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벗 분수, 그 속에 숨어있는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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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벗 분수, 그 속에 숨어있는 문화

 

글·구본준 bonbonhani.co.kr

 

집에 가구가 있듯 거리에도 가구가 있다. 집 안에서 생활하는 데 가구는 꼭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모두의 공간인 거리에도 가구가 있어야 시민들이 생활할 수 있다. 이런 거리 가구를 스트리트 퍼니처라고 한다. 가로등, 간판, 버스정류장, 쓰레기통, 맨홀 뚜껑 같은 것들이 모두 거리가구들이다. 이 거리가구는 거리에서 조연 역할에만 충실할 뿐이다. 그러나 그 의미는 적지 않다. 도시의 분위기와 미관을 만들어내는 숨은 주역이다. 모두의 것으로 만들어지다 보니 그 시대, 그 지역의 취향과 평균 미감, 그리고 문화를 보여주는 지표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거리 가구가 아니면서 거리에 놓이는 것들이 있다. 바로 조형물들이다. 거리가구와 달리 이런 조형물들은 도시 생활에 도움을 주는 실제적 기능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상징성과 공공성 때문에 도시를 상징하는 더욱 큰 역할을 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조형물이 동상, 그리고 분수다. 동상과 분수는 이제 우리에게도 아주 친숙한 도시의 동반자가 되었지만 원래 우리나라엔 없던 것들이다. 모두 서양의 광장에서 정착된 문화인데, 서양식 도시 계획이 세계 공통이 되면서 우리도 받아들이게 됐다.

서양 도시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공간은 언제나 광장이다. 도시 가운데-특히 시청 앞 등-에 시민들이 모이는 광장이 있고, 광장의 가운데에는 거의 예외 없이 동상과 분수를 만든다. 더욱 오래된 것이 분수다. 분수의 역사는 우리의 예상 이상으로 오래되었고, 분수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시대와 문화의 코드 변천사가 담겨왔다. 그저 단순한 볼거리로만 지나치기 쉬운 것이 분수지만 분수에 녹아들어있는 것들의 의미는 결코 단순하거나 적지 않다. 분수 하나 잘 만들어서 나라의 상징으로 삼은 나라도 있다. 싱가포르의 상징이 된 머라이온 분수를 보라. 싱가포르라고 하면 누구나 이 분수를 떠올린다.

그만큼 분수의 역할은 예상 이상이다. 분수는 그래서 도시를, 건축과 디자인을, 그리고 공공성을 이해하는 또 다른 교과서와도 같다. 또한 분수는 조각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그래서 분수의 역사는 조경의 역사이자 조각의 역사이기도 하다

분수, 물과 인간의 관계를 구현하다.

인간은 왜 소금을 먹어야 살 수 있을까? 진화의 법칙 때문이다. 인간은 아주 먼 옛날, 바닷생물에서 진화했다. 인간이 바닷속에서 살지 않지만 인간의 유전자 속에는 그런 생물학적 흔적이 남아있다. 인간이 물을 좋아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은 분수만 보면 뛰어 들어간다. 어른들도 체면상 못할 뿐 누구나 마음속으로는 분수나 물을 보면 뛰어들고 싶어 한다. 그 이유는 인간이 모두 물속에서 태어나기 때문이다. 인간은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잉태되어 양수 속에서 사람이 된 뒤 세상으로 나온다. 모두의 마음속에 그 기억이 정신적 유전자처럼 각인되어 있다. 인간이 연못이나 분수 등 물로 꾸미는 수경공간을 좋아하는 것도 이런 본성에서 나온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애용되는 수경공간이 바로 분수다.

분수는 동양과 서양의 자연관을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물이란 것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기 마련인데, 이런 물의 자연스런 속성대로 위에서 아래로 흘러가는 모습 곧 낙수를 즐기는 것이 동양이고, 물이 자연법칙을 거슬러 아래에서 위로 솟는 분수를 만들어 즐기는 것이 서양이란 이야기다.

이렇게 상반되지만 물을 중시한 것은 동서양의 차이가 없다. 물은 곧 생명의 원천이기 때문에 고대부터 인류는 물을 생명과 신성함의 상징으로 숭배해왔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곳, 가장 신성한 곳은 늘 물로 꾸몄다. 인도의 타지마할을 보면 무척 건조한 곳임에도 그 앞에 거대한 수경공간을 꾸며놓았다. 물이 녹아있는 기간보다 얼어있는 기간이 더 길법한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 주변의 황제의 여름 궁전 페트로드보레츠는 그야말로 분수에 대한 집착의 절정을 보여주는 곳이다. 거대한 궁전과 정원 전체를 수많은 분수로 꾸며놓은 분수의 백화점처럼 만들어놨다. 물 관리가 쉽지 않은 나라들이 이렇게 수경공간에 신경 쓴 것을 보면 물과 분수가 얼마나 사람을 사로잡는지 알 수 있다.

분수, 변화하는 문화사를 반영하다

실제 분수의 역사는 물이 늘 부족한 중동 지방에서 시작됐다. 서양 분수의 기원은 흔히 기독교 교회와 성당, 이슬람교 사원의 성수 문화에서 나왔다고 말한다. 두 종교 모두 건조한 지역에서 탄생했고, 교회와 사원에 들어가기 전 신성함과 생명의 상징인 성수로 참배 전에 손과 얼굴 등을 씻는 의례를 치렀다. 이를 위해 만든 성수대는 이후 분수의 모양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분수를 핵심으로 하는 수경공간의 역사는 두 종교보다도 더 거슬러 올라간다. 바빌론의 공중정원으로 대표되는 중동 지역 고대 황제의 정원들은 높은 궁전을 쌓고 그 위에 수경 정원을 만들어 물의 낙차와 압력을 이용해 물이 솟거나 계단식으로 흘러내리는 분수로 꾸미는 것이 특징이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역시 분수를 중요한 문화시설로 활용했다. 서양 분수 fountain은 치솟는 물 뿐만이 아니라 샘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그리스는 샘을 신성시해 신전 앞이나 도시 중요 시설에는 신과 영웅을 상징하는 샘을 꼭 만들었다. 이런 샘은 볼거리이자 상징인 동시에 식수대 기능을 하는 일종의 우물이기도 했다.

그리스보다 훨씬 경제력이 컸고 화려한 문화를 좋아했던 로마는 분수 역시 화려하게 만들었다.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인 뒤 분수는 정화의 상징으로 더욱 발전했다. 분수는 공공 조형물이었기 때문에 늘 당대의 유명 조각가들에게 맡겨졌고, 이들은 시대의 흐름과 미감을 분수를 통해 표현했다. 이런 분수의 전통은 로마 제국 이후 유럽 특유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중세에 이르러 분수는 잠시 주춤했는데, 화려한 것보다 소박한 것을 중시했던 중세 문화의 특성 탓이었다. 하지만 로마의 문화가 부활한 르네상스에 접어들면서 분수는 더욱 유행하게 된다. 르네상스의 본고장 이탈리아 귀족들이 저택 정원을 화려하게 꾸미는 것을 즐기면서 계단식 분수가 유행했고, 도심에서는 도시를 대표하는 웅장한 조각을 곁들이는 스펙터클한 분수들이 등장했다. 그 대표작이 로마의 상징인 트레비 분수다. 이 트레비 분수가 도시 랜드마크로서 위력을 보여주자 다른 도시들도 분수를 도시 디자인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게 됐다.

르네상스의 뒤를 이은 바로크 시대에 들어서면서 분수는 최고의 전성기를 맞았다. 절대 왕정을 구축한 황제들이 크고 화려한 궁전을 지으면서 분수 역시 그 어느 때보다 화끈해졌다. 베르사유 궁전의 위용에 놀란 다른 나라 왕들이 베르사유 궁전을 따라 큰 궁전들을 지으면서 분수 역시 베르사유 궁전의 것처럼 웅장한 것들을 선호했다. 바로크는 분수의 물줄기도 화려해진 시기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사람을 놀라게 하는 서프라이즈 분수, 숨어 있는 비밀 분수 등 새로운 분수들이 등장했다.

이렇게 꾸준히 이어져온 분수는 현대에 접어들면서 완전히 새로운 개념으로 바뀌게 된다. 식수대 등의 실용적 기능은 완전히 사라지고 현대 미술의 발달과 궤를 함께하는 조형물로 확실하게 정착했다.

신화와 영웅들을 조각하던 분수 조각들은 단순성과 추상성을 강조하는 현대 미술품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특히 현대 미술의 흐름을 이끌었던 제체시온 그룹 등은 추상적 현대조각을 분수에 적용하면서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이미지의 분수들을 선보였다.

또한 날로 발달한 현대 과학기술도 분수를 새롭게 변신시켰다. 물줄기로 다양한 움직임을 표현할 수 있게 되면서 음악과 함께 춤을 추는 분수들이 나왔고, 조명 기술의 발달로 분수의 매력이 가장 잘 드러나는 시간이 밤으로 바뀌었다.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높이로 물줄기를 쏘아 올리는 고사분수들도 등장했다.



분수를 자기 예술의 가장 중요한 소재로 삼는 조각가들도 나왔다. 스위스의 유명 미술가 장 팅겔리가 대표적이다. 부인인 조각가 니키 드 생팔과 함께 세계적 부부 작가로 유명한 팅겔리는 프랑스 퐁피두센터 앞 스트라빈스키 분수와 스위스 바젤의 팅겔리 분수 등 특유의 움직이는 로봇 같은 조각품들이 물줄기를 뿜어내는 독특하면서도 소박한 분수들을 남겼다. 그의 분수들은 결코 거대하지 않아도 도시를 대표하는 랜드마크 역할을 톡톡히 해내면서 시민들과 관광객들 모두에게 사랑받고 있다.

한국, 갑자기 분수 공화국이 되다.

세계 모든 나라 모든 지역이 물로 꾸미는 수경공간을 좋아하는 것이 공통인데, 유독 독특한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다. 우리나라는 주거 공간을 연못 등 물로 꾸미는 경우가 매우 드물었다. 이는 중국이나 일본 등 옆나라와도 다른 한국 정원 조경문화의 특징이다. 간혹 소쇄원이나 부용동처럼 계곡이나 물가에 집을 지었어도 정식 주거공간이 아니라 별장인 별서정원들이었다. 대신 물이 좋은 곳에 정자나 누각을 만드는 것이 전통이었다. 자연을 인위적으로 집 속으로 끌어들이기보다 자연 속에 작은 공동 시설인 정자를 지어 즐기는 문화를 추구했던 것이다.

이런 우리나라에 분수가 들어온 것은 일제 강점기 때였고, 박정희 정권 이후 본격적으로 분수가 만들어졌다. 그럼에도 분수는 그리 많지 않은 편이었다. 분수는 원래부터 광장에 어울리는 시설인데, 우리나라 도시는 광장보다는 가로 중심이어서 분수나 동상 같은 서양식 조형물들이 들어서기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겨울이 길어 분수를 관리하기도 어렵고, 분수가 물값과 전기값이 많이 드는 것도 이유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 한국은 그야말로 분수에 환장한 나라로 바뀌었다. 지방자치단체들이 랜드마크에 집착하게 되면서 일어난 현상이다. 이 바람에 지금 한국은 분수에 관한 수많은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서울 한강에 있는 월드컵 분수는 세계에서 가장 높이 올라가는 세계 최고의 고사분수다. 물줄기 높이는 202미터인데, 2002년 월드컵을 기념한다고 해서 202미터가 됐다. 여의도 63빌딩이 247미터로, 거의 60층 빌딩 높이로 올라가는 셈이다.

세계에서 가장 긴 분수도 우리나라에 있다. 다리 전체가 분수가 된 반포대교 달빛 무지개 분수다. 반포대교 상하류 각각 570미터씩 모두 1,140미터에 이른다. 포항 앞바다에는 세계에서 가장 높이 올라가는 해상 고사분수가 있다. 바다위에 설치한 분수 중에서는 가장 높이 올라가는 분수다. 부산 다대포에 있는 다대포 꿈의 낙조 분수는 세계 최대의 바닥분수다. 수조를 따로 만들지 않고 그냥 바닥에서 물을 쏘는 분수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크다고 한다. 이런 추세에 뒤질세라 목포시는 세계 최대의 해양 음악분수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목포 앞 바다에 길이 150미터 분사 높이 70미터짜리 분수를 띄운다는 계획이다. 환경 문제 때문에 반대 여론이 거세지만 목포시는 볼거리를 더해야 한다는 이유로 강행하겠다는 입장이다.

분수 못잖게 요즘 한국에서 특히 유행하는 것이 인공폭포다. 거의 전국 모든 군이나 시 단위마다 하나씩 있을 정도로 유행하고 있다. 강원도 정선의 백석폭포는 높이가 116미터에 이른다. 같은 정선군 오장폭포의 경우 완전한 인공폭포가 아니라 자연 절벽에 물을 끌어올려 떨어뜨리는 반인공폭포로 높이가 더욱 높아 126미터나 된다. 여기에 양양군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인공폭포를 만들겠다고 나섰다.

이렇게 규모에 집착하는 분수와 인공폭포들은 시민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측면을 내세우지만 여러 문제들을 안고 있다. 우선 비용이 예상 이상으로 많이 든다. 목포가 추진하는 해상분수는 160억 원 이상이 들 전망이고, 반포대교 달빛 무지개 분수는 177억 원이 들었다. 부산 다대포 낙조분수도 70억 원이 투입됐다. 유지비는 더욱 부담스러운 수준이다. 반포대교 분수는 월 2,100만원, 다대포 낙조 분수는 월 1,500만원이 든다.

더욱 큰 문제는 대부분 인공폭포와 분수들이 차별성이 없다는 점이다. 가장 중요한 지역 정체성과 별 관련이 없고, 모양도 천편일률적이다. 자기 지역만의 특별한 것을 만든다면서 정작 다른 도시 것들을 베껴대는 바람에 다들 똑같아 지는 셈이다.

외국의 경우 작은 지방도시라도 독특한 아이디어로 새로운 조형물을 만들어 도시의 명물로 키워나간다. 세계 최대 동양 최대 따위의 시대착오적 규모 경쟁은 찾아보기 어렵다. 또한 시민이 주인인 시대에 맞춰 시민들을 압도하는 조형물이 아니라 시민들과 함께 호흡하는, 시민들이 주인이 되는 조형물들을 추구하는 시대다.

시카고의 명물인 크라운 분수의 경우 네모난 전광판 탑 화면에 사람 얼굴이 등장하고, 입 부분에서 물이 흘러나오는 아주 단순한 구조다. 전광판에 등장하는 사람 얼굴은 계속 바뀐다. 모두 시카고 시민들의 얼굴이다. 시민들의 얼굴이 작품 주제가 되는 이 아이디어 하나로 이 분수는 새로운 현대의 조형물이자 분수의 대표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분수는 사소한 볼거리를 넘어 이제 도시의 미관과 이미지를 좌우하는 매력 포인트로 더욱 각광받고 있다. 건축도 아니고 단순 조형물도 아닌 그 사이에 자리 잡아 현대에서 가장 중요한 공공성과 아름다움을 구현하는 도시의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됐다. 그리고 바로 그런 역할 때문에 시대와 문화를 담아내는 문화적 기능도 점점 커지고 있다. 과연 우리의 분수들이 담아 내야할 지금 우리의 취향과 문화는 어떤 것인지 지자체들은 더욱 반성하고 더더욱 고민해야 한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시도로 한국을 대표할 정말로 사랑받는 분수가 들어서 한국 공공조형물의 수준을 한 단계 높여주길 기대해본다.

 

글 구본준 <한겨레> 대중문화 팀장, http://blog.hani.co.kr/bonb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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