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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희망이 있다

기지촌 여성들의 쉼터 두레방

기지촌 여성들의 쉼터 두레방 사진

경기도 북부, 의정부에서도 외곽인 의정부시 고산동 116번지. 뺏벌이란 마을 입구에는 캠프 스탠리 미2사단 포병여단 본부가 있다. 이곳은 예부터 배가 많이 생산되던 지역이라 배나무가 많아 배벌로 불렸고 그러다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며 부르기 쉽게 뺏벌로 불리게 되었다. 현재 의정부 인근 지역에 있는 8개의 캠프 중 가장 많은 병력이 주둔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외지인들이 호기심 반 경계의 마음 반으로 쳐다보는 이 마을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미군부대 기지촌이다.
마을 입구에 있는 단층짜리 관(官) 건물처럼 보이는 허름한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첫눈에도 그곳이 기지촌 여성들을 위한 쉼터 ‘두레방’ 이라는 것을 짐작 할 수 있다.
“처음부터 이 건물에서 있었던 건 아니고 클럽들 사이에 있었는데 몇 년 전에 이 건물로 옮겼어요. 의정부시 건물이라서 임대료를 내고 사용하고 있는데 참 역사의 아이러니죠. 기지촌 여성들의 성병 검진을 위해서 만들어 놓은 보건진료소 건물에 이렇게
저희 두레방이 있다는 게, 그래서 건물 자체가 가정집처럼 탄탄하지 않고 허술해요.”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바로 옆 부대에서 들려오는 헬기 이착륙 소리때문에 시끄럽게 창문이 흔들리자 두레방 상담실장 김동심(32) 씨가 겸연쩍게 웃으며 말한다.

‘두레’의 공동체 역할
두레방은 지난 1986년에 기지촌 여성들의 소외된 삶을 지원하고 그들이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사랑방’ 역할을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초기에는 한국기독교장로회 여신도회에서 ‘선교’를 목적으로 했기 때문에 예배도 하는 등의 종교적 색깔이 짙었다.
기독교·인권운동가로도 잘 알려진 문동환 목사, 그의 아내 문혜린 여사가 중심이 되어 만들었다는 두레방. 하지만 지금은 성매매 현장에서의 여성 인권 문제, 인신매매된 외국인 여성들의 긴급구조 활동과 법률지원, 국내외 인권·평화운동단체들과 다양한 연대활동을 벌이고 있다. 상근활동가를 포함한 4인이 일하고 있는 두레방은 이 마을에서는 기지촌 여성들뿐 아니라 마을 주민들에게는 ‘사랑방’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에 누구나가 공동체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특히 15년 간 마을주민들과 해 온 ‘공동식사’는 그들이 이 마을에서 자리를 잡게 한 가장 보람되고 큰일이었다.
“공동식사는 정말 오래도록 이 마을 주민들과 두레방이 깊은 정을 쌓을 수 있는 계기가 됐어요. 좋은 일이었지만 3년 전부터 하질 않아요. 예전에야 굶는 사람도 있었지만 지금은 사실 굶는 사람 많지 않잖아요. 상담이야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계속하는 것이지만요.”
밥상에 앉아 함께 밥을 먹는 것은 이미 깊은 곳에서의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 유대야말로 어느 행위보다 본질적인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년 가까이 ‘뺏벌’을 지켜 온 두레방은 마을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나서서 적극적으로 일을 처리하고 마을 아이들이 놀 수 있는 놀이방도 마련하고 아이들을 위한 공부방도 운영했다. 또한 기쁜 일이 있으면 마을 주민들과 잔치도 벌여 그야말로 우리 선조들이 했던 두레 공동체의 모습을 보여줬다. 이렇듯 지역주민들과의 깊은 관계로 인해 클럽의 업주나 타 지역에서 도망쳐 나온 여성들을 두고 두레방이 개입을 하게 되면 두레방 식구들이나 대상이 된 여성들도 함부로 대하진 못한다고 한다.

기지촌 여성들의 쉼터 두레방 사진
기지촌 여성들의 쉼터 두레방 사진

 

 

지난해에는 경기도 파주에 있는 캠프를 이곳으로 옮겨 확장한다는 주한미군의 계획을 의정부 지역의 시민단체와 지역주민, 전교조, 민주노동당 그리고 두레방이 앞장서서 백지화 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

미술치료를 통해 변한 한 여성의 삶
그 후 공동식사를 하지 않으면서 현실적으로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성매매 현장에 있는 여성들의 황폐화된 마음을 안정시키고 위로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예술치료 교육을 시작하게 되었다. 전문적인 상담은 나름대로 지속되고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것이 있다고 생각해 만든 것이 표현예술을 통한 심리치료였다. 그림이나 공예같은 예술적인 방식을 활용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생각보다 꽤 좋은 결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알코올 중독과 성매매로 인해 자신의 삶을 거의 방치하고 살던 한 여성은 이 미술치료를 받으며 자기치유를 하고 현재는 건강한 생활인으로서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저희가 얼마 전부터 하는 일 중에 다큐멘터리 영상 제작이 있어요. 성매매 여성들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을 영상 매체로 대중에게 알리고 피해 여성들의 문제가 구조적으로 해결될 수 있기를 바라는 대안 제시 같은 거죠. 그중에 박경태 감독이 만든 <나와 부엉이>의 주인공으로 나온 여성은 미술치료를 받으면서 굉장히 좋아지셨어요. 미술치료를 하기 전에는 알코올 중독에다 술만 마시면 마을에서 칼을 들고 다닐 정도로 생활이 거칠었죠. 그런데 미술치료를 받고 난 후에는 정말 많이 변했어요. 스스로 공공근로 취업도 나가시고 마을 사람들과 관계도 갖고 그러면서 사회에 적응하는 자아를 발견한거죠. 어쩌면 그분이 살아 온 삶 자체가 우리 현대사에 드러난 여성들의 슬픈 모습일 수도 있어요.”
김동심 실장이 안타까운 듯 그의 이야기를 한다.
그 여성은 현재 환갑이 다 된, 45년 해방둥이로 태어나 전쟁고아로 10대의 어린 나이에 여기저기 팔려 다니다 결국 기지촌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고 한다.

 

 

 

기지촌 여성들의 쉼터 두레방 사진
기지촌 여성들의 쉼터 두레방 사진
그러다 미군과 결혼해서 아이도 낳고 살았는데 결국 이혼하고 7년 만에 미국에서 혼자 오게 되었다. 끝난 줄만 알았던 기지촌 생활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두레방과의 인연은 그 여성으로 하여금 혼자서도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심신을 건강하게 만들었다.
이럴 때처럼 자신들의 역할이 보람될 때가 없다고 하는 김동심 실장은 상담을 하다 보면 여성의 문제가 단순히 여성과 남성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와 국가간의 문제, 인신매매, 성매매, 계급, 빈부의 문제……. 이 모든 것들이 내포되어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단다.

 

 

My Sister’s Place!
두레방이 주력하며 활동하고 있는 일 중 또 하나는 전문상담을 통한 인권문제, 법률 관련, 긴급구조 활동 등이다.
현재 경기 북부에 있는 기지촌은 90년대 후반 이후 외국 노동자들의 유입으로 인해 상황이 많이 변했다. 다시 말해 기존의 한국여성들의 자리를 동남아, 러시아 여성들이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니 한국여성들만 상대하던 두레방의 역할이 다양해 질 수밖에 없는 그야말로 복잡 다양한 상황이 되었다. 외국여성들의 상담은 단순히 업주와의 관계, 미군들과의 관계뿐만이 아니다. 의료지원을 받을 수 없어 병이 걸려도 병원에 가지 못하니 의료 문제도 해결해야지 출입국 문제로 인한 문제로 출입국 관리소, 자국 국민문제이니 각국 대사관과도 상대해야 한다. 상담을 할 때도 다양한 언어를 사용해야 상담이 이뤄지기 때문에 외국어가 가능한 전문적인 상담원이 필요하단 것이다.
다행히 지난 몇 년 동안은 경기도에 사업 프로젝트가 선정 되어서 후원을 받아 외국어 전문 상담원이 함께 일을 했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두레방으로서는 당장 눈앞에 놓인 문제가 쉽게 해결될 것 같지 않다며 새로운 대안을 고민하고 있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헬리콥터의 프로펠러 소리는 이제 당연히 들려야 하는 것으로 내 귀에 감각적인 인지가 되어 버렸다. 오히려 실제로는 헬기 소리가 멈췄는데도 내 귀에선 여전히 ‘탁!탁!탁! 위~이잉’ 하는 소리가 계속 들리는 환청의 느낌을 받았다. 보건소로 쓰였던 건물이라 사무실에는 드나드는 사람을 볼 수 있는 작은 창문이 나 있다. 마을 주민들이 무시로 드나들며 김동심 실장을 빼꼼히 쳐다보고 웃고만 간다.
기지촌 여성들의 쉼터 두레방 사진
기지촌 여성들의 쉼터 두레방 사진

역사의 현장에 있는 두레방
“지금 제가 일하는 이 자리가 역사의 현장 아닌가요?” 역사의 현장에서 우리의 언니와 동생, 이젠 가난한 나라의 여성들까지 품어 안는 ‘두레방’은 국가와 국가 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계속 존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개인의 상처와 경험이 사회 안에서 그리고 우리의 삶속에서 의미 있게 읽혀져야 인간의 역사가 진보하는 것이 아닐까.

 

 

글 · 사진 황석선 stonesok@kdemo.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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