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운동기념관과 ‘희망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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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기념관과 ‘희망세상’

국내의 기념관 연재를 정리하며

정호기 한국현대사회연구소 연구원
 

 

 

  한국에서 근대적 ‘기념관’이 등장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 같다. 일제하에서는 ‘식민지 내외에 식민통치가 낳은 발전상을 기념하고 증명해 보이기 위해’ 공진회와 박람회가 개최되었고,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역사적 인물들 혹은 사건들을 기념하기 위한 건물들이 간혹 만들어졌으나, 본 연재에서 고찰했던 정도의 규모를 갖춘 기념관은 아니었다.
  국가적 차원에서 역사적 사건의 기념관을 대규모로 건립하려는 계획이 수립된 것은 독립기념관과 전쟁기념관 등에서 살펴보았듯이 1960년대부터였다. 그러나 이 계획들은 1980년대에 현실화되었다. 한국의 현대사에 핵심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해방’과 ‘전쟁’을 주제로 하고, 전두환 정권과 노태우 정권 시기의 대표적 기념사업이었던 두 기념관 건립은 이 사건들을 바라보는 시각과 기억, 그리고 기념의 차이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또한 박정희 정권 하에서 조성된 아산의 현충사와 더불어 국가 이데올로기를 강화하기 위해 기념사업이 어떻게 활용되는가를 잘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국가적 기념사업이 추진되어 온 과정에서 보면, 문민정부는 확실히 전환점이었다. 물론 전쟁기념관의 계속 추진이나 구 조선총독부의 해체 및 경복궁 복원사업 등과 민주화운동 기념사업들의 동시추진과 대비해 볼 때, 인식의 모호성과 강박증을 보여주는 측면이 없지 않다. 그렇지만 기념사업이 추진되기 전 ‘사태’ 나 ‘폭동’으로 불리던 ‘민중항쟁’ 들과 ‘거리의 정치’들이 민주화운동으로 재평가되고, 기념공간을 통해 기억이 재현 혹은 복원되었다는 점에서 긍정성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동안의 민주화운동 기념사업은 기념관보다는 기념묘지와 기념공원을 조성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기념관이 핵심인 부산 민주공원도 기념관은 하나의 구성요소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이런 점들은 다양한 시설들이 공간을 구성하지만, 기념관이 그 공간의 전부를 지칭하는 명칭으로 사용되고 있는 독립기념관이나 전쟁기념관, 백범기념관 등과 사뭇 대조적이다. 이것은 근래로 올수록 점차 기념을 위한 공간이면서 동시에 일상생활의 공간으로 이용될 수 있는 실용성과 접근성을 지닌 장소가 되려는 노력의 반영으로 생각된다.
 
  기억투쟁과 기념공간
  민주화운동의 기념사업은 ‘진실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주장하는 적극적인 저항적 기억투쟁이 전개되던 시기와 기념공간이 건립된 이후의 시기에 있어서 인식의 차이가 존재한다. 그러므로 전이기라고 할 수 있는 기념사업이 진행되던 기간은 앞으로의 인식을 결정짓는데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다소 저평가되었던 측면이 없지 않다. 이것은 첫째, 마일스(M, Miles)가 “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니 받아들여라’며 설득하는 방법의 하나로 건축이 활용된 역사적 사례들이 적지 않다”고 했던 것처럼, 기념사업이라는 것 그 자체에 배태되어 있는 고정성, 단절성, 획일성, 선별성, 종결성 등의 특성에 기인한다. 둘째, 그 동안 국가가 기념사업을 통해 획득하려고 했던 효과를 부정하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셋째, 현재까지 추진되었던 민주화운동 기념사업에 대한 비판과 불만족 등이 혼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좀더 많은 공감과 호응을 얻는 기념사업이 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세월의 인내가 요구된다고 하겠다. 물론 장시간의 준비가 제대로 된 사건의 평가와 보다 진실에 재현과 기념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좀더 진실에 가까운 진실규명이 이루어졌을지 몰라도, 평가는 이와 다른 차원에서 규정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기념은 현재의 바램을 담고 있는 것이며, 기념공간이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현실의 정치·사회적 구조와 합의의 반영물이다. 그러므로 과거의 사건과 기억을 어떻게 기념하고 공간화 및 역사화 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전개되는 대립과 갈등은 끊임없이 과거를 현재로 불러내는 것이며, 현재의 필요성과 주체들에 따라 여러 가지로 독해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이런 점에서 민주화운동의 의의와 기억을 전승하려는 기념사업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사건으로 존재한다. 구체적 사건이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다소 불분명하고 정확한 내용이 드러나지 않은 상태가 되었던 사건이 공간화 및 역사화 되는 과정에서는 몇가지 논쟁들을 동반하고 있듯이, 민주화운동도 예외가 아니다.
  
 

  첫째, ‘민주화운동’의 범위와 내용을 어떻게 정의하고, 구획할 것인가이다. 현재 민주화운동의 과거청산과 관련된 다양한 사업들(즉 명예회복, 피해보상, 기념사업 등)을 추진하고 있는 국가기구들과 국가의 지원 하에 설립된 법인 조직, 그리고 시민 및 사회운동, 추모 단체들 간의 견해차이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바이다. 그리고 각 영역들 내에서도 크고 작은 견해차가 있고, 국가로부터의 인정여부에 따라 미묘한 기류가 생겨나기도 한다. 견해와 입장의 차이는 민주화운동을 추진해왔던 역사성과 맥락성 그리고 쟁점들이 차별적이므로 타당한 것이다. 그렇지만 과거의 기억과 사건이 제도화되기 위해서는 일정하게 합의된 거름종이를 통과해야 하므로, 민주화운동 기념관 건립이 본격화되면 이와 관련된 논쟁이 다시 활발해질 가능성이 있다. 
 

  둘째, 문화적·공간적 기념 방식과 형태에 관한 것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민주화운동과 관련된 기념공간들을 방문한 바 있으며, 새로운 기념사업을 위해 다양한 평가들을 하고 있다. 이러한 관심들은 민주화운동의 기념관이 어떤 모습과 형태로 나타날까 하는 관심과 기대로 표출되기도 하고, 비판의 메시지와 주시의 눈초리로 등장하기도 한다. 이것은 민주화운동기념관이 지금까지 기념사업의 성과 위에 서 있음을 확인해주는 것이며, 기존의 기념공간들과 어떠한 차별성을 지닐 것인가에 대한 현실적 고민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민주화운동 기념관 건립은 민주화운동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건립 및 조성된 국내외의 다양한 기념시설들에 대한 충분한 평가와 대안 찾기를 치밀하고 강도 높게 진행하면서 추진해야 한다.
  셋째, 현재의 사회운동에 어떠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가이다. 이는 곧 기념사업을 추진했던 또는 기념공간과 기념관들을 운영 및 활용하고 있는 주체들의 의견과 견해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이 문제는 비단 민주화운동 기념관에 한정되지 않고, 민주화운동과 민중적 사건을 기념하고 기억하려는 모든 시설들과 관련 주체들이 공통적으로 직면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것을 내용으로 하는 다양한 토론의 장과 소통채널이 활성화되어야 하겠다.

  기념사업 과정을 돌이켜보면
  본 연재는 기념관에 초점을 두었지만, 실제로는 기념사업의 목적과 배경, 그리고 추진 주체와 과정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였다. 그 동안의 과정을 보면, 기념관 건립 그 자체가 기념사업의 전부인 경우도 있고, 기념관 건립이 기념사업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거나 혹은 일부를 구성하는 경우가 있는 등 다양한 모습이었다. 이러한 기념사업의 형태와 무관하게 기념공간들은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다. 특히 광주민중항쟁의 경우 기념관은 아직 건립되지 않았지만, 이후 추진된 대다수의 기념사업들은 광주민중항쟁의 기념공간들을 사전에 방문하고, 여기로부터 영감을 얻거나 학습 및 비판하는 과정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1993년 4·19국립묘지가 조성되기 시작한 이래 약 10년 동안 진행된 민주화운동 기념사업들은 그다지 커다란 차이가 없다는 느낌을 주는 측면이 있다.

  이 연재가 진행되는 동안에 기념관과 기념공간에는 크고 작은 변화가 계속되었다. 이미 살펴보았던 것처럼, 지난 3월에는 국립3·15묘지 내에 건립된 3·15의거기념관이 개관하였다. 4월에는 제주4·3사건위령공원 조성사업의 기공식이 거행되었다. 5월에는 국립5·18묘지에서의 광주민중항쟁 기념식에 대통령이 예정보다 몇 십분 늦게 도착하는 소동이 있었다. 6월 15일에는 평화박물관 건립 운동을 위한 워크숍이 열렸다. 7월 27일에는 정전협정 50주년을 맞이하여 평화를 염원하는 뜻으로, 전쟁기념관의 앞마당에 국내 최대규모의 청동탑으로 만든 ‘6·25전쟁 조형물’이 건립되었다. 8월부터 부산민주고우언의 민주항쟁기념관은 상설전시실을 새롭게 꾸미기 위해 기존 전시실을 철거하기 시작했다. 민주화운동 기념묘지는 기본계획에 따라 기본시설계를 추진하는 단계이고, 민주화운동 기념관은 한국개발연구원(KDI)에 의한 타당성 조사가 마무리되고 있는 단계이다. 이외에도 연재를 시작한 지 7개월이 지난 사이에 여기저기에서 새로운 기념관과 기념물이 들어서고, 계획들이 추진되고 있었다. 반면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 건립을 반대하는 학계와 시민단체의 목소리도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5월 29일 개관식을 거행하려던 마산의 조두남 기념관은 그의 친일행적을 비판하는 사람들의 반대 여론과 활동에 의해 아직 공개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이은상 기념관 건립도 팽팽한 찬반토론이 벌어지고 있다.
  기념과 기념공간은 상대적으로 변화와 흐름에 느리고, 정체 및 고정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정치·사회적 변화, 특히 격변기와 혼동기에 민감한 곳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자, 사람들은 일제 식민지 이데올로기를 강제하던 대표적 공간이었던 신사들을 공격하였다.
 

 
  그리하여 1945년 6월말 한반도에 2,346개로 파악되었던 신사의 대부분이 단 며칠 사이에 파괴되어 사라졌다. 장충단 앞에 세워졌던 이토오 히로부미의 동상은 해방이 되자 안중근의 동상으로 다시 주조되어 같은 자리에 세워졌다. 우리가 이미 살펴보았던 것처럼, 1957년 남산에 세워졌던 이승만 대통령의 동상 등은 4월혁명의 과정에서 우롱당하고, 파괴되었다. 박정희 정권 하에서는 거의 동시에 ‘이순신 장군, 책 읽는 소녀, 이승복’ 등의 동상을 초등학교 교정에 세웠으나, 오늘날 이 동상들은 한 귀퉁이로 밀려나거나 아예 사라지고 있다. 이렇게 특정한 시대와 정권을 대표하여 승상되던 기념공간과 기념물들이 파괴 또는 해체되고, 새롭게 대체되거나 다른 기념대상이 조명을 받는 상황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이점은 민주화운동을 기념하는 모든 사업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민주화운동 기념관 건립과 ‘희망세상’
민주화운동 기념관 혹은 자료관을 건립하기 위한방법이 논의되고, 이를 구체화한지 벌써 몇 년이 흘렀다. 이제 그 구체적 성과들이 하나 둘 나타나고, 민주화운동 기념관 건립을 위한 실제 작업이 착수되었다.
  이 사업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의견을 모으는 것은 민주화운동 기념관에 ‘희망’을 담기 위함일 것이다. 이것은 지금까지 진행되었던 민주화운동과 관련된 기념사업들에 대한 가장 흔한, 그러나 가장 무게를 가진 비판이라고 할 수 있는 ‘박제화(剝製化)’를 어떻게 탈피할 것인가라는 현실적 고민으로 다가온다. 기념사업은 망각화와 박제화를 동반한다. 기념사업은 한편으로는 기억과 계승운동을 추구하는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기념사업을 위한 기억의 선택과 정리 및 해석과 평가, 그리고 배치와 재현의 과정에서 망각과 제도화가 함께 진행된다. 바로 이점을 항상 염두에 두고, 과거 민주화운동에 대한 기억과 추억을 회상하는 공간만이 아니라, 민주, 인권, 평화, 통일, 평등 등 오랫동안 한반도에서 추구했던 바램을 담을 수 있는 ‘희망의 공간’으로 민주화운동 기념관은 조성되어야 할 것이다.


 정호기 
사진 황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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