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운동 기념관 건립의 의의와 역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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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 기념관 건립의 의의와 역사성
 
 
정호기
(한국현대사회연구소 연구원)

한국의 민주화운동

  해방 이후 한국에서는 한반도의 통일과 민주주의 실현이 핵심적인 과제로 떠올랐다. 그러나 한국전쟁 이후 분단이 고착화되어 가는 형태를 보이자. 적어도 남한 내에서는 민주주의라는 문제가 가장 선차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화두가 되었다. 이는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라는 이론적·사상적 논쟁과 갈등으로 표출되었고, ‘어떻게 민주주의가 실현된 사회를 추구하고 앞당길 것인가’ 라는 사회운동론적 실천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는 민주주의와 관련된 다양한 방법들과 논의들이 제시 및 이루어져왔고, 국가와 지배권력이 대한 민중들의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항거행위가 있어왔다.
  한국에서의 민주화운동은 항거행위의 성과가 비민중적인 방식으로 이용되었지만, 외현적으로 보면 성공하였다고 할 수 있는 4월혁명이나 6월민주항쟁이 있으나, 거의 대부분의 항거행위는 경찰과 군인을 동원한 국가의 물리력에 의해 비참하게 종결되었다. 이 과정에서 엄청나게 많은 희생자가 생겨났고, 이 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정치·사회적 박해와 차별, 그리고 폭력의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항거행위의 미약함에 실망도 하고, 좌절도 했다. 그러나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던 그 수많은 항거행위들이 점차 바위의 내용과 외형을 바꿔놓기 시작했다. 단시간으로 보면, 실패한 민주화운동이었지만, 한국의 민주주의는 이러한 희생과 고통을 대가로 조금씩 전진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때론 비약적 발전을 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오늘날 민주화운동은 우리사회에서 더 이상 금기의 역역이 아님은 물론이요, 민주화운동으로 지칭되는 일련의 활동들이 국가적 기념의 대상이 되는 상황에 이르렸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민주화운동과 관련된 수많은 법률이 제정되었고, 이에 따라 이와 관련된 사업을 담당할 국가기구들과 국가의 지원을 받는 민간기구들도 생겨났다. 우선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1999. 12. 2)’ 에 의해 1969년 8월 이후 발생한 민주화운동과 관련된 일련의 비극과 희생을 규명하고 명예회복 및 보상을 위한 일련의 조치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의문사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1999. 12. 2)’ 에 의해 한국전쟁 이후 격동기에서 원인이 규명되지도 않고 희생된 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진상을 추적하고 있다. 그리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가 설치되어 활발한 민주화운동 기겸사업들을 전개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들은 실로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민주화운동과 관련된 이러한 변화를 논할 때, 가장 중요한 시기는 1980년대이다. 사회운동사라는 측면에서, 한국의 1980년대는 군사쿠데타와 광주민중항쟁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등장한 군사정권들과 이를 부정하고 새로운 정치·사회의 변화와 체제의 창출을 목표로 한 민중세력의 첨예하게 격돌한 시기였다. 이 시기는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앞당기기 위한 주춧돌을 놓은 과정이었다. 물론 1980년대 이전에도 2·28과 3·15의거를 비롯한 4월 혁명, 6·3 한일외교 반대시위, 유신정권 반대시위, 부마민주항쟁 등 수 많은 도심 집회와 시위가 전개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에는 이러한 ‘거리의 정치(politics of street)` 가 간헐적으로 전개되는 이벤트가 아니라, 일상생활에 깊숙하게 자리 잡은 중요한 항거행위가 되었다는 점에서 특별했다. 1980년대의 민주화운동을 추진했던 힘이 오늘날 민주화운동의 다양한 기념사업이 가능하게 했던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민주화운동의 기억과 기념

  그런데 우리 사회의 민주화가 실현되어 갈수록, 오랜 시간동안 축적되어 온 민주화운동의 전통과 기억도 점차 희미해져 갔다. 우선 당시 민주화운동의 배경이 되었던 상징적 공간들과 건조물들이 역사성과 장소성에 대한 어떠한 고려도 없이 해체 혹은 변형되었고, 사라져갔다. 한국의 민주화운동 사상의 형성과 흐름 및 변화과정을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기록물들과 영상물, 의복 및 시위 도구들은 운동의 과정에서 활동가들의 안전을 위해 자의적으로, 혹은 국가에 의해 임의적으로 파괴되었으며, 그나마 남은 잔여물들도 점차 소실되고 있다. 또한 우리가 알고 있는 민주화운동에 대한 진실은 사실상 매우 한정된 것이고, 더 많은 진실과 활동은 아직 드러나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밝혀주고 증명해 줄 사람들이 민주화운동에 대한 기억을 가슴에 안고 하나 둘 우리의 주위에서 사라져가고 있다.

  이렇게 망각되어 가는 민주화운동에 대한 기억을 우리 곁에 잡아두기 위한 방법이 ‘기념’ 이다. 기념은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화하며, 미래로 전승시키기 위해 가장 널리 사용하는 방법이다. 우리는 이 과정을 ‘기억의 정치(politics of memory)` 라고 정의했다. 왜냐하면 기억은 과거의 사전과 경험을 회상하는 것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다양한 기억들을 가진 주체들이나 집단들의 끊임없는 기억투쟁을 통해 선별되고, 재구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념의 대상이 되는 것은 과거의 다양한 기억들 가운데 특정하게 선택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넓게 보면, 과거에 대한 망각과 기억이라는 대립구도 속에서, 축소해서 보면,’무엇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라는 선택을 둘러싼 갈등과 타협 그리고 투쟁의 과정을 거치면서 기념은 이루어진다. 기념은 망각과 기억이 동전의 양면인 관계인 것이다. 그러므로 논쟁과 갈등이 없는 기념이란 특정한 입장과 주장이 지배적인 힘을 발휘하고 있거나, 기억의 다양성 혹은 상상력이 정형화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공식적 기억‘ 이라는 것은 언제든지 ’비공식적 기억‘ 과 병존 혹은 대체될 수 있다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하며, 이것은 기억이라는 것이 사회적 혹은 정치적 지평에서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을 지적해주는 것이다.
  그 동안 민주화운동에 대한 기념행위가 또 다른 민주화운동의 시발점이 되어왔던 것처럼, 기억과 기념에 대한 위의 논의들과 행위들은 한국의 민주화를 추진하였던 힘과 활동에 대한 결집과 정리, 그리고 평가를 통해 더욱 진전된 민주주의 사회를 구현하려는 것이었다. 이는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당사자들의 기억과 관심을 반추하여 오늘날의 관점에서 이를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라는 문제의식과 결합되어 있었다. 한편 이 과정은 민주화운동에 대한 생생한 기억을 경직화하거나 특정 사건으로 축소시키는 경향, 미래에 시선을 두지 않고 자꾸 과거에 대한 회상으로 회귀하려는 경향, 운동 엘리트들과 소수 특화된 인물 중심의 운동사 정리 경향 등 수 많은 난관과 만나게 된다. 이것은 이념 그리고 기념행위 속에 내재되어 있는 본질적 한계인데, 의식하고 있으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함몰되는 함정이기도 하다.

민주화운동 기념관의 차이성

  한국에는 이미 민주화운동과 관련된 다수의 기념공간과 기념건조물 그리고 기념물들이 조성되어 있다. 따라서 민주화운동 기념관 건립이 논의 되면서 기존의 기념행위 및 시설물과 무엇이 어떻게 다를 것인가가 의제로 등장하고 있다. 그 동안 진행되어온 민주화운동과 관련된 기념사업의 과정을 살펴보면, 최초의 기념 대상은 4월혁명이었다. 4월혁명에 대한 기념사업은 크게 보면, 박정희 정권과 문민정부에서 두 번에 걸쳐 이루어졌다. 곧이어 광주민중항쟁에 대한 기념사업이 시작되었으며, 이어서 부마민주항쟁에 대한 기념사업도 진행되었다. 또한 4월혁명에서 일정하게 독자성을 추구해 온 3·15의거의 기념사업도 뒤이어 추진되었다. 이외에도 근래에 들어 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특정한 인물뿐만 아니라 사건에 대한 기념사업을 위한 활동들이 광범위하게 등장하고 있다.
  이 과정은 앞서 잠깐 언급한 것처럼, 민주화운동에 대한 기억을 국가가 독점해오다가 점차 민중의 비공식적 기억이 이를 대체해오는 과정이었다. 물론 최근의 기억이 반드시 민중적이며, 진실에 가깝다고는 말할 수 없다. 기억은 정치·사회적 정황 속에서 변화되기 마련이며, 다양한 기억들의 타협과 선택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재적 조건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민주화운동의 기념관을 새롭게 건립하려는 목적과 이유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첫째, 위의 기념사업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수많은 민주화운동들을 종합하고 집대성해야한다는 점이다. 절대 다수의 민주화운동들이 위의 민주화운동 기념사업의 과정에서 개괄적으로, 혹은 위 사건들의 의의와 특성을 보여주는 조연의 역할을 맏고 있었다. 한국의 정치 및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사건들과 인물들을 기념사업의 과정에서 강조 및 특화하는 것이 현재까지 추진된 기념사업이 지닌 최선의 방법이라고 할지라도, 기억투쟁에서 승리하지 못한 민주화운동에 대한 기억도 기념대상이 되어야 함은 자명하다.
  둘째, 그 동안 기념사업이 회상과 기억의 단순한 저장고로써의 역할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지만, 이제는 보다 적극적으로 민주화운동에 대한 기억과 역사를 생산해내고, 이를 학습 및 교육, 그리고 실천하는 소통의 공간이 요구된다는 점이다. 엄밀하게 보면,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기념관의 형태를 띠고 있는 총 다섯 곳이 있다. 국립 4·19묘지 내에 위치한 기념관, 5·18자유공원 내에 위치한 자유관의 전시시설과 국립 5·18묘지의 유물전시관, 가장 대규모이며, 보다 광범위한 민주화운동을 주제를 다루고 있는 부마민주항쟁기념관, 그리고 2003년 3월 15일 개관할 국립 3·15의거묘지 내에 있는 3·15기념관 등이 그것이다. 나중에 조성될수록, 앞선 기념사업에서 발생한 시행착오를 고려하여 좀더 다양하고, 포괄적인 기념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나, 많은 경우 전시를 주된 기능으로 하고. 지역화 되어 있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셋째, 전부를 포괄할 수는 없지만, 현재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는 민주화운동 관련 사업들(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심의위원회,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등이 추진하고 있는 사업들)이 종결 혹은 일정하게 매듭을 짓게 된 뒤, 이 모든 자료들과 활동성과들을 집결할 공간이 요구된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자료들을 정리하고, 분석하여 재가공하는 연구센터의 기능도 필요하다고 하겠다.

 


본 연재물의 목적과 지향점

  이상과 같은 무제의식 속에서, 본 연재물은 기존의 민주화운동 기념공간 및 건조물들과 다양한 목적 및 이유로 설립된 기념관, 역사관, 박물관, 전시관 등을 탐방함으로써 민주화운동 기념관의 방향과 지향점을 보다 명확하게 설정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먼저 국내의 시설들을 살펴보고, 이어서 국외의 주요 시설들을 고찰할 것이다. 여기에는 위에서 제시한 기존의 민주화운동과 관련된 기념시설 및 기념관뿐만 아니라, 일제 강점기의 비극과 한국전쟁 등 주요 역사적 사건들의 역사관과 자료관, 과학기술과 일상생활사를 보여주는 과학관과 박물관 등, 그리고 국외에서 발생한 국가 폭력과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발생한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공간들이 포함된다. 아울러 본 연재물에서는 기념관과 기념시설이 조성된 목적과 시대적 배경, 주요 전시 대상과 방법, 건립 및 운영예산, 건조물 및 기념물들의 상징성과 의미 등이 포괄적으로 고찰될 것이다.
  민주화운동 기념관 건립은 간단하게 정리되지 않는 험난한 길임이 이미 예고되어 있다. 기념관에 포함될 민주화운동의 범위가 어디까지인가를 놓고 논란이 전개될 것이며, 예산을 지원하는 정부의 판단과 기념사업추진단의 판단이 충돌할 여지도 있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제 단체들의 입장들이 다양하게 제기되면서 수많은 복잡하고 복합적인 관계들과 의견들이 표면화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역으로 현재 추진하고 있는 민주화운동 기념관 건립사업이 반드시 기존의 기념공간과 기념건조물들에 면밀한 분석을 토대로 이루어져야 함을 말해주는 것이다.
  모든 기억과 자료들을 다 수집하고 찾을 수는 없지만, 민주화운동 기념관이 건립되고 이곳에서 많은 기념사업들이 전개되어 일정 정도 종합되면, 한국의 민주화운동사는 다시 쓰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곳은 새로운 한국의 민주화운동에 대한 비공식적 혹은 숨겨진 기억을 담아내는 곳임과 동시에, 흩어져 있는 기억들을 종합하고 맞추어 내며,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현재의 문제 그리고 미래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공간으로 거듭나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민주화운동 기념관 건립과정 그 자체는 민주주의에 대한 기억투쟁의 새로운 장을 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글 정호기(한국현대사회연구소 연구원)

사진 황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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