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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희망이 있다

인문학 책 읽기 운동으로 새로운 문화를 제시하는 `인서점`


인문학 책 읽기 운동으로 새로운 문화를 제시하는 `인서점`


인문학 책 읽기 운동으로 새로운 문화를 제시하는 `인서점` 사진

국내 최초의 사회과학 서점
아랫녘에는 단풍이 한창이라는데 서울 한복판 건국대학교 후문으로 가는 길가에 소나무들은 단풍의 절정과 상관없이 일 년 내내 그 모습 그대로 인 듯하다. ‘국내 최초의 사회과학 서점’이 이곳 가로수 길에 있다는데 왠지 소나무와 비슷한 느낌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사람(人), 그 사람들이 만드는 세상, 씨앗이 잘 자라도록 거름을 주는 일, 그래서 인서점이라고 지었습니다.” 인서점의 오랜 주인, 아니 처음부터 주인이었던 심범섭(65세) 씨는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저씨마냥 사람 좋은 얼굴로 필자를 맞는다.
인터뷰 시작 전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다. 한반도 지도 모양을 본떠 만든 통일놀이 탁자인데 육각 모양의 나무 700개로 구성되어 있다. 육각 모양의 나무를 드러내면 그 안에 한반도 어느 지역인지가 표시되어 있다. 그야말로 살아있는 인문지리 놀이기구인 셈이다.
“어느 지역을 좋아하세요?”
“저는 무진장(무주, 진안, 장수) 좋아합니다.”
“한번 찾아보세요. 몇 번에 무진장을 찾는지 볼까요?”
그 정도 지역이야 늘 보던 지도에서처럼 찾아내면 될 것이라 믿고 자신 있게 뽑았는데 충북 옥천이 나왔다. 그러자 그는 충북 옥천에 관한 역사와 문화에 대해 짧지만 재미나게 설명을 해준다. 한번 실패했으니 다시 뽑아보란다. 몇 번째에 무진장을 찾아낼 수 있을까? 나름 우리 땅에 대해 동년배들보다는 조금 더 알고 있다는 자신감 때문인지 심범섭 씨의 요구가 점점 흥미로워진다. 아무래도 더 내려가야 하니…… 더듬거리다 겨우 두 번을 더 뽑고 나서야 전북 무주를 찾아낼 수 있었다.
그는 내게 또 물었다.
“왜 무진장을 좋아하죠?”
“척박한 땅에 사는 사람들의 삶 때문이죠. 그래서 애정이…….”
“바로 그런거에요. 그냥 지도만 놓고 보면 재미없죠. 하지만 그 지역에 대한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부모랑 아이, 친구들끼리 이야기하다 보면 우리 땅에 대한 인식도 새롭게 하고 한반도 전체를 보면 통일에 대한 마음도 싹트고, 놀이하듯 인식하고 느끼면 이것이 바로 인문학 아니겠어요?”
 
유비통신의 진원지
인문학 책 읽기 운동으로 새로운 문화를 제시하는 `인서점` 사진  
‘민주’ 혹은 ‘자유’라는 단어만 공책에 써도 감시 당하고 끌려가던 엄혹한 군사독재 시절, 방송과 언론 모든 매채와 정보가 막혀있던 그 시절 유일한 정보의 소통은 입과 입을 통해 정보를 교환하던 이른바 유비통신이었다.
인서점은 지난 1982년 서울 길동 사거리에 동아서점이란 간판을 내걸고 시작됐다. 처음부터 사회과학 책을 판매한 것은 아니었다. 유난히 서울대 학생들이 많이 오가면서 서점 주인인 그와 자연스럽게 친분을 쌓게 되었다. 그들은 사회와 시대를 고민하면서부터 단순한 서점주인과 손님의 관계가 아니었다. 정치·사회적으로 억압되어 있는 시대에 서점주인과 대학생들은 공생하는 관계가 되었다. 학생들은 주인을 믿고 유비통신의 필사본을 가져와 그에게 맡겼다. 그도 학생들을 구분(?)할 줄 아는 눈썰미를 터득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서점은 운동권 학생들의 유비통신 발상지가 되었다.“별일이 다 있었죠. 그때 필사본을 가져온 것 중에 광주에 대한 글을 가져왔는데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무서웠죠. 정말 이런 일이 내가 살고 있는 이땅에서 일어나는 일일까, 별별 생각이 다 들었죠. 그것 말고도 숱하죠. 하여튼 그때 학생들이 필사본을 복사하느라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많은 것들을 알게 됐어요.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어요. 87년도 6월항쟁이 일어나기 전 문익환 목사, 백기완 선생, 계훈제 선생이 건대 안에서 열리는 국민대회 집회에 참석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하지만 세 분 다 수배가 걸려 있는 상태였고 사복경찰이며 전경이 학교 주변에 깔려있으니 들어갈 방법이 없었죠. 행사 전날부터 ‘어떻게 학교 안에 들어가나’ 방법을 찾지 못하자 아는 사람을 통해 세 분이 저를 찾아왔어요. 고민고민하다 형사들이 눈치 채지 못하는 허술한 곳을 찾았는데 바로 공대 건물지붕 담벼락 옆 가정집을 이용한거예요. 사다리를 타고 울타리만 넘으면 공대 건물 지붕으로 떨어지고 거기서 안에 있는 학생들을 만날 수 있으니까……. 아무튼 그땐 정말 하늘이 도와서 무사히 행사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죠.”
1980년대 한때는 사회과학서점이 전국에 100여 개도 넘게 생겨나 시대 변화를 바라는 청년들, 지식에 목말라하던 이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기도 했다. 하지만 2008년 오늘 전국에 사회과학서점은 손에 꼽을 정도, 게다가 사회과학 관련 서적은 시대에 뒤떨어진 한물 간 퇴물처럼 되어 버렸다.

인문학 책 읽기 운동

아직도 무슨 미련이 있어 인서점을 고집하느냐고 물었다.
“87년 6월항쟁 이후 우리 사회는 큰 변화를 맞았고 자연스럽게 사회과학 분야가 멀어지기 시작하면서 당연히 사회과학서점이 잘 안됐죠. 하지만 인서점은 단순히 사회과학 분야의 책을 판매하는 곳만은 아니에요. 저는 인서점의 공간적 의미로 ‘문화’를 들고 싶어요. 사회과학은 인간의 정치·경제적인 외적인 환경을 바꾸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문화과학은 인간의 주체와 내면을 바꾸는 것이라 생각해요. 그것이 인문학이고 문화라고 생각하는 거죠. 문화가 곧 인간의 중심이 될 거라고 믿어요.”
그래서 지난 2005년부터 시작한 것이 ‘인문학 책 읽기 운동’이다. 한 달에 두 권 씩 인서점 주인장의 추천을 받은 인문학 책들이 회원들에게 배달된다. 그의 독서평과 여러 회원들의 느낌과 소감도 함께 소식지를 통해 전달된다. 빠듯한 직장인으로 평범하게 살아가는 이들은 인문학 책 보다는 경제에 관한 혹은 부동산에 관한 책에 더 손이 갈 수밖에 없다. 그런 이들에게 인서점에서 매월 보내주는 책은 외적 성장이 아닌 개인의 내적 성장에 단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인문학 책 읽기 운동으로 새로운 문화를 제시하는 `인서점` 사진
인문학 책 읽기 운동으로 새로운 문화를 제시하는 `인서점` 사진  
그는 요즘 다음 달 회원들에게 보낼 책을 선정하기 위해 『조선의 여성들, 부자유한 시대에 너무나 비범했던』과 『퇴곡리 반딧불이』를 꼼꼼히 읽고 있노라고 했다.
“사람들 요즘 인문학에 관심 없잖아요. 책 정말 안 읽죠. 꼭 좋은 책만 보내주는 건 아니에요. 가끔은 비판하는 책도 보내줘요. 일단 회원에 가입하면 싫든 좋든 육십 넘은 노인네가 추천??º???&?뢰????해서 보내주면 안 읽을 수 없잖아요. 한편으로는 괴롭기도 할 거에요. 요즘 사람들 너무 바쁘잖아요. 허허…….”
인서점의 주인장 심범섭 씨는 그런 자연스런 사회 변화도 요즘 젊은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는 사실에도 그다지 흥분하거나 노하지 않는다. 그저 담담히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새로운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할 뿐이라고만 한다.
오후 한낮, 대학교 앞 PC방과 분식집, 결코 싼 가격이 아닌 커피숍에는 젊은이들이 무시로 드나든다. 인서점에는 간혹 한 두 명의 학생인 듯 보이는 손님들이 들어와 영어 토익 서적을 집어 계산대에 올려놓는다.
숱한 사연과 함께 서점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한 적도 몇 번 있었지만 27년 동안 서점을 이끌어 온 심범섭 씨는 “고단했던 시대에 이 공간이 함께 했던 것처럼 앞으로도 노동자, 농민, 빈민, 소외받는 모든 이들이 이곳을 통해 그래도 세상은 살만한 것이라고 느꼈으면 좋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서른 쯤 되 보이는 청년, 그의 아들이 책을 정리하고 먼지를 털어내는늦가을 오후 한낮이다.


※인서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http://cafe.daum.net/loveIN)


글·사진 황석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홍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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