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않을게’ 눈물이 만들어낸 스무 살의 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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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않을게’ 눈물이 만들어낸 스무 살의 결기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기록집 <나는, 또한 당신입니다>

글 최규화 (기자)/ realdemo@hanmail.net

스크린도어 사이에서

- 19살 지하철 안전문 노동자의 죽음에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나의 문은.
날마다 고장 난 스크린도어를 고치면서도
나는 나의 세상으로 통하는 문은 열어보지 못했다.
스패너로 아무리 풀어도 가난은 조여 오고
펜치로도 끊어낼 수 없는 배고픔을 끌어안은 채
문에서 문으로 내달렸다.
닫힌 문에서 닫힌 문으로 달려온
내 열아홉 살,
대난에 땅 밑으로 내려가는 출근
철길 끝으로 퇴근하면 깊은 밤이었다.
고장 난 문을 고칠수록
내 몸 어디선가 문은 칸칸이 닫혀만 갔다.
구의역에서 마지막 문을 열었을 때
거기 유리벽에
내가 본 적 없는 내가 짧은 순간 나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전동차는 달려 들어오고
다급하게 유리벽을 두드려 살려 달라 외치는
오늘은 내 생일
내가 나에게로 향하는 문이 일그러졌다.
작업가방 속에는 아직 먹지 못한 컵라면
틈이 나면 국물이라도 떠먹고 싶어 넣어둔
내 열아홉 살 숟가락을 스스로 젯상에 올린다.
뼈가 나무 젓가락인 양 부서지고
또 어디선가 문 닫히는 소리가 들려온다.
다만 나에게로 오는 문만은 열지 말아다오.
작업가방 속 드라이버를 끄집어내
열아홉 살을 조여 다오.
이 죽음을.
목숨마저 하청 용역 비정규직인
이 하루가
다시는 열리지 않게끔
이 슬픔을 조여 다오.

2016년 5월 28일이었다. 구의역 9-4 승강장에서 고장 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스무 살 청년 ‘김군’이 목숨을 잃은 날. 자신의 생일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비정규직 하청노동자인 그의 월급은 144만 원. 그의 작업가방에서는 손때 묻은 연장들과 함께 컵라면과 나무젓가락, 스테인리스 숟가락이 나왔다.

‘2인 1조’라는 작업 매뉴얼은 지켜지지 않았다. 그가 사고를 당할 때, 그에게 다가오는 위험을 감시할 눈은 어디에도 없었다. 매뉴얼을 지키지 못한 것이 그의 잘못인가. 사람보다 중요한 게 시간이었고, 시간보다 중요한 게 인건비였다. 돈에 밀리고 시간에 뒤처진 사람의 목숨은 너무도 허무하게 바스라졌다.

비극이었다. 컵라면을 먹을 짬이나 있었을까. 작업가방 속에 남겨진 그의 물건들이 그의 하루를 충분히 웅변했다. ‘헬조선’이었다. 긴 수식이 필요없었다. 그가 왜 죽었는지 사람들은 알았다. 오직 서울메트로만이 그가 자신의 잘못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했다. 누가 죽었는지도 청년들은 잘 알았다. 죽은 것은 ‘나’였다. 가까스로 이 나라에서 청년이란 이름을 지키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젯상 앞에서 고인을 불렀다.

구의역 9-4 승강장. 사람들은 그곳으로 모였다. 흰 국화꽃을 놓았다. 컵라면을 놓았다. 즉석박을, 도시락을, 작은 생일 케이크를 놓았다. 차리는 이에게나 받는 이에게나 가난한 진수성찬. 사람들은 또 저마다 작은 포스트잇에 편지를, 위로를, 사과를, 고백을, 한탄을, 분노를, 다짐을 꾹꾹 눌러썼다.

2016년 8월에 출간된 <나는, 또한 당신입니다>(스무살의봄)는 시집이 아니다. 김군을 잊지 않겠다고 약속한 사람들이 남긴 포스트잇 편지를 모아 엮은 책이다. 엮은이는 ‘페이스북 페이지 구의역 스크린도어 9-4 승강장 운영진’. 출판사 역시 이 기록집 출간 프로젝트를 위해 만들어진 곳이다.

‘시’라고 밝혀져 있는 것은 책 15쪽에 실린 서해성의 추모시 ‘스크린도어 사이에서’뿐이다. 하지만 이 책에 사진과 활자로 담긴 편지들은, 서해성의 문장을 빌자면 “어떤 시로도, 어떤 문학으로도, 어떤 영상으로도 나타낼 길 없는 엄숙한 리얼리티”(16쪽)다. 2년이 지난 지금도 한 글자 한 글자 숨 죽여 읽을 수밖에 없다. 쓴 사람도 알 길 없고 제목도 없는 짧은 글조각이지만, 이것을 시가 아니라고 여길 사람 어디 있을까.

사람들은 모두 ‘잊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때 흘린 눈물은 모두 진심이었다. 하지만 시간은 힘이 세다. 2년 전 우리가 약속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저 ‘그날 그가 죽었다’는 것을 잊지 않겠다는 것인가. 아니다. 우리가 잊지 않기로 약속한 것은 그의 죽음 이후 이 사회가 어떻게 변하는지 똑똑히 지켜보겠다는 것. 그리고 우리 스스로 그 변화를 만들어내는 주체임을 ‘잊지 않겠다’는 것이다.

김군의 친구들은 계속 죽어갔다. 2017년 1월 전주의 통신사 고객센터에서 현장실습생으로 일하며 업무스트레스에 시달리던 ‘홍양’은 ‘콜 수를 못 채웠다’는 말을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2017년 11월에는 제주의 음료회사 공장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특성화고생 ‘이군’이 일하던 중 기계에 끼여 사망했다. 2018년 3월에는 남양주의 대형마트 무빙워크를 점검하던 또 다른 특성화고 실습생 ‘이군’이 사고로 숨졌다.

그래서 김군의 친구들은 스스로 강해지기로 했다. 2018년 5월 1일 노동절, 전국특성화고등학교졸업생노동조합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노동조합 결성 선포 기자회견을 열었다. 앞서 특성화고등학생권리연합회가 졸업생 4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졸업생들은 취업 후 가장 어려웠던 문제로 강제야근 등 장시간 노동(24%)을 가장 많이 꼽았다. 이어 ‘고졸이라고 받는 차별·무시’(23%), ‘연장노동 수당 없음’(18%), ‘성희롱·성추행’(12%), ‘임금체납’(10%), '월급이 최저임금 미달'(9%) 순이었다.

오마이뉴스(신지수, 2018. 5. 1.) 보도에 따르면, 이들은 “고용노동부에 특성화고 졸업생 처우개선 교섭요구를 할 계획”이라면서 "정부 차원의 특성화고 졸업생 취업환경 전수조사를 요구하고 문제가 발견된 사업장은 특별근로관리감독을 실시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밖에도 ▲특성화고 졸업생 취업관리지원센터 설치 요구 ▲노동상담과 심리상담, 법률 지원 ▲특성화고 졸업생 특별법 제정 등을 해나갈 계획이라고 한다.

시간만큼 힘이 센 것이 ‘슬픔’이다. 아까운 목숨들이 잇따라 먼저 지고, 슬픔은 그만큼 오래 남았다. 그 슬픔의 힘으로 김군의 친구들은 ‘잊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려 스스로 강해지고 있다. 이들의 떨리는 다짐에도 스무 살의 발랄한 도전보다 친구를 잃고 눈물로 강해진 “엄숙한 리얼리티”가 먼저 느껴진다. “남겨진 자의 몫, 내 여백”을 채우는 청춘들의 새파란 결기가 5월의 봄빛보다 더 눈부시다.

<나는, 또한 당신입니다>의 138쪽에 실린 독백의 편지, 아니 결의의 시를 마지막으로 옮긴다. 우리는 모두, “필연적으로 행복한 곳”에서 만나야 한다. “필연적으로 행복한 곳”에서 끝내 살아야 한다.

세월호로 내 친구들을 잃었을 때
그때 내 모습을 한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2년 전 나는 똑같은 얼굴로 서 있었다.
자꾸 뭘 잃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를 잃는 기분.
언제까지 이 기분 속에서 살아야 할까, 우리는.
운명이 아니라 필연입니다. 우리는 모두.
다음에는 우연처럼 행복한 곳에서 만납시다.
그리고 이제, 이곳도 필연적으로 행복한 곳으로 만들겠습니다.
남겨진 자의 몫, 내 여백의 의미는
앞으로 잘 하겠다는 독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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