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구술) 이야기

용공조작의 희생양 이철규 열사 의문사건


 

용공조작의 희생양 이철규 열사 의문사건
하형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 전문요원
꽃잎처럼 지는 것을 슬퍼하진 말거라
분노의 계절이오면 시퍼렇게 살아오는 데
투쟁으로 일어서는 피맺힌 함성소리
따라서 울부짖는 못다한 피의 영혼아
또다시 타네 그대몸이 거역의 몸부림으로
오늘도 사라지는 부릅뜬 반란의 눈동자여
겨우내 얼어붙은 새날이 오면
다시 태어나서 우뚝 서리라.
( ‘영혼의 노래’, 이철규 열사 추모곡)

 

정치적 의문사
민주화운동의 과정에서 벌어진 인권침해에는 일정한 정치적 동기가 전제되어 있다. 한국 현대사에서 정치적 동기가 전제된 의혹의 죽음을 우리는 ‘정치적 의문사’라 부르곤 한다. ‘정치적 의문사’는 제 5공화국 이후 형성된 일정한 역사적 개념이다. 한국의 현대사는 정치적 혼란과 갈등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정치적 의문사를 낳았다. 정치적 압제와 이에 대한 저항의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고문, 가혹행위, 암살 등의 생명권 침해를 당해왔다. 그 가운데 죽음의 타살여부와 가해자, 동기, 과정 등이 명확히 밝혀진 경우도 많지만 그 모든 것이 불투명한 의문의 죽음 역시 적지 않았다.

…… 의문사는 단순히 지나간 과거의 문제가 아닙니다. 의문사는 지금도 발생하는 …… 우리 주변에서 아직도 발생하고 있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분명히 의문사 진상규명은 과거를 파헤치는 것만이 아닌 앞으로의 재발 방지를 위한 역사 바로잡기입니다.
(의문사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제정 기자회견문 중에서)

독재정권은 위기 때마다 각종 용공사건을 조작하여 위기를 탈출하는 돌파구로 삼는 통치 전략을 구사해 왔다. 국가권력은 민주화운동 세력을 항상 사회혼란세력 내지 용공세력으로 치부했으며 용공조작에는 억압적 국가기구의 핵심이며 공안당국이었던 군, 경찰, 안기부가 관여되어 있었다.

 

실족사?
1989년 5월 10일 광주 청옥동 제 4수원지에서 얼굴이 검게 변색되고 입가에는 혈흔이 있으며 온몸에 구타 흔적과 멍이 든 참혹한 모습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조선대 교지인 『민주조선』 편집위원장으로 이 교지에 ‘북한의 혁명과 건설’이라는 논문을 게재,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지명수배 된 이철규였다.
…… 전신이 피멍이 들고 얼굴만 유독 새까맣게 변한 상태로 발견된 이철규군의 주검은 누가보더라도 그가 살해되었다고 여기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300만원의 현상금이 붙은 이철규군이 검문소에서 쫓기고 있었다는 사실을 택시기사가 증언할 때 까지 당국이 그 사실 자체를 숨기고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국민들은 당국의 사건발표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철규 살인사건에 즈음한 현 시국에 대한 우리의 입장’, 한국기독교사회운동연합, 1989)

이후 증언과 조사과정에서 드러난 점들을 정리하면, 5월 3일 행방불명될 때 잠복근무하던 경찰관들에게 검거된 것이 거의 확실하며, 그 이후 사체로 발견되기까지의 행방은 알 수가 없으나, 사체의 상태로 보아 수사기관에서 혹독한 고문을 받다가 살해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경찰은 끝내 사건의 은폐에만 혈안이 되어 각종 증거를 조작하고 범국민대책위원회의 활동을 억압하여 아직도 사인은 밝혀지고 있지 않다.

용공조작, 고문 그리고 의문사
이철규 열사의 의문사건은 최초로 학원자주화투쟁의 승리를 통해 민족사학을 세운 조선대 학생운동과 광주지역 민족민주 운동세력을 하나로 엮는 간첩단 사건을 조작하려던 당국의 계획에서부터 비롯되었다. 이는 당시 국회진상특위에서도 일부 윤곽이 밝혀지기도 했다.
이 사건은 단순한 지역 경찰 수준이 아닌 공안기관의 작품으로 인식되었다. 당시 『민주조선』에 대한 합수부의 수사초점은 문익환 목사와 함께 방북한 유원호와 이철규의 관계에 맞춰 있었다.


 

이철규의 죽음은 가깝게는 조선대 교지인 『민주조선』에 대한 탄압에서 비롯되었지만, 공안통치를 자행했던 독재정권이 민주화운동 세력에 대한 무모한 탄압의 과정에서 발생했기에 당시 국민들은 이철규의 죽음은 민주주의의 죽음이라 표현하고 거세게 진상규명을 요구하였다. 이철규 열사 사인 진상규명투쟁은 노태우 정권이 자행하는 공안통치의 정당성을 부정하면서 공안통치 반대와 민주주의 사수를 위한 운동으로 전국화 되었으며, 이후 노태우 정권의 퇴진투쟁과 함께 반 독재투쟁과 통일운동을 이끌어내는 견인차 역할을 하였다.

…… 이제 더 이상 노태우 군사퍄쇼정권은 ‘민주주의 수호자’도 ‘민족통일의 선도자’도 아닌 독점자본과 제국주의 이익을 위해 4,000만 민중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살인마임이 분명하다. 결국 이철규 열사는 화해 할 수 없는 독점자본과 군사정권을 한편으로 하고 …… 4,000만 민중과 전쟁 속에서 온몸으로 투쟁하다 고문살해 된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철규 동지의 죽음을 단지 민주학생의 죽음으로 받아들일 수 없으며 노태우 파쇼정권의 4,000만 민중에 대한 살인이요,

민주주의에 대한 살인행위로 받아들이는 것…… 노태우 퍄쇼정권의 피 묻은 손이 우리의 숨통을 조여 오고 있는 지금 우리는 뒤로 물러 설 수도 주저할 수도 없다…….
(‘이철규 열사의 죽음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천노동운동단체협의회, 1989)

 

너희들은 알잖아, 싸늘한 내 주검을
한국현대사의 비극은 권위적인 정권 주체들에 의해 과거사실에 대한 이미지와 기억이 왜곡되고 조작됨으로써 발생하고 있다. 한국사회의 소모적인 국가 정체성 논쟁, 개발독재를 용인하고 그리워하는 잘못된 역사인식은 권위주의 정권을 유지해 온 부패한 세력들이 과거를 바로 세우고 역사적 기억을 새롭게 구성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현재는 열사의 죽음과 함께 민주주의를 지켜내려는 피와 땀으로 잉태한 역사적 성과이다. 현재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불능으로 결정되어 12월에 출범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 자동으로 승계되는 사건은 허원근, 박태순, 이철규 사건 등 총 24건이다.
의문사의 진실을 밝히는 작업은 단지 과거의 잘못된 역사적 사실을 교정하는 학술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시대정신의 발현인 것이다.

 

너희들은 알잖아 싸늘한 내 주검을
피어난 나의 눈동자 총칼아래 찢기운 것을
그날의 고통이 오면 미쳐버릴 것 같애
지금도 외쳐대는 못 다한 나의 분노여…….
 

 
<하형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 전문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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