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열사 이야기

조한알 장일순 2

조한알 장일순 2



흑백이 없는 세상이다. 선도 없고 악도 없고, 아름다움도 없고 더러움도 없으며, 좌도 없고 우도 없다. 이데올로기싸움이 막을 내리면서 이드거니 미루어 짐작하고 내다볼 수 있는 것이었으니, 남은 것은 오로지 경제가치 뿐. 돈이 모든 것의 주인이고 모든 것을 결정하는 이 자본만능의 막세상에 사람들은 허둥지둥하며 막대 잃은 장님처럼 갈 곳을 모른다. 갈 곳이 없다. 「컴퓨터」와 「디엔에이」로 상징되는 선천문명의 대마루판 앞에서 꿈도 없고 환상도 없으니, 가보고 싶은 곳 또한 없는 것이다.

왜 사는가?

튼튼한 몸으로 오래오래 보람차게 살고자 하는 것이 사람사람의 바램일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골칫거리가 있다. 생때같은 몸뚱이로 오래오래 흐뭇하게 살고자 하는 것이 사람들 모두의 바램이지만 이것은 그러나 한낱 헛된 꿈에 지나지 않을 뿐이니, 태어나서 일하고 싸우며 늙다가 병들어 죽어가야하는 타고난 길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 하늘 밑에 벌레인 탓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무엇을 과연 어떻게 하고 어떻게 살아가야만 참으로 뻑뻑이 사람다운 삶이어서 즐거운 삶일 수가 있는 것인가?

막막할 때마다 사람들은 책을 읽었다. 인생이 슬프고 앞날이 캄캄할 때마다 한 점 반딧불처럼 앞길을 밝혀주는 책이 있어 사람들은 외롭지 않았다. 저잣거리에 넘쳐나는 책의 수풀을 헤치고 『나락 한 알 속의 우주』를 읽어보는 까닭 또한 참으로 여기에 있음이다. 예순일곱 해 동안 치악산(雉岳山) 밑에서 참삶을 살았던 초야(草野)의 사상가 조한알 선생의 말씀은 아주 눈길게 갓맑으니-

『오래 살고자 하지 말고 넓게 살고자 해야 한다. 나혼자서만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 살고자 욕심을 내는 데서 모든 골칫거리가 일어나니, 대립 갈등 투쟁 차별 분단 독점 지배 폭력 약탈 착취 수탈 독재 제국주의 전쟁같은 것들이 다 여기서부터 비롯된다. 이른바 진보라는 것의 개념을 다시 봐야 한다. 무릇 생명이라는 것은 앞으로 이어져 나감으로써 진보하는 것이 아니라 옆으로 퍼져나감으로써 지속되고 확장되니, 진보함으로써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확장함으로써 진보하는 것이다』

좌구보리(左求普提) 우화중생(右化衆生)을 말하고 있는 조한알 선생은 글을 남기지 않은 분이다. 이 책에 실려있는 것들도 짤막한 두 편을 빼고는 모두 강연과 대담기사들을 모은 것이다. 앞의 말씀은 이 중생 나름대로 간추려본 것으로, 여기에 조한알사상의 고갱이가 있다는 생각이다. 더불어 함께 살자는 것이다. 하나라는 것. 이 온널판에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숨탄것만이 아니라 산천초목(山川草木) 하해어별(河海魚鼈) 미적이며 그리고 나아가서는 흙이나 돌멩이 같은 무생물까지도 다 하나의 고리로 이어져 있으므로 끊을래야 끊을 수가 없다는 것. 끊어지지가 않는다는 것. 그런데 우리 사람무리는 빠르기와 가락나는 것만을 대모하게 여겨 저마다 이기는 것과 일등주의에 빠져 나와 내 식구를 뺀 모든 사람들을 쳐서 물리쳐야 할 적으로 보고 살아가는 다툼과 겨루기의 마당에 스스로를 내팽개쳐버림으로써 누리를 지옥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

『제 자리를 제대로 찾자면 자연과 인간과 또 인간과 인간 일체가 하나되는 속에서 ‘너는 뭐냐?’ 그렇게 되었을 적에 나라고 하는 존재는 고정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일체의 조건이 나를 있게끔 해준 것이지 내가 내 힘으로 한 게 아니다 이말이야. 따지고 보면 내가 내가 아닌 거지. 그것을 알았을 적에 생명의 전체적인 함께 하심이 어디에 있는 줄 알 것이고 우리가 연대관계속에, 유기적인 관계 속에 있으면서 헤어질 수 없는 관계 속에 있으면서, 그러면서 투쟁의 논리가 아니라 화합의 논리로 서로 협동하는 논리라는 그런 시각으로 봤을 때 비로소 우리가 존재할 수 있다고 하는 새 시각 속에서 이야기 될 수 있겠지.』

「한실림공동체」모임에서 한 강연인데, 연기(緣起)의 법칙을 말하고 있다. 불교사상의 고갱이를 꿰뚫고 있는 선생은 잇달아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무농약의 음식을 먹으면 건강하다고 하고 또 장수한다고 하고, 다 좋지요. 다 좋은데 저만 오래 살려고, 저만 오래 건강하려고 그렇게 되었을 때에는 바로 그 자체가 엄청난 공해를 가져온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이기심을 버리자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게 이롭다는 그러한 사고와 이렇게 하면 이로우니까 한다든가 이렇게 되었을 때에는 또 하나의 위태로운 세력을 형성하게 될 겁니다. 우리는 그런 것을 지난날에 수없이 겪어왔어요. 그렇게 되었을 적에 우리는 또 하나의 큰 오류를, 이 세상에 씨앗을 앙금을 뿌리를 내리고 가게되는 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이렇게 우리는 살아야되지 않겠는가 하는 이야기를 나누고 가는 것이고 각자가 서게하는 것이고 각자가 넘어지면 일으켜 주는 것이지 그것을 갖자는 이야기가 아니지요.』

자리이타(自利利他)를 말하는 조한알사상은 사람중심의 사상이 아니다. 나와 남을 나누어서 보고, 사람과 자연을 나누어서 보는 서구의 이원론철학으로부터 온갖 골칫거리가 비롯되었으므로, 우리겨레를 사북으로 한 동양의 일원론철학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보는 데서 비롯하는 것이 선생의 사상이므로 마땅한 것이지만, 대모한 것은 깨달음을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단(斷)이 없으면 깨달음이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칼날로 눈에 보이는 모든 헛것들을 가차없이 딱잘라 끊어버렸을 때 마침내 길이 열리니, 끊어내는 것이 바로 도(道)의 첫걸음인 까닭이다.

사람들은 참으로 삼가해야 한다. 살터를 이 지경으로 망가뜨린 우두머리가 바로 사람이라는 이름의 숨탄것일진대 지극히 삼가하는 마음으로 늘 하심(下心)하여야 한다. 사람은 물론 마음먹기에 따라서 주어진 현실을 헤쳐나가고 고쳐 나갈 수 있으며 애짓는 짓둥이를 할 수 있음으로 해서 앞서가는 것이지만, 온널판에 있는 뭇 목숨들 가운데 한 갈래일 뿐이다. 큰한울 또는 온생명계의 자리에서 볼 때 사람은 다른 목숨붙이들과 똑같다. 상대적 다름은 있으되 절대적 다름은 없다. 따라서 사람의 보다 걱정없고 즐거운 몸기르기삶을 위해서 다른 씨들 위에 군림하고 지배하고 약탈하고 착취하고 학살할 수는 없는 것이다. 모든 중생과 한 고리로 이어져 있다는 깨달음을 바탕으로 했을 때만이 비로소 만물의 영장일 수 있는 것이다. 비롯됨도 없고 마침도 없이 끊임없이 줄달아 태어나서 자라다가 나이갓수를 다하여 사라지되 사라져버린 것으로 보이는 바로 그 자리에서부터 다시 또 태어나서 자라다가 사라져버리기를 끊임없이 되풀이 하는 것이, 서로가 서로에게 입김을 주고 입김을 받으면서 끊임없이 맞물려 돌아가며 살아움직이는 역동적 얽음새를 갖고 있는 것이 생명계의 존재법칙인 까닭이다.

모시고 섬기라고 한다. 돈을 모시지 말고 생명을 모시고, 쇠물레를 섬기지 말고 흙을 섬기며, 눈에 보이는 겉껍데기를 모시고 섬기지 말고 그 속에 들어 있는 알짜로 값진 것을 모시고 섬길 때만이 마침내 새로운 누리가 열릴 수 있다고 한다. 이른바 「맑스패러다임」에 주박(呪縛)되어 있는 이들이나 사회과학신도들이 들으면 골을 내겠지만 「혁명까지도 모시고 섬기며 보듬어 안는 부드러움」이라고 말한다.

조한알사상 또는 조한알철학의 가장 높은 버렁으로 보이는 「모심과 섬김」은 어디서부터 말미암는 것인가. 그것은 아마도 평생을 두고 사숙(私淑)해온 최보따리 최해월(崔海月)한테서 찾아야 할 것이다. 두루 알다시피 해월사상의 알짬은 「십무천(十毋天) 」이다.

『사람이 곧 한울이니, 한울님을 속이지 말라. 한울님을 거만하게 대하지 말고, 상하게 하지 말고, 어지럽게 하지 말고, 일찍 죽게 하지 말고, 더럽히지 말고, 굶주리게 하지 말고, 허물어지게 하지 말고, 싫어하고 불안하게 하지 말고, 춥고 굶주리게 하지 말라.』

서구합리주의를 사상철학적 뿌리로 한 수박 겉핥기 자연이해와 인간이해에 주박되고 세뇌되어 있는 오늘의 사람들에게 조한알사상이 주는 속내는 땅불쑥하게 깊다는 생각이다. 서구쪽 사상철학동네의 흐름을 미좇아 가는 무슨 「이즘」이 아니라 갈가리 찢어발겨진 조국의 구체적 현실과 현장에서 솟아나온 우리겨레 남다른 사상이므로 해서 더구나 그러하다.

이 중생의 증조부는 갑오년 마지막 사마시(司馬試)에서 진사(進士)를 하시었다. 성균관 거재유생(居齋儒生)으로 문과 준비를 하시던 15살 때 경장이 일어나면서 낙향하여 글씨만 쓰시었다. 그러다가 을사늑약을 당하자 광무황제가 계신 경복궁을 향하여 북향삼배한 다음 당신의 방에 철장을 지르고 곡기를 끊기 달소수만에 숨을 거두었으니, 자진(自盡)이었다. 증조부의 글씨 가운데 <石龜>라는 것이 있다. 어른의 키로도 한 길 가까운 장강대필(長杠大筆)로 여섯 살 짜리 글씨라고는 믿어지지 않을만큼 비백(飛白)이 아름다웁다.

선생께 이런 말씀을 드렸더니, 그 글씨를 꼭 좀 봤으면 하시었다. 선인들의 잘된 글씨를 보고 싶어하는 서예가로서의 당연한 당길심이었을 것이다. 사진을 박아 보내드렸다. 참 좋은 글씨고 배운 바가 많다는 말씀을 들었다.

선생의 글씨와 그림에 대해서 평할 안목이 이 중생한테는 없다. 다만 한가지, 선생의 글씨는 예서(隸書)를 그 밑바탕으로 삼고 있다는 것만은 알겠다. 무릇 예서라는 것은 무엇인가. 잘 지은 조선집처럼 간결하면서도 튼실하게 짜여진 얼개에 삐침과 파임에 살아움직이는 힘이 넘치니, 글씨에 안목이 없는 이라도 그 잘잘못을 알아볼 수 있는 풀뿌리서체라는 점이다. 새힘으로 먹을 갈아 붓을 황소힘으로 쥐고 무심(無心)한 마음으로 무위(無爲)하게 쓴 대교약졸(大巧若拙)의 글씨인 것이다. 글은 곧 사람이라는 말이 있듯이 글씨 또한 그 글씨를 쓴 사람 자신의 인품을 거짓없이 보여주는 법이다. 한번도 돈을 받고 글씨나 그림을 준 적이 없고 다만 도농직거래조직인 <한살림>운동의 밑돈마련을 위해 몇 차례 펼쳐보였던 「조한알란」에 대해서는 더구나 땅띔도 할 수 없다. 다만 글씨와 마찬가지로 란 또한 「중생란」이라는 것만은 알겠다. 잔재주를 다 빼버리고 고갱이만 잡아 한붓으로 쳐버리는 무지렝이 중생들의 마음을 담아내는 것이다.

유가(儒家)인가 하면 불가(佛家)요 불가인가 하면 노장(老莊)이며 노장인가 하면 또 야소(耶蘇)의 참얼을 온몸으로 받아 실천하여 온 독가(督家)였던 선생은, 무엇보다도 진인(眞人)이었다. 속류과학주의와 속류유물론과 유사종교적이고 혹세무민적이며 종교적신비주의에 그리고 추상적 형이상학만이 어지럽게 춤추는 판에서 대중성 민중성 소박성 일상성 속에 들어있는 거룩함을 되찾아내어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한몸뚱아리의 두 이름으로 더불어 함께 영적 진보를 이루어 나가야 한다는 것을, 그 길밖에 길이 없다는 것을, 순평(順平)한 입말로 남겨준 선생이시다.

스스로는 붓장난이라고 하심하셨으나 영서(嶺西) 테안의 정통 묵맥(墨脈)을 이었다고 값매겨진다. 치악산 바위틈에서 솟아나오는 석간수처럼 청정한 삶이 슴배어든 그림이요 글씨였으니, 도회(韜晦)하는 선비였던 선생의 말씀이 상기도 귓전을 두드린다.

『난을 치되 반드시 난이 아니라 이 땅의 산야에 널려있는 잡초에서부터 삼라만상이 다 난으로 되게 해서, 시나브로 난이 사람의 얼굴로 되다가 이윽고는 그리고 부처와 보살의 얼굴로 되게끔 쳐보는 게 내 꿈일세.』


선생님 가신다/ 선생님 돌아가신다/ 도솔천인가/ 도리천인가/ 아니면 지장처럼/ 다시금 지옥인가/ 지옥중생 구하러/ 또 전생하시는가(……) 선생님 오신다/ 선생님 이제/ 다시 오신다/ 발걸음마다 꽃피어나는/ 무위당선생 영전에/ 우리 지금/ 커다랗게 웃고 있다 -김지하의 조시

 

아름다운 우리말 풀이

•이드거니 : 충분히 •대마루판 : 승패를 결정하는 맨 나중판 •골칫거리 : 문제 •하늘 밑에 벌레 : 사람 •눈길게 : 보는 이의 눈길이 좌우로 꽉차게 •갓맑다 : 다른 것이 섞이지 아니하여 깨끗하다 •고갱이 : 핵심 •온널판 : 우주 •숨탄것 : 「숨을 불어넣음을 받은 것」이라는 뜻으로 동물을 통털어 이르는 말 •미적이 : 동식물을 통튼 생물 •가락나는 : 효율적인 •대모하게 : 중요하게 •누리 : 세상 •사북 : 중심 •애짓는 짓둥이 : 창조적 행위 •씨 : 종(種) •나이갓수 : 수명 •입김 : 영향 •쇠물레 : 기계 •버렁: 범주 •알짬: 핵심이 되는 이치 •땅불쑥하게 : 특별하게 •미좇아 : 뒤미쳐 좇아 •당길심 : 욕심 •테안 : 범위의 속. 일원 •슴배이다 : 스며들어 젖어지다

장일순

1928년 10월 16일 강원도 원주시 평원동에서 부친 장복흥과 모친 김복희 사이에 6남매 중 차남으로 출생

1940년 원주초등학교 졸업. 서울로 유학 상경

1944년 배재고등학교 졸업. 경성공업전문학교(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전신)에 입학. 미군대령의 총장취임을 핵심으로 하는 ‘국립서울대학교 설립안’(이른바 ‘국대안’)에 대하 반대투쟁의 주요 참여자로 지목되어 제적

1946년 서울대학교 미학과(1회) 입학

1950년 6.25 동란으로 학업 중단. 원주로 돌아와 이후 줄곧 원주에서 생활

1953년 25살에 도산 안창호선생의 평양 대성학원의 맥을 잇고자 원주 대성학원 설립 초대교장

1958년 무소속으로 민의원 출마 낙선

1957년 이인숙 여사와 결혼(슬하에 3남을 둠)

1960년 사회대중당 후보로 다시 민의원에 출마하였으나 극심한 정치적 탄압으로 낙선

1961년 5.16군사 쿠데타 직후 중립화 평화통일론 주장 이유로 서대문과 춘천형무소에서 3년간 옥고

1963년 출소 후 다시 대성학원 이사장에 취임하였으나 한일굴욕외교 반대운동에 연루되어 이사장직 박탈. 정치활동 정화법과 사회안전법 등에 묶여 모든 활동에 철저한 감시를 받기 시작

1964년 이 해부터 몇 해 동안 포도농사에 전념

1971년 고 지학순 주교와 함께 박정희 군부독재 반대시위주도

1973년 민청학련 구속자 석방운동

1983년 한살림 운동본부 설립. 박재일 김지하 등과 함께 생명사상 실천운동 전개

1994년 숙환으로 별세. 향년 66세


글_ 김성동

1947 충남 보령 출생

1965 불교 사문으로 입산수도

1975 주간종교지 <종교소설현상모집> 당선

1978 한국문학신인상에 중편 ‘만다라’ 당선

1979 ‘만다라’를 장편으로 개작출간

저서 창작집 ‘오막살이 집한채’, ‘피안의 새’ ‘오막살이 집 한 채’

장편소설 ‘길’ ‘만다라’ ‘집’ ‘국수’ ‘꿈’ 등

산문집 ‘생명기행’ ‘미륵의 세상 꿈의 나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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