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구술) 이야기

불온한 시대의 인식과 재인식

 

한동안 기억의 창고 속에 방치되었다가 다시 되살아 나는 말들이 요즘 들어서 어디 한 둘이랴마는, 그중 국방부가 되살려준 것이‘불온서적’의 기억이다.
불온서적이라니, 참 오랜만에 다시 들어보는 단어다.
수많은 불온서적과 판금도서를 양산해 낸 독재정권 시절을 풍미한 책 가운데 하나가『해방전후사의 인식』(이하 <인식>)이었다. 이 책은 비단 역사의식에 눈뜨고 정의감이 정금처럼 빛나던 청년학도들만의 필독서가 아니라 가히‘국민도서’로 볼 수 있을 만큼 폭넓은 독자층을 가졌다. 글쓴이들이 뛰어난 역사학자들은 아니었을지언정 그동안 기성의 학자들이 손대지 못했거나 안했던, 하지만 많은 이들이 궁금했던 사안들 특히 해방공간에 대한 본격적 논의였다. 글쓴이들의 치열한 역사인식이 돋보였는데, 송건호 유인호 임종국 진덕규 염무웅 백기완 이동화 등이 필자였다. 박정희 독재가 마지막 숨을 할딱거리던 1979년 9월에 <한길사>가 펴냈고, 고박현채 선생 등이 가세하여 후일 3권으로 상재된다.
그런데 2006년에『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이하 <재인식>)이란,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모방한 제목의 책이 이른바 뉴라이트계열의 저자들에 의해 나왔다. 이때는 노무현 정권이 과거사 청산작업을 위해 법을 규정하는 등 친일청산이 저간의 화두가 되던 때다. 이영훈 등 저자들은“우리 사회의 역사인식을 그대로 두고 본다는 것은 역사학자의‘직무유기’라는 생각”으로 책을 펴낸다고 했다. 과거사 청산작업을 청산하고 싶어 안달이 난 그들은『인식』의 기저에 깔린 민족주의와 이상주의를 비판했다.
그들이 주장하기를“민족주의는 본래 배타적이고 폭력적인 이념이며, 인간 본성에 대한 이상주의적 관점에서 과거를 해석하고 비판해서는 안된다.”면서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론’이란 논리로 일제의 지배와 친일파들의 친일행각을 은연중에 합리화했다. 그들은 인간을 이기적 존재로 규정해놓고 인간의 모든 사고와 행동을 경제적 동물의 수준에서만 바라본다. 심지어 일제가 저지른 종군위안부 제도라는 만행조차 여성들의 자발적인 것이라고 강변한다. 참으로 해괴하고 천박하지 아니한가. 그런 인식이야말로 지금 이 땅에 횡행하는 천민 자본주의와 궁합이 찰떡처럼 맞는다. 국적불명의 역사 인식으로 일본의 극우파가 쾌재를 부른다.
일찍이 박정희는 그를 평생 짓누른 트라우마(Trauma) 와 싸웠지만 끝내 헤어나지 못했다. 일제 괴뢰 만주군 중위로서의 삶이 하나요, 남로당사건으로 사형을 구형받았던 좌익 이력이 두 번째 악몽이었다. 1949년 박정희는 국방경비법 제18조, 33조 위반으로 사형 구형에 처해졌다가 무기징역을 언도받았다. 이 판결로 그는 현역 소령에서 파면됐고, 급료도 몰수당했다. 그런 전력 때문일까, 그는 일제시기 그와 대척점에 서서 일제와 투쟁했으며 해방 후엔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굽힘없었던 장준하에 대한 원초적 열등감에 시달렸다.
그리고 자신의 뒤가 구렸기에 거꾸로 빨갱이사냥에 몰두했다. 박정희는 그렇다 치고 뉴라이트들은 대체 어떤 피할 수 없는 DNA를 가졌기에 그토록 친일파들을옹호하고 민족정기를 되살리고자하는 모든 시도에 딴죽을 걸까. 심지어 그들은 김성수와 이광수를‘급진적 민족주의자’로 호도한다.(<재인식> 2권 630쪽) 이 정도라면 궤변이요 요설이다. 이 기회에 한 가지만 말하자.
민족주의는 세계사적인 사건들에서 나타나듯 양날의 칼이다. 그것이 우리 역사에서는 식민지 해방과 같은 진보적 시대정신으로 명백히 작동했다. 그리고 이제는 민주주의라는 시대정신과 어떤 순기능으로 접목될 수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최근 그들의 반민족적인 이론을 바탕으로 한 이른바 ‘건국절’소동이 일었다. 독도를 집어삼키려고 혈안이 된 이웃나라조차 자기나라 건국일을 기원전 660년으로 삼아 기념하는 터에, 기왕에 존재하는 개천절은 어디다 팽개치고 그런 역모를 꾸미려하는지 벌린 입이 다물어 지질 않는다. 그들은‘광복’이란 용어조차도 못마땅해 한다. 오로지 친일 독재 반공으로 구성된‘48년체제’를 신화화할 뿐이다.
미래가 어둡게만 느껴질 땐 어찌해야하나? 어둠이 의미하는 것은 죽음일 수도 있고 동시에 자궁일 수도 있다. 자궁은 생명이고 그래서 희망이기도하다. 가장 어두울 때야말로 희망으로 갈아탈 변곡점인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미국의 시민운동가이자 저널리스트인 리베커 쏘울닛은, 약간 비튼 언술이긴 하지만,“ 자책할 기회야 말로 좌파가 드물게 제공할 수 있는 신명나는 기회” 라고 <어둠 속의 희망>(창비,2006년)에서 말하고 있지 않은가. 불온했던 시대와 또다시 불온을 꿈꾸는 시대에 대한 인식과 재인식이 필요한 때다. 지금이야말로 좌파들은 자책하고 우파들은 겸손할 때다. 좌건 우건 부디, 성찰함으로써 자중자애하자.

 
글·사료 어수갑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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