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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희망이 있다

고구려의 숨결을 다시 만나는 민족무예 <경당>

 

 

 

고구려의 숨결을 다시 만나는 민족무예 <경당> 사진

얼마 전 한 방송국에서 방영돼 한창 인기를 끌었던 ‘다모’는‘다모폐인’(드라마 ‘다모’를 너무 좋아하는 나머지 환상에 사로 잡혀 사는 사람) 이란 유행어를 만들어 낼 정도의 인기를 누렸던 사극드라마다. 트랜디 드라마에 익숙해진 젊은이들이 이 드라마에 끌렸던 것은 영상의 경쾌함이나 주인공들의 인기보다는 ‘무술’ 이란 고전적 소재가 주된 이유가 아니었나 싶다. 물론 영상매체를 통해 나타난 무술이 컴퓨터 그래픽을 사용해 시각적 효과를 적절하게 배합해 만든 것이란 걸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였는지 민족무예 수련원 경당에는 당시 꽤 많은 이들이 무예를 배우고 싶다는 문의가 있었다고 한다.
“저희 경당은 드라마 속에서 나오는 그런 환상적인 무술을 하는 곳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드라마에 혹해 호기심을 갖고 배우러 오기도 했지만 저희가 하는 무예는 자주, 자강, 진취의 기상을 길러낸 고구려 경당의 정신을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경당을 만든 임영규 선생님의 취지이기도 하구요.”
창시자인 임동규 선생의 제자로 10년이 넘게 경당을 지키며 민족의 전통무예를 지키고 있는 김대양 사범의 말이다.


경당의 시작


통혁당재건기도 사건과 남민전 사건에 연루돼 20여 년간 수감생활을 했던 임동규 선생은 감옥에서 우연히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란 책을 접하게 된다. 우연을 통해 드러나는 역사의 필연이라고 할 수 있을까. 숨이 끊어졌던 전통무예 교본 「무예도보통지」는 그의 손에서 10여 년이란 세월을 보내며 소생의 길을 찾기 시작했다. 그는 한자로 되어 있어 뜻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던 무예도보통지를 일일이 옥편을 찾아가며 뜻을 풀이해, 일반이 쉽게 배울 수 있도록 하고, 무예의 동작을 직접 재현해 해석하는 작업을 시도했다.
임영규 선생의 작업은 그러나 80년대라는 상황과 만나면서 특별한 길을 걷게 된다. ‘민주화운동’으로 오랜 옥고를 치른 인물이 창시자란 매력 때문이었는지, 그가 복원한 전통무예는 시위가 그칠 날이 없던 대학가를 통해 확산의 길을 찾게 된다.
 

고구려의 숨결을 다시 만나는 민족무예 <경당> 사진
고구려의 숨결을 다시 만나는 민족무예 <경당> 사진
“경당 초기에 무예를 배우던 사람들이 대부분 대학생들과 노조활동을 하는 이들이었어요. 처음 임영규 선생이 계시던 광주 본당에 가니까 전국에 있는 대학생들이 와서 배우는데 정말 깜짝 놀랐어요. 사람들이 진짜 많더라고요.”
적극적인 홍보를 한 것도 아니고 지금처럼 인터넷이 보급되어 있던 시절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당시 수련에 쓰이는 칼이 일년에 1만 자루 이상 팔려나갔을 정도였다니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경당에서 무예를 배웠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아마도 우리 문화, 우리 것에 대한 열기가 대학가를 중심으로 퍼지면서 탈춤이나 풍물패와 더불어 민족무예에 대한 관심도 확대되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80년대의 어두운 터널을 몸으로 맞서며 보냈던 이들 사이에서는 그 당시 시위 현장에서 용맹(?)을 떨쳤던 ‘오월대’니 ‘녹두대’니 하는 당시 대
학가의 ‘전위’들 가운데 경당 출신이 많다는 말이 떠돌기도 했다.
“집회장소에서 이른바 ‘선봉대’라 불리는 친구들이 데모대열 앞에 있었죠. 그런데 각목 잡는 품새만 보더라도 ‘저 친구 경당 출신이구나’ 하고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어요.”
김대양 사범의 말 속에서도 경당이 대학가에서 유행했던 연유를 찾아볼 수 있다. 물론 지금은 그런 이미지를 벗고 보통 사람들이 배우는 생활문화운동의 하나로 자리하고 있지만 민족무예가 지닌 기본에 충실 한다는 정신은 처음이나 이제나 별다름 없이 지켜나가고 있다.

무예는 역사적 사료

경당에서 수련의 기본으로 삼고 있는 「무예도보통지」는 정조대왕 때 제작되었다. 정조는 당시 발호하던 척족세력을 물리치고 왕권을 강화하는 한편 전란에 대비하기 위해 규장각 검서관인 박제가, 무관이었던 백동수 등에게 이를 편찬하게 하였다. 실학자였던 박제가 등 편찬자들을 한글판 해설본인 언해본까지 완성, 간행해 무예를 대중화하는데 기여하고자 하였다.
정유재란 중이던 선조 31년(1598)에 만들어진 ‘무예제보’와 영조 35년(1759)에 편찬된 ‘무예신보’가 전해지지 않아 ‘무예도보통지’는 오늘날 찾아볼 수 있는 단 하나의 전통 무예 교본이다. 이 책이 무예의 교과서라고 불릴 정도로 구성과 내용이 잘 정리되어 있다는 것은 제목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무예’는 창, 검, 도 등 병장기의 기예를 통칭하고 ‘도보’는 어떠한 사물을 실물의 그림을 통해 설명함으로써 계통을 세워 분류하는 것을 의미하며 ‘통지’란 모든 것을 총망라한 종합서임을 뜻하기 때문이다.
가장 앞선 ‘무예제보’는 곤봉, 등패, 낭선, 당파, 쌍수도 등의 6기를 체계화시켰으며, ‘무예신보’는 여기에 죽장창, 기창, 예도, 왜검, 교전 등 12기를 추가하여 18기를 정립하였다. ‘무예도보통지’는 다시 마상 6기를 추가하여 24반 무예를 체계화 하였다. 특히 본국검 같은 것은 유일하게 이 책에 그 기록이 남아 있어 사료로서의 가치도 높이 평가받고 있다.

 

「무예도보통지」는 조선과 청, 일본, 3국의 무예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데, 이 때문에 무술에 관심이 높은 중국과 일본은 우리보다 더 많은 연구를 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사라진 전통무예들이 바로 이 책에 남아 있다고 하니 ‘지피지기’(知彼知己) 정신으로 외세와 맞섰던 옛 선인들의 지혜를 보게 된다. 한편 일찌감치 「무예도보통지」를 연구하기 시작했던 중국은 이 책의 주인이 자기들이라는 근거 없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우리의 문화나 역사가 일본제국주의 시대에 많은 부분이 사라지고 왜곡되었던 것처럼 전통
고구려의 숨결을 다시 만나는 민족무예 <경당> 사진

무예도 마찬가지로 많이 사라지고 그 자취를 잃었습니다.” 김대양 사범은 그래서 경당의 민족정신이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선조들의 얼과 지혜가 담긴 문화


“처음 수련을 시작할 때는 ‘무예’라는 것에 호기심이 생겨 배우기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까 또 다른 매력이 있더라고요. 민족 문화, 우리 문화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된 겁니다.”
6개월 전부터 경당에서 전통무예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직장인 김성욱(27) 씨는 “동작이 무려 1,000개가 넘어서 다른 운동에 비해 기억력과 집중력이 요구되니까 머리가 늘 맑고, 빠른 동작으로 인해 민첩성과 유연성이 생기니까 몸이 가벼워져서 피로를 쉽게 느끼지도 않는다”며 무예를 배우고 난후 변화된 자신의 신체와 정신에 대해서 만족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현재 전국에는 약 25여 개의 지역경당이 자체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50여 개의 대학 동아리가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국내와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수련자도 1만여 명이 넘는다. 대중적으로 널리 알리기 위해 수년 전부터는 수원의 수원성에서 ‘정조시대 전통무예전’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2001년에는 일본과 중국, 한국의 학자들이 모여 무예에 관한 학술세미나를 개최하기도 했다. 사라져 가던 전통무예와 오늘의 문화가 결합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다행스런 일이라 하겠다. 고구려의 숨결을 다시 만나는 민족무예 <경당> 사진

“민족무예를 예술로 보는 이도 있고, 무예사라는 학문으로 보려는 이도 있으며, 사회운동의 대안으로 생각하는 이도 있습니다. 우리 전통무예의 발전을 위해서는 다양한 시각의 조화도 필요하고 대중화도 중요하지요.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무예 연구소를 설립하는 것이 필요해 보입니다.”
전통무예의 발전뿐만이 아닌 역사적, 문화적 발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김대양 사범의 말이다.
“제가 민족무예를 시작한 건 무예 하는 후배를 보고 시작한 것이거든요. 동작 하나하나와 품새가 어찌나 아름다웠는지 몰라요.”
‘멋있다’는 표현 대신 ‘아름답다’는 표현을 두 번이나 강조해서 말하는 김대양 사범처럼 무예 또한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우리 선조들의 얼과 지혜가 담긴 문화, 그리고 주체적인 민족교육을 바탕으로 하는 민족무예 경당. 단순히 무술을 전달하는 기능적인 매체가 아니라 민족무예를 연구하고 발전시켜 대중적 생활체육으로 다시 살아나기를 바라는 경당인들의 소망 속에는 생활 속에서 삶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이들의 모습이 들어있다

 

 

사진 도움 / 서울 경당
글 · 사진 황석선 stonesok@kdemo.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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