습도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습니다.

  민주주의 교육, 민주주의 연습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그나마 민주주의 ‘감수성’이 몸에 밴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저 카페의 ‘사태’도 정상화 방향으로 약간 돌아서지 않았나 싶습니다. 학교에서 학급 어린이회 회의라도 해보지 않았다면, 학생회장이라도 선거로 직접 뽑아보지 않았다면 저 정도의 반발도 기대하기 어려웠겠죠. 사회는 아직 치열한 경쟁과 각박한 생존의 논리가 지배하는 곳입니다. 상대적으로 그런 긴장으로부터 자유로운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민주주의 DNA를 심어주는 교육이 더 많이 이뤄져야겠습니다. 그리고 지역사회의 크고 작은 자치적인 커뮤니티 안에서 그런 연습이 반복돼야 하겠죠.

  저 카페에 회원들이 올린 글 중에도, 카페 운영자의 횡포와 청와대에 사는 ‘그분’을 비교하는 글이 있었나 봅니다. 집권 3년째 ‘불통’의 외길을 걸어오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 그분 말이죠. 그분을 옹호하고 싶지는 않지만, 오늘 저 카페의 사태를 읽고 나니 다시 한번 이 말이 생각나네요. “모든 민주주의 국가는 국민의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가진다.” 우리 사회가 졸부의 횡포를 용서하지 않는 수준으로 민주주의를 끌어올린다면, 더 이상 졸부 같은 대통령은 보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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