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시민’적 상상력과 ‘운동적’ 급진성을 복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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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시민운동의 현주소와 나아갈 길

‘시민’적 상상력과 ‘운동적’ 급진성을 복원하라  


정상호_ 서원대학교 사회교육과 교수/ shojeong2@hanmail.net



문제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


시민운동은 여전히 위기인가? 위기는 위기인데,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위기라는 것이 필자의 근본적인 문제 인식이다. 지금까지 시민운동과 관련하여서는 대략 다음과 같은 위기론들이 제시되어 왔다. 


첫째는, 일반 시민이나 활동가들에게 가장 넓게 알려져 있는 담론인 ‘시민 없는 시민운동’의 문제이다. 이를테면 한국의 시민운동의 성장에 주도적 역할을 한 집단은 일반 시민보다는 사회운동가나 교수, 변호사 등 주요 엘리트 집단이며, 시민사회와 시민사회 활동이 이들 특정 엘리트 그룹에 의해 주도되는 소위 ‘Top-down(하향식) 성장모형’이라는 것이다. 대체로 보수주의적 관점에 서 있는 이러한 비판들은 엘리트와 명망가 주도 성격이 시민단체의 선단식 조직구조 속에 투영되고 강화되어 과두제적 지배구조를 형성한다고 보고 있다. 그 결과 조직적 차원에서는 시민단체가 본래 추구하고자 했던 목적보다는 조직의 유지에 치중하며, 개인적 차원에서는 시민단체 지도자들이 단체의 역량을 개인적인 이익추구 수단으로 사용하는 이른바 ‘목적전치 현상’을 부추길 가능성이 크다는 비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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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운동이 제도적 경화증을 앓고 있는 사이 등장한 것은 ‘유연자발집단’과 안철수 현상이다. 

이는 온·오프라인의 이분법이나, 가상현실과 실재 공동체의 경계를 유연하게 넘나들 수 있는 

보다 유연하고 다층적인 네트워크 조직과 운동 전략의 개발을 요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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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시민 없는 시민운동의 문제는 어떤 운동, 어느 조직에서도 초기에 나타날 수 있는 과도기적 현상이다. 그것은 정당이 처음에는 명사 또는 간부 정당(cadre party)으로 시작되어 보통선거권의 확대와 더불어 근대적인 대중 정당(mass party)으로 발전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비교의 관점에서 볼 때, 한국의 시민운동의 회원 수와 대중적 영향력은 선진국 수준이다. 시민사회의 국제 비교 연구에 따르면 한국의 시민단체의 힘은 5점 만점에 3.9를 얻어 조사 대상 38개국 가운데 독일(4.3), 네덜란드(4.2), 칠레(4.1)에 이어 이탈리아와 함께 공동 4위를 기록하였다. 


또한 공공정책에 대한 시민사회의 영향력은 조사대상 46개국 가운데 영국 웨일스에 이어 2위를 차지하였다. 또한 최근에는 시민단체 지도부의 활발한 세대교체에 힘입어 일부 엘리트들이 전문성과 유명세를 근거로 조직을 장악하는 ‘과두제의 철칙’이 작동하지 않게 되었다. 이제 ‘시민 없는 시민운동’은 한국의 시민단체를 향한 그리 적실성 있는 뼈아픈 진단이 아니다.


둘째는 조직적·재정적 위기 담론이다. 우리나라의 시민단체들은 한동안 정부의 재정적 지원에 관한 한 오도 가도 못한 채 진퇴양난의 어색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필자가 연구해 온 바에 따르면 선진국일수록 시민단체에 대한 정부의 재정적 지원이 증가한다. 그들 사회에는 투명성과 공정성이 담보된다면, 시민단체의 공익적 활동에 대한 정부 지원은 당연하다는 광범한 사회적 합의가 정착되어 있다. 그렇지만 우리의 경우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 소수자에 대한 권익보호를 제대로 주장하기 위해서는 정부로부터의 자율성과 독립성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특히 한국의 보수언론들은 ‘시민단체에 OO억 원, 아낌없이 퍼주는 혈세’, ‘시민단체와 정권의 유착’, ‘권력 멀리해야 할 단체가 정부 돈 받고 낙선운동’ 등의 선정적이고 부정적인 보도를 통해 마치 정부지원을 받기만 하면 관변·어용단체인 양 비난을 퍼부어 왔다. 정부의 지원도 받을 수 없고 시민들의 자발적 기부도 제한되어 있는 상태에서 재정적 위기가 날로 심각해진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한 조사에 따르면 무려 88%의 상근 활동가들의 임금이 150만 원 미만으로 저임금 층에 속했다(『시민의 신문』, 2005. 5. 20). 이러한 재정적 압박은 시민단체의 활동력 침체는 물론 나아가 현장 활동가들에게 스트레스, 과도한 책임감의 요구, 전망의 불투명성에 기인한 심각한 이직 현상(staff turnover)을 유발함으로써 능력 있는 활동가들의 유지와 충원 문제, 즉 인적 자본의 위기를 낳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우울한 상황 역시 완전히 소멸된 것은 아니지만 2000년을 기점으로 어느 정도 극복되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러한 낙관적 진단의 첫 번째 근거는 기부 문화와 자원봉사 제도의 꾸준한 발전이다. <그림 1>에서 확연히 드러난 것처럼 2010년 기준으로 기부금 총액은 무려 10조 원을 넘어섰다. 주목할 것은 IMF 직후인 1999년의 기부 대부분이 일부 대기업의 몫(70.7%)이었던 반면 최근(2010년)에는 일반 시민의 소액다수 기부가 압도(65.1%)하고 있다는 점이다. 통계청의 『사회조사』를 봐도 현금 기부율은 2009년의 32.3%에서 2011년에는 34.8%로 증가하였고, 모든 조사에서 자원봉사 참여율과 만족도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또한 비영리 공익재단의 폭발적 증대도 시민단체의 재정난을 해결하는 데 일조하였다. ‘아름다운재단’의 조사에 따르면, 2012년 현재 공익재단 수는 4,379개에 달하는데, 2000년 이후 설립된 것이 무려 2004개(43.7%)에 달한다. 따라서 재정적·조직적 어려움은 여전히 한국 시민사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임이 틀림없지만 이미 그 저점은 지났으며, 최대의 위기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끝으로, 진보세력이 비판하고 있는 ‘중산층 시민운동’의 담론이 있다. 좌파그룹이 비판하고 있는 핵심은 시민단체의 활동과 인식이 자본주의의 핵심문제인 토대·계급·민중의 문제를 간과함으로써 자본주의 국가를 정당화하는 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의 선봉에 서 있다는 것이다. 남미의 한 연구자는 교육받은 중간층에 뿌리를 둔 NGO를 비정치적인 여피(non-politicized yuppie)라고 꼬집었는데, 최장집 교수 역시 한국의 민주화가 당면한 중요한 문제를 ‘노동’이 없는 비정치적·비계급적 시민사회로 정리한 바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잘못된 진단과 처방이다. 왜냐하면 21세기의 시민운동은 기본적으로 전통적 사회운동과 구분되는 신사회운동으로, 노동계급의 우선성을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신사회운동은 중심운동과 부문운동 간의 위계적 배열이 아니라 수평적 연대를 전제하며, 단일한 전위 계급보다는 다양성과 자율성을 전제한 시민·다중(multitude)·대중을 중시한다. 따라서 문제의 중심은 한국의 시민운동이 계급의 관점에서 노동을 경시하였느냐가 아니라 공공성의 관점에서 사회경제적 영역을 간과하였느냐와 다른 부문과의 연대에 충실하지 못했는가에 놓여 있다. 여기에는 절반의 진실이 담겨 있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이하 생략.



> 자세한 내용은 계간민주 2013 여름호 특집을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계간민주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홈페이지(www.kdemo.or.kr)에서 정기구독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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