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청 광장엔 우리의 무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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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청 광장엔 우리의 무기가 있다 

 [시대와 시] 송경동 시 <고귀한 유산> <나비효과>
 

글 최규화 (인터파크도서 <북DB> 기자)/ realdemo@hanmail.net 

 

 

2016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2년째 되는 날이었다. 그날 낮, 집에서 가까운 부천역 광장에서 세월호 기억 문화제가 열렸다. 그날 저녁 서울 광화문에서 열리는 문화제에는 아무래도 갈 수 없을 것 같아, 점심상을 물리자마자 아이 손을 잡고 부천역 광장으로 나갔다.

부천에서 활동하는 여러 시민사회단체들과 예술인들이 뜻 깊은 공연을 이어가는 와중에 반가운 얼굴. 송경동 시인을 볼 수 있었다. 내가 그의 새로운 시를 만나는 곳은 주로 문학 계간지나 시집 같은 지면이 아니었다. 그의 새로운 시는 늘 ‘길거리’에서 먼저 낭송됐다. 정확히 말하면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앉거나 서거나, ‘오체투지’로 엎드리거나 삼보일배로 걷고 절하는 땅. 나는 그곳에서 그가 포클레인 위에서 전깃줄에 매달려 싸우는 것을 보았고, 가로막힌 조선소 담 위로 사다리를 타고 오르는 것을 보았다.

그는 세월호 기억 문화제에서도 시를 낭송했다. 너무도 일찍 막을 내려버린, 아이들의 한 세월에 대한 시. 나는 그날 문화제를 마치고 나서 광장 가까이에 있는 서점에 갔다. 그리고 그곳에 딱 한 권 남아있던 그의 시집을 샀다. 올해 2월에 출간된 그의 세 번째 시집,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창비).
 

고귀한 유산

내가 죽어서라도 세상이 바뀌면 좋겠다며
내어줄 것이라고는 그것밖에 남지 않았다는 듯
노동자들이 목숨을 놓을 때마다

죽음을 이용하지 말라고
보수언론들이 이야기한다

천상 호수 티티카카호까지 뻬루의 고산 열차는
1870년 착공해 완공까지 삼십팔년이 걸렸다
공사 기간 중 이천명 넘는 인부들이 죽었다
중간 역도 없이 만년설 속을 열세시간 달리는데
딱 한번 이십분간 정차한다

사람들은 기차를 탄다고 생각하겠지만
어쩌면 이천명의 상여를 타고 가는 것인지 모른다
죽음을 이용하지 말라고?
사회가 우리의 삶을 이용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면
누군가의 죽음을 특별히 애도할 일도 없을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 선택해 내릴 수 있는
생의 정거장은 의외로 많지 않다

 

시집의 맨 앞(10~11쪽)에 있는 시다. 첫 장부터 책장을 넘기기가 호락호락하지 않다. “죽음을 이용하지 말라”는 말. 세월호를 기억하자는 사람들에게도 여전히 뒤집어씌워진 굴레다. 그리고 그 말이 더 분통 터지게 다가오는 이유는 또 있다. 3월 17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유성기업 노동자 한광호. 한 달이 넘도록 아직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차가운 냉동고에 누워 있는 그 때문이다.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싸움은 2011년 5월 파업 노동자들에 대한 사측의 ‘용역 폭력’을 계기로 세상에 크게 알려졌다. 이후 2012년 국회 국정감사 등을 통해 회사 측의 노조 파괴 시나리오가 드러난 곳. 직장폐쇄와 친(親)기업 복수노조 설립, 기존 노조원에 대한 감시와 징계 등으로 이어진 시나리오는 노동자들을 극단으로 계속 몰아붙였다. 지금 서울시청 광장에 설치된 천막분향소를 지키는 한광호의 동지들은, 그래서 한광호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 아니라 ‘죽임을 당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유성기업과 그 원청 현대자동차의 책임을 물으며 분향소를 지켜온 그들에게 최근 반가운 소식도 있었다. 4월 14일 서울중앙지법의 판결. 유성기업이 기존 노조를 무력화하기 위해 설립한 복수노조가 ‘설립 무효’ 판결을 받은 것이다. 회사 주도로 새운 노조에 대한 최초의 설립 무효 판결이었다.

유성기업은 현대자동차에 부품을 납품하는 협력업체다. 2000명 넘는 인부들의 목숨을 희생해 만든 ‘뻬루’의 고산 열차가 인부 2000명의 상여라면, 이 시간 도로 위를 숱하게 달리는 저 자동차들은 누구의 상여일까. 한광호의 체온을 기억하는 부품은 지금쯤 누구의 성공을 위해 바퀴를 굴리고 있을까.

차가운 냉동고 안에 동지를 눕혀둔 채로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오늘도 서울시청 광장을 지키고 있다.
 

나비효과

미군이 이라크 침공을 시작한 후
드디어 이라크가 보유했다는
생화학무기의 실체가 밝혀졌다 그것은
미군이 사용한 방사능 열화우라늄탄보다
몇천배 강력했다 죽어가는 아이
죽어가는 엄마 아빠라는
치명적인 생화학물질, 거리로 뛰쳐나온
전세계 반전평화의 물결이 그 핵을
실어 나르는 유도미사일이 되었다 못 찾을밖에
그 무기들은 이라크에 있지 않았다
후세인의 사주를 받지도 않았다 그것은
미국의 심장부 뉴욕 맨해튼 거리에 있었고
파병을 결정하는 대한민국 국회 앞 잔디밭에 있었고
동료를 향해 수류탄을 던진
미군 병사의 가슴속에도 있었다

그 무기들은 말할 수 없이 나약한
재래식 폭발에 의존했지만
팔딱이는 인간의 심장을 뇌관으로 썼기에
어떤 핵우산보다 거대하게
인간의 대지를 덮었다 어떤 것도 해치지 않으면서
엄마라는, 아빠라는, 아이라는 말 한마디로
세계인의 귀를 찢고 머리를 깨고
가슴을 파열시켰다 전쟁은 끝났지만 아직도 미군은
이라크가 보유했다는 생화학무기를 찾지 못했다
어떤 최첨단 레이더 정보위성도
인간의 존엄을 향해 스스로 증식해가는
이 가공할 생명들의 행방을 모두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제국주의가
포탄으로 이룬 세계화를
우린 사랑과 연민이라는
아주 오래된 재래식 무기로 이룰 것이다

 

노동자의 죽음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웬 전쟁 이야기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시집 90~91쪽에 있는 이 시의 제목을 내 마음대로 ‘오래된 무기’라고 다시 붙여본다. 돈, 공권력, 보수언론의 왜곡, 가진 자에게만 친절한 법…. 모두 강력하다. 그렇다면 무엇을 무기로 싸워야 할까. 결국 우리에게 있는 아주 “오래된 재래식 무기”밖에 없다. 바로 “인간의 존엄을 향해 스스로 증식해가는/ 이 가공할 생명들”의 힘 말이다.

한광호의 동지들의 지키고 있는 천막분향소가 내려다보이는 곳. 옛 국가인권위원회 옥상 광고탑 위에는 기아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 최정명과 한규협이 있다. 지상 70미터, 폭 1.8미터의 아찔한 광고탑 위로 올라간 것이 지난해 6월 11일. 벌써 세 번째 계절을 맞이한 그들의 고공농성은 4월 5일 ‘300일’을 기록했다.

2014년 법원은 기아자동차 사내하청을 불법파견으로 보고 “기아자동차 근로자 지위가 인정되고, 기아자동차에 고용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기아자동차 노사는 전체의 9.5%에 불과한 465명의 사내하청 노동자들만 정규직으로 특별채용 하는 데 합의했다. 법원의 판결대로 사내하청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것, 이 간단한 한마디를 그들은 300일이 넘도록 허공에 외치고 있다.

“300일이면 하다못해 짐승을 가둬놔도 죽었는지 살았는지를 돌아본다. 하물며 자기네 범법에 대해 지적하고 있는데도 300일이 되도록 안을 내놓지 않고 있는 현실이 참 답답하다. 정말 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4. 5. 민중의소리)

최정명씨의 이 말을 듣고, 우리의 무기가 무엇인지 새삼 느끼게 됐다. 우리는 비록 포탄은 없지만 “사랑과 연민이라는/ 아주 오래된 재래식 무기”로 결국 “인간의 존엄을 향해” 갈 뿐이다. “팔딱이는 인간의 심장을 뇌관으로 썼기에/ 어떤 핵우산보다 거대하게/ 인간의 대지를 덮”을 우리의 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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