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폭자’는 한국에도 있다 - ‘합천 평화의 집’을 찾아

‘피폭자’는 한국에도 있다

- ‘합천 평화의 집’을 찾아

글. 사진 권기봉 (작가, 여행가) warmwalk@gmail.com

경남 합천이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미납 추징금 때문에 여전히 입길에 오르내리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생가를 떠올리는 분도 있을 테고, 팔만대장경이 있는 해인사나 가야산을 꼽는 분도 있을 것이다.

필자가 기억하는 합천은 조금 다르다. 합천 읍내에 있는 ‘합천 평화의 집’을 방문하면서 알게 된 역사적인, 그러나 현재 진행형인 사실들 탓이다.

보통 ‘피폭자’라고 하면 몇 년 전 사고가 난 일본 후쿠시마 원전 근처의 주민들이나, 1945년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미군이 떨어뜨린 원폭의 직간접적 피해를 본 사람들, 또는 1986년 지금의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한 체르노빌 원전 사고 피해자들을 떠올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원폭 피해자가 그곳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태평양 한복판의 비키니섬에도 냉전 시절 미군의 핵실험 때 재앙을 뒤집어쓴 이들이 살아가고 있으며, 그 근처에서 아무 것도 모른 채 조업을 하다 피폭된 일본인 어부들도 있다. 역시 태평양의 프랑스령 섬들에도 핵실험의 영향을 받은 이들이 삶을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또 한 곳... 대한민국 경상남도 합천군에도 600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는 원폭 피해자들과 그 천형을 물려받은 후손들이 살아가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강제동원 등으로 끌려가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있다가 피폭을 당한 이들과 그 후손들이다. 한 마디로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을 이끈 미군의 원자폭탄에 의한 희생자가 비단 일본인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당시 조선인은 내 나라의 전쟁이 아니었음에도 전체 원폭 피해자의 10퍼센트 정도인 7만 명에 달했을 만큼 엄청난 희생을 감내해야만 했다. 그중 약 4만 명은 피폭 당시 목숨을 잃었고, 살아남은 이는 3만 명 수준이었다. 3만 명 가운데 2만 3천여 명은 해방 뒤 한국으로 돌아왔고, 7천 명 가까이는 일본에 남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국내로 들어온 약 2만 3천 명의 조선인 원폭 피해자가 어디에서 어떻게 정착해 살아가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점이다. 평화의 집이 있는 합천으로 이주해와서 살고 있는 피폭 생존자들의 경우에도 규모는커녕 그 실상조차 아직 완벽히 밝혀진 게 없다는 데 있다.

그에 대한 1차적인 책임이 있는 일본은 특별조치법과 원폭의료법, 피폭자 원호법 등을 제정해 지원을 하고는 있지만, 그 대상을 일본인으로만 한정한 상태이다. 심지어 미중대결 구도 속 미일동맹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히로시마 원폭 현장 방문까지 이끌어내면서 ‘세계 유일의 피폭국’이라는, 이른바 ‘피해자 코스프레’까지 하고 있는 상태이다. 원폭을 떨어뜨린 원죄가 있는 미국도 무신경하기는 마찬가지다.

한국 정부라고 해서 크게 다를 것도 없다. 결국 보다 못한 ‘당사자’가 나섰다. 앞서 지난 2002년 고 김형률(1970~2005) 씨가 한국에서 처음으로, 그것도 스스로 자신이 원폭 피해자의 2세 환자임을 대내외에 밝힌 것이다. 그의 발언은 원폭에 의한 문제가 단순히 피폭 당사자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후손으로도 이어질 수 있음을 세상에 다시 한 번 강조하는 계기가 되었고, 국내에서만이 아니라 일본이나 대만 등 해외에서도 공론화하는 단초가 되었다.

고 김형률 씨는 자신의 역할을 증언자 수준에서 끝내지 않았다. 2003년 국가인권위원회에 ‘원폭 2세 환우 공동대책위원회’와 함께 원폭 2세 환자들의 생존권 보호와 인권회복을 위한 진정서를 제출함으로써, 이듬해 한국 정부로 하여금 한국인 원폭 피해자 1·2세들의 실태 조사에 들어갈 수 있는 초석을 놓았다. 실제로 정부는 2005년 전국의 원폭 피해자 2세 1,226명을 대상으로 우편 설문조사를 실시해 ‘원폭 피해자 2세의 기초 현황 및 건강 실태조사’를 발표하기에 이른다.

드러난 사실은 실로 놀라웠다. 심근경색과 협심증, 빈혈과 같은 만성질환을 비롯하여 암이나 우울증, 정신분열 같은 질병을 앓고 있는 정도가 부모가 피폭 당하지 않은 또래들에 비해 월등히 많았다. 즉 심장 관계 질환은 80배 이상, 우울증은 약 70배, 조현병 발병 빈도는 약 20배에 달했다.

고 김형률 씨가 아픈 몸을 이끌고 나선 덕에 일본이나 우크라이나 등지 외에 한국에도 피폭 피해자들이, 특히 1세 뿐만 아니라 그 후손들도 아픔을 겪고 있다는 사실이 세상에 드러날 수 있었다. 그리고 원폭이 투하된 지 71년만인 지난 2016년 5월 19일 마침내 국회 본회의에서 ‘한국인 원자폭탄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안(대안)’이 가결되기에 이르렀다. 고 김형률 씨가 특별법 제정을 요구한 지 11년 만의 일이었다. 그러나 정확히 거기까지였다.

법안의 내용을 뜯어 보면, 보건복지부 장관 소속 위원회를 설치해 한국인 원폭 피해자에 대한 실태를 조사하고 의료 지원을 병행한다, 그리고 추모 묘역과 위령탑을 조성하는 등 뿐이다.

이때 실태 조사는 피해자가 직접 ‘등록’한 경우에 한할 수밖에 없기에, 2세나 3세, 나아가 4세 피해자의 경우엔 지원을 받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도 그럴 것이 결혼이나 취업, 사회의 따가운 눈총 탓에 피해자 등록을 꺼리는 그늘 속의 환자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방사능 노출에 따른 질병이 그 당사자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유전을 통해 자녀대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방사능 재해의 특성을 외면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원폭 피해자, 그 중에서도 일본 제국주의와 태평양전쟁의 결과로서 발생한 한국인 원폭 피해자 문제는 단순한 질병 치료 지원의 문제가 아니다. 독립운동이 지향한 바와 민주화운동이 향한 방향이 그러했듯, 원폭 피해자 지원은 곧 인권의 문제다. 특히 피폭 1세들은 일제강점기에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자의반 타의반으로 고향을 떠나야 했던 이들이며, 유례 없는 피해를 입고 귀국을 해서도 아무 도움 없이 그저 방치되어 온 이들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사회운동가와 종교인 그리고 시민들이 나서서 지난 2010년 세운 ‘합천 평화의 집’은 인상적이었다. 국가가 채 하지 못한 일을 시민들이 직접 나서서 스스로 풀어가려는 노력이, 피폭자와 그 2~3세들을 위한 지원 사업을 벌이고 있는 모습이 애틋했다. 최근에는 통과된 특별법과 대통령 시행령의 개정과 재의결을 위한 발걸음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인 원폭 피해자 문제가 발생한 지 벌써 72년이 흘렀다. 그런데 아직도 심각한 후유증과 고통에 직면한 우리 사회 또 하나의 구성원인 원폭 피폭자와 그 자녀들에 대한 지원은 충분치 않아 보인다. 특히 피폭이란 것을 바다 건너 일이라 생각하는 시민들이 아직도 적지 않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한국이야말로 세계 제2의 피폭 국가이며, 동시에 피폭 문제가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라는 사실이다. 설계 수명을 넘겨서까지 가동 중이던 부산 기장의 고리원전 1호기는 폐로하기로 했으나, 아직 20여 기의 원자로가 더 가동 중이고, 10기에 가까운 원자로를 이미 짓고 있거나 지을 계획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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