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알고 있다, 사드의 진정한 ‘외부세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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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알고 있다, 사드의 진정한 ‘외부세력’을​

- 배창환 시 ‘평양, 옥류관에서’, ‘해방된 날’

글 최규화 (인터파크도서 <북DB> 기자)/ realdemo@hanmail.net 

 

익숙한 기시감을 떨칠 수가 없다. 해군기지를 짓겠다던 제주 강정마을에서, 미군부대를 짓겠다던 평택 대추리에서 이미 본 것 같은 장면, 들은 것 같은 이야기다.

7월 13일 미국과 한국 군 당국은 경북 성주에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THAAD)를 배치하겠다고 발표했다. 전통적으로 정부 여당에 대한 지지가 확고한 지역이었기에, 주민들의 ‘배신감’은 더욱 컸다. 주민들은 마을 경로당에 있던 박근혜 대통령의 ‘존영’을 철거하고, 머리띠를 묶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마침 또 몽골인가 어딘가로 떠난 대통령 대신 주민들 앞에 선 국무총리를 붙들고 실랑이도 벌였다.

정부와 언론에서는 발 빠르게, 익숙한 기시감을 주는 이야기들을 반복하기 시작했다. 국익과 안보를 위한 일에 딴죽을 거는 것은 ‘지역 이기주의’라 했고, 사드 레이더의 전자파를 걱정하는 목소리는 과장된 ‘괴담’이라 했다. 주민들의 반대 시위는 ‘폭력’이라 했고, 그 속에는 ‘종북’ 정당 출신의 ‘외부세력’ 또는 ‘전문 시위꾼’들이 개입돼 있다 했다. 그들 스스로 강정마을과 대추리를 이야기하며, 그런 갈등과 ‘국론 분열’ 현상이 재현돼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그런데, 가장 있어야 할 것이 없다. 가장 목소리 높여 나와야 할 이야기가 없다. 성주면 안 되고 평택이면 되는가? 전자파 안전거리가 100미터면 안 되고 200미터면 되는가? ‘외부세력’이 시위를 하면 안 되고 ‘순수’한 성주군민들만 시위를 하면 되는가? 지금은 그것들을 붙들고 말싸움을 할 때가 아니다. 미국의 ‘미사일 방패’인 사드가 남한 땅에 너무도 손쉽게 들어오게 된 이유. 결국은 또 한미 군사동맹과 ‘주적’ 북한 없이는 설명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결국 지금 우리가 가장 심각하게 돌아봐야 할 본질은 ‘분단’이다.

평양, 옥류관에서

_그 아이

버스에서 내리자 때마침 점심시간인지
할머니, 아주머니와 아이, 일터에서 잠시 돌아온 듯
햇살에 얼굴 그을은 동포 형제들이
옥류관 길거리 화단 담 모퉁이에 모여 앉아
남쪽에서 온 우리 ‘작가 선생’들을 바라보았다

길 건너편 느티나무 그늘 깔고 앉은 사람들도
반가운 듯 조금은 쑥스런 몸짓으로
이쪽을 향하여 손을 흔들었고
우리는 손을 더 높이 들어 마주 흔들다가
날아갈 듯 지어놓은 식당 2층 홀에서 냉면을 먹고 내려왔다

그때까지 바깥에서 차례를 기다리던 사람들
아니면 우릴 기다렸을까
우리 조선옷 단정히 차려입고
아기를 업고 안고 이쪽을 바라보는
웃음이 고운 중년 아낙도
가까이 문 앞에 선 열 살 안쪽의 그 아이도
웃기만 할 뿐, 말은 없었다

우리 중 몇은 그 아이를 번갈아 품고
사진을 찍었다
그 아이, 이름을 묻는 걸 까먹었지만
그 아이 가슴에 쿵덕쿵덕 뛰고 있는 피의 온도가
뒤에서 감싸 안은 내 손으로 은밀히 전해왔다

-고마워
-안녕!

두 마디만을 남긴 채 그곳을 떠났지만
숙소로 돌아오면서 나는 생각에 잠겼다
그 아이와의 마지막 인사는
‘안녕’이 아니라
‘잘 자라거라!’여야 옳았다고
그리고 생각했다
부끄럼 많던 그 아이도 이담에 커서
묘향산 어디 초소에 부동으로 서 있던
내 아이 또래의 소년병처럼
날선 칼 착검한 자동소총을 움켜쥐게 될까
그리하여 남쪽을 향하여
총구 너머로 형형한 눈빛 뿜어내게 될까

어쩐지 그건 아니라고,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었지만
그것이 이 순간까지 가장 분명한 현실이었고
우리가 사랑의 칼 벼리고 벼려
이 분단 악몽을 뿌리째 싹둑 잘라버리지 않는다면
내일에도 비극은 이어지고 마는 것이라고,
차마 생각하기 싫었지만

그것이 바로 우리들의 핏줄 사랑이
잠시나마 서로의 등과 가슴을 포개었던,
그 아이와 찍었던 사진의 배경이 된
평양, 옥류관 앞 느티 그늘보다 두껍고
느티의 키보다 깊어져야 하는 이유라는 생각을
숙소로 돌아오는 내내 지울 수가 없었다

배창환 시인의 시집 <겨울 가야산>(실천문학사, 2006년) 50~53쪽에 실린 시다. 교사이자 시인인 배창환은 성주에서 나고 자랐다. 시집 제목에 나오는 가야산은 성주군 서남부에 있는 산이다.

“평생 막걸리를 좋아했고/ 촌놈을 자랑으로 살아온 사람,/ 아이들을 스승처럼 섬겼으며/ 흙을 시의 벗으로 삼았네”(‘시인의 비명(碑銘)’ 같은 시집 12쪽)라고 스스로를 노래한 ‘촌놈’ 시인이다.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이 시집이 나올 무렵만 해도 남과 북으로 작가들도 학자들도 기자들도, 평범한 시민들까지도 오고 가며 얼굴을 트던 때였다. 평양의 유명한 냉면집 길거리에서 만난 아이와 즐겁게 사진을 찍고 나서, 배창환 시인은 문득 현실을 떠올린다. “부끄럼 많던 그 아이도 이담에 커서/ (줄임)/ 날선 칼 착검한 자동소총을 움켜쥐게 될” 분단의 현실. “그리하여 남쪽을 향하여/ 총구 너머로 형형한 눈빛 뿜어내게 될” 엄연하고 확고한 미래를 말이다.

그의 걱정은 10년 뒤 오늘, 결국 현실이 되고 말았다. 남북을 오가던 길은 모두 막혔고, 서로를 겨눈 총검은 더욱 서늘해졌다.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이루자던 사람들은 ‘종북’ 또는 ‘내란’ 세력이 되어 감옥에 갇히거나, 깃발 없이 어디론가 뿔뿔이 흩어져 숨죽여 살아야 했다. 색깔론은 분단이 낳은 정신적 마비 현상이다. 지난날의 ‘빨갱이’라는 말은, 오늘날 ‘종북’으로 이름을 바꾸었을 뿐이다. 이번에도 “성주에 종북좌파들이 집결할 것이다”(7월 15일 홍준표 경남지사) 같은 말들이 바로 나왔다. 한때 잠시나마 정신적 마비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한 시절이 있었지만, 그건 뼈아픈 착각이었다.

해방된 날

이 작은 소읍 성주 성밖숲 잔디밭에까지
거대한 붉은 파도가 밀려왔다 떠났다
수백 년을 이 자리서 살아온 숲
천연기념물 왕버들숲이 일어나 춤추기는
모르긴 해도 해방 후엔 처음일 거라고
붉은 단풍 얼굴로 노인이 말했다
월드컵, 몇 차례의 격랑이 지나고 오늘은
모처럼 휴일, 가족들이 찾아와서 자리 깔고 앉아
어른들은 붉은 악마 아이들 공놀이 구경이고
아이들은 저마다 선수들 공 차는 시늉이 한창이다
가슴마다 붉은 물결이 새겨져 있다
찢어진 입이 썰어논 수박같이 둥글고 크다
이참에 나도 길에서 산 붉은 옷을 걸쳐보았다
이 옷 입으면 세상이 뒤집혀 보일 줄 알았는데
아무렇지도 않은 게 더 이상하다
이 옷을 입는 데 50년이 걸렸다
못에 던진 돌멩이는 잠시 파문을 남기지만
파문은 곧 사방의 고요에 묻혀 가라앉기 마련이고
고통이 사라진 날로부터 어제는 까마득히 잊혀진다
붉은 색맹에서 해방된 날, 두려움 없던 그날 내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게 해방이다
해방된 아이들이 공을 갖고 논다, 붉은 티를 입은
해방된 어른들이 공을 갖고 노는 아이들을 보고 있다

같은 시집 64~65쪽에 실린 시다. 2002년 여름을 막 지낸 어느 때 쓴 시로 보인다. “이 옷 입으면 세상이 뒤집혀 보일 줄 알았”던 붉은 옷을 걸쳐 입어봤지만 세상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아무렇지도 않은 게 더 이상”했던 그날을 배창환 시인은 “붉은 색맹에서 해방된 날”이라고 했다.

그러나 10년도 더 지난 지금, 그때 붉은 티를 입은 해방된 아이들이 공을 갖고 놀던 “이 작은 소읍 성주 성밖숲 잔디밭”은 어떤 꼴이 되었나. 붉은 티를 입었던 아이들은 결코 해방되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 붉은 머리띠를 두르고 또 다른 해방을 외치고 있는 것이다. 성주의 ‘촌놈’ 시인, 배창환 시인은 지금 어떤 심정일까. 남북의 ‘흙의 아이들’과 함께 분단에서 해방되는 그날을 기대한 시인의 노래가 더욱 비극적으로 들린다.

시위 영상 속, 남녀노소 주민들의 목소리가 위태롭다. 어떤 노인은 한평생 ‘1번’만 찍어왔는데 이럴 수 있느냐고 눈시울을 붉혔다. 어떤 청소년은 “여기는 대한민국인가요 대한미국인가요”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나왔다. 어떤 청년은 촌사람은 가만히 앉아서 다 죽으라는 거냐고 목소리를 떨며 물었다. 어떤 중년 여성은 성주에서 태어나 손마디 굵도록 참외 농사만 지어온 사람한테 왜 외부세력이라 하느냐고 원통해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 사드를 성주를 배치하겠다는 결정은 한반도의 진정한 ‘외부세력’에 의한 것이었다는 사실. 사드에 대한 모든 이야기는 바로 그 ‘팩트’로부터 시작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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