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이소선 김근태 그리고 마석 모란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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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이소선 김근태 그리고 마석 모란공원


글/ 한종수 wiking@hanmail.net 

이 정권 들어 참 많은 어른들이 돌아가셨다. 김수환 추기경, 두 대통령, 리영희 교수, 박용길 장로, 그리고 이소선 어머니와 김근태 의장. 그 중 뒤의 세 분은 마석 모란공원에 묻혀있다.

9월 3일이 이소선 어머니의 기일이라 겸사겸사해서 아침 일찍 마석으로 출발했다. 그러고 보니 벌써 1년! 새삼스럽게 세월은 정말 빠르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행사는 11시부터였지만 김근태 의장을 비롯한 여러 열사들의 묘를 참배하기 위해 조금 일찍 나섰다. 물론 모란공원 가라고 만든 것만은 아니지만 경춘선 열차는 무척 편안했다.

공원입구에 들어서면 민족민주열사 희생자 묘역도가 참배객들을 맞이한다. 작년 이소선 어머니 장례식 때 방문하고 1년 만인데, 사진에서 보듯이 이소선 어머니와 박용길 장로의 묘 위치는 추가되었지만 김근태 의장의 묘는 오른쪽 아래에 임시로 펜으로 표시되어 있다.  


김 의장의 무덤에 가니 ‘민주주의자 김근태의 묘’라는 묘비명과 성모상이 눈에 띈다. 묘비명이 그 분의 일생을 한 마디로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은 두 말할 필요가 없지만 성모상을 보자 그 분의 세례명이 즈가리야라는 사실이 생각났다. 사모이신 인재근 의원의 세례명이 세례자 요한의 어머니이자 성모마리아의 사촌언니인 엘리사벳이므로 그 부군인 즈가리야로 지었다고 들었다.

하지만 성경에는 그 외에도 두 명의 즈가리야가 더 등장한다. 하나는 구약의 예언자로서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을 재건할 때 하께와 함께 성전 건축 공사를 담당한 지도자들을 격려했으며, 메시아에 대한 예언으로 예수님이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할 것을 예언한 예언자였다. 현실에 대한 극복 의지를 북돋았고 희망찬 세상을 예언한 점에서 그는 김근태 의장님과 닮았다.

또 하나는 유다 왕국 시절 우상을 섬기는 왕을 규탄하다가 돌에 맞아 죽은 예언자인데, 예수님도 직접 복음서에서 언급한 바 있는 "아벨의 피를 비롯하여 제단과 성소 사이에서 살해된 즈가리야의 피에 이르기까지"라고 말했을 정도로 무고한 희생자 중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어느 즈가리야이든 그 분의 일생과 어울리는 세례명이 아닐 수 없다.

주위에 있는 김귀정 열사와 최근 재심 신청을 한 김기설 열사의 묘역을 참배하면서 그 처절했던 91년을 되돌아보기도 했다. ‘YWCA 위장결혼사건’의 주인공이었던 홍성엽의 묘가 이곳에 있는지는 처음 알았다. 미남이어서 많은 여성들의 흠모를 받았지만 결국 독신으로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다가 50대 초반에 세상을 떠난 분이었다. “민주주의와 결혼한 영원한 청년”이라는 그의 묘비명은 가슴을 아프게 했다. 건너편 문익환 목사의 묘역에도 올라가 작년과 어떻게 바뀌었는지 살펴보았다.

10시 반이 넘어가자 많은 이들이 이소선 어머님 묘소에 모여들었다. 백기완 선생님을 비롯한 노동계와 정계, 사회단체에서 쟁쟁한 인사들도 와 있었다. 행사가 시작되자 조금 늦게 김문수 경기도지사도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등장하자마자 추모사에서 팔당 두물머리 유기농지 이야기가 나와서 조금 민망했을 지도 모르겠다. 추모시와 노래, 추모사가 이어졌지만 두 가지가 가장 인상 깊었다. 하나는 1929년생인 이소선 어머니가 1970년에 아들 전태일을 잃었고, 41년이 지난 2011년 세상을 떠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묘하게도 어머님의 삶 82년은 아들의 죽음으로 거의 정확하게 41년씩 나누어졌던 것이다. 정말 ‘운명’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하나는 어느 분이 김남주 시인의 시를 개작해서 낭송한 시였는데, 첫 구절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고난의 길 해방의 길

- 김 남 주

어머니가 아들을 낳고 아들이 어머니를 낳았습니다
이소선 여사가 그 어머니이고
전태일 열사가 그 아들입니다

나는 노동자를 혹사하는 자본의 세계에 살면서
그런 어머니에 그런 아들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 아들에 그런 어머니를 본 적이 없습니다

상복을 입고
불에 타 죽은 아들의 사진을 껴안고 목 놓아 우는 모습이
가파른 인생을 사는 우리네 어머니들과 꼭 닮았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여
아들의 죽음으로 다시 태어난 노동자 민중의 어머니여
나는 알고 있습니다

당신의 아들이 굴리다 굴리다 힘에 겨워 못다 굴린 덩이를
그 덩이를 머리에 이고 당신이 걸었던 고난의 길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또 알고 있습니다
아들과의 약속을 온전히 지켜
노동운동의 민주화 나라의 민주화에 엄청나게 공헌한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마침내 당신께서는
고난에 찬 삶을 통해 무한한 사랑을 얻고
사랑의 헌신적 실천을 통해 총명한 지혜를 얻으며
그 무한한 사랑 총명한 지혜로 해방된 삶을 이루었으니
당신의 그 숭고한 삶은 우리 모두에게 교훈으로 남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걸었던 그 길을 나도 가렵니다
당신이 열어온 해방의 길이 인류해방의 길과 맞닿아 있음을
나는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한테 배워서 당신한테 배워서 


전태일 재단에서는 고맙게도 점심을 제공해 주셨고, 잘 먹고 모란 공원을 뒤로 했다. 이제는 마석 모란 공원 묘역은 단순히 열사들의 묘역을 넘어 민주화 운동과 통일 운동, 노동 운동에 헌신하시고 세상을 떠난 분들의 안식처가 되고 있다. 오늘 추도식에 참석한 분들도 언젠가는 상당수가 이곳에 묻히리라.

작년 6월 서울광장에서 열린 열사 추도식에서 사회자가 이젠 더 이상 열사들이 나오지 않았으면 한다고 절규했지만 아쉽게도 아직은 열사가 나오지 않는 세상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더 이상 열사들이 나오지 않는 세상을 위해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야한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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