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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희망이 있다

이주 노동자의 아픔을 치유하는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

이주 노동자의 아픔을 치유하는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

이주 노동자의 아픔을 치유하는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 사진


중국동포 배충용(당시 26세) 씨는 한국에 온지 3개월 만에 폐렴으로 사망했다. 불법체류자라 건강보험카드가 없고 진료비가 너무 비싸 병원에 갈 엄두를 못 내고 감기를 진통제 몇 알로 버티다가 패혈증으로 발전한 폐렴으로 끝내 이 세상을 떠났다.
몽고인 바트센트(당시 35세) 씨는 갑작스런 복통에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돈도 없고 의지할 데도 없고 말도 통하지 않아 진통제로 버티다 주변의 신고로 병원에 실려 갔다. 진찰한 결과 급성 맹장이 터져 복막염이 되었고 수술을 했음에도 결국 패혈증으로 숨졌다.


스리링카인 서짓 쿠마라(당시 27세) 씨는 작업 중 발등에 부상을 당했는데도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방치했다가 결국 무릎 밑을 절단하였다.
현재 국내 체류 외국인 이주 노동자는 약 40만여 명. 이들 중 하루에 7명 꼴로 산업재해를 당하고 있으며 병원에 한 번 또는 아예 가보지도 못한 이들은 세 명 가운데 한 명 꼴이다. 이렇듯 의료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해 설립한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이 벌써 개원 2주년을 앞두고 있다.
 

국내 최초의 이주 노동자를 위한 병원

 

2004년 7월 22일 서울 구로구 가리봉1동에 위치한 외국인선교관의 2~3층을 임대해 개원한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은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만을 위한 병원으로는 국내 최초이다.
“교통사고, 산업재해를 당해도 병원에 가보지도 못하고 죽는 것을 보면서 살았을 때 살려보자는 결심을 했습니다. 그러나 의사가 병원을 만들어도 망하는데 의사도 아닌 사람이 어떻게 병원을 만드냐며 다들 말렸어요.”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을 만드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으며 현재 대표를 맡고 있는 김해성 목사(46)의 말이다.

전용의원은 내과, 외과, 산부인과, 정형외과, 안과, 치과, 진단방사선과, 한의과 등 종합병원에 버금가는 체계를 갖추고 하루에 150명에서 200명에 이르는 환자를 진료하고 치료하고 있다. 게다가 치료와 검사, 수술, 입원에 드는 일체의 비용은 무료이다. 덕분에 개원 1년 만에 빚이 3억 원이나 됐고 병원 문을 닫기로 했으나 이 소식이 신문에 보도되면서 일주일 만에 3억 원이 모금되어 병원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주 노동자의 아픔을 치유하는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 사진

 

 


“정부가 감당해야 할 일을 하고 있음에도 정부의 지원은 없습니다. 불법체류자를 도울 수 없다는 게 이유입니다. 보건복지부에서 공중보건의사 5명을 배치해주고 있지만 그 월급은 병원에서 감당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후원회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자원봉사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병원의 운영은 전적으로 후원금에 의존하고 있어 만성적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출입국관리소나 외국인보호소에 수용되어 있는 환자들까지 전용의원으로 보내지는 상황이지만 관련 정부부처의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

 

이주 노동자의 아픔을 치유하는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 사진

마음의 병까지 치료하는 병원

 

김해성 목사를 따라 병원을 둘러봤다. 2층은 진료시설이고 3층에는 병실이 마련되어 있다. 소독약 냄새가 가득한 2층 진료실 복도에는 많은 환자들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었고 의사와 간호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취재를 위해 사진을 찍고 이것저것 궁금한 것을 물어보기가 미안할 정도였다.


“병원 용도로 지어진 건물이 아니어서 엘리베이터가 작습니다. 엘리베이터에 환자침대가 들어가질 않아 환자를 업어서 이동하고 죽은 이들도 담요에 싸서 들거나 업어서 옮깁니다.”


병원 시설은 그 역할에 비해 열악했다. 분만실에는 침대 하나가 놓여있을 뿐 다른 쪽 벽에는 물건들이 쌓여져 있고, 수술실도 필요한 장비만 갖춰져 있을 뿐이다. 3층 병실 입구에 텔레비전과 소파가 놓여 있고 여러 개의 병실이 복도 양쪽으로 늘어서있다. 병실 중 306호실은 에이즈 환자, 폐결핵 같은 전염성이 있는 환자, 임종 직전의 환자만을 위한 병실이다. 다행히도 취재를 갔던 날 306호실은 비어있었다.


전용의원에는 30여 명의 환자가 입원해 있었다. 베트남에서 한국에 온 지 1년쯤 된 유엔툼투(21) 씨는 심장이 안 좋아 입원 중이었는데 무덤덤하게 표정 없는 얼굴에서 고단했을 한국생활의 그늘이 보였다.


방글라데시에서 온 알롱(38) 씨는 간이 안 좋아 복수가 차 있는 상태였다. 표지사진을 찍기 위해 잠시 짬을 내 병실에 올라온 의사 최재필(34) 씨가 상태를 물어보다 복수가 가득 찬 배를 가르키며 “이 안에 애기 있어?”라고 농을 건네자 “2명 있어.”라며 밝게 대답하는 모습에서 그냥 환자와 의사 이상의 끈끈함이 느껴졌다.


공중보건의로 전용의원에 배치되어 근무하고 있는 최재필 씨는 “다이나믹하죠. 할 수 있는 만큼 할 수 있고 다른 공중보건의보다 좀 힘들지만 보람을 느낍니다.”라며 쑥스러운 듯 수줍게 웃는다.

 

아시아에 민주주의의 실현과 정착이 필요합니다

 

“아시아평화연구소나 민주주의연구소를 만들 겁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 대한 김해성 목사의 대답이다. 한국에 와 있는 이주 노동자들이 대부분 그 나라에서 대학까지 마친 최고의 엘리트들이므로 이들에게 정치교육을 실시하고 정치지도자로 육성한다는 것이다. 본국으로 돌아간 이들이 장관이 되고 국회의원, 대통령이 되어 그 나라의 민주주의를 실현시킬 수 있도록 후원하겠다는 계획이다. 한국을 민주주의의 모델로 삼아 아시아에 한국의 민주주의를 전파한다는 원대한 포부이다.


“파키스탄에 병원과 학교, 집을 짓는 일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원조로만은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가져다주는 원조 물품과 돈 만큼 도둑이 늘고 부정부패가 조장됩니다. 민주주의를 실현시키고 정착시키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언제까지 병원을 계속 할 것이냐는 질문에 “환자가 없어지면, 정부가 제 역할을 하게 되면 문 닫습니다.”라는 지극히 당연한 답변이 돌아왔다. 

 

이주 노동자의 아픔을 치유하는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 사진
이주 노동자의 아픔을 치유하는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 사진

중국동포 김인성 씨는 분신자살을 하며 회사복도 벽에 스프레이로 “사장 김○○ 천벌을 받는다. 내 영혼이 영원히 너를 괴롭히겠다. 한국이 슬프다.”라는 글을 남겼다고 한다. 오늘도 아시아와 아프리카 각국의 사람들이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이 땅에 찾아온다. 하지만 그들에게 돌아가는 것은 차디찬 냉대와 설움뿐이다. 그 냉대와 설움에 얼어버린 그들의 마음을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이 조금은 녹여주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흐뭇한 마음이 들면서도 한편으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내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지는 하루였다.
 

 

이수원/사진 황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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