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역사기념관

민주화운동기념관 건립을 위한 성찰과 토론 기념관 연재를 마치며

민주화운동기념관 건립을 위한 성찰과 토론 기념관 연재를 마치며

 

2003년 2월부터 한국에 있는 주요 기념공간들과 기념관들에 대한 글을 『희망세상』에 연재하기 시작했다. 그해 10월부터는 해외로 시야를 넓혀 아시아, 유럽, 미국, 남미 등에 있는 주요 기념관, 박물관 혹은 기념공간들을 살펴보았다. 이 연재의 목적은 국가 폭력, 식민지의 경험, 전쟁, 독재 혹은 권위주의 체제에 대한 민중의 저항과 투쟁, 인권 등을 주제로 조성된 기념공간과 기념시설들을 우리의 현재적 시각에서 고찰하고, 시민적 관심과 애정 속에서 ‘민주화운동기념관’ 건립의 첫걸음을 본격적으로 내딛고자 한 것이었다.
이번 연재는 일관된 틀이 유지되지 못했고 계획했던 모든 기념시설들을 다루지 못해 많은 한계를 드러냈다. 그렇지만 현재 추진하고자 하는 민주화운동기념관 건립운동이 한국과 세계적 차원에서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거칠게나마 살펴보는데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된다. 또한 ‘민주화운동기념관’건립 때 염두에 두어야 할 점과 어떤 쟁점이 생길 수 있는가를 성찰하는 데 기여한 측면도 있다고 보여진다.

이 연재는 총 25회였으나, 매회 다룬 기념시설들은 연재 횟수를 훨씬 능가하는 많은 사례들이었다. 연재되었던 사례들을 보면 국내의 경우는 일제식민지, 한국전쟁, 독재와 민주주의라는 한국 현대사의 흐름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사건들을 주제로 한 기념공간과 기념관들이었다. 국외의 경우는 20세기에 발생한 전쟁과 학살, 폭력의 문제와 관련된 기념관들이 주로 고찰되었고, 때로는 세계적인 명성을 획득한 박물관이나 미술관 등도 소개되었다. 


지난 2월 2일, 국내외의 여러 기념시설들에 대한 연재를 정리하면서 현재 추진되고 있는 민주화운동기념관이 구체화되는 과정에서 나타나게 될 여러 가지 쟁점에 대하여 그동안 연재에 참여한 분들과 함께 좌담회를 가졌다.
이 글은 김동춘(성공회대 교수), 성혜영(박물관학자), 윤명선(민주공원추진위 사무처장), 이대훈(평화박물관), 오유석(성공회대 연구교수), 정근식(서울대 교수) 등 좌담회 참석자들의 의견을 기초로 재정리 한 것이다.

 

기념공간의 탐방과 성찰의 역사
한국에서 국외의 기념공간들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1993년부터였다. 문민정부는 출범한 첫해의 5월 13일에 ‘5·18민중항쟁(이하 5·18)’ 관련 특별담화를 발표했는데, 여기에는 국가 차원의 기념사업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이 발언은 노태우 정부시기부터 논란과 갈등만 거듭한 채 실현되지 않았던 5·18기념사업이 현실화되는 계기였다. 불과 한 달이 채 지나기도 전에 문민정부가 4·19혁명의 기념사업을 발표한 것에 비하면 5·18 기념사업의 파장은 확실히 더 컸다.

 

문민정부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5·18의 역사적 청산 방법을 두고 논란이 계속되면서 기념사업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던 점은 있었으나, 임박한 기념사업의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해외 사례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광주 지역의 언론과 학계,
시민단체 등이 중심이 되어 세계의 주요 기념공간들, 특히 국가 폭력과 민주화운동 그리고 전쟁의 흔적과 기억을 담은 공간들을 탐방하고 이를 책으로 발간했다.

민주화운동과 국가 폭력에 의한 민간인 희생 등을 내용으로 한 기념사업이 사건별로 그리고 지역별로 추진되면서부터 기존의 기념시설들에 대한 답사는 필수적인 선행 작업이 되었다.


 


국내의 기념공간들에 대한 탐방은 기본이고, 해외의 기념공간들에 대한 답사도 간헐적으로 계속되었다. 방문 결과가 새로운 기념공간과 기념관 건립에 반영되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보고서 혹은 책자의 형태로 발행되지는 않았다. 국내의 기념공간들 가운데 특히 많은 주목을 받았던 것은 동작동 국립 현충원, 독립기념관, 전쟁기념관 그리고 앞서 진행된 민주화운동 관련 기념공간들이었다. 이들은 나중에 이루어지는 한국의 민주화운동과 민간인 희생 등의 기념공간 조성에 긍정적 혹은 부정적으로 많은 영향을 주었다. 기존의 사례들에 대한 고찰과 분석과정은 권위주의 체제의 흔적들이 우리 안의 깊숙한 곳까지 뿌리를 내리고 있었음을, 그렇지만 이에 대한 성찰과 의문을 갖지 않고 수용하였음을 반성하는 시간이었다.
국내외의 사례들에 대한 답사와 고찰이 문자화 혹은 사진 등을 통해 다시 기록되기 시작했던 것은 제주 4·3사건에 대한 기념사업 계획이 마련되면서부터였다. 이후 민주화운동 추모공원 조성 계획을 수립하는 과정과 ‘민주화운동기념관’건립을 위한 기본계획 수립 과정 등에서 해외의 기념공간에 대한 답사가 진행되었다. 이 결과들은 보고서와 책자로 제작되었으며 기본 계획들에 반영되었다.

이외에도 민주주의, 인권, 평화 등을 주제로 한 학술행사, 평화박물관 추진위원회를 비롯하여 여러 단체와 집단 그리고 개인 차원에서 해외 기념공간의 특성에 대한 발표와 답사가 이루어졌다. 그리하여 약 10년 동안 축적된 기념공간 조성에 대한 성과들은 민주화운동을 주제로 한 기념사업뿐만 아니라 과거청산의 대상이 된 역사에 대한 기념사업과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현재와 미래의 담론들에 대한 기념사업에서도 동일한 방식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연재가 진행되고 있을 무렵에 진행된 해외 기념공간에 대한 조사와 답사의 성과들도 연재에 반영되었다
 

민주화운동 관련 기념관 건립운동
기념공간 혹은 기념시설보다 ‘기념관’으로 그 범위를 한정하면 2000년을 전후한 시점에서 민주화운동기념관 건립에 일정한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1990년대가 ‘사건별 민주화운동 기념관’건립이 이루어지던 시기라면, 2000년대는 ‘포괄적 민주화운동 기념관’ 건립이 추진되는 시기였던 것이다. 그렇지만 한국에서 민주화운동기념관 건립 논의는 198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5·18에 대한 저항적 기억투쟁을 하던 사람들이 그 일환으로 기념관 건립 추진을 시도했던 것이다. 그러나 문민정부 이전의 정부, 즉 노태우 정권은 민주화운동을 주제로 한 기념관 건립에 매우 부정적이었다.

 


 

노태우 정권은 이 기념관이 건립되면 역사적 사건의 상처와 기억이 유지되고 영속될 것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는 기념관의 기능과 역할을 정확하게 파악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 시기에 국가가 민주화운동을 주제로 한 기념관 건립을 부정했던 진정한 이유는 이 기념관이 5·18의 진실과 국가 폭력의 기억을 공식화하는 공간이 될 것이며, 이는 전두환과 노태우 정권의 불법성과 비정통성을 명백하게 드러낼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문민정부는 4·19혁명을 비롯하여 3·15의거, 5·18, 부마민주항쟁 등과 관련된 국가적 차원의 기념사업들을 발표하거나 공론화 했는데, 그 시점은 문민정부의 개혁기 혹은 재개혁기와 일치한다. 국가는 민주화운동기념관이 건립된다고 해도 이것이 더 이상 체제에 대한 저항성을 강화시키지 않으며, 오히려 이를 추진한 정부의 정통성과 민주성이 부각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적극적으로 수용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이후에 진행된 다른 민주화운동 관련 사건들의 기념관은 집단묘지의 구성 요소로 혹은 독립된 건물로 속속 건립되기 시작하였다. 

한국의 민주화운동 전반을 아우르는 ‘포괄적 기념관’ 건립운동은 1997년 6월민주항쟁 10주년 기념행사를 준비하면서 논의된 적이 있었다. 이 논의는 구체적인 실천으로 발전하지 않았지만, 민주화운동의 기억과 역사적 자취를 담을 공간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형성하였다. 그래서 1998년부터 일부 사회운동 진영과 학계에서 민주화운동기념관 혹은 자료관 건립을 추진하는 조직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 조직들은 형성 배경과 목적 그리고 구성적 특성 등에 의해 부침(浮沈)을 거듭하면서 당시 정치·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던 ‘박정희 기념관’ 건립운동에 대한 대항적 의미를 갖는 기념관 건립운동이라는 의미가 부여되기도 했다.
민주화운동기념관 건립은 다양한 토론과 논쟁 속에서 추진되었다. 그리고 국가에 대한 청원운동의 성격이 점점 강해지면서 국가 프로젝트로 수용되어갔다. 물론 이는 한국에서 민주화가 진전되고 유리한 정치적 기회구조가 형성되었던 것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민주화운동기념관 건립운동은 2001년 6월 28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법’(법률 제6495호)이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사실상 국가적 사업이 되었다. 민간단체에서 추진되던 것이 정부의 지원을 받는 특수법인이 주도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이 법률이 제정된 직후인 2001년 7월 18일 민주화운동 관련 10대 기념사업의 추진 주체가 결정되었다. 묘역조성 사업은 정부가 주관하고, 나머지 9대 기념사업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주관한다는 것이 골자였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다양한 사업들을 추진하고 있으나, 기념관 건립이 규모가 가장 크면서도 동시에 많은 난관이 예상되는 사업이다. 많은 사람들이 민주화운동기념관 건립의 필요성에는 뜻을 같이 하지만, 건립 시기, 주체, 대상, 내용, 규모, 방법 등 구체적 사항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입장을 보이면서 현재까지도 공식적 혹은 비공식적 토론을 계속하고 있다.

민주화운동기념관 건립의 쟁점과 과제
민주화운동기념관 건립과 관련하여 현재까지 가장 큰 쟁점은 추진 주체와 건립 장소 그리고 공간성의 문제이다.
추진 주체는 사실상 기념관 건립운동의 방향과 특성에 영향을 주는 가장 큰 변수이다. 이 문제는 사건별 민주화운동 기념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들과 연속선상에 있는 것임과 동시에 포괄적 민주화운동기념관 건립운동을 목적으로 등장했던 여러 조직들에 대한 평가와 연계되어 있다. 즉 사건별 기념관 건립운동에서는 관 주도, 당사자 주도, 명망가 주도 등의 비판이 강도의 차이는 있지만 계속해서 제기되었고, 포괄적 기념관 건립운동은 출발부터 정치권에 대한 청원운동의 성격이 컸던 관계로 이를 둘러싼 견해차가 현저하게 존재하고 있다.

 

추진 주체의 문제는 기념관 건립시기 문제와도 연관되어 있다. 기념관 건립의 현재적 필요성에 회의적인 입장은 공교롭게도 보수와 진보 양측에서 모두 제기되고 있다. 보수진영에서는 민주화운동의 의의와 성과를 인정할 수 없기 때문에 기념관 건립을 반대하는 근원적 부정론을 주장하고, 일부 진보진영에서는 한국의 민주화가 아직도 미흡하기 때문에 민주화운동에 대한 기념이란 있을 수 없다는 시기상조론을 펴고 있다. 이 두 주장은 제기되는 배경이 서로 다르지만, 민주화운동에 대한 많은 자료의 손실과 정신의 역사적 의의의 계승이라는 현실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아니라는 공통점이 있다.
현재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기념관 건립에 필요한 주체로서 기반을 만들어가고 있지만, 이는 특정 단체나 조직의 힘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거대한 프로젝트이다. 따라서 『민주화운동기념관 건립기본계획(안) 수립 연구용역』(『기본계획(안)』)에서 제시한 것과 같이, 기념관 건립을 추진하는 초기 단계에서부터 운영과 활용까지 전체적 계획 수립과 진행을 담당할 주체의 형성이 절실히 요구된다.

 


 

이 기념관은 완성형이 아니라 장기적 전망 속에서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계승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공간적 토대와 틀을 생산하는 과정임을 고수할 때 추진 주체의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가 잡힌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주장에 동의하고 그 방향에 대해 견해를 같이하지만 수면 아래 혹은 위로 각 단체와 지역에서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논리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힘들은 기념관 건립이 가능할 수 있게 모아져야 할 것이다.
둘째는 기념관 건립운동이 가시화 된 이후로 계속되었던 논쟁인 건립의 공간적 형태와 장소에 관한 점이다. 우선 기념관이 만들어질 곳이 현실 공간인가, 아니면 사이버 공간인가 하는 논란이 있었다. 이 논쟁은 기념관은 현실공간과 사이버 공간 모두에서 만들어져야 하지만, 어떠한 형태로 추진되던 이를 담아낼 수 있는 현실공간이 필요하다는 방향으로 견해가 모아지고 있다.
이 논쟁과 다소 시기적으로 중복되어 제기되었던 것이 장소의 집중형과 분산형, 수도권과 지역 그리고 여러 지역에서의 유치 의사 표명 등의 논쟁이었다. 공간과 장소는 추진 주체의 역량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고, 기념관의 형태와 구성 방식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변수임을 간과해서는 안 되지만 한편에서는 공간과 장소의 우선적 결정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견해도 있다. 이를 둘러싼 논쟁이 확산되면 기존의 기념공간과 기념관 건립 과정에서 그토록 비판되었던 문제들이 다시 등장할 수도 있다.

 


 

기념관의 구성 내용과 장소, 경제적 자원 등은 동시에 고려되어야 할 사항이다. 이것들은 상호 유기적 관계를 맺고 서로를 중층적으로 결정하는 요소들이다. 따라서 특정한 부분을 우선적으로 제시하는 방향으로 기념관 건립 문제를 끌고 가는 것은 곤란하다. 현 시기 민주화운동기념관 건립운동에 보다 애정을 갖는 것은 기념관이 지향해야 할 방향과 내용 그리고 건립 목적이 충실하게 반영된 프로그램과 운영 전략에 대한 다양한 밑그림과 계획을 수립하는데 생각을 모으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민주화운동기념관 건립에서 고민해야 될 쟁점과 과제들은 더 있다. 다소 논의가 진행되다가 조용해진 기념대상과 정의, 비용의 조달 방법, 기념관의 역할과 기능, 운영과 활용 계획 등이다. 아직 이 부분에 대해서는 충분한 토론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지만, 앞으로 많은 토론을 필요로 하고 있다.

 

 

한걸음을 내딛기 위해
한국에서는 앞으로 한동안 ‘과거청산’의 문제가 정치·사회적 화두가 될 것이다. 과거청산은 ‘민주화운동 과정에서의 희생과 피해의 복원’의 문제로 시작되어 해방 전후 시기의 국가 폭력의 문제로 그리고 일제 식민지와 동학농민전쟁으로까지 확대되었다. 또한 현재에는 한국전쟁기의 민간인 학살이 과거청산의 첨예한 문제가 되고 있다. 이러한 과거청산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가 기념사업인데, 기념관 혹은 추모관 등을 구체적인 방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현재 추진을 위한 첫걸음을 내딛은 민주화운동기념관 건립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하겠다.
민주화운동기념관에 대한 토론은 학술심포지엄과 공청회 등에서 혹은 관심을 갖고 있는 단체와 개인들 사이에서 비공식적으로 수차례 진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기념관 건립은 토론의 직접적 주제가 된 적도 있었고, 기념사업 전반에 대한 토론의 주제들 가운데 하나로 다루어지기도 했다.
이러한 논의 결과의 상당부분은 앞서 제시한 『기본계획(안)』에 담겨져 있다. 문제는 앞으로 어떻게 이를 구체화하고 실제화 할 수 있을 것인가 이다. 그동안의 토론과 논의를 통해 다양한 생각과 견해들이 표출되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구체적인 대안과 방안의 마련으로 진전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논의의 내용이 되풀이되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제부터는 충분한 논의를 통해 정리된 내용에 기반하여 다음 단계의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충분한 토론과 상호 신뢰를 통한 합의가 도출되는 구조가 마련되어야 한다.
민주화운동기념관의 건립과정은 한국의 민주화운동 전반의 역사와 활동을 정리하고 집대성하는 공간을 생산하는 과정이면서 동시에 더 나은 사회와 역사를 창조하는 공간적 실천 행위의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과정이어야 함을 마음속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글 정호기(한국현대사회연구소 연구원)

사진 황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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