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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희망이 있다

여전히 대학 문화의 소통 공간이 되려 하는 인문사회과학 서점 그날이 오

여전히 대학 문화의 소통 공간이 되려 하는 인문사회과학 서점 그날이 오 사진  

올 겨울 날씨는 좀체 종잡을 수가 없다. 어제만 해도 볕이 따습더니 오늘은 한파주의보까지 내려졌다.
옛 어른들 말씀대로 겨울엔 눈이 많이 내려야 겨울가뭄도 안 생기고 이듬해 농사도 잘 된다는 말을 생각하니 그나마 추위를 이길 수 있었다. 취재길이 더 바빠졌다. 아직도, 인문사회과학 서점이 남아있느냐는 한 선배의 의아스러운 물음을 들었던 나로서는 서울대학교 앞 ‘그날이 오면’을 찾아가는 마음이 그랬다.
올 겨울이 추워야 내년 농사가 잘되는 것처럼 이 서점이 남아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하는 것을…….
대학교 앞 작은 서점 안은 서울 시내 한복판에 있는 대형서점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30여 평 되는
공간에 오래된 석유난로와 그 위에 놓인 주전자, 그것마저도 그을음에 시달렸음을 짐작케 한다.
현관문 입구 작은 칠판에 적힌 신간 소개는 보는 이로 하여금 정감이 넘치게 한다.
책 제목이야 어찌됐든 그 자리에서 선뜻 고르게 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대학 문화의 상징, 서점

지난 1988년 당시만 해도 대학교 앞에서 쉽게 찾을 수 있었던 인문사회과학 서점. 서울대 앞에 들어선 ‘그날이 오면’, 하지만 서점 주인은 그 이듬해 개인 사정으로 서점을 운영할 수 없게 되자 이곳의 ‘주인’을 찾고 있었다. 아무(?)에게나 서점을 넘겨줄 수 없었다. 마침 그때 인천에서 노동운동을 하고 있던 젊은 부부를 보고 ‘주인’ 역할을 제대로 해 줄 것 같은 믿음에 부부에게 ‘그날이 오면’의 주인장 자리를 넘겨줬다.
그 젊은 부부가 김동운·유정희 씨다. 그리고 20여 년 동안 서울대학교 앞에서 서점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그날이 오면’을 단순히 생활의 수단을 넘어선 그 이상의 가치로 생각하고 있었다.
“과거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에 대해 국민들의 관심이 높았고 역사적 진실에 암묵적 지지를 보내는 두터운 층들이 많았습니다. 그것은 최소한의 보편적 가치를 가진 청년 학생들이 기성세대에게 그런 모습들을 보여줬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부터는 사회주의 붕괴와 세계 정치 변화의 흐름 속에서 다른 사상이 유입되고 대학 사회가 변하고 결국 인문사회과학 서점이 사라질 수밖에 없는 현실에 놓인 겁니다.”
현재 전국에 인문사회과학 서적만을 판매하는 전문 서점은 얼마 남아 있질 않다. 학생운동이 활발했던 시기에는 전국의 대학교 앞에 하나 정도는 의무적일 만큼 있던 100여 개가 넘는 서점이 지금은 5~6개 뿐이다.


 

 

1980년대 한국 사회를 흔들었던 사회 변혁기의 그 많았던 사회과학서점은 당시 정권이 만들어 놓은 금서를 비밀리에 구할 수 있었던 은밀한 장소였다. 이른바 사회를 보는 시각을 키워 주던 온갖 정보와 지식들이 그곳에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당시 서점은 공개적인 판매 가판에 진열했던 책들과 사회과학 지식의 목마름을 해소하고자 하는 학생들이 찾던 ‘금서’들을 따로 챙겨두고 아름아름 학생들에게 비밀리에 판매하기도 했다. ‘앎’에 대한 젊은이들의 허기짐을 채워주던 당시 학교 앞 서점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서점 주인은 후방 전진 부대에 ‘장’ 역할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
“1997년 이었을 거예요. 그때가 아마도 학생운동이 거의 하향곡선일 때였는데 전국에 있던 대학교 앞 사회과학서점 주인들이 국가보안법으로 일제히 구속된 적이 있었어요. ‘그날이 오면’도 예외가 아니었죠. 그때는 제 집사람이 서점 사업등록자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구속되고 저도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고 그랬죠.
저 혼자 풀려나서 집에 오는 길이었어요. 군사독재 시절도 아닌데 앞으로의 일도 걱정되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서점 앞 버스에서 내렸는데…….” 그때 김동운 씨가 잠시 숨을 고르고 말을 다시 이어갔다.

  여전히 대학 문화의 소통 공간이 되려 하는 인문사회과학 서점 그날이 오 사진
현재 전국에 인문사회과학 서적만을 판매하는 전문 서점은 얼마 남아 있질 않다. 학생운동이 활발했던 시기에는 전국의 대학교 앞에 하나 정도는 의무적일 만큼 있던 100여 개가 넘는 서점이 지금은 5~6개 뿐이다.

 


“버스가 서점 건너편에서 서고 저는 이쪽(서점)을 향해서 걸어오는데 서점 앞에 학생 4~5백여 명이 가득 차 있는 거예요. 서점을 수색하고 주인을 구속한데 대한 항의 집회가 열리고 있었던 거였죠. 순간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앞으로 이 서점은 저 학생들이 있어 내가 절대 포기할 수 없다, 생각을 했어요. 그 이후로 서점 경영이 어려워지거나 힘들 때면 그때 생각을 합니다. 서점을 제 삶의 방식 혹은 삶의 가치로 삼고 운영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 겁니다.”


 

 

여전히 대학 문화의 소통 공간이 되려 하는 인문사회과학 서점 그날이 오 사진
20여년 동안 서울대학교 앞에서 ‘그날이 오면’을 운영하고 있는 김동운·유정희 씨 부부.
이들은 이 서점을 생활의 수단을 넘어선 그 이상의 가치로 생각하고 있다.


 

 

학생들 속으로…….

김동운 씨는 ‘그날이 오면’을 책만 사가는 서점으로만 생각하지 않게 하기 위해 적극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그날에서 책읽기』라는 150쪽 짜리 서평 전문 월간지를 만들어 학생들에게 무료로 배포하기도 했고 어려운 운영 속에서도 세미나 카페를 만들어 토론 문화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기도 했다. 또한 대학생 세미나 프로그램을 만들어 소개하는가 하면 학생회와 연대해 ‘새내기 대학생들을 위한 책 읽기 길라잡이’ 책자를 만들고 양심수들에게 책 보내기 운동을 진행해 왔다. 이중 매년 벌이는 서평대회는 앞으로도 꾸준히 진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 공간은 단순한 ‘서점’이 아닌 공간이란 느낌을 학생들에게 느끼게 해 주고 싶은 겁니다. 물론 지금 대학 사회가 사회를 바라보는 방식이 많이 변했지만 아직 우리에게 남아있는 진보적인 이론과 지식을 유통하는 ‘기지’의 역할은 계속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울대 학생들의 교양 서점으로서의 의미가 아닌 전체 진보진영의 징표로 기억되고 싶기 때문입니다.”
서점 운영? 물론 적자라고 했다. 인터넷 서점을 이용하는 이들이 많아지기도 했지만 가장 큰 이유는 학생들이 인문사회과학 서적을 읽지 않고 그래서 팔리지도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사회과학서점들이 경영난에 힘들어 문을 닫을 때도 그는 서점 문을 닫겠다는 생각은 절대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 이유는 이 서점은 자신의 개인 차원이 아니라 서점을 지지하고 후원하는 사람들의 동력이 있기 때문이란다.


 

여전히 대학 문화의 소통 공간이 되려 하는 인문사회과학 서점 그날이 오 사진
김동운 씨는 다른 사회과학서점들이 경영난에 힘들어 문을 닫을 때도 그는 서점 문을 닫겠다는 생각은 절대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 이유는 이 서점은 자신의 개인 차원이 아니라 서점을 지지하고 후원하는 사람들의 동력이 있기 때문이란다.

 

현재 서점을 후원하는 회원 200명 중 재학생이 반이고 나머지 반은 ‘그날이 오면’을 드나들며 대학 생활을 했던 졸업한 학생들이라고 한다.
인터뷰가 한참 진행되고 있을 무렵,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부부가 딸 아이 손을 잡고 서점에 들어섰다. 김동운 씨가 출입문을 보더니 남자의 손을 잡고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1990년대 초반 이 서점을 제집 드나들 듯 하며 책을 사가던 학생이 유학을 다녀와 대학 강사로 활동하고 있던 것이다. 10년이 훨씬 넘었는데도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 남자에게 ‘그날이 오면’은 자신의 대학 시절, 치열하게 사회를 고민하고 공부하게 해준 실천과 지식의 공간이었던 것이다.


 

『전태일 평전』과 『88만원 세대』

이제 곧 봄이 되면 새내기들이 새롭게 시작하는 시기가 올 것이다. 하지만 2008년, 대학 사회의 모습에서 예전의 대학의 모습을 찾기한 쉽지가 않다. 취업을 걱정하는 학생들은 이미 대학 입학부터 취업에 대한 심적 스트레스로 각종 자격증 공부에 도서관과 학원을 찾을 것이다. 그럼에도 유일하게 몇 안 되는 인문사회과학 서점 주인 김동운 씨 에게 물었다.
“새내기들에게 어떤 책을 권해주고 싶은가요?”
“가장 많이 팔린 책이기도 하지만 『전태일 평전』입니다.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아니 변할 수 없는 정신을 읽을 수 있는 책이죠. 또 하나는 『88만원 세대』입니다. 현 사회의 본질상 비정규직 문제, 청년실업 문제를 사회 의식적으로 바라보고 문제 의식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으로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하지만 지금 대학 신입생들에게 『전태일 평전』이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그 책을 선배나 혹은 교수들이 추천해 준다 한들 취업 걱정이 산만큼 쌓인 학생들 중에 읽을 이가 몇 있을까마는 그럼에도 청년 정신이 전태일 정신을 흔들리게 하는 일만큼은 막겠다는 ‘그날이 오면’의 주인 김동운 씨는 지금도 꾸준히 청년들을 바라보며 그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글. 사진 황석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홍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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