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구술) 이야기

민중을 대변한 투쟁의 역사 청주도시산업선교회 기증 사료

충청북도 청주시 청주도시산업선교회가 2004년 10월 11일 32년간의 활동 내용에 대한 사료들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 기증하였다. 이는 1972년 산업선교회가 창립되면서부터 생산하고 수집한 농민·학생·청년·노동·도시 빈민 운동 등에 관한 1만여 건의 민주화운동 관련 사료이다.
정진동 목사는 32년간 모아온 사료를 사업회에 기증하고, 1박 2일의 가을 여행을 다녀오면서 이렇게 소회를 피력하였다.

그간 32년의 청주 도시산업 선교의
민중들의 인권 사료를
정리하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으로
전달하고 피곤한 중에
1박 2일의 여행을 다녀왔다. (중략)

장성군의 필암 서원을 들려
옛 선비들의 유적을 관람하고,
특히 탐관오리들의 재산을 털어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누어준
홍길동 생가를 들러서
명종 때 청백리로 이름난
박수량의 백비를 보고 묵념을 하고
많은 것을 배웠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평소 정진동 목사의 삶과 철학을 엿볼 수 있다. 이 사료는 단순한 사건 기록일지가 아닌, 지역에서 어렵게 투쟁해 온 분들의 피와 땀, 한과 눈물이 맺힌 소중한 것이라고……. 

새싹을 틔우자

 
청주도시산업선교회는 1972년 4월에 활동을 시작하였다. 시대적으로 볼 때 산업화 과정에서 박정희 유신 독재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였다. 농촌 인구가 유입되는 과정에서 특히 여성들이 서울로 공장을 찾아오면서 노동 현장에서 인권 유린이 일어날 때에 민중선교회가 시작된 것이다.

청주도시산업선교회는 먼저 청주시청 청소부 170명의 근로 투쟁으로 시작하였다. 2년여의 노력으로 충청북도와 청주시로부터 청소부 근로조건의 개선을 약속받을 수 있었다. 근로조건 투쟁이 끝나고 중정으로부터 압력을 받은 충북노회는 산업선교위원회를 해체하고, 선교를 중단하라는 압력에 의해 정진동 목사를 일반 교회로 소개하려 했다.
이에 정진동 목사는 노동자를 버리면 예수를 버리는 것이기에 일반 큰 교회로 갈 수 없다며 노회를 떠나 넝마 통을 메고 넝마주이를 했다. 청주도시산업선교회는 탄압으로 인해 9차례나 이사를 다니면서 선교를 해왔으며 현 회관은 외국 산업선교를 하는 동지들의 모금을 통해 건축 된 것이다. 여기에는 조지송 목사의 힘이 컸다. 이 때부터 초교파로 있으며, 선교를 계속하였다.


겁내지 마라
청주도시산업선교는 도시빈민선교를 겸했다. 신흥제분 노동자, 연초제조창 노동자, 삼화물산, 대농, 서원산업, 조광피혁, 청주 시내 영업용 택시 운전기사의 인권 문제 등을 다루었다. 이러는 중에 정진동 목사는 정보원들의 탄압으로 투옥과 30여 회의 연행 연금 생활을 했으며, 조순형 전도사 같은 실무자들도 감옥살이를 하였다. 1970년대의 청주도시산업선교회의 활동을 보면 다음과 같다.

- 1973년 7월 청주시 170여 명의 시청 청소부들의 근로조건 개선 및 임금인상을 위한 투쟁을 하여 근로조건 개선을 이룸
- 1974년 4월 16일 중정으로부터 압력을 받은 충북노회는 산업선교위원회를 해체하고, 청주도시산업선교회에 대한 지원을 중단
- 1975년 4월 19일 신흥제분 근로자들 노동조합 결성. 회사 측은 노조위원장을 매수하고 노조를 해체하려고 하였고, 이에 정진동 목사는 신흥제분 노동자들의 권익을 옹호하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하였는데,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의 형을 선고 받음
- 1977년 4월 15일 기독교회관에서 4·19 기념행사 당시 성명서를 낭독하고 수배되었는데, 같은 달 24일 큰딸 결혼식이 끝난 자리에서 즉석 연행되었고, 이 사건과 관련하여 정진동의 자택에 가택 수색이 행해졌으며 타자기 등이 압수됨
- 1978년 3월 17일 노동절 기념집회 이후 신흥제분 노동자의 퇴직금 미지급 문제, 조광피혁 노동자 부당해고 문제, 교통사고로 인하여 불구가 되었으나 보상을 받지 못한 문제, 토지를 매수하여 경작하였는데 등기를 요구하다가 죽음을 당한 부동산 등기 문제 등의 사안으로 단식 투쟁 시작
- 1978년 4월 1일 신흥제분 하도급 노동자의 퇴직금 미지급 문제를 해결하였고, 같은 달 10일 조광피혁의 부당 해고자가 복직되었으며, 같은 달 11일 농민 문제에 대한 전면 재조사를 한다는 약속을 받아냄

이렇게 70년대를 지내고 30여 년 동안 800여 개의 사건을 다루면서 정진동 목사는 청주시라는 지역의 노동, 빈민 전 분야를 아우르는 민중의 대변인이 되어 있었다.


기록으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은 지난 3년간 40여만 건의 민주화운동 사료들을 기증 받아, 독자 개발한 사료관리시스템에 의해 자료의 DB를 구축하고 국민들에게 공개하기 위한 정리 작업을 하고 있다. 이러한 성과물 중 눈에 띄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영등포산업선교회, 인천산업선교회(기증 협의 중), 청주도시산업선교회 기증 사료가 그것이다. 기념사업회에서는 이들 산업선교회의 사료를 이용자들이 손쉽게 열람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과 함께 향후의 이용·활용방안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에 와 있다.
산업선교회 사료 DB 구축 작업이 완료되고, 국민들에게 공개할 시점에 맞추어 ‘산업선교회 사료 전시’와 ‘산업선교회 학술토론회 개최’를 하는 것도 그 방법의 하나일 것이다.
이러한 각종 전시와 행사를 통하여 학술적 접근뿐만 아니라, 관련 문화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국민들에게 보여주고 활용할 수 있도록 기념사업회는 노력할 것이다.  

 

청주도시산업선교회 사료 중 주요 사업장의 노동운동 사료

청주시청 청소부, 신흥제분, 연초제조창, 삼화물산, 대농, 서원산업, 조광피혁, 한국콘트롤데
이타(주), 원풍모방, 해태제과, A.M.K., 류맥스, 영진택시, 원일택시, 신안택시, 평화택시, 삼
보택시, 삼양금속, 서주산업(주) 등

<한만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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