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구술) 이야기

우리도공범이다 - 탐욕에 눈먼 인간들에게 던지는 경고

 

우리도공범이다
- 탐욕에 눈먼 인간들에게 던지는 경고


글·어수갑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eohsgkdemo.or.kr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의 창궐, 거기에 신종플루까지. 올 겨울은 바이러스가 대한민국을 초토화시키고 있다. 하필 이 시대 이 나라에서 태어나 산채로 싹쓸이 살처분 당한 짐승들에겐 같은 생명을 지닌 존재로서 정말 면목이 없다. 소 돼지 닭 오리를 사육하는 축산농가 농민들의 타들어가는 마음 또한 위로할 길이 없다. 일차적으로는 그동안의 반생명적 축산정책과 초동대처에 미흡했던 관계당국에 책임이 크지만, 넓게 보면 그동안 아무 생각 없이 과도한 육식을 즐겼던 우리 모두 에게도 책임이 있다. 내남없이 가난했던 시절, 우리는 그저 생일이나 명절날 올라 온 멀건 고깃국으로도 마냥 행복했다. 실은 수수천년을 그렇게 살아왔다. 지금처럼 흥청망청 언제든지 상품으로 육류를 소비할 수 있게 된 것은 고작 최근의 일이다.


‘죽어가는 소, 피울음 농민

주지하는 것처럼 좁아터진 사육장에서 90% 이상의 수입사료로 속성 사육되는 ‘고기’는 이미 우리와 함께했던 식구와도 같은 반려동물이 아니다. 소비자의 욕 망을 위해 소비되는 상품일 뿐이다. 풀이나 볏짚 같은 여물을 먹고 논밭을 갈며 살던 소에게 속성사육을 위해 유전자 조작된 옥수수와 성장촉진제와 항생제로 뒤범벅된 것도 모자라 사료 안에 심지어는 같은 소의 내장 등 부산물이 첨부되기 도 했다. 애초에 좁은 국토를 감안하여 합리적인 축산정책을 썼다면, 그리고 살아있는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갖고 친환경적이고 친생명적으로 사육했더라면 오 늘의 문제는 아예 일어나지 않았거나 피해가 최소한에 그쳤을 것이다. 좁은 땅에 소만 340만 마리나 되고 돼지는 1,000만 마리나 된다고 한다. 믿을 수 없는 숫자 다. 총인구수 14명당 한 마리가 사육되는 실정이다. 물론 생태와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마구잡이 성장제일주의 정책의 직접적 피 해자는 축산농민들이지만 인간의 탐욕이 만들어낸 공장식 밀집사육의 희생물은 축산농민에 앞서 무참히 살육당한 짐승들이다. 종국에는 인간의 먹잇감이 될 하 찮은 짐승이라지만 생명 있는 존재에게 지켜야할 것도 있지 않을까. 이번 사태는 맛있는 고기를 더 많이 먹으려는 인간의 끝없는 식탐과 수익만 최대한 창출하려 는 업자들의 물욕과 이를 부추기는 산업논리 등 사슬처럼 엮어진 인간의 무분별한 탐욕이 만들어낸 결과다. 이번 구제역 파동에서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에서 우리는 살육의 공범자다. 거기에 정부의 위기관리능력에도 심 각한 결함이 더해졌다. 이 모든 것들의 결과 이 글을 쓰는 현재 구제역으로 200만 마리, 조류인플루엔자로 350만 마리의 생죽음을 가져온 것이다.


탐욕에 눈먼 인간들에게 던지는 뭇 생명들의 경고

행동주의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인 제레미 리프킨은『육식의 종말』이란 책 에서 반생명적 식습관에 물든 인간들을 위해 대량으로 소를 길러 육식을 즐 기는 동안 생태계가 파괴되고 굶어 죽어가야 하는 제3세계 수많은 사람들에 게 시선을 돌리라고 충고하면서 인간의 잔인함과 탐욕을 문화인류학적으로 비판했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지구상에서 생산되는 전체 곡식의 1/3을 소와 다른 가축들이 먹어치우고 있는 한편에서는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기아와 영양실 조에 허덕이고 있다. 사육 가축들이 내뿜는 이산화탄소와 무자비한 환경파괴 는 지구온난화의 주된 요인이 되고 있다. 과도한 육식을 취하는 부자나라의 절반이 비만인 반면, 세계의 절반은 굶주린다. 기막히게 불공평하고 부정의 한 현실이다. 우리 모두 이번 참사를 더 잘 먹고 더 많이 벌고 더 오래 살기를 바라는 오로지 성장만이 최고의 덕목이 된 인간세상에 지구촌의 뭇 생명들이 던지는 경고로 삼아봄은 어떨까.


“양키소 몰아내고 한국소 살아보자”외친‘소몰이투쟁’

농민들이 소 때문에 고통받았던 일은 과거에도 있었다. 1978년 박정희 정 권의 수입자유화 조처에 의해 시작된 농축산물의 무분별한 과다도입으로 인 한 소값 폭락 등으로 농가경제가 파탄의 위기에 빠지게 되고 식량자급률이 급격히 떨어지자 농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1985년 소값 피해보상과 미국의 농축산물 수입개방 압력 철회를 주장하는‘소몰이투쟁’등의 생존권투쟁은 6월항쟁을 거치고 1989년 2월의 여의도농민투쟁으로 정점에 이른다. 이 글에서는 여의도농민투쟁을 살펴보기로 한다.



농민들, FTA‘전신’인 UR 반대로 자주화 눈떠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1986년부터 시작된 GATT-UR(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우루과이라운드)협상이 진행되면서 미국의 농산물 수입개방 압력은 더욱 거 세졌다. WTO-FTA(세계무역기구-자유무역협정) 체제 확립을 시도하려는 미국 등 의 선진국 그룹과의 싸움의 초기형태 정도라고 할까. 노태우 정부는 1987년 양담 배 수입을 허락하는 동시에 잎담배의 작목전환을 유도하기 위해 농민들에게 과도 하게 고추를 심게 했다. 그 결과 1988년 고추생산량이 전년대비 52%가 증가하고 근당 2,500원하던 고추가격이 1,000원 이하로 폭락했다. 이에 농민들은 1987년의 고추값 폭락과 수세제도의 불합리성 및 농지개량조합의 비민주적 운영에 항의하 여 본격적인 대중투쟁으로서 수세투쟁과 농산물 제값받기 투쟁을 전개했다. 1985년 전남 무안군에서 시작된 부당 수세거부투쟁이 해를 거듭함에 따라 전 국적으로 확대되어 1988년 11월 1일‘전국수세폐지대책위원회’등을 꾸리고 수 세폐지와 고추전량 수매를 위한 투쟁을 전국 각지에서 400여 차례나 전개하였 다. 1988년 노태우 정권 출범 이후 여소야대 상황에서 추곡수매가에 대한 국회동 의제가 실시되었고 농산물 제값받기 투쟁이 대중적으로 확산되었지만, 이러한 문제점은 시정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고추값은 나날이 폭락하였다. 정부의 저곡 가정책에 분노한 농민들은 국회 개원 시기에 맞춰 자신들의 절박한 생존문제를 대대적으로 알리기 위해 여의도광장에서 농민대회를 개최하기에 이른 것이다.



3만 농민 여의도 모여 수세폐지·고추전량수매 요구

1989년 2월 13일 전국 99개 군 농민 3만여 명은 여의도광장에 모여‘수세폐지 및 고추전량수매 쟁취 전국농민대회’를 열었다.‘ 전국수세폐지대책위원회’와 ‘고추생산지역대책위원회’가 함께 한 것이다. 공동집회를 끝마치고 4당 대표와 대책을 토론하기 위해 국회의사당 쪽으로 행진했다. 그러나 경찰이 최루탄을 쏘 며 저지하자 분노한 농민들은 만장이나 깃발을 달기 위해 가져 온 대나무로 죽창을 만들어 이에 대항하면서, KBS·정부 업무수행 차량을 불태우는 등 격렬한 시위를 전개했다. 정부는 농민운동 지도자와 전민련 의장 및 전대협 의장 등 민족민주운동 세력에 대한 검거령을 내리는 한편 전국에서 총 458명이 연행 되어 117명 입건, 6명 구속, 9명이 불구속되었다. 농민들은 2월 25일‘여의도 농민집회 폭력진압 규탄과 수세 완전폐지를 위한 전국농민대회’를 26개 군에 서 동시에 개최하면서 투쟁하였다. 그러나 편향된 언론들의 농민들에 대한 폭력성 부각과 정권의 대대적 탄압 은 농민운동을 크게 위축시켰으며 가톨릭농민회 등은 배후세력으로 지목되 어 정부당국의 탄압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농민문제의 심각성을 일반국민들이 공감하게 되었으며 수세인하의 성과도 이루었다. 농민들의 요 구는 수세 폐지, 고추 전량수매, 농축산물 수입중지, 의료보험제도 통합일원 화 등 의료보장제도 전면실시 등이었다.



투쟁의지 모아‘전국농민운동연합’결성 

흔히‘죽창시위’로 불리는 여의도 농민 시위는 1960·1970년대 개발독재의 그늘 아래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되고, 1980년대 들어서는 농축산물 수입개방 조치에 의해 벼랑으로 내몰린 농민들의 저항이었다. 농민들은 자주적 투쟁을 통해 농민의 생존권 확보 및 정당한 정치적 권리 획득을 위해 스스로 나섰으 며 이를 통해 미국과 결탁한 노태우 정권의 사대주의적이고 반농민적인 행태 를 전 국민들에게 폭로했다. 또 이 투쟁을 계기로 가톨릭농민회와 기독교농민 회 등 기존의 전국적 농민운동조직과 1980년대 하반기부터 광범위하게 결성 되기 시작한 자주적 농민 대중조직의 일부가 연합하여 1989년 3월 2일 전국농 민운동연합(현 전국농민회총연맹)을 발족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모든 살아있는 존재는 그 자체로 거룩하다. 아름답다. 존귀하다. 생명있는 것들과 더불어 살아갈 때 우리 스스로의 존재도 빛난다. 영문도 모른 채 죽어 간 짐승들의 명복을 빌며, 워낭 흔들며 평화로이 풀을 뜯는 누렁이를 보며 행 복해하는 농부들의 환한 얼굴을 어서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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