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이야기] 무소유 . 공용 . 일체생활 - 야마기시즘 공동체 안과 밖, 유상용 씨과 윤성열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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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 . 공용 . 일체생활 - 야마기시즘 공동체 안과 밖, 유상용 씨과 윤성열 씨

글 정영심 zeromind96@naver.com



야마기시즘 실현지 산안마을은 ‘돈이 필요 없는 사이좋은 즐거운 마을’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무소유, 공용, 일체생활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 40여 곳의 야마기시즘 실현지가 있고 한국의 실현지는 1984년 윤세식, 조한규 두 어른이 일본에서 들여와 시작하였고 경기도 화성시에 위치해 있다. 야마기시 공동체가 돈이 필요 없는 이유는 ‘야마기시 실현지용 양계법’이라는 주 수입원이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생명력 넘치는 고급 유정란은 공동체의 경제적 안정을 준다. 16동의 계사가 그림처럼 펼쳐진 모습은 장관이다. 닭들은 평화롭고 건강했다. 우람한 체구에 당당한 눈빛을 자랑했다. 풀을 발효시켜 먹여서 닭의 형태도 길쭉했다. 장이 일반 닭에 비해 1m가 더 길기 때문이라고 한다. 



야마기시즘 공동체 밖에서 야마기시즘을 실현하는 유상용 씨

17년을 함께 살던 야마기시 공동체를 나온 유상용 씨 가족은 지금 강화에 둥지를 틀고 야마기시 공동체를 알리는 삶을 살고 있다. 2009년 4월에 산안마을에서 두 아들(초등학생, 중학생)과 일본인 아내 유키와 함께 강화로 왔다. 유상용 씨는 야마기시 학육부에서 일한 지 10년 정도 되었을 때 낙원촌(야마기시즘 일체 생활 체험 프로그램으로 외부에 열려있다.)에 학생스텝으로 참여한 일본인 아내를 만났다고 한다. 강화도 바닷가의 ‘우리 꽃자리’ 펜션을 운영하며 야마기시즘 연찬회 등을 여는 장소로 펜션을 쓰기도 하고 지역 사람들과 살기 좋은 사회에 대한 끊임없는 모임과 연구를 하고 있다.

유상용 씨는 야마기시 공동체 안에 살 때는 돈에 대한 걱정을 해본 일이 없다고 한다. 지금은 펜션을 운영해야하고 이것저것 챙기는데 여간 많은 힘이 드는 것이 아니라고 고단한 마음을 털어 놓았다.
또 다른 대안과 교육 공동체를 생각하는 그는 1992년 공동육아를 하면서 육아 학교를 하고 싶었으나 학교와 공동체를 함께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생활 공동체 학육부 아이들 10여 명과 방과후 프로그램과 방학프로그램을 했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90년대 초 야마기시 내에 학교가 있었으나 공동체와 학교는 아직도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한다. 끊임없이 공동체와 교육, 대안의 삶을 고민하고 연구하는 그와 그의 가족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야먀기시즘 공동체 대표 윤성열 씨

야마기시 밖에서 야마기시즘을 실현하는 유상용 씨 소개로 야마기시즘 실현지 산안마을을 찾아 가게 되었다. 공동체 대표를 맡고 있는 윤성열 씨를 찾아뵙는 날, 길을 헤매서 늦게 도착한 나를 윤성열 씨는 멀리서 기다리고 서 계셨다. 사람을 반기는 사회, 사람 귀한 줄 아는 사회라는 인상이 들었다. 윤성열 씨는 선친인 윤세식 어른의 뜻에 따라 야마기시즘 실현지를 시작했다고 한다. 84년 군대를 제대 했을 때. 선친이신 윤세식 어른이 지금의 자연 농업연구소 조한규 씨와 일본에서 들여와 야마기시즘 강습회를 열었다고 한다. 선친은 한국에 야마기시즘을 알리고 실현하고자 했으나 1회 강습회 후 암을 선고 받았다고 한다.

그때만 해도 선친이 야마기시즘을 한국에 알리고자 했던 열정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선친이 임종을 앞두고 뜻을 같이 했던 몇몇의 사람들과 연찬회를 하며 숨을 거두는 모습은 큰 충격과 울림을 주었다고 한다. 선친은 자신의 죽음을 편하고 즐겁게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래서 ‘나도 이렇게 살고 싶다’는 소망을 품고 조한규 씨와 협업 농장으로 시작을 했다. 그때가 84년 4월이라 보리밭 위로 종달새가 울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했다. 그때 품었던 야마기시즘 실현에 대한 설렘을 ‘종달새와 마음이 어어졌다.’라고 표현하며 그때를 회상했다.

자연과 우리 몸은 하나이니 공동체를 시작하는 순수한 마음이 어떠했는지 가히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시작한 한국의 실현지로 10여 군데를 거쳐 협업농장은 지금의 증평영농조합으로 남고 야마기시즘 실현지로는 화성에 5만평을 확보해 위치하게 되었다고 한다. 



야마기시 공동체는 일체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한 주머니, 한 부엌, 한 세탁 장소를 사용하고 있다. ‘풀어 놓는 삶 살리는 풍성함’ 이라는 현판이 걸린 세탁실에서는 세탁기 2~3대로 함께 세탁을 하고 수선해서 선반에 놓아두면 찾아간다고 한다. 각자 가지고 있는 것을 풀어 놓아 함께 사용하면 풍성해진다는 것이다. 새롭고 열린 발상 앞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공동 식당 앞엔 애화관(愛和館)이라고 쓰여 있는데 사랑으로 공동체 구성원의 밥을 준비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윤성열 씨는 야마기시즘 실현지의 장점으로 세계 40여 군데에 실현지가 있고 서로 연구하고 교류한다는 점과 유상용 씨처럼 공동체 밖에서 공동체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들었다. 야마기시 공동체 안의 윤성열 씨와 공동체 밖의 유상용 씨를 만나면서 부자지간을 만난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같은 뜻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이 이리도 질긴 인연으로 보이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무고정 정진’, 무엇이든 정해진 것은 없다. 끊임없이 연구하고 교류하며 아름다운 삶의 형태를 찾아가는 것이다. 야마기시 공동체는 ‘야마기시 특별 강습연찬회’와 ‘야마기시즘 연찬학교’를 통해 국내외 여러 단체와 개인이 교류하며 공부하고 있다. 내가 찾아갔을 때에도 인도네시아에서 여학생이 야마기시즘을 공부하기 위해 와 있었다. 야마기시즘은 끊임없이 나아간다. 무소유, 공용, 일체생활을 지향하면서.



어쩌면 천국에 있는 사람들은 그곳이 천국인지 모를 수도 있을 것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다니 내게는 적잖은 충격이었다. 먼지 나는 신작로에서 뽀얀 먼지 쓰고 기다려주신 공동체의 어른과 따뜻하게 대해준 공동체 식구들의 평화로움이 오래도록 간직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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