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시대읽기

<소수의견> 정의는 패배했는가

<소수의견> 정의는 패배했는가

글 정혁 (경기과학고 교사) 



올해 6월에 개봉한 <소수의견>(김성제 감독)은 2년 전에 이미 촬영을 마친 영화라고 한다. 2009년 ‘용산 참사’를 모티브로 해서인지 개봉 지연에 대해서도 설왕설래했지만 영화는 그다지 큰 논란 없이 상영을 마쳤다. 그리고 아쉽지만 크게 흥행하지 못했다.

영화는 서울 북아현동 재개발 현장에서 경찰 한 명과 철거민의 아들이 목숨을 잃으면서 시작한다. 철거민인 박재호(이경영)는 경찰과 대치 중에 아들을 잃고 경찰을 죽인 혐의를 받게 된다. 아들은 용역에 의해 살해됐으며, 경찰을 죽인 것은 정당방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후 변호를 맡은 지방대 출신 국선 변호사인 윤진원(윤계상)이 국가를 상대로 100원짜리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고,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하면서 법정 공방이 이어진다. 

 

 

그런데 영화 중반부에 박재호가 윤진원을 배신하고 좀 더 힘이 있는 법무법인을 선택하게 된다. 물론 힘 있는 법무법인이라고 해서 그 힘을 정의롭게 사용할 리 없다. 난처해진 박재호가 윤진원에게 손을 내밀자 윤진원이 박재호에게 질책을 쏟아낸다.

“나라면 절대 안 멈춥니다. 누군가 박살 날 때까지, 끝까지 갔을 겁니다!”

이것은 글자 그대로 박재호에 대한 질책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윤진원 자신에 대한 질책으로도 읽힌다. 박재호를 핑계로 타락의 모양새를 취했기 때문이다. 이 순간 무언을 통해 합의한 것은 연대에 대한 믿음일 것이다. 연대하지 않으면 끝까지 갈 수 없다. 국가라는 거대 권력을 대적할 수 없다.

그러나 결국 연대는 실패했다. 국민 배심원들의 만장일치 의견에도 판사는 박재호에게 3년형을 선고했고 박재호는 죄인이라고 고개를 숙인다. 국가의 하수인인 수사검사 홍재덕(김의성)은 멀쩡히 살아남았다. 상황이 이렇다면 죽은 경찰 아버지(장광)의 눈물이나 박재호의 반성은 지나치게 가혹한 것 같다. 국가의 책임을 묻기는커녕 서로를 죽일 수밖에 없었던 부조리한 상황을 지극히 개인적인 윤리와 도덕이 감당해야 하는 영역으로 수렴시키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경찰의 아버지는 서로가 서로를 죽이게 된 것에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거라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의 아들은 결코 누군가를 죽일 사람이 아니라고 울부짖는다. 이로 인해 그를 지극히 나약하고 무지한 소시민으로 보고 개인적 원한의 정서를 부추기려던 검사의 전략은 실패로 돌아간다. 영화는 법정 공방이 계속될수록 국가 권력의 추악함과 간교함이 극에 달하는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래서 영화는 비록 법적 판결에서는 패배했지만 적어도 윤리적인 승리를 보여줌으로써, 어쩌면 아직까지는 이것이 현실의 정직한 모습이며 아직 더 가야 할 끝이 있음을 명시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마지막 장면에서 검사복을 벗고 잘 나가는 듯한 홍재덕이 윤진원에게 이런 말을 한다. 

 

“국가라는 건 누군가는 희생하고 누군가는 봉사하고 그 기반에서 움직이는 거야. 근데 넌 뭘 한 거냐? 네가 하는 게 뭐냐?”

정말 많은 다수들이 박재호를 살인 의도를 가지고 경찰을 살해한 가해자로 몰기 위해 협업한다. 그들은 정말 ‘국가’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 그들의 ‘다수의견’은 국가를 향해 일치되는 것 같다. 그러나 윤진원은 그 대답으로 홍재덕의 명함을 땅바닥에 버린다. 그는 국가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두 아버지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국가가 의도하는 대로 상대를 원망하거나 유죄를 순순히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소수의견이란 무엇인가? 개인은 국가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이것은 근원적으로 개인적인 윤리를 넘어선다. 이런 의미에서 윤진원도 두 아버지도 개인적인 윤리를 넘었다. 영화가 흥행 순위라는 허들을 넘어서지 못했다고 그 의미까지 무색해져야 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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