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졌던 제주의 속살을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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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졌던 제주의 속살을 찾아

글. 사진 권기봉 (작가, 여행가) warmwalk@gmail.com

제주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평화’… 조선시대까지는 변방이었던 제주는, 그러나 근현대기에 들어서는 사실상 최전선이기도 했다. 서귀포시 대정읍 근처의 황사평 묘지가 한 예다. 그 묘지와 관련한 이야기는 제주도 출신 현기영의 장편소설 <변방에 우짖는 새>에 잘 나타나 있는데, 이 소설은 지난 1901년 제주도에서 일어난 천주교인과 다른 주민들 사이의 충돌을 다루고 있다.

그런데 그 충돌을 가리키는 용어가 참 여러가지다. 지난 1999년 이 소설을 원작 삼아 개봉한 영화 제목처럼 <이재수의 난>이라고도 불리고, 사건이 벌어진 해가 신축년이어서 ‘신축교난’이라고도 부른다. ‘제주민란’이나 ‘제주교난’이라 칭하는 이들도 있다. 명칭이 다양하다는 건 그만큼 사건의 성격이 복잡하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일본이 조선을 강점한 이후의 제주는 중국 침략을 위한 ‘불침항모’와 같은 역할을 부여 받았다. 해방 뒤에는 좌와 우의 대립 속에 그리고 막연한 두려움 속에 서로를 죽고 죽였던 4.3과 같은 슬픈 역사가 거듭되기도 했다.

지난 2005년 정부가 ‘평화의 섬’으로 지정한 이래 ‘제주올레’의 인기와 함께 평화로움, 느림, 여유, 휴식 등이 주요한 인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듯한 제주… 그 속에 숨어있는, 그러나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제주의 속살을 찾아 떠나 보자.

평화의 섬 제주에 남아있는 전쟁 흔적들

일제 때까지만 해도 큐슈에서 이륙한 폭격기가 한 번에 중국까지 갈 수 없었다. 결국 제주에 잠깐 내려 급유를 한 뒤 떠나곤 했는데 나중에는 아예 주둔부대가 창설되었다. 특히 2차 대전 말기에 가서는 ‘결호작전', 즉 결사항전을 위한 주요 작전지로 꼽힌다. 일본은 필리핀과 오키나와 점령에 이어 파죽지세로 밀고 올라오던 미군에 대항하기 위해 본토사수작전을 준비했는데, 1945년 초부터 일본 내 6개 지역과 일본 외 1개 지역 등 모두 7개 지역에서 결사항전을 위한 결호작전을 실시한 것이다. 그때 일본 외 1개 지역이 바로 제주도였다. 제주도를 미군에 빼앗기면 일본 본토와 관동군이 있던 지금의 중국 동북3성과의 연결이 끊어질 수밖에 없기에 일본은 제주도를 상당히 중요하게 여길 수밖에 없었다.

당시의 흔적이 지금도 제주도에 여럿 남아 있다. 알뜨르비행장이 대표적이다. 비슷한 시기에 건설된 정뜨르비행장은 해방 뒤 지금의 제주국제공항으로 변모한 나머지 옛 모습을 찾을 길이 없지만, 현재 채소밭 등으로 쓰이고 있는 알뜨르비행장은 자유롭게 답사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짐짓 충격적이다. 격납고를 지금처럼 철판이 아니라 미군의 폭격에 대비하기 위해 철큰콘크리트로 만들었는데 두께가 1~2미터에 달한다든지, 주변의 오름들 사이에서 잘 눈에 띠지 않게 하려 반원형이 아니라 옆으로 긴 타원형 모양을 하고 있는 식이다. 을씨년스러우면서도 괴상한 풍경이 아닐 수 없다.

다만 지난해 말부터 이곳에도 변화가 찾아오고 있다. 제1회 제주비엔날레를 개최하면서 이 일대를 야외전시장으로 삼은 것인데, 최평곤의 ‘파랑새’를 비롯해 옥정호의 ‘진지’, 고 구본주의 ‘솟구치는 힘’ 등 장소의 역사성과 제주인들의 삶을 빗대어 들여다볼 수 있는 작품들이 여럿 설치되어 있다. 덩달아 이곳을 찾는 이들도 하나둘 늘어나는 모양새다.

성산일출봉에 자살특공대 대기소가?

알뜨르비행장이 제주의 남서부에 자리한 전쟁유적이라면 남동부에도 비슷한 시기에 건설된 흔적이 있다. 제주를 찾았던 이라면 한 번쯤 올라 보았을 성산일출봉… 사실 정상으로 올라갈 뿐 굳이 그 주변을 돌아보는 이들을 만나기는 힘든 게 사실인데, 나중에 제주도에 다시 갈 있이 있다면 성산일출봉 해녀의 집 맞은편에 있는 남서쪽 해안으로 한 번 내려가 보는 건 어떨까 싶다. 일부러 찾아 보지 않으면 만날 수 없는, 제주도의 현대사가 응축되어 있는 현장이 거기에 있다.

태평양전쟁 말기에 수세에 몰린 일본군이 자살특공대 대기 장소로 사용하기 위해 파놓은 동굴들이 그곳이다. 자살특공대라 하면 보통은 ‘카미카제’를 떠올리지만, 그런 부대가 하늘 위에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해안에 바짝 붙어 있는 절벽에 동굴을 판 뒤 그 안에 어뢰정이나 자살공격용 소형선박을 숨겨뒀다가 연합군 함정들이 가까이 다가오면 순식간에 출동해 자살 공격을 가하는 부대인 ‘카이텐(인간어뢰)’과 ‘신요(고속정 자살부대)’도 있었다. 성산일출봉 밑의 동굴들은 그처럼 최후의 발악을 위한 숨겨진 전쟁 기지였던 셈이다. 너비 34미터에, 길이가 짧은 것은 8미터에서 긴 것은 120미터가 넘는 동굴들이 해안에서 수직 방향으로 23개나 파여 있다.

비단 성산일출봉 밑에만 있는 것도 아니어서, 알뜨르비행장 남쪽에 있는 송악산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에도 15개 정도의 동굴진지가 남아 있다. 이것들을 판 것은 일본 군인들이 아니라 강제동원한 제주도민들이었기에 방문자를 숙연케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굳이 슬픈 역사를 알릴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에 방치해왔으나, 어두운 역사도 우리의 역사라는 인식이 생기면서, 도 역사를 잊는 순간 그와 같은 일이 양상만 달리할 뿐 되풀이될 수 있다는 인식이 보편화되면서 안내판을 정비하는 등 지나간 역사를 보듬으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맨손으로 다시 판 평화에의 열망

그러한 시도 가운데 가장 눈에 띠는 것이 한경면 청수리에 있다. 그곳엔 해발 140여 미터의 야트막한 가마오름이 있는데, 그 지하에 일제 말기에 지어진 동굴 진지가 있다. 입구만 서른 세 개에 달하는 이 미로형 동굴진지는 태평양전쟁 말기에 일본군이 미군의 상륙에 대비하기 위해 만든 길이 2km, 지하 3층 구조 제주도 최대 규모 동굴 진지다.

물론 이것만 남아 있다면 알뜨르비행장이나 성산일출봉 동굴진지와 차별성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곳엔 거기에 없는 것이 있다. 일제가 동굴진지를 구축할 때 2년 반 동안 노역을 해야 했던 당시 20대 초반의 고 이성찬 씨와 그의 아들 이영근 씨가 2대에 걸쳐 허물어졌던 동굴진지를 오로지 맨손으로 복원해 2004년에 문을 연 제주평화박물관이 있다. 폭력적인 침략과 처절한 전쟁의 현장을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역사 교육의 현장으로 재탄생시킨, 나아가 평화에의 열망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개인이 만든 곳이다 보니 다소 남루해보였던 것이 사실인데 최근 리모델링을 통해 산뜻한 모습으로 되살아났다.

55년만에야 사과를 받은 ‘제주4.3’

평화의 섬 제주의 수난은 비단 일제강점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해방이 되었으나 남과 북으로 분단된 현실, 그리고 지속되는 좌우 대립과 미군정의 몰이해 속에서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제주에서 벌어졌다. 해방정국의 혼란함 속에서 공권력이 민간인을 죽이고 민간인은 공권력을 공격했던, 이른바 ‘제주 4.3’이다. 이 국가폭력 사건은 이후 남북 분단이 고착화되고 독재정권이 공고해지며 입 밖으로 내어서는 안 되는, 실존하나 잊어야 하는 기억이었다.

이 문제가 비로소 사회에 회자되기 시작한 것은 일이 있은 지 반세기가 넘은 지난 2000년… 여야 합의로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된 것이다. 이윽고 2003년 10월 31일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정부를 대표하여 공권력의 잘못을 사과함으로써 4•3의 진실이 역사의 조명을 받게 되었다. 사건 이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55년만의 일이다.

그러면서 묻혀져 있었으나 알음알음 알려졌던 4.3의 현장들이 70주년을 맞는 올해엔 뭍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오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조천읍에 있는, 제주말로 ‘넓은 쉼터’라는 뜻의 너븐숭이다. 1949년초 군인 2명이 민간인 무장대의 습격을 받아 사망하는 일이 벌어지자 군대가 어린아이를 비롯한 마을 주민 대부분을 학살한 이른바 ‘북촌사건’의 현장인데, 이 일은 훗날 현기영의 소설 <순이삼촌>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4.3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애월읍의 하귀마을에도 들려볼 필요가 있다. 4.3은 공권력이나 공권력의 비호를 받은 서북청년회에 의한 민간인 사상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사실이나, 민간인에 의한 군인이나 경찰관 사상자도 있다 보니 성격이 다소 복잡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 보니 한 마을 안에서도 가해자와 피해자가 복잡하게 나뉘곤 하는데, 하귀마을에서는 지난 2003년 주민들이 자발적 모금 통해 가해자와 피해자 함께 기리는 위령비를 세웠다. 특이한 점은 4.3에만 머무르지 않고 앞서 항일인사와 한국전쟁 당시의 전몰호국영령 등을 위한 비도 세웠다. 식민과 독립, 분단, 4.3과 한국전쟁 등 오랜 시간 동안 발생한 모든 가해자와 피해자의 명부를 한 곳에 모시고 위령함으로써 용서와 화해, 평화와 상생의 모델을 제시하고 있는 최초의 현장이다. 제주도에서 태어나 지금도 제주도를 터전 삼아 작업하고 있는 강요배 화백의 화집 <동백꽃 지다>와 함께 찾는다면 4.3은 물론 제주의 역사와 삶에 대한 이해도가 배가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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