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는 삶’ 투쟁 2,000일, 콜트 · 콜텍 노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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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티는 삶’ 투쟁 2,000일, 콜트 · 콜텍 노동자들

글 장남수_원풍노조, <빼앗긴 일터> 등 집필



24시간 맞교대 근무를 마친 콜트악기 노동조합 방종운 위원장의 부인 이쌍심(56세)씨의 눈은 피로에 젖어 있었다. 간병인 일을 한지 벌써 8년. 24시간 맞교대를 하고 나오면 잠을 자야 하는데 여름에는 방이 더워 잠들기 어렵다고 했다. 그래서 대충 집안일을 하며 낮 시간을 버틴 후 저녁을 먹고 이른 잠을 청한다.



남편 회사가 ‘위장 폐업’을 한지 딱 2,000일이 지났다. 3천만 원의 융자 빚이 남아있는 작은 빌라는 자칫하면 넘어갈 지경에 있고, 대학을 간신히 졸업한 두 자녀의 학자금 대출도 1천만 원 이상 남아있다. 사람들이 “그런 대학도 있었어?” 라고 말하는 대학을 졸업한 스물아홉 살 아들은 한 달에 실 수령액 80여 만 원을 받으며 일하고 있고,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스물여섯 살 딸도 도시락까지 들고 다니며 딱 아들만큼 받고 일하다 때려치운 채 우울해 하고 있다. 한창 청춘인 자식들이 연애도 결혼도 엄두를 못 낸다. 한쪽 창으로 밖에 바람을 받을 수 없는 작은 빌라, 그나마 쌓이는 빚으로 풍전등화가 된 집안은 낡은 선풍기 한 대만 돌고 있었다. 그 작은 공간 한쪽 벽에 콜트공장에서 남편이 받은 공로패 두개가 하얗게 먼지를 쓰고 앉아 있었다.

그녀는 24시간을 일하고 나오면 손을 움직이기도 싫어서 집안정리가 안 된다고 변명하듯 말했다. 그러나 그만두고 싶은 순간들이 굴뚝같지만 버텨야 한다. 그녀가 병원에서 돌보는 환자는 6명, 환자 1명이 한 달에 80만 원의 간병비용을 병원에 내지만 이쌍심 씨에게 돌아오는 한 달 수입은 120만 원이다. 하루라도 결근하게 되면 일당이 빠진다. 그 돈으로 한 달에 10만 원씩의 원금을 포함한 융자 이자만도 50여 만 원이 나간다. 정말이지 소금반찬으로 밥 먹듯 그렇게 살아왔다. 남편이 제대로 일을 할 때만 해도 시댁의 제사를 둘째 아들인 방종운 위원장 집에서 지냈다. 그러나 상황이 너무 어려워지면서 제사도 불가피하게 큰형님이 돌아가시고 없는 장조카 집으로 옮겼고 관계도 다 멀어졌다. 시부모님이 돌아가신 후로는 시댁 형제들과는 얼굴 본지도 오래 되었다. 원래 손이 큰 이쌍심 씨는 돈 걱정 없이 선물도 하고 베풀고 살고 싶지만 도리가 안 되니 관계도 불편하다. 친정 형제들은 모두 그냥저냥 어렵게들 살지만 우애가 좋다. 쌍심 씨가 시간이 없으니 그들이 가끔 찾아 와 준다.

남편은 술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는데다 평생 노동조합 일에 미쳐 월급은 늘 반 토막이었다. 하도 사는 게 어려워 젊을 때는 많이 싸웠지만 이제는 원망마저 포기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아버지를 이해하기엔 현실이 너무 버겁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속 안 썩였어요. 아빠가 속 썩였지.” 이쌍심 씨는 허탈하게 웃었다. 도대체 언제 해결이 될 수 있을지 기약이 없지만 이제는 습관처럼 익숙해지기도 했다. 대법원에서 해고가 부당하다고 판결 했는데도 꿈쩍도 않는 사장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녀는 방법을 알 수가 없다.

지난 총선 때 이쌍심 씨는 투표도 하지 못했다. 아침 6시 반에 출근을 해서 다음 날 아침까지 24시간을 묶여 있어서 투표할 틈이 없었다. 투표하겠다고 지각을 할 수도 결근을 할 수도 없다. 올해 12월 대선? 그것도 가 봐야 안다. 그날이 마침 비번이면 가능하지만.

그러나 대통령을 바꾸면 달라질까? 누구로 바꾸면 어떻게 달라질까? 확신이 없다.
이쌍심 씨는 요즘은 성당에 나가면 부디 우리가족 건강하게만 해주십사고 기도한다. 건강마저 잃으면 버틸 수 없으니까.

이쌍심 씨가 아이들 건사하며 가계를 끌어가는 세월 동안 남편은 공장의 농성 텐트 안에서 찬바람 더운 바람 고스란히 받으며 버티고 있다.

2007년 4월, 경영악화를 이유로 부평공장 노동자를 하루아침에 내친 회사는 2007년 7월 이름만 다르게 되어있는 대전의 콜텍도 폐쇄했고, 2008년에는 국내에 남아있던 공장을 모두 폐쇄했다. 잘 나가던 회사를 차근차근 정리 한 것이다. 노동조합을 무력화하면서 인건비가 싼 해외공장으로 빼돌린 전형적인 사례이다. 그동안 세계 기타시장의 30%를 점유하게 된 콜트사장 박영호는 국내 120위 안에 드는 부를 거머쥐었다. 현재 인도네시아, 중국공장에서 기타를 생산하고 기타네트, 콜텍엠아이씨, 콜텍문화재단 등을 거느리며 ‘세계최고의 기타생산’ 업체라고 자랑한다.

지난 2012년 2월 23일, 대법원은 정리해고가 타당성이 없어 무효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회사는 복직은커녕, 대법원의 판결을 조롱하듯 판결한지 3개월이 지난 5월 31일자로 ‘2차 정리해고’라는 이름으로 재 해고를 단행했다. 방치해 두었던 공장 부지도 팔아치웠다. 그동안 장인(匠人)의 자부심으로 ‘세계 최고’의 기타를 만들어 회사를 성장시켰던 노동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책임감도 없는 오만한 사장의 태도에 노동자들은 절망했다. 방종운 위원장은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싶다가도 ‘억울해서’ 포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사장은 단 한 번이라도 돈 때문에 고민해 본 적이 있는지 궁금해진다.”는 그는, 사장이 지금 누리는 부를 누가 만들어 준 것인데 이렇게 속일 수 있느냐며 눈자위가 붉어졌다.



가동이 멈춰버린 콜트 · 콜텍 공장에 ‘문화연대’ 팀들이 찾아와 연대의 어깨를 걸었고, 몸으로 함께 하겠다는 예술인들이 모여 들었다. 그들은 공장 지붕에 토끼를 그리고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어두운 작업장에 갖가지 조형물을 만들었다. 노동자들이 만들었던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함께 컵라면을 먹으며 연대하고 있다. 방종운 위원장은 그래서 ‘버틸 수 있었다.’ 고 말했다.

목 잘린 노동자 울화가 치밀어도
무릎 꿇지 않아야 삶의 터전 빼앗기지 않는다.
........중략

청솔 나무 깎아 다듬어서 기타를 만든 세월 접고
바보 같은 사람들이 시작한 투쟁이
일 년이면 끝나겠지, 내년에는 꼭 끝낼 거야.
웃으면서 넘길 일도 티격태격 싸운 날들
우리의 속 새까맣게 태우고
비웃듯 또 한 번 잘려진 목 2천일을 맞는다.

방종운, <2천일을 맞이하여> 중에


 
지난 7월 15일부터 25일까지는 ‘콜트 · 콜텍 노동자 사회적 문제해결촉구’ 행동 주간이었다. 야단법석 파티, 예술행동, 법률가단체 공동기자회견, <기타 이야기 상영> 공장 마당에서 열린 락페스티벌, ‘콜트 · 콜텍 해고 2,000일 미사’등 많은 연대집회가 열렸다. 삼복더위에도 불구하고 땀 흘린 ‘연대’행사에서 기타를 만들면서도 기타를 쳐보지 못했던 노동자들이 기타를 배워 무대에 서기도 했다. 투쟁 2,000일 행동 주간의 마지막 날, 문화제가 열린 공장 마당에는 ‘미칠 것 같은 이 세상’ 이라는 노래가 깔리고 있었다. 장석천 사무장도 ‘투쟁이라기보다는 버티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칠 것 같은 이 세상’을 정신 줄 부여잡고 버티는 일, 어언 2,000일이 지났다. 얼마나 더 버텨야 할까.




이쌍심 씨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삶에는 두 종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과 ‘버티는 삶’

2009년 정리해고 이후 파업을 이끌었던 쌍용차노조지부장 한상균 씨는 말했다.
“그들은 우리가 영혼이 없는 노동자이기를 바랐다.”(『한겨레신문』,2012,8,6 재인용)

그리고 얼마 전 종영된 드라마 ‘추적자’에서 ‘유망한 대선후보’ 강동윤은 수레를 타고 가는 ‘국민’과 수레 아래 깔리는 ‘벌레’를 비유로 들어 말했다. “거대한 수레가 지나가려면 바퀴에 밟히는 벌레들은 어쩔 수 없다.”고. 드라마에서 극명하게 보여주었듯이 평범한 아이의 죽음 하나에 엄청난 정치적 권력이 작동하고 있고, 온 가족의 삶 하나하나, 숨 쉬는 것조차도 권력이 개입해 있는데 정작 가장 ‘좋은 정치’ 권력이 절박한 이쌍심 씨 같은 사람들이 정치내용을 결정하는 행위에서조차 부정되는 것, 이것이 우리사회의 현실이다. ‘영혼이 없거나’ ‘벌레’처럼 취급되며 칼끝 같은 삶에 대롱대롱 매달리듯 살아가는 이 사람들이 거부되는 사회는, 국가는 무엇일까?

몇 마디 말로도 모든 것을 짐작케 하는 이쌍심 씨와 헤어질 때 그녀는 필자의 손을 꼭 잡았다. 그녀의 외로움과 서러움이 한달음에 손끝에 전해져, 삼복의 여름은 터질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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