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역사기념관

인류 최고의 공공건축,다리

 

인류 최고의 공공건축,다리


글·구본준 bonbonhani.co.kr

사람 사는 세상, 곧 도시와 마을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뭘까? 건물이 먼저 떠오르겠지만 건물보다 더 중요하고 더 근본적인 요소가 있다. 바로 길이다.
길은 건물과 건물 사이 비어있는 공간이다. 비어 있는 곳이기 때문에 인간과 물자가 오가게 된다. 이 길이 장소와 장소를 이어주기 때문에 마을과 도시가 탄생한다. 그래서 길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이 된다. 더욱 중요한 것은 길이 문화가 흐르는 통로가 된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만들어낸 모든 것들은 길이 있어서 흘러다닌다.
이 길이란 것은 꼭 땅 위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길은 물 위로도 이어진다. 물과 만난 길은 다리로 변신해 건너편으로 넘어간다. 생명은 강을 따라 흐르고, 문화와 경제는 길을 따라 흐른다. 이 두 길이 만나는 또 다른 길이 바로 다리다.
다리는 길의 연장선이면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중요한 공공건축이다. 어느 도시나 강이 중심이었고, 강을 건너다니는 다리는 도시에서 가장 중요한 건축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다리는 그 시대 최고의 기술로 만드는 것은 물론 가장 아름답게 꾸몄고, 그 속에 당대의 공학 기술과 디자인 문화가 유전자처럼 각인되어 있다. 다리는 그렇게 시대와 지역과 문화를 담아 우리를 비추는 숨어있는 거울로 인간과 함께 존재해왔다.
그리고 이런 다리에 세월이 쌓이면 다리는 자기 도시와 나라를 대표하는 상징이 된다.
아름다운 건축물과 위로 열리는 다리가 세트를 이루는 런던의 타워브리지, 광활한 국토를 개척해온 미국인의 도전정신과 공학 기술이 조화를 이루는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 파리 최고의 명소 가운데 하나인 센 강의 퐁네프다리, 오페라하우스와 함께 시드니를 대표하는 하버브리지, 부다페스트의 부다와 페스트를 이어주는 아름다운 세체니 다리 등을 떠올려보라. 다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상징적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길 중에서 사람들이 가장 낭만적으로 느끼는 길이 바로 다리다. 물과 도시와 하늘이 만나는 다리처럼 사람을 빨아들이는 구조물도 없다. 그래서 연인들은 다리를 거닐고, 시민들은 다리에서 해질녘 노을에 물드는 강과 도시의 정취를 즐긴다. 다리는 그 자체로 지역과 시대, 문화를 대표한다.



다리의 역사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아주 간단하다. 흐르는 물 위에 통나무를 쓰러뜨리거나, 얕은 물 위에 돌을 놓아 징검다리를 만드는 것이 시작이었다. 물이 깊고 멀면 그 위에 판을 얹어 건너다녔다. 이 간단한 구조는 지금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다. 이런 단순한 구조가 더 크고, 더 길고, 더 높고, 더 강해져 온 것이 다리의 역사다.
돌과 나무로 간단하게 만들었던 다리를 점점 더 크고 강하게 만들었던 것은 경제였다.
사고파는 물건들을 더 많고 편하게 옮기기 위해 사람들은 다리를 발전시켰다. 경제 못잖게 다리의 발전에 영향을 끼쳤던 또 다른 요소는 전쟁이었다. 군대를 더 빨리 진격시키기 위해서 다리를 짓는 공병기술이 발달했다.
인류가 탄생시킨 건축기술에서 가장 위대하고 놀라운 발견을 꼽자면 단연 아치다. 동그랗게 반원 모양으로 쌓은 아치는 가볍고 간단하면서도 무게를 버티는 힘이 뛰어나다. 이 혁명적인 기법이 처음 등장한 것은 무려 6,000여 년 전이었다. 그리고 이 기술을 가장 중요하게 적용한 건축물이 다리였다. 아치 모양으로 다리의 교각을 만들면서 다리는 혁신적으로 길고 높게 지을 수 있게 됐다. 이 아치 기술을 완성한 나라가 로마제국이었다. 세계 제국을 만들어 여러 곳의 물산을 유통시키는 무역과 활발한 정복 사업을 위한 군사용 기간 시설을 만드는데 집중했던 로마제국은 건축과 토목 기술에서 최고의 발전을 이뤘고, 특히 다리를 짓는 데에도 커다란 업적을 이뤘다. 사람과 물자, 군대만이 아니라 물을 흐르게 하는 수도시설용 다리까지 만들어냈다. 로마가 수도를 공급하기 위해 기원전 16년에 만든 프랑스의 가르 강 다리는 지금도 잘 보존되어 남아있다. 역시 로마의 다리들인 성천사의 다리, 스페인의 세고비아 다리들을 보면 그 아름다움과 견고함이 2,000년을 이어왔다는 걸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다리 건축에도 큰 변화를 가져온 르네상스 시대
서양은 나무다리를 주로 만들었던 다른 지역과 달리 돌로 견고한 다리를 만들어 다리의 발전을 주도해왔다. 로마 이후 서양에서 다리를 만드는 토목공학을 책임졌던 이들은 기술과 문화를 이끌었던 기독교 성직자들, 특히 수도원과 기사단들이었다. 베네딕트 수사들은 다리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다리의 형제들이란 기사단을 만들기까지 했다. 프랑스의 아비뇽 다리 등이 이렇게 만들어진 중세 유럽 다리의 대표작이다.
유럽의 석조 다리는 아치 모양이 만들어내는 미학적 아름다움을 잘 보여주며 오랫동안 이어져왔다. 그러다가 유럽의 다리가 새로운 변화를 맞은 시기가 모든 분야에서 혁신이 이뤄졌던 르네상스 시대였다. 르네상스 시대는 인문학과 예술, 건축의 변화뿐만이 아니라 다리에서도 커다란 변화가 왔다. 다리의 구조가 지니는 공학적 아름다움에 더해 조각 등의 기술을 활용해 다리를 아름답게 장식하는 흐름이 퍼져나갔다. 다리가 도시의 중요한 기반 시설을 넘어 공공미술작품으로 인식된 것이 르네상스 시대였고, 이후 다리는 시대와 지역을 대표하는 예술작품이란 새로운 의미를 지니게 된다.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 다리로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리알토 다리가 있다. 커다란 아치 위에 우아한 지붕을 더한 리알토 다리는 아름답기도 하지만 당시 발전한 과학 기술을 적용해 3년 반이라는 짧은 기간에 완성한 혁신적인 다리였다.
이 시기 또 다른 유명한 다리가 영화 제목에도 쓰여 우리에게도 친숙한 파리의 퐁네프 다리다. 파리의 상징이 된 이 다리 위에는 여러 상점들이 들어서 최고의 상점가를 이루기도 했다. 역시 르네상스기 대표 다리 가운데 하나로 단테와 베아트리체가 처음 만난 곳으로도 유명한 피렌체의 베키오 다리 등 중세 유럽 다리들은 이렇게 위에 상점 건물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
다리 위에 있던 상점 중에는 푸줏간 같은 생필품 가게들도 있었지만 가장 많았던 것은 보석가게들이었다. 왜 보석가게들이었을까? 전쟁이 벌어질 경우 제일 먼저 약탈 대상이 되는 귀중품인 것이 바로 보석이었고, 그래서 보석상들은 전쟁 같은 난리가 날 때 반대편으로 도망치기 가장 좋은 위치인 다리 위에 점포를 냈다.르네상스 이후 다리는 새로운 공학과 미학의 흐름을 보여주는 실험장이었다. 아치 위주의 다리가 혁명적으로 바뀐 것은 트러스란 공법의 등장 덕분이었다.
트러스는 지지대 역할을 하는 부재를 삼각형 모양이 반복되게 짜서 재료를 줄이면서도 튼튼하게 짓는 기법으로 다리뿐만 아니라 많은 건축물에 지금도 쓰이는 공법이다. 기차가 등장하면서 물 위로 철로를 놓기 위해 이전보다 훨씬 더 긴 다리를 만들게 되면서 트러스 다리는 단숨에 다리의 주류로 떠올랐다.
원래 나무로 만들던 트러스를 제철 기술이 발달해 철로 만들게 되면서 더욱 발전했다. 이렇게 트러스로 만든 다리는 이전 아치 다리와는 기능과 형태가 달랐고, 자연스럽게 새로운 교량 미학을 등장시켰다. 철재가 교차하고 얽혀 만들어내는 새로운 모습은 신기술의 상징이자 그 자체로 독특한 아름다움을 보여줬다. 이를 가장 잘 상징하는 다리로 1890년에 만들어진 영국 에든버러의 포스의 퍼스 다리가 있다.

현수교와 사장교의 등장
 



하지만 진정 다리가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모습으로 거대하게 바뀐 것은 19세기 이후 현수교와 사장교가 등장하면서였다. 현수교와 사장교는 21세기인 지금까지 다리의 간판스타 자리를 지키고 있는 기법이다.
현수교는 일정 간격으로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상판을 얹는 기존 다리와는 전혀 다른 공법을 도입해 다리의 길이를 비약적으로 늘일 수 있었다. 현수교는 다리 양쪽에 높은 탑을 세우고, 그 탑 위로 긴 케이블을 늘어뜨린다. 그리고 그 케이블 아래로 다시 여러 케이블을 늘어뜨려 그 끝에 다리 상판을 매단다. 그래서 기둥과 기둥 사이를 이전 다리보다 훨씬 더 넓게 벌릴 수 있고, 그 아래로 커다란 배들이 쉽게 다닐 수 있게 됐다. 현수교는 미국에서 발달해 세계로 퍼졌는데 뉴욕의 브루클린 다리(1883년)와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1937년)가 대표적이다. 최근의 것으로는 다리 교각과 교각 사이가 1,991미터로 세계에서 가장 긴 일본의 아카시 대교가 있다. 우리나라 다리로는 한국 최초의 현수교인 남해대교와 영종대교, 광안대교 등이 있다.
사장교는 현수교에서 한 단계 진화한 다리다. 사장교는 주탑을 만드는 콘크리트를 더 튼튼하게 만드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등장했다. 높은 탑을 쌓아 케이블로 다리 상판을 드는 점은 현수교와 같은데, 탑 사이에 늘어뜨린 주케이블에 다시 케이블을 달아 상판을 매다는 현수교와 달리 다리를 붙잡고 있는 케이블을 곧바로 주탑에 고정한다. 현수교보다 케이블 수를 적게 할 수 있고 설치방법도 간단해 현수교보다 더 각광받고 있다.
높게 치솟은 주탑에 팽팽하게 연결된 케이블의 모습이 단순하면서도 세련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우리나라에선 현수교보다 사장교가 더 많이 지어졌는데 서해대교와 한강 올림픽대교, 돌산대교 등이 있다. 일본을 대표하는 세토대교와 중국의 수퉁대교도 사장교다. 사장교는 주탑을 높게 세워야 다리 교각 사이를 넓힐 수 있어 다리가 길 뿐만 아니라 높이도 웬만한 빌딩보다 훨씬 높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사장교 주탑은 2005년 완공된 프랑스의 미요대교로, 주탑 높이가 343미터에 이르러 100층짜리 건물 높이보다도 높고 에펠탑보다도 높다.

다리의 새로운 기능들
 



현대에 들어 기술과 재료의 발전 덕분에 길고 거대한 다리를 짓게 되면서 현수교와 사장교는 인류의 경이를 보여주는 현대판 피라미드이자 각 나라를 대표하는 상징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 초고층빌딩이 마치 국력의 상징인 것처럼 받아들여지면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나라들이 너도나도 더 높은 빌딩 짓기 경쟁을 벌이는 것처럼 다리 역시 누가 더 길게 짓는가를 놓고 여러 나라들이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런 크기 경쟁은 분명 비문화적인 측면이 강하지만, 초대형 다리를 짓는 과정이 새로운 기술과 기법의 경연장이 되어 기술 발전과 부수 효과를 거두는 계기가 되는 것은 분명하다.
현대 다리의 총아가 된 현수교와 사장교의 발전은 단순히 토목기술뿐만이 아니라 철강산업과 시멘트산업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더 질기고 강한 철제 케이블, 더 견고한 콘크리트를 만들어내는 실험의 장이기 때문이다. 전에 안 쓰던 새로운 재료들도 속속 다리에 쓰이고 있다. 철제 강선 대신 광케이블을 쓰는 다리도 선보였다. 광케이블은 쉽게 부식되지 않고 센서로도 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다리를 만드는데 빼놓을 수 없는 콘크리트를 대체할 재료로는 콘크리트보다 가볍고 강한 유리섬유강화플라스틱이 개발 중이다.
이렇게 높고 거대해진 현대의 다리는 예전 다리들은 해내지 못했던 새롭고 중요한 기능과 역할을 수행하는 현대인들의 동반자들이기도 하다. 매일 무심하게 다리를 건너고 바라보는 현대인들은 지금 우리 시대의 다리들이 예전 다리보다 더 커져 사람뿐만 아니라 차와 기차까지 다니게 되었을 뿐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다리를 오가는 것은 그뿐만이 아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다리를 건너다니며 우리가 사는 도시를 유지하고 있다. 바로 전기와 물이다. 현대 다리들은 안에 전선과 수도관이 숨어있어 도시 곳곳에 전기와 수도를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사회 기반시설로서 다리의 중요성은 도시가 커지고 발달할수록 더욱 높아지고 있다. 분명 다리는 인류 최고의 공공건축물이다.

글 구본준 <한겨레> 대중문화 팀장, http://blog.hani.co.kr/bonb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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