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노조 신광용, 김선주 씨의 아들 ‘동주’이야기(지난 호에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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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 100으로 싸우다 그런 거야.” 


 -청계노조 신광용, 김선주 씨의 아들 ‘동주’이야기 (지난 호에 이어)

 장남수 jnsoo711@hanmail.net


물려받은 유산은 이타적 감수성

김선주 씨 부부가 결혼할 때 주례를 하신 문익환 목사님은 한껏 신랑신부를 격려하신다는 게 김선주 씨 인생을 더 고달프게 만들었다고 한다. 아빠(신광용)의 일만으로도 골치가 아프셨던 할아버지가 엄마(김선주)마저 청계노조출신에다 무슨 단체일도 하는 ‘투사’라는 바람에 기절해버리신 거다. 그 후의 힘겨운 시집살이는 고스란히 엄마의 몫이었다. 할아버지는 결혼식장을 감시하는 경찰들도 기가 막히는데 속 썩이는 아들도 모자라 며느리까지 ‘빨간 물든’ 상황을 용납할 수 없었다. 동주는 그렇게 시대를 엎치락뒤치락 헤엄쳐 온 가족들의 고단한 인생에는 얼마나 놀라운 이야기들이 많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그 후 『청계, 내 청춘』책이 나왔을 때 가족에게 마음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더 커졌다. 그러나 사춘기를 어렵게 보내던 때는 가족들을 외면하고 책만 보고 살았다. 책을 보다보면 어떻게든 빠져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고 가족들과 친밀감도 없다고 생각했다.

 - 그러나 가족은 동주 삶의 중심 줄기로 닮아 있는 것 아닌가?

“<역사스페셜>인가, TV를 보는데 치열한 투쟁 장면이 나오고 박해받는 민주화인사들의 모습이 나오는데 함께 보시던 엄마가 ‘엄마도 저랬다.’ 하시는데 놀랐어요. 저게 남 일이 아니구나, 라는 느낌과 더불어 엄마가 대단해보이고 은근히 자부심이 솟아나더라고요. 사실 이렇게 자랑스러워 할 수 있는 것은 그래도 어린 시절 유복하게 보낸 덕분일지도 몰라요. 가끔은 만일 저도 어릴 적부터 어렵게 살았으면 과연 어땠을까, 생각해요.”

동주는 사회현상을 접하며 친구들이 노동운동하는 사람들에 대해 ‘빨갱이’ 라는 식으로 말하는 경우가 있고 그럴 때 도대체 쟤들은 어디서 튀어나왔나 싶어 안타깝고 답답해진다. 엄마는 그런 의식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 “우리 운동할 때 똥만 싼 사람들이야” 라고 시원하게 똥침을 날려주셨다.

자신도 모르게 스며든 약자에게 가 닿는 따스한 시선, 모두와 공유되지는 않지만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생각의 차이가 다 엄마아빠에게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집안이 어려울 때 엄마아빠를 미워한 적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그분들의 삶에 경의를 표하기 때문이다. 동주는 이 감수성이 고맙고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 그렇다면 엄마아빠의 삶은 성공한 삶?

언젠가 노동교육강사인 하종강 씨를 우연히 만났는데 ‘신광용 씨가 우리아빠’라고 했더니 반색하며 영웅의 아들 대하듯 해주셨다. 그때 아빠가 다르게 보이고 엄청 자부심을 느꼈다. 그러나 엄마아빠의 삶은 의미 있는 삶이긴 하지만 세속적 기준으로 성공한 삶이라고 하기는 어렵지 않나 싶다.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한다는 정도이지 여전히 ‘빨갱이들에게 왜 그런 것을 주냐’는 식으로 왜곡하는 것을 언론을 통해 보았다. 언젠가 ‘한국사회에서 노동운동은 실패했고 시민운동은 성공했다’는 말을 들어 본 적도 있다. 그런 현상들을 보며 노동운동 한 사람들이 배운 사람들이 아니라서 그렇게 외면 받는다는 생각도 들고 더 많이 배워 못 배운 사람들의 편에 서야겠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 최근 원풍모방 노동자의 자녀들 모임을 한 적이 있는데 혹 청계노조사람들의 자녀들과 교류가 있었나?

이 대목에서 동주는 반색했다. 그리고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내가 자녀들이 한번 모이면 좋겠다고 말한 게 언제였지?”
거실에서 청계노조의 이모들과 수다를 떨던 엄마가 답했다.
“그게 아마, 작년 추석인가 그랬지, 태성이랑(청계노조 박태숙 씨 아들) 같이 만난 후에.”
다 이심전심인가, 청계든, 원풍이든, 부모들의 결속이 강하니 자녀들도 더러 얼굴을 대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함께 만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지는가 보다.
어릴 때는 엄마 아빠의 친목모임인줄 알았는데 그게 단순한 친목모임은 아니었던 것이다.



 - 이십년 후 부모가 된 동주의 모습은 어떨까? 


가족을 잘 챙기는 가장이고 싶다. 요즘은 매일 체조도 배우고 훈련한다. 가족의 건강관리에 한 몫 하리라 생각하고 함께 운동해야겠다고 작정했기 때문이다. 내 꿈만 쫒으면 나를 받쳐주는 가족, 특히 누나가 배신감을 느끼게 될 것 같다. 그래서 안정된 기반을 다진 후에 사회적 활동을 하고 싶다. 큰 줄기는 부모를 닮고 싶지만, 현명하고 이성적으로 중심을 지키면서 일하고 싶다. 양립하는 게 어려울 수 있겠지만 그래야한다고 생각한다. 엄마아빠 덕분에 노동운동을 보는 시선이 많이 다르다. 우리 엄마아빠가 저 모습이었는데 남들 보듯 할 수 없다. 저 사람들도 노동자가 되고 싶어서 되었겠는가, 싸우고 싶어서 싸우겠는가, 기득권을 지닌 사람들이 배려해야 하는데 안되는 게 많이 속상하다. 


원체 태생적으로 우리 부모님은 ‘남의 일에 신경 쓰는 사람’이다. 엄마아빠에게 물려받은 유산이라면 이러한 사회적 감수성일 것이다. 남의 고통을 지켜보는 게 나는 힘들고 아프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나의 자녀에게도 이 감수성을 물려주고 싶다. ‘하고 싶은 것을 할 줄 아는 용기’ 와 더불어서 말이다. 



동주를 만난 후 


인터뷰를 하는 내내 동주가 가장 많이 입에 올린 단어는 아마 ‘누나’일 것 같다. 동주의 마음자락에 애틋한 연민처럼 자리한 ‘누나’는 마치 70년대의 ‘공장 간 누이’를 떠올리게 했다. ‘건너 공장에 나간 순이’가 돌아오지 않아 기다리던 애틋한 마음처럼 동주는 그렇게 누나를 애틋해했다. 필자는 그런 동주의 마음이 애틋했다.

동주의 외할아버지는 한국전쟁 당시의 상이군인에 해당되지만 증빙기록을 찾지 못해 보상은커녕 고생만 해야 했고 그런 고생을 겪으며 자란 엄마는 노동운동한 며느리를 용납하지 못하는 할아버지로 인해 또 마음고생이 많았다. 여성이어서 한층 더 힘겨웠던 엄마 세대의 고난이 동주누나의 모습에서 겹쳐졌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이미 시대가 달라졌고 성역할의 편견은 옛이야기로 돌리고 싶지만 놀랍게도 동주의 고뇌는 70년대의 그것과 닮아있었고 이야기 듣는 내내 먹먹한 울림을 주었다. 누나의 고생은 누나만의 고생이 아니라 동주의 의식을 지배하는 상념이요 삶을 설계하는 지향이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자식의 고단한 삶에 분노하며 화를 삭이지 못하셨던 할아버지, 전쟁의 직접적인 피해자이면서도 존중받지 못한 채 몸과 마음에 상처를 새긴 채 사셨던 외할아버지, 아빠의 배와 손등에 선명히 각인된 노동자의 상처는 무엇이라 규정해야하나. 그리고 근현대사의 상흔을 고스란히 지닌 가족의 줄기를 우리의 동주는 다음세대 어떤 모양으로 보듬어 안을까.

이날 동주는 ‘노동자들이 배우지 못해서’ 제 몫의 존중을 받지 못하는 것 같다는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그 이야기는 식자층에 의해 기록되고 전달되는 역사에 대한 안타까움일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배움’이 무엇일까? 시스템에 의한 제도권안의 교육, 즉 일종의 사회적 기득권은 아닐 것이다. 전태일이 일깨웠던 가치, 노동운동의 근본이 되는 동지적 연대와 존중, 함께 잘사는 사회에 대한 열정이 진정한 배움이고, 그 가치를 실천하고 전승하는 것이 토대를 튼튼히 하는 것일 터이다. 그런데 현재 우리 노동운동의 큰 축은 사회구성원들의 동의를 얻지 못하고 있다. 노동운동이 내가 속한 특정집단의 배만 불리는 것에 자족하고 다른 노동자, 나아가 사회전체의 평등과 정의를 고민하지 않는다면 점점 이기적인 집단으로 치부될 것이고 계승할 그 무엇도 지니지 못하게 될 것이다. 고귀한 꿈을 꾸었던 전태일 열사의 혼을 지닌 청계노조, 그 뜻을 이어받아 치열히 살았던 사람들, 그들의 아들 동주가 안타까워하고 있다.


동주는 곧 중국으로 간다. 미래를 설계하며 공부도 하고 누나 일을 도울 참이다. 이 지점에서 많은 생각이 엉킨다. 동주가 중국으로 가는 것은 아빠와 누나가 있기 때문이지만 누나가 그곳에 있는 것은 싼 노동력을 찾아 나선 ‘사업’ 때문이다. 70년대 저임금의 희생자였던 노동자의 아들 동주가 이제 그 ‘저임금’ 사업공간을 찾아 중국으로 가고, 또 한편에서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들어와 열악한 노동을 받치고 있는, 이것이 현실이다.

동주네를 찾았던 날은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날이었다.
 그러나 감성청년 동주를 만나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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