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크, 소박하고 진실한 음악의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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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음악 2]


포크, 소박하고 진실한 음악의 감동

글 서정민갑(대중음악의견가)/ bandobyul@hanmail.net



모든 대중음악은 뿌리가 있습니다. 뿌리도 없이 갑자기 툭 튀어나온 음악, 처음부터 지금까지 하나도 변하지 않은 음악은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대중음악은 모두 다른 음악들이 변하거나 합쳐져서 만들어진 음악입니다. 흔히 포크 음악이라고 부르는 통기타 음악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포크 음악이라고 하면 통기타로 하는 모든 음악을 포크 음악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전에서 포크(Folk) 음악의 정의를 찾아보면 통기타 음악이 아니라 민속 음악입니다. 그렇습니다. 포크 음악은 통기타 음악으로 시작한 것이 아니라 민속 음악에서 시작한 음악입니다.

포크 음악이 시작된 나라는 미국입니다. 그렇다면 포크 음악의 뿌리는 미국의 민속음악, 그러니까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부르던 민속음악이었을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아메리칸 포크(American Folk)라고 불리는 미국 포크 음악의 뿌리는 인디언 음악이 아니라 영국에서 건너온 백인들의 음악입니다. 미국은 인디언의 나라가 아니라 영국에서 건너온 백인들의 나라이니까요. 영국에서 건너온 백인들의 음악은 당연히 그들의 민요, 그러니까 16~17세기의 엘리자베스 여왕 시절의 잉글리시, 스코티시, 아이리시 민요들입니다. 주로 기타와 밴조(Banjo)로 연주되었던 영국의 민속음악들이 애팔래치아 산맥 부근 지역, 뉴욕부터 웨스트버지니아 사이 지역에서 불리면서 미국의 민요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미국의 민요들은 1930년대 미국의 경제 대공황을 거치면서 찰스 시거(Charles Seeger), 존 로맥스(John Lomax), 앨런 로맥스(Alan Lomax) 부자 같은 미국의 급진주의자들에 의해 재발견됩니다. 당시 미국의 급진주의자들은 불황과 실업으로 인한 빈곤에 대한 문화적 저항의 일환으로 구전문화와 민중문화를 탐구했고 이러한 구전문화, 민중문화를 비상업적이고 공동체적인 문화라고 평가하면서 가치를 부여했습니다. 그리고 미국 포크의 원조라고 일컬어지는 우디 거스리(Woody Guthrie)와 피트 시거(Pete Seeger)는 미국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민요들을 수집하고 정리해서 누구나 부를 수 있게 했고, 민요들에 담긴 건강한 가치를 확산시켰습니다. 지금도 살아있는 피트 시거는 1919년에 찰스 시거의 아들로 태어나 민요로 구전되던 음악들을 현대적인 포크 음악으로 탈바꿈시켰고, 음악 안에 자유와 평등, 평화 등의 메시지를 담아 노래하고 사회적인 행동에도 함께 함으로써 포크 음악이 진지하고 진보적인 음악이라는 이미지를 갖게 되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포크 음악의 절정기는 조금 뒤였습니다. 1960년대 많은 포크 뮤지션들은 좋은 포크 음악들을 내놓고 반전 운동과 민권 운동에 함께 하면서 당시를 포크 음악의 전성시대로 만들었습니다. 밥 딜런(Bob Dylan), 조안 바에즈(Joan Baez), 피터 폴 앤 메리(Peter, Paul and Mary) 등의 뮤지션들은 의미 있는 노래와 의미 있는 활동으로 반전과 평화, 인권을 호소함으로써 운동을 확산시켰고, 포크 음악을 청년 세대의 음악이자, 진지한 메시지가 있고, 반항적인 음악으로 여겨지게 만들었습니다.

반면 우리나라로 건너온 포크 음악은 조금 달랐습니다. 우리나라의 포크 음악은 우리나라의 민요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미국의 포크 음악에서 출발했습니다. 똑같이 청년세대의 음악으로 발전하기는 했지만 우리나라의 포크 음악은 미국처럼 진지한 음악으로 기능하기보다는 서구에서 건너온 세련된 팝음악으로 기능했습니다. 해외의 음악들을 번안해서 부르면서 시작한 포크 음악은 쉘부르, 세시봉, 오비스캐빈 같은 음악 감상실과 YWCA의 청개구리 같은 공간을 통해 확산되면서 순수하고 낭만적인 음악으로 젊은이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번안 가요로 시작되었지만 자기 노래를 자기가 직접 만들고 부르는 싱어송라이터들이 등장하면서 한국의 포크 음악은 본격화되고 분화되었습니다. 김민기와 양희은, 한대수, 김세환, 송창식, 윤형주의 포크 음악은 다릅니다. 통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한다고 다 똑같은 포크 음악이 아닙니다. 김민기와 양희은이 현실을 들여다보면서 지적인 고뇌를 담아냈다면, 한대수는 보헤미안 같은 자유로움으로 현실을 뛰어넘고자 했습니다. 김세환이나 윤형주는 팝에 가까운 감성으로 소녀 팬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한국의 민요를 포크 음악으로 표현하려고 했던 서유석, 양병집의 감성은 한국적인 포크의 한 지류(支流)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박정희 정권은 포크 음악이 젊은이들의 자유로움을 길어 올리는 우물이 되는 것을 좌시하지 않았습니다. 장발을 단속하더니 대마초 파동을 일으켜 수많은 포크 가수들의 활동을 금지시켜 버렸습니다. 포크 음악은 고고나 트로트와 조합되어 성인 음악이 되거나 대학가의 음악으로 축소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포크 음악은 대학가에서 살아남았습니다. 대학의 노래모임들은 현실을 담아 노래하기 시작했고, 수많은 무명의 싱어송라이터들은 현실을 담지 않더라도 투명한 젊음의 고뇌와 서정을 담은 노래들을 만들고 부르면서 포크 음악이 젊음의 음악이라는 것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리고 1980년대에 얼마나 많은 민중가요들이 포크 음악의 어법으로 쏟아져 나왔던가요. <솔아 푸르른 솔아>, <광야에서>, <그날이 오면>을 비롯한 숱한 민중가요의 명곡들이 포크 음악의 형태로 빚어졌습니다. 록 음악을 미 제국주의의 음악이라고 비판적으로 평가했던 당시의 노래운동 진영은 김민기로부터 비롯된 포크 음악의 진지함을 계승해서 음악으로 사회적 모순과 불의를 고발하고 저항과 해방의 염원을 토해냈습니다. 통기타는 코드 몇 개만 알면 누구나 쉽게 연주할 수 있고, 가격이 비싸지 않았으며, 언제 어디서든 연주할 수 있고, 함께 노래를 부를 때 유용했으며, 어쿠스틱한 질감으로 순수하고 진실한 정서를 대변했기 때문입니다. 민중가요만이 아니었습니다. 동물원과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 함께 활동했던 1980년대 말 대학가의 주류 음악은 분명 포크였습니다.



하지만 1980년대는 이미 포크의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디스코(Disco)와 뉴 웨이브(New Wave), 록(Rock), 헤비메탈(Heavy Metal)이 인기를 끌던 시대에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건 해바라기와 어떤 날이건 잠시 주목받을 수는 있었지만 누구도 지존이 될 수는 없었습니다. 1990년대가 되자 포크는 더욱 변방으로 밀려가야 했습니다.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 힙합(Hip Hop)과 댄스음악이 주류가 되고 10대 청소년들에게 지배당한 한국 대중음악 시장에서 포크 음악이 머무를 수 있었던 곳은 미사리의 통기타 카페촌이었습니다. 거의 혼자서 고군분투하던 김광석이 세상을 뜬 후에 포크 음악은 386세대의 음악으로 통기타 카페에서 겨우 명맥을 이어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민중가요 진영에서는 포크 음악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시노래모임 나팔꽃의 김현성, 백창우, 이지상과 박창근, 손병휘, 연영석, 정윤경 등의 포크 뮤지션들은 자신만의 시각과 정서를 드러내고, 포크 음악의 서정성을 더욱 결 곱게 정제하거나 록과 연결하면서 1980년대의 민중가요와는 다른 질감을 뽑아냈습니다. 그리고 인디 신에서 모던 포크를 계승한 이들이 등장하면서 한국의 포크 음악은 포크 음악의 역사와 감성을 새롭게 구현했습니다. 이장혁을 필두로 루시드 폴(Lucid Fall)을 비롯한 많은 싱어송라이터들이 등장해 포크 음악의 어법과 록, 사이키델릭 등의 어법을 조합시키고, 동시에 포크 음악 특유의 간절함이 잘 표현된 좋은 곡들을 내놓으면서 과거와는 다른 포크 음악들이 빚어졌습니다.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 음악을 하는 이들에게 포크 음악은 가장 어울리는 음악이었고, 가장 어렵지 않게 시도할 수 있는 음악이었습니다. 홈 레코딩으로 음원을 만들기 어렵지 않았고 해외에서는 좋은 포크 음악들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어 레퍼런스(Reference)로 삼기에도 충분했습니다. 진지하고 무거운 포크 음악만이 아니라 감성적이고 따뜻한 포크 음악과 유쾌하고 재미있는 포크 음악들이 함께 이어졌습니다. 소규모아카시아밴드, 푸른 새벽, 플라스틱 피플(Plastic People), 시와 같은 뮤지션들이 등장해 서울 홍익대학교 앞의 라이브 카페와 클럽에서 인기를 끌면서 포크 음악은 장르적으로 확대되었을 뿐만 아니라 인디 신의 핵심 장르가 되었습니다. 상대적으로 개인적이고 내밀한 정서를 담은 포크 음악은 다른 장르가 표현하지 못하는 섬세함으로 2000년대 청춘들의 고개 숙인 표정을 아로새겼습니다.



게다가 아이돌 그룹들의 일렉트로니카 음악이 인기를 끌게 되자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어쿠스틱 음악에 대한 인기가 더욱 높아졌습니다. 꾸밈없는 자연스러운 목소리가 진정하고 예술가적인 가치를 지닌 것처럼 평가되었고 유쾌한 유머와 재치 있는 캐릭터를 갖춘 좋아서하는밴드, 10센치(10cm) 같은 어쿠스틱 밴드들이 대세가 되었습니다. 지난 해 버스커 버스커(Busker Busker)가 엄청난 인기의 주인공이 된 것은 그 현상의 정점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악동뮤지션의 인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인지 지금 인디 쪽에서는 기타와 퍼커션으로 구성된 어쿠스틱 밴드들이 넘쳐납니다. 그러다보니 비슷비슷한 음악들이 많아지기도 했습니다. 어디든 인기를 끌면 비슷비슷해지는 모양입니다. 그래도 통기타가 많이 팔리고 통기타로 음악을 해보겠다는 이들이 많아진 것은 반가운 일입니다. 서로 다른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음악이 있다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기술과 장비로 만들어낼 수 있는 감동이 있고, 기술과 장비로 만들어낼 수 없는 감동이 있습니다. 어느 한 쪽이 절대적으로 우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매력과 가치가 다른 것이겠지요. 어쨌든 자신의 마음을 꺼내 튕기는 듯한 간절함과 함께 부르는 노래가 멀리멀리 날아갈 때의 감동을 기억하는 이들이 있다면 아무리 빨리 흘러가는 시대가 되어도 포크 음악은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노래는 결국 사람의 말이고 사람의 마음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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