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를 타자! : 장애인 이동권 투쟁보고서 - 박종필의 다큐멘터리가 바꿔 온 세상

버스를 타자! : 장애인 이동권 투쟁보고서 - 박종필의 다큐멘터리가 바꿔 온 세상

글 성지훈 acesjh@gmail.com​​​​​​

한달에 한번도 외출하지 못하는 장애인이 전체 장애인 중 16.6%, 다섯 번도 외출하지 못하는 장애인이 무려 70.5%나 되는 현실. <버스를 타자! : 장애인 이동권 투쟁보고서>가 나온 2002년은 그랬다. ‘집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도 장애인들에겐 허용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집 밖으로 나가기 위해, 고작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기 위해 장애인들은 투사가 돼야했다. 박종필 감독의 <버스를 타자>는 사회적 감옥에 갇힌 장애인들이 집 밖으로 나서겠다고 시작한 투쟁을 기록한다.

영화는 장애인들이 지하철에 오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지하철에 장애인이 타는 것만으로 투쟁이 될 수 있다는 현실이다. 장애인들이 지하철에 오르고 시간이 지체됐다는 이유만으로 시민들은 그들에게 욕을 퍼붓는다.) 발단은 2001년 1월로 거슬러 오른다. 당시 오이도역에서 장애인 노부부가 리프트를 타다가 추락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를 계기로 노들장애인야학 등 장애인단체들은 장애인 이동권 쟁취를 위한 투쟁에 나섰다. 이들은 초기 지하철 모든 역에 장애인용 승강기를 설치하라고 요구했고, 곧이어 이동의 권리를 지하철에서 버스로 확대해 나갔다. ‘장애인도 버스를 타고 싶다’는 요구가 나타났다. 지금이야 쉽게 볼 수 있는 저상버스가 당시엔 언감생심이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공무원들은 예산문제와 도로사정 등을 이유로 들며 저상버스 도입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드러낸다.

비장애인들은 아무런 문제도 없이 매일 오르내리는 버스를 타기 위해 장애인들은 일대 전쟁을 치러야 했다. 저상버스가 아니라면 휠체어 장애인들은 기본적으로 비장애인 2~3명의 도움을 받아야 버스에 오를 수 있다. 버스에 탄 장애인들이 불법을 저지를 우려가 있다며 경찰이 강제로 억류하는 일도 있다. 수많은 난관과 편견에 맞서 장애인들은 이동권 보장을 외쳤지만, 보건복지부, 건설교통부, 서울시 등 어느 곳도 서로에게 책임만 떠넘길 뿐 이동권 문제를 적극 해결하려고 나서지 않았다. 그러던 중 발산역에서 다시 장애인 리프트 추락참사가 발생했다. 안전한 이동은 곧 장애인들의 생존과 직결된다는 사실이 다시 확인됐다. 장애인들의 투쟁은 보다 거세질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지하철 선로에 내려가 달려오는 지하철에 온몸을 내던졌고,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에 올라 서울시민에게 호소했으며, 서울시장의 사과를 요구하면서 국가인권위원회를 점거하기도 했다.

점거 단식 농성 끝에 서울시는 저상버스 도입과 지하철 승강기 설치에 대한 논의를 본격화했고 이내 서울시에 저상버스가 도입된다. 대부분의 지하철역에 승강기가 설치된 것도 장애인들의 목숨을 건 투쟁이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는 그 흔한 나래이션 한 번 없이 이 모든 투쟁의 과정을 쫓으며 기록한다. 영화의 초반 장애인의 이동권에 대해 무감하고 폭력적인 모습을 보여주던 공무원이나 시민들의 의식도 지금은 많이 달라져있다. 이 역시 장애인들의 목숨을 건 투쟁, 그리고 꾸준히 그를 기록하고 대중들에 알려온 <버스를 타자> 같은 영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 여전히, 다시, 버스를 타자

15년 전 장애인들이 농성을 벌이고 몸에 쇠사슬을 채우던 그 곳에 여전히 장애인들은 남아있다. 부양의무제와 장애등급제를 폐지하라며 5년째 농성중인 광화문 지하도의 농성장. 턱선이 날렵하던 청년 박경석은 이제 머리가 희끗한 중년이 됐고 영화 속 서울시장은 대통령 임기까지 모두 마칠만큼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장애인들은 사회적 감옥에 갇혀있다.

지난 2005년 장애인 등 교통약자의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한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이 제정됐지만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생색내기 정책으로 인해 아직까지 장애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저상버스의 도입률은 14.5%에 불과하다. 더욱이 저상버스 도입 책임이 있는 전국의 기초지방자치단체 154곳 중 100여 곳은 아직까지 저상버스가 단 한 대도 없다. 여기에 특별교통수단 도입률도 법정 기준의 50% 수준에 불과하지만 정부는 아직까지 정확한 통계조차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모든 교통수단과 여객시설 등을 장애인 등의 교통약자가 차별 없이 이용할 수 있어야 하지만 고속버스와 시외버스, 광역버스, 마을버스 등은 현재까지도 교통약자들의 접근이 쉽지 않다.

이제 지하철에 휠체어가 오른다고 막무가내로 욕을 하는 시민은 없지만 어느 유명 연예인은 무대에 올라 장난스럽게 “팔을 구부리고 있으면 병신같다”는 장애인 혐오발언을 ‘농담’으로 던진다. 장애인들은 광화문 지하보도에 천막을 치기 위해 1박 2일동안 역사 안에 고립됐었고 12년 전처럼 몸에 줄을 묶어 버티거나 휠체어채로 내동댕이 쳐지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그들은 여전히 비장애인들의 세상에만 있는 버스를 타고 비장애인들로만 이뤄진 세상에 나오지 못한다. 박종필 감독은 “장애인운동은 그래도 처음보다 조금씩 더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자기가 만들어온 다큐멘터리가 조금씩 세상을 바꾸는 데 일조하고 있다고 믿는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장애인 운동에 대해, 세월호에 대해, 세상의 힘없고 몫없는 자들에 대해 응시하고 기록하고 연대하며 다큐멘터리로 세상을 바꾸는 일에 몰두하겠다고 말했다. 여전히 갇혀있지만 세상이 꾸준히 변화하고 나아질 것이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 박종필은 없다.

# 박종필이 바꿔 온 세상, 박종필들이 바꿔 갈 세상

박종필 감독의 영화에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아 소외당하고 차별받는 사람들의 얼굴이 등장한다. 그러나 여타의 영화에서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들은 사회적 시혜와 온정의 수혜자가 아니라 자기 삶을 개척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투쟁의 주체이면서 동시에 무력감을 토로하며 연대와 위로를 갈구하는 삶의 주체이기도 한 것이다. 박종필 감독의 영화에 등장하는 이들은 서로와, 또 세계와 불협화음을 일으키지만 동시에 세계와 서로와 함께 상존한다. 그건 감독이 찍고있는 대상의 ‘존재’를 명시하면서 영화가 대상을 ‘착취’하거나 ‘소비’하지 않으려는 노력의 산물이기도 하다. 박종필 감독의 영화를 통해 관객은 스크린 너머의 대상을 동정하는 것이 아니라 연대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박종필 감독은 <버스를 타자> 이후에도 <노들바람>(2003), <4·16프로젝트 ‘망각과 기억’-인양>(2016), <망각과 기억2: 돌아 봄-잠수사> 같은 영화들을 꾸준히 만들었다. 이밖에도 수많은 투쟁현장의 영상기록을 담당했고 행사 영상을 만들었다. 가장 최근에는 4.16연대의 미디어 활동가로 활동하면서 김관홍 잠수사의 이야기를 영상에 담았다. 그는 투쟁하는 현장 어느 곳에나 있었고 본인을 감독보다는 ‘활동가’로 명명하길 즐겼다. 그는 현장의 기록자이자 현장의 전달자였고 그 곳의 사연과 아픔을 위무하는 예술가이기도 했다. 어쩌면 그야말로 예술의 본령에 가장 가까이 닿아있었는지 모른다. 2017년 7월 28일 오후 4시 10분. 박종필은 세상을 떠났다.

박종필이 세상을 떠나던 무렵 <두 개의 문>, <3XFTM>을 만든 연분홍치마의 활동가 김일란 감독의 암투병 소식도 전해졌다. 박환성, 김광일 PD가 열악한 제작환경에서 다큐멘터리를 찍다 사망했다는 소식도 비슷한 시간에 들려왔다. 세상의 선량함을 믿고 기록해오던 이들의 이어진 비보. 장애인과 소외된 빈곤층, 세월호, 성소수자, 철거민, 노동자들의 삶을 애정과 연대로 기록하던 이들의 부재. 박종필 감독과 오랫동안 함께 해온 박래군 인권중심사람 소장은 “장애인, 노숙인, 세월호 유가족들과 함께 했던 사람, 마지막까지 모든 사람에게 미안해 한 사람, 그의 유언은 '미안하다'였습니다”라고 박종필 감독을 추모한다.

박종필이 없어도 그가 남긴 영화들은 우리 사회의 희망사다리에 작은 디딤돌이 될 것이다. 그리고 또다른 박종필들은 다시 따듯하고 희망에 가득한 눈빛으로 세상을 기록하고 삶의 방향을 제시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마저 가난하고 고통스러운 활동을 당연하게 감내하다 외롭고 미안한 마음을 남기고 떠나게 하고 싶지는 않다. 박종필 감독은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여전히 내 삶속에서는 다큐멘터리가 세상을 바꾸기 위해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박종필의 다큐멘터리가 바꿔 온 세상을, 또다른 박종필들의 다큐멘터리가 바꾸어낼 세상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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