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인(人, in) 아시아 사람과 아시아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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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인(人, in) 아시아 사람과 아시아 속으로!

글 김수희 (전 여성신문 기자)/ basara1006@daum.net 

침략전쟁, 식민지배 성찰이 평화와 인권의 핵심입니다

“일본 시민사회가 굉장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일본 시민들에게는 역사뿐만 아니라 정치나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과 문제의식이 부족하다고들 생각했어요. 하지만 오랫동안 활동해 온 사람도 많고, 젊은이들도 어떻게 나서야 할지 모르는 것뿐이지 사회문제에 관심 있는 학생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동안 쌓여 있던 일본 사회의 우경화에 대한 위기감과 문제의식이 이번 시위에서 나타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지난 8월 30일 일본 전국 300여 곳에서는 100여만 명의 사람들이 안보법안 반대 시위를 벌여 세계의 관심이 집중됐다. 도쿄 국회의사당 앞에만 12만 명의 시민들이 모여 전쟁반대를 외쳤다. 1960년 안보투쟁 이후 처음이라는 이번 대규모 시위는 평소 사회문제에 관심이 적다고 알려진 일본 시민사회에서는 이례적인 모습이라 한국에도 대대적으로 보도된 바 있다. 노기 가오리 씨는 이날의 시위를 그동안 침체되어 있던 일본 시민사회의 변화로 짚으며, 특히 ‘달관세대’라고 불리는 일본의 젊은이들이 이번 시위에서 주도적 역할을 한 것을 큰 특징으로 꼽았다. 

일본 히토쓰바시 대학교에서 일제강점기 민법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한국으로 건너와 올해 3월부터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는 노기 가오리 씨는 일본 시민사회의 변화를 “희망적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희망적으로만 보고 있지는 않다.”고 지적했다.  


“전쟁법안 반대 운동에서도 전쟁은 대부분 1937년 중일전쟁 혹은 1931년 만주 침략을 의미합니다. 일본의 조선침략이나 식민지배에 대한 인식은 부족해 그 시기의 전쟁은 시야에서 빠져 있어요. 일본의 침략전쟁과 식민지배는 일본 내의 모든 인권과 평화 문제의 핵심입니다. 그 부분을 빠뜨리면 결국 핵심을 누락시키는 것이죠.”

“역사연구는 이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과 굉장히 밀접한 긴장관계를 갖고 있어야 하고, 더 나은 미래를 어떻게 만들까라는 고민을 해야 한다.”는 그는 일본 내에서 여전히 발생하고 있는 재일조선인 등에 대한 헤이트 스피치(혐오 발언), 헤이트 크라임(혐오 범죄)을 일본 시민사회가 해결해 가야 할 과제로 꼽았다. 2002년부터 한국과 일본을 오간 그는 “한국의 시민사회가 굉장히 빠른 속도로 다양화되고 있다.”며 일본 시민사회의 소수자에 대한 관심이나 속도가 한국을 배웠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양국 시민사회의 협력과 연대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위안부나 야스쿠니 같은 역사문제는 물론이고 노동문제 등 폭넓은 이슈에서 연대가 이뤄지고 있어요. 일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한국 분들의 좋은 영향을 일본 시민사회가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민주화가 발전될수록 아시아 국가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연쇄반응을 일으키는 만큼 반대로 나쁜 연쇄반응도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죠.”

한국에서는 ‘광복 70년’, 일본에서는 ‘전후 70년’으로 불리는 올해, 이 ‘70년’이라는 시간 동안 일제 강점기와 전쟁의 피해자와 유족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더 관심을 갖게 됐다는 노기 씨는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와 인권을 지키는 행동은 먼 미래를 위한 것이 아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지금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에서 반전, 평화, 인권을 자신의 문제로 삼고 스스로도 더 알아가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마을이 살아야 지구가 삽니다

“‘마을이 살면 지구가 산다’는 것이 우리의 모토입니다. 반드시 그 지역의 주민들과 주민 커뮤니티에 초점을 두고 환경난민화되어 있는 공동체를 자립 공동체로 만드는 것이죠. 주민 역량 개발과 주민 자립이 목표입니다. 이것이 이뤄지면 지속 가능한 개발이 가능해지는 것이죠.”

 

지난 6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유엔 엑스포에서 유엔사막화방지협약(UNCCD)이 수여하는 ‘생명의 토지상(Land for Life Award)’을 수상한 푸른아시아의 오기출 사무총장은 세계가 주목하는 환경 리더다. 오 총장은 1998년 한국휴먼네트워크를 만들어 아시아의 가장 심각한 현안으로서 기후변화에 주목하고 사막화 방지 사업을 시작했다. 2000년부터 동북아시아에서 기후변화가 가장 심각한 몽골에 ‘현장’을 만들고 15년 동안 현지 주민들과 함께 나무를 심고 생태를 복원하고 있다. 

“나무만 심으면 실패합니다. 우리는 사람을 심습니다. 지역 주민의 자립 경영을 개발하니 그 사람들이 먹고 살기 위해서라도 나무를 심습니다. 15년 동안 몽골 6개 피해 지역에 현장 모델을 만들어 주민들을 조직하고 커뮤니티를 만들고 있습니다. 지역 주민들이 참여해 스스로 의사결정을 하고, 책무성을 갖게 하는 것이죠.”

몽골에서 활동하고 있는 푸른아시아 활동가는 50여 명. 이 중 한국인은 17명 정도이고 나머지는 푸른아시아의 프로그램으로 훈련된 지역 주민들이다. 오 총장에 따르면 몽골은 NGO 자체가 활성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푸른아시아에서 직접 활동가를 훈련한다.

“한국 사람을 중심으로 활동을 하면 그 나라 사람들도 안 믿고 그 나라 정부도 신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경계 대상이 되죠. 주민들이 직접 조직하고 교육하는 것이 굉장히 효과적입니다. 이것만 할 수 있으면 그 다음부터는 지속 가능성을 만들 수 있어요.” 


푸른아시아의 현장 모델은 마을 단위로 이뤄지다 보니 따라하기 쉽고, 나무를 심어 생태를 복원하고, 지역 주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 실업문제도 해결하는 단초를 제공한다. 이러한 현장 모델을 새천년개발목표(MDGs) 이후 지속가능한개발목표(SDGs)를 내세우고 있는 유엔이 주목했고 이번 생명의 토지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모델 만들기 초기 ‘언제 떠나는지 보자’던 몽골의 고위급 파트너들과 신뢰관계를 얻는 데 6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됐다. 이번 생명의 토지상에 오 총장을 추천한 몽골 정부는 이미 2007년 내국인에게만 수여한다는 ‘환경지도자 훈장’을 그에게 수여한 바 있다.  

“제일 중요한 게 신뢰관계를 확보하는 것입니다. 믿을 수 있는 파트너를 찾는 데 시간이 꽤 걸립니다.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접근하려는 NGO는 지역사회, 커뮤니티, 주민들의 삶과 같이 호흡하는 모델을 만들어야 하고, 또 하나 그 나라의 고위직 파트너들과 정책협의를 해야 그 프로젝트를 일반화할 수 있습니다.”

10부 능선 중 7부 능선을 넘어섰다는 몽골의 이 모델은 2013년 미얀마에서도 적용되고 있다. 미얀마는 몽골과 달리 NGO가 활성화되어 있어 현지 NGO와의 협력을 통해 모델을 만들고 있다. 현재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국의 대다수가 아시아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는 빈곤, 난민, 식량, 테러 등의 문제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에 오 총장은 “기후변화가 북한을 포함해 아시아가 협력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아젠다”라며 아시아의 땅을 살리자는 ‘테라시아(TerrAsia)’ 운동을 제안하고 있다. 

“각각 처한 기후변화와 빈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최선의 아이디어나 대안, 정보, 정책, 자원을 공유해야 합니다. 최근 유엔의 조사에 따르면 식량 폭동이 일어난 지역과 테러가 일어난 지역이 일치합니다. 아시아 곳곳에 똑같은 문제가 시한폭탄처럼 존재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는 빈곤문제 뿐만 아니라 식량, 평화문제와도 다 연결되어 있는 것이죠. 우리는 기후변화를 일으킨 일종의 책임이 있는 의무 당사자이고, 피해지역에 있는 사람들은 지원받을 권리를 갖고 있어요. 하지만 이들이 해외에 의존해 자립능력을 상실하면 안됩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주인의식이니까요.” 

 

문제를 해결할 힘과 자원은 당사자가 갖고 있어요

“아직 국가에 대항해 사회 시스템을 확 바꿀 수 있는 시민사회운동이라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개미군단처럼 스스로 흐름이나 조직들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풀뿌리 주민 조직들이 자기 삶의 문제와 이슈에서 대안을 만들어가고 있기 때문에 한국보다 더 건강한 시민사회가 형성될 것 같습니다.”

강인남 해외주민운동 한국위원회 대표는 태국, 미얀마, 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시민사회에 대해서 이같이 낙관했다. 한국의 시민사회 형성이 중앙정부, 중앙정치 이슈 중심이었다면 동남아시아의 시민운동은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 구체적으로 영향을 받는 주민들이 직접 참여해 목소리를 내기 때문에 더욱 견고할 것이라는 판단이다. 

“자기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어떻게 우리의 삶을 좀 더 성장시키고 발전시킬지에 대한 창의적이고 대안적인 움직임이 기초단위에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뭔가를 스스로 만들어내고 충분히 실험하고 도전할 수 있는 가능성은 지역단위에서 훨씬 큽니다. 이미 지역사회 주민조직을 중심으로 충분히 사회적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강인남 대표가 일하고 있는 해외주민운동 한국위원회는 2012년 한국의 빈민운동, 주민운동 단체들과 해외의 현장을 돕는 국제 NGO들이 함께 출연해서 설립한 단체로 해외의 주민운동을 돕고 있다. 국제개발 NGO들이 현지인들의 역사나 문화, 삶의 지향 등은 고려하지 않은 채 준비된 펀드나 프로그램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이 아니라, 현지 주민들의 상황과 욕구에 맞게 현장 중심으로 일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연결시키는 역할을 지향한다.

“자신의 문제는 당사자들 스스로가 해결할 수 있는 잠재적인 힘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당사자들의 힘과 자원을 우리 기준에서 생각하면 믿지 못하게 되고, 믿지 못하니까 찾으려고도 하지 않죠. 그러다 보니 갑을관계처럼 일방적인 활동을 전개하게 됩니다. 결국 진짜 주인이 되어야 할 당사자들은 대상이 되고 서비스의 수혜자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역할을 해야 그들의 잠재력과 가능성이 발현되고 살아날 것인가 하는 고민을 했으면 좋겠어요.”

“아시아는 제가 20대에 활동했던 가난한 사람들이 있는 곳, 조금만 건드려 주면 충분히 뭔가를 스스로 만들어 갈 수 있는 힘이 있는 존재”라는 강 대표는 1992년부터 2005년까지 관악주민연대에서 주민운동을 했다. 그는 “아래로부터 가능한 변화를 찾고, 마을 중심으로 그것을 만들어 왔던 한국의 주민운동과 현재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진행되고 있는 지역운동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태국에서는 다국적 기업에 의해 농민이 농지를 수탈당하고, 캄보디아에서는 주민들이 강제 철거된 곳에 호텔이 들어서고, 미얀마에서는 대규모 해외 자본이 산을 사들여 관광지로 개발하는 등 세계화가 구체적이고 직접적으로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가운데에서도 현지 주민들은 조직을 만들고 연대하면서 변화를 일구고 있다. 강 대표는 아시아를 비롯해 아프리카 등 가난한 사람들의 삶이 파괴되는 현장을 찾아 이들이 스스로 조직하고 연대할 수 있도록 돕고 있는 것이다. 

강 대표는 아시아에서 한국 시민사회의 역할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시민사회운동이나 주민운동 단위들이 아시아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결합해야 합니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성취한 경험을 그 나라에 맞는 관점으로 재해석하고 충분히 나누는 것, 역사를 교류하는 것이 지속 가능한 연대의 힘입니다. 아시아 사람들에게서 자주적이고 대안적인 삶을 앗아가는 거시적인 자본과 국가의 영향력에서 한국도 예외는 아닙니다. 국가 간 관계에서 한국이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한국 시민사회운동이 자국에 압력을 넣고 목소리를 내는 것이 진짜 연대이고 교류라고 생각합니다.”  


아시아 사람들의 복덕방 같은 역할을 하고 싶었죠

“소스를 제공하고자 했어요. 우리는 복덕방이나 소개소처럼 브릿지 역할을 하는 곳이니까요. 특히 국제활동은 서로 다른 것들이 만나는 거잖아요. 다른 역사, 문화, 종교를 어떻게 브릿지 할 것인가.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수용할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해요. 브릿지를 통해서 만나고 이해하고 조심스럽게 융합하는 게 중요합니다.” 

나효우 ‘착한여행’ 대표는 ‘브릿지 리더십’이라는 말을 만들고 유통시킨 장본인이다. 대학시절이었던 1983년부터 서울 신림동 무허가 달동네에서 빈민운동, 주민운동을 시작한 나 대표는 2000년 필리핀으로 건너가 아시아 지역의 주민조직가와 리더들의 연합단체인 로코아(LOCOA)에서 활동했다. 1990년대부터 아시아의 지역운동가들과의 만남을 통해 아시아 지역의 빈곤과 난민, 민주화 이슈를 함께 고민했던 그는 국제적 네트워크에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 그 후 2003년 2월 필리핀 마닐라에 현 ‘아시안브릿지’의 전신인 ‘아시아 NGO 센터’를 만들었다. 

“NGO를 위한 NGO였어요. 당시 한국의 시민사회운동이 너무 국내 이슈에 몰입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것보다는 한국의 시민단체 활동가들을 위한 현장 교육과 쉼과 회복, 그리고 국제적 네트워크, 브릿지 역할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만들었죠. 길게는 6개월, 짧게는 1주일씩 활동가들이 마닐라에 와서 쉬고, 놀고, 수영도 배우고 커리큘럼에 따라 머물렀습니다.”

아시아 NGO 센터는 NGO 활동가들을 위한 센터에 그치지 않고 일반인들에게도 네트워크의 장을 열기 위해 2007년 ‘아시안브릿지’로 이름을 바꿔 지금에 이르고 있다. 나 대표는 아시안브릿지의 운영위원장이기도 하다. 국제적 네트워크를 중시하는 그는 아시아의 국가들이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긴밀한 영향력을 주고받는다고 강조했다. 특히 1980년대 한국과 동남아시아의 많은 국가들의 민주화 투쟁은 서로에게 큰 파장을 끼쳤다고 말했다. 

“1983년 필리핀의 마르코스가 배 타고 도망가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군부끼리 정권을 바꾸는 경우는 있어도 권력이 민간으로 넘어가는 경우는 없었는데, 그게 가능하다는 걸 본 거죠. 그것이 1987년 한국의 민주항쟁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인도네시아 리더들은 그런 우리의 87년 민주항쟁을 굉장히 부러워해서 전경들 철모에 꽃 꽂아주기 같은 투쟁방식을 똑같이 따라하기도 했죠. 태국은 우리의 투쟁가를 번안해서 부르기도 했고요.”

한국을 비롯해 여러 아시아 국가들이 민주화 쟁취 이후에 경제적 불황으로 사회적 경제, 대안 경제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나 대표는 한국의 시민사회가 “아세안으로 빨리 눈을 돌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인 아세안과 한국, 중국, 일본이 대안적인 시스템과 구조를 어떻게 함께 만들어 갈 것인지 고민의 축을 자꾸 생산해야 지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나마 기업들은 여기에 관심을 두고 있지만 정작 정부는 구상이 없어요. 시민사회도 상당히 근시안적입니다. 감정적 결합이나 연대를 넘어서서 아세안의 시민사회와 네트워크를 맺어야 합니다. 적극적인 시야와 철학, 운동적인 전망을 가져야 민주주의의 확장, 연대가 보이지 않을까요.”

나 대표가 2009년 “노는 걸 좋아해 시작했다.”는 사회적 기업 ‘착한여행’ 또한 활동가를 넘어 일반 대중의 브릿지리더십 함양을 위한 장으로 역할하고 있다. 
“좀 더 문화적으로 세상을 공부하고 배우고 바꿀 수 있는게 뭘까 생각했어요. 일반 성인들이 바뀔 수 있는 가장 좋은 계기가 여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시안브릿지가 활동가를 위한 것이라면 착한여행은 일반인을 위한 것이죠. 현지 주민들과 삶을 나눌 수 있는 유기농 여행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나 근력이 강화될 수 있지 않을까요.”


두 나라의 시민사회가 협력하고 연대하길 바랍니다

“이라크 시민사회와 한국의 시민사회가 적극적으로 연대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에서 다른 아시아 여러 나라의 시민사회단체를 초대하듯이 이라크 시민단체 활동가들도 교육훈련 등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프로그램에 초대하길 바랍니다. 또한 한국의 활동가들이 직접 이라크로 가서 교류를 확대하는 것도 좋겠지요.”

20여 년 전 조국 이라크를 떠나 ‘미지의 나라’ 한국을 찾아온 마르샴 씨는 두 번째 조국이 된 한국과 이라크 간 시민사회의 연대와 협력을 간절히 바랐다. 1994년 사담 후세인의 독재를 견디다 못해 이라크를 떠난 마르샴 씨는 이웃 나라인 요르단에서 여러 나라 대사관을 찾아다니며 비자 발급을 요청했다. 전쟁과 후세인의 독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나라로 가고자 했던 그에게 비자를 내어준 나라는 한국 뿐이었고, 그렇게 그는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도 몰랐던’ 한국에 발을 디뎠다. 

1998년 한국 국적 취득 후 2002년 한국인과 결혼한 마르샴 씨는 성공회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지난 8월에는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중동·아프리카 정치학으로 박사학위까지 취득했다. 하지만 그가 한국사회에 뿌리내리기까지의 과정은 쉽지 않았다. 1995년 도착한 한국에서 난민지위를 인정받기 위해 찾은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그는 ‘두 번째 핍박’을 받아야 했다.

“이라크에서 전쟁과 독재로 얼마나 힘들었는지 얘기했어요. 쿠르드족이라는 이유로 받은 핍박이 엄청났거든요. 군대가 마을에 들이닥쳐 사람들을 잡아가고 불도저로 집들을 파괴했어요. 대학시절에는 친구 3명이 ‘전쟁은 잘못된 일’이라고 말했다가 잡혀가 죽임을 당했어요. 3년 동안 한 달에 한 번씩 출입국관리사무소를 방문해 그런 일들을 설명했지만 믿어주질 않았어요.”


<이라크전> 구호품 받으려는 이라크 사람들 ©연합뉴스
 
“이라크에 대한 정보가 없어 자신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마르샴 씨는 당시 자신을 도와줬던 변호사를 통해 한국의 시민단체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 자신처럼 어려움에 처한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 일해 주는 시민사회에 대해 알게 된 후 조국인 이라크의 시민사회에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
 
“이라크에서 시민단체는 새로운 것입니다. 후세인의 독재 때문에 시민사회가 형성될 수 없었죠. 2003년 후세인이 무너진 후 시민단체가 많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시민단체들은 종교지도자들이 자본력을 앞세워 사람들을 도와주고 그것을 선거에 이용하고 있어 문제입니다. 지금 이라크에는 그 외에 국제 구호단체들이 있고, 사업과 시민단체 성격이 섞여 있는 곳들도 있습니다.”


 소수민족으로서 타 국가로부터 설움을 받는 쿠르드족은
민족국가 건설을 위해 게릴라 활동을 전개하기도 한다
. ©연합뉴스

마르샴 씨는 이라크의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능력을 키우고 무엇보다도 정부의 부정부패를 방지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NGO는 월급을 받기 위한 단순한 일자리가 아니라 시민들을 위해 일하는 지원 단체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라크의 다른 도시들은 위험하지만 바그다드와 바스라, 아르빌, 술라이마니야 등 4개 도시는 안전합니다. 이 도시들이 NGO의 허브가 되고 있어요. 이곳에 한국의 시민단체 활동가들과 자원봉사자들이 직접 가서 교류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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