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본문으로 바로가기

그곳에 희망이 있다

우리 노래가 힘이 되고 위로가 되었으면 밴드바람

우리 노래가 힘이 되고 위로가 되었으면 밴드바람 사진

 

태풍의 영향권 안에 있어서인지 가을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더웠다. 세탁소 지하 계단을 조심스레 밟아 내려가자, 남자 네 명이 반갑게 인사를 한다. 홈페이지 사진에서처럼 덩치들이 우람하지는 않다.
웃고 있는 ‘밴드바람’의 얼굴들이 환했다.
홍상환 씨가 얼른 2집 앨범 <원형감옥>을 건넸다. 얼마 전 오디션을 보고 나서 7월 말쯤 합류한 보컬 김현효 씨는 말할 때 대구 사투리를 섞어서 쓴다. 기타를 맡고 있는 홍상환 씨는 ‘밴드바람’에 합류한 지 가장 오래됐다. 말할 때 아주 신중한 유하종 씨는 신학을 전공하고 있는 학생이며, 베이스를 연주한다. 드럼을 치고 있는 박성균 씨의 모자 밖으로 삐져나온 곱슬곱슬한 머리카락을 보고 있자니 절로 웃음이 났다. 두 개의 밴드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는 박성균 씨는 다른 팀의 공연 준비 때문에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파업현장부터 반전 집회, 홍대 클럽까지
1998년에 결성된 ‘밴드바람’은 민중노래패에서 활동하던 이들 중에 마음이 맞는 이들끼리 모여서 만들었다. 이제까지의 공연 횟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일년에 평균 70회 정도의 공연을 하고 있다.
“아무래도 음악에 전념하다 보면 생활이 어렵지는 않으세요?”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렵죠. 그러다보니 음악을 못 하게 되기도 해요. 밴드는 특히 더 힘들어요. 생업 때문에 음악 하는 분들이 점점 없어지고 있어요.”
출연료는 서는 무대에 따라서 다르다. 어려운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 불러주는 무대는 출연료를 많이 받을 수 없다. 파업현장부터 반전집회 무대, 홍대 클럽까지 그네들의 무대는 다양하다.
지난 2월, 시흥에서 이곳 당산동으로 이사를 한 연습실에서 음악을 하려는 친구들에게 레슨을 해서 생활고를 덜고 있기도 하다. 겨울에는 그런대로 견딜만 했는데, 에어컨 하나 없이 방음벽으로 둘러싸인 연습실은 마치 찜질방 같다며 웃었다.
“빨리 돈 벌어서 에어컨 하나 사는 게 꿈이에요.”
흰 잇바디를 드러내 보이며 웃는 ‘밴드바람’의 얼굴이 말갛다.
수익 사업을 하려고 노력은 하고 있는데, 노래 부르랴 공연 섭외하랴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란단다. 노래 부르는 것 외에 공연 기획이나 섭외 등 다른 일을 해 줄 매니저가 있었으면 하는 게 그네들의 바람이다.

 

지금 3집 앨범 준비 중이에요
음악은 특히 독식이 심하다. 이른바 잘 팔리는 사람만 잘 팔린다. 그러다보니 인디밴드들의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밴드바람’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면 앞으로 ‘밴드바람’은 어떤 돌파구를 가지고 있나요?”
“음악으로 승부해야죠. 지금 3집 앨범을 준비하고 있어요.”
반가운 소리다. 그네들의 노래는 가사가 귀에 쏙쏙 박힌다. 정치인들을 비꼬아서 만든 ‘양치기 아저씨들’, 힘들고 지친 이들을 위로하는 ‘달려라 아줌마’ 등 노래 제목도 참 재미있다.

3집은 1집이나 2집 앨범보다 훨씬 좋아졌다는 말을 듣고 싶다며 조심스레 말했다.
“그럼 언제쯤이면 3집을 만날 수 있을까요?”
“정규 앨범은 좀 나중에 나올 것 같고요. 일단 인터넷으로 한 곡씩 먼저 작업한 걸 올릴 계획이에요. 우선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나서, 그걸 충분히 3집 정규 앨범에 반영할 생각입니다.”
2집 앨범 <원형감옥>은 저작권 회사에서 앨범 작업에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녹음 비용을 지원해줬다.
“앨범은 한번에 몇 장이나 찍으세요?”
“<원형감옥>은 이천 장쯤 찍었어요. 저희는 인디밴드이기 때문에 돈을 많이 들여서 앨범을 만들 수는 없어요.
우리 노래가 힘이 되고 위로가 되었으면 밴드바람 사진


저희가 직접 노래를 만드는 거라서 작곡료는 빼더라도, 아무리 못 들어도 기본 천만 원은 넘어요.”
사실 상업적인, 흔히 말하는 주류 음악을 하지 않는 밴드에게 천만 원은 큰돈이다.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세상을 빗대서 2집 제목을 <원형감옥>이라고 지었다. 앨범 자켓 사진은 예전에 ‘밴드바람’에서 건반을 다루던 이가 찍었다.
앨범 자켓 속의 서대문형무소가 고즈넉하다.

 

관객들과 교감할 수 있는 무대가 가장 좋아요
“가장 최근에는 어디에서 공연하셨어요?”
“지난 주 수요일, 홍대 입구에 있는 어느 클럽에서 공연을 했어요.”
음악을 하는 다른 인디밴드들과 교류도 많고, 아무래도 무대가 많아서 클럽 공연에 좀 더 집중할 예정이다. 홍대 입구에서 활동하는 인디밴드들만도 4천 팀쯤 된다는
말에 그만 입이 쩍 벌어졌다.
공연 계획이 빼곡하게 적힌 흰 칠판에는 ‘울산 현대’라는 글자도 보인다. 아마 울산 현대자동차 파업 현장을 다녀왔나 보다. 울산 내려가던 날, 날씨는 더운데다 타고 가던 차가 고장이 나서 무지 고생을 했단다.
“그동안 했던 공연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는요?”
팀에서 가장 오래됐다는 홍상환 씨에게 물었다.
“그게 어떤 무대건, 어디에서 주최했건 간에 관객들과 교감할 수 있는 무대가 가장 기억에 남죠.”
그의 대답이 바람처럼 빠르고 명쾌하다. 이번에는 자신들의 노래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을 물어봤다.
먼저 베이스 유하종 씨가 ‘첫사랑’을 꼽았다. 기타 홍상환 씨는 ‘첫사랑’과 ‘우리가 멈출 수 없는 이유’를, 보컬 김현효 씨는 1집에 있는 ‘나의 곁에’와 ‘아버지’를 꼽았다.
“노래는 팀원들이 직접 만드나 봐요?”
“밴드이기 때문에 우리의 색깔과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직접 작사, 작곡을 해야죠.”
반드시 창작을 수반해야지만 생명력을 가지고 길게 갈 수 있다고 ‘밴드바람’은 덧붙인다.


우리 노래가 힘이 되고 위로가 되었으면 밴드바람 사진
우리 노래가 힘이 되고 위로가 되었으면 밴드바람 사진

대중 속으로 파고드는 음악을 하고 싶어요
음악을 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이 뭐냐고 물었다.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어렵죠.”
홍상환 씨가 웃으며 대답했다.
“밴드이다 보니 팀원들 간에 음악적인 충돌이 많이 나기도 해요. 개인적으로 음악을 하면 사실 별로 걱정 안 해도 되는 부분인데 말이죠. 충돌하다가도 결과가 좋게 나오면 한순간에 해소됩니다.”
네 사람이 얼마나 조화로워야 하는지 홍상환 씨가 덧붙인다.

.“인디밴드들이 먹고사는 걱정 때문에 마음 놓고 공연할 수 없는 우리나라의 공연 문화가 힘들어요. 사실 그런 공연 풍토는 대중들이 만든 건데 말이에요.” 유하종 씨의 목소리가 나지막했다.
“민중록그룹이라는 말이 앞에 붙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희들은 그런 말이 좀 그렇더라고요. 뭔가를 구분 하는 말 같기도 하고……. 사실 록이라는 말 속에는 이미 민중이라는 말이 포함되어 있거든요. 그냥 사회비판적인 가사로 노래를 부르고 있다고 해서 민중이라는 말이 붙는 건 좀 그래요.”
홍상환 씨 말에 ‘밴드바람’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민중이든 대중이든 들여다보면 똑같은 건데, 사실 저희는 대중 속으로 파고드는 음악을 하고 싶은데 그렇게 구분해 버리면 힘들어지죠.”
느린 말투의 유하종 씨가 거들었다. 아무 생각 없이 질문을 했던 게 이내 후회스러웠다.
“마지막으로 ‘밴드바람’이 풀어야할 숙제 같은 게 있다면요?”
“다음에 음악 하는 사람들이 좋은 환경에서 노래할 수 있도록 길을 닦고 싶어요. 저희 노래가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외국의 음악 대중들이 공연장을 찾아가는 공연 문화를 만들었다면, 우리나라는 독서실에 박혀서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는 공연 문화를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평생 풀어야 할 숙제인 것 같긴 한데요, 처음 음악을 시작할 때 그 마음 그대로 쭉 음악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네들의 대답이 좁은 연습실에 메아리친다.
“다음에는 꼭 공연장에서 뵙겠습니다.”
인사를 건네고, 계단을 꾹꾹 눌러 밟고는 밖으로 나왔다.

 

우리 노래가 힘이 되고 위로가 되었으면 밴드바람 사진
우리 노래가 힘이 되고 위로가 되었으면 밴드바람 사진

“한번 왔다가는 게 모두들 인생이라 말하지만, 단 한번 살다가는 거 모두가 따뜻하게 살았으면 해~ 앞만 보고 달려가는 많고 많은 사람들아 조금만 여유로울 수 없나~”

‘밴드바람’ 2집에 실린 ‘나의 눈 속에’를 흥얼거리며 걷는다. 사람들은 다들 어디에선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열심히 하며 산다. 연습실에서 나오자 시원한 바람이 한줄기 불어온다. 만나자마자 건네받은 <원형감옥>이 가방 속에서 달그락거렸다.
 

글 / 류인숙

사진 / 황석선
 

 

 

목록으로
사이트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