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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희망이 있다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즐겨찾기 청소년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즐겨찾기 청소년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사진

“남의 단체에 얹혀살고 있어도 괜찮나요?” 수화기 저편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당당하다.
“물론입니다.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건강하게 활동하고 있는 단체라면 길거리에서 산들 어떻겠어요?”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내다본 창밖은 흰 목련꽃이 한창이다. 오후에는 다들 취재를 나간다는 말에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야 했다. 오전 열 시 약속을 지키기에는 시간이 빠듯했다. 전철역 계단을 급하게 뛰어 내려가서 막 출발하려는 전동차에 간신히 올라탔다.
대영빌딩 604호. 문에는 ‘민중의소리’ 팻말이 붙어 있다. 살며시 문을 열자 창가 쪽에서 회의를 하던 사람이 ‘여기요’ 라고 외친다. 일곱 명이서 동그란 탁자에 둘러앉아 뉴스 기획회의를 하고 있었다. 그네들과 조금 비껴 앉아서 그네들이 회의하는 모습을 본다. 모두들 터질 듯이 앳된 얼굴들이다. 회의는 빠르고 진지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두발규제 반대운동
조은영 대표는 부재중이다. 올해 나이 스물일곱이라는 열혈청년 윤수근 편집장과 마주 앉았다. 우리의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지금 ‘바이러스’홈페이지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두발규제 반대운동’으로 시작됐다. 얼마 전 분당의 한 고등학교에서 두발규제에 반대한 학생들이 똘똘 뭉쳐서 시위를 했던 모양이었다. 그 시위 현장을 학생이 ‘바이러스’로 제보하게 되고, 그 기사가 홈페이지 메인 기사로 다루어지면서 여기저기 학교에서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두발 자율화’의 목소리가 봇물 터지듯이 터져 나왔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오래된 나로서는 선뜻 실감이 나질 않았다.


“학생들이 정말 그렇게 시위를 할 정도로 두발규제가 심한가요?”
“남학생들은 무조건 거의 스포츠머리예요. 심지어 어느 학교에서는 교칙에 아예 장교형 머리라고 정한 곳도 있어요. 여학생들은 귀밑 3센티미터, 길어야 5센티미터 그래요. 사실 묶이지도 않는 머리라구요. 여름에 체육 수업이라도 하고 나면 얼마나 덥겠어요. 근데 그 머리를 묶을 수도 없다고 한번 생각해보세요.”
우매하기 짝이 없는 질문을 했구나 싶어서 미안했다.


“두발 자율화는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존엄성을 회복하는 길입니다. 학생도 사람이거든요. 반드시 올해 안으로 두발규제가 폐지될 수 있도록 열심히 뛸 겁니다. 사실 이 문제는 단순한 두발 문제로만 국한되는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학교의 주체는 우리 청소년들입니다. 두발 문제가 도화선이 돼서 학생들의 인권이나 존엄성을 회복하는 첫 사례를 만들고 싶어요. 이 두발규제 반대운동이 민주적인 학교 만들기 운동의 기틀이 되었으면 해요.” 안경 너머로 윤수근 편집장의 눈이 반짝인다.

 

청소년 뉴스로는 독보적인 존재
“홈페이지 기사들이 무척 빨리 업데이트 되던데, 어떤 방식으로 기사들을 쓰고 있나요?”
아침에 기획회의를 하면서 기사에 대한 역할 분담을 한단다. 그렇게 취재를 나갔다 들어와서는 각자의 아이디로 접속을 하고서 바로 기사 작성을 한다. ‘바이러스’홈페이지 기사들에는 덧글들이 만만찮게 많이 달린다.

“아마 덧글 많이 달리는 걸로 경쟁하자면 오마이뉴스도 이길 걸요.” 윤 편집장이 장난스레 웃는다.
“전문 기자는 모두 열한 명입니다. 학생 기자는 천 명 정도 되는데요, 실제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기자는 백 명 정도 됩니다. 사실 지방에 사는 학생 기자들은 우리 홈페이지를 일주일에 한번 들어오면 많이 들어오는
거라고들 해요. 그만큼 학교생활이 고달픈 거죠. 사실 인터넷 문화의 주류는 학생들이거든요. 그런 학생들이 인터넷을 할 시간조차 없다는 게 맘에 걸려요.” 윤수근 편집장의 목소리에 아쉬움이 묻어난다.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즐겨찾기 청소년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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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는 2001년 뉴스를 만드는 동아리처럼 출발해서 올해 초부터 제대로 뉴스 꼴을 갖춘 인터넷뉴스 싸이트로 변모했다. 처음에는 21세기청소년공동체 ‘희망’에서 더부살이를 했었다.
지금은 인터넷뉴스만 운영하고 있지만, 초창기에는 계간으로 종이 신문을 발행했었다. 타블로이드판 16면으로 한번에 20,000부 정도 발행했다. 배포는 전교조 선생님들을 통하거나 학교 동아리 친구들이 도와줬다. 지금 활동하고 있는 기자들 대부분은 2002년 미선이 효순이 사건 촛불시위을 통해 열심히 활동하던 학생 기자 출신들이다. 그중에는 대학에 진학한 기자도 있고, 그렇지 않은 기자도 있다. 고등학교 신문반 출신인 윤수근 편집장도 어느 대학의 영상디자인과에 입학했다가 이내 학교를 그만뒀단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과감하게 학교를 그만두고 나서 지금까지 별로 후회는 없다고 했다.
하고 싶은 일이 뭐냐고 그에게 물었다.


“열심히 하는 거요, ‘바이러스’가 뜰 때까지.”
그는 아이처럼 웃는다.
“청소년 뉴스의 독보적인 존재로 ‘바이러스’가 제 목소리를 내고, 우리 친구들에게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사실 온라인에서 학생들의 힘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자신의 학교 기사가 ‘바이러스’에 뜨게 되면 버디버디랑 메신저를 이용해 엄청난 속도로 전파되거든요. 사실 기사에 따라서 조회 수가 다르기는 하지만, 하루에 ‘바이러스’에 들어오는 친구들의 숫자는 생각보다 많습니다.”
그제서야 윤수근 편집장의 손에 들린 노란 고무줄로 꽁꽁 동여맨 만년필에 눈이 간다.
“인터넷신문을 만들면서 만년필을 쓰시네요? 더군다나 굉장히 젊으셔서 만년필 세대는 아닌 것 같은데……”
실은 반가워서 한 말이었지만, 괜한 말을 꺼냈나 싶어서 나는 말끝을 흐렸다.
“이게 이래 보여도 굉장히 잘 나와요. 술술 잘 나오는 만년필이 저는 편하더라구요.” 아날로그적인 그는 내내 굉장한 달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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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의 자발적 투쟁 ‘배지 달기’
‘청소년을 자유케 하라’
책상 옆 칸막이에 붙어있는 빨갛고 초록인 동그란 배지에 흰 글자가 유난히 도드라져 보인다.
“작년 11월 3일, 학생의 날에 나눠줬던 배지예요.” 2003년부터 시작한 ‘배지 달기’운동은 억눌린 10대들의 요구를 배지에 담아 옷이나 가방에 다는 학생들의 자발적 투쟁이다.
“2004년 종교의 자유를 부르짖던 강의석 학생 사건도 있고 해서 모토를 자유로 잡았어요. 만 개 정도 만들었었는데 많이 모자랐어요.”

이 자발적 ‘배지 달기’운동은 그동안 ‘바이러스’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학생들이 배지를 주문하면 보내주는 식으로 진행됐다. 어느 학교에서는 이 배지를 다는 게 정학을 받을 정도의 심한 징계 사유가 되기도 했다. 그럴수록 학생들은 더욱더 배지 달기 운동에 열심히 동참했고, 지금도 ‘바이러스’홈페이지에는 학생들이 그때 찍어서 올린 사진들이 제법 있다. 만 개 만드는데 오륙십만 원 정도 드는 배지는 재정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바이러스’에게 실은 벅찬 일이다.


“다가오는 11월 3일 학생의 날에도 ‘바이러스’는 틀림없이 배지를 만들 거예요. 아직 4월이라 배지에 들어갈 문구는 정하지 않았지만 말이에요.” 올해 막 시작된 ‘바이러스’의 CMS(금융결재방법) 후원회원 사업이 잘 되었으면 하고 바래본다.

 

인터넷 라디오 방송국 만들 거예요

“우리 ‘바이러스’에게 인터넷 라디오 방송국 사업은 사실 필연적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민중의소리’에서도 인터넷 라디오 방송을 하고 있거든요. 우리와 컨텐츠 교류를 하고 있어요. 사실 각 학교에 대부분 방송반들이 있거든요. 그 친구들이 움직여서 조직을 꾸리고 사업을 해나가면 될 거예요. 저는 별로 걱정 안 해요.” 


지난 노동영화제 때 본 베네수엘라의 ‘볼리바리안 혁명’이 생각난다. 헛소리만 해대는 공영방송에 대항하는 자치방송국들의 힘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였다.
윤수근 편집장에게 그동안 어려웠던 점을 물었다.
“사실 재정적인 어려움이 가장 크고요, 다음으로는 ‘바이러스’에 우리 청소년들의 요구를 어떻게 담을 것인가가 관건이자 어려움이죠. ‘바이러스’가 인터넷 대안신문으로서 제 역할을 해내고 공신력과 인지도도 많이 높아졌으면 합니다.”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즐겨찾기 청소년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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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있는 두 개의 고등학교 CA(특별활동) 시간에 합류하고 있다는 ‘바이러스’는 공동체 놀이, 대중문화교육, 학생 인권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단다. 함께하는 학생들도 재미있어 하고 학생들의 인권 지수도 높이는 좋은 기회라는 말도 잊지 않고 덧붙인다. 청소년 복지나 인권에 관련된 상담센터도 만들고 싶다는 윤수근 편집장은 욕심이 많았다.
괜찮다는데도 굳이 엘리베이터 앞까지 바래다준다. 밖으로 나오자 아스팔트 위로 밝은 봄 햇살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지독하게 젊은 그네들의 행보가 밝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사진 / 황석선

글 / 류인숙
1969년 경북 안동 출생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삶이 보이는 창』에 글을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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