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와 시] 단단하게, 더 단단하게 - 김정환 시집 `1980~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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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하게, 더 단단하게

"김정환 시집 1980~1999", 이론과실천, 1999

 

서효인_ 시인/humanlover@naver.com

 

시집의 고집

이 시집은 괴물 같은 시집이다. 이런 시집은 본 적이 없다. 블록버스터 영화 광고카피에나 어울릴 법한 수식어를 붙인다. "김정환 시집 19980~1999"(이하 시집)에 관한 이야기다.

시인 김정환은 다작의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폭포처럼 쏟아진다는 비유로 표현되고는 한다. 하지만 비유는 비유일 뿐, 시원한 물처럼 장대하게 떨어지는 시의 폭포를 기대하면 오산이다.

오히려 그의 언어는 서서히 깎이거나 자라서 거대한 풍경이 되는 모래를 닮았다. 씹어 읽을수록 입안이 서걱서걱해진다. 언젠가 바다였다는 사막이나, 언젠가는 늪지였을 산맥처럼 시인과 시는 퇴첩(堆疊)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켜는 시인의 삶과 언어가 제 몸 위에 또 다른 생을 얹어도 버틸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단단하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아무리 단단하고 거대한 암석이라도 그것의 이룸은 모래알갱이로부터 시작한다. 시집은 모래 같은 글자들로 채워져 있다. 의도적으로 작은 글씨를 택한 시인의 고집이 무엇인지 감히 사료하기 어렵지만, 시집을 성전(聖傳)처럼, 두 손에 들고 읽게 한다는 점에서 반가운 마음이 크다. 많은 양이지만 함부로 소비되지 않은 활자들이 그곳에 가득하기 때문이다.

시집은 시인의 첫 시집인 "지울 수 없는 노래"부터 1999년에 발간한 "순금의 기억"까지의 시를 모아놓은 단행본이다. 읽는 사람의 눈을 혹사시키는 시집이며 동시에 정신의 연마이기도 한 시집이다. 사막을 걷는 마음으로 그의 시집을 읽어나가야 한다. 시인은 사막을 횡단하는 고행자이면서, 사막에서의 삶을 영위하는 사나운 갑각류이기도 하다. 그러니 그의 언어를 어찌 쉽게 읽고 쉽게 넘기겠는가.

서정의 고집은 아름다움보다는 단단함을, 순수함보다는 사나움을 택했다. 그것이 김정환 시인의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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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의 행진

김정환 시인은 시인이 되기 전 이미 구치소를 들락거렸다. 유신반대투쟁으로 구속되고 이어서 강제집행으로 군대에 끌려가야 했다. 당대, 몸이 바르고 심장 뜨거운 학생이라면 대부분 거쳐 갔을 그 길을 피하지 않고 나섰던 그였다. 시인이 된 후에도 이러한 삶의 일관성은 그 궤도를 허투루 넘지 않는다.

그가 시인으로 이름을 알린 건 <창작과비평>으로 등단하면서이다. 때는 <창작과비평>이 폐간되던 해인 1980년이었다. 1970년대는 군사정부의 긴급조치에 의한 검열과 판금이 판을 치던 상황이었다. 그 속에서도 끊임없이 글로 저항하고 문학으로 투쟁을 감행하던 <창작과비평>은 김정환이라는 시인을 세상에 갓 내어놓고 강제 폐간된다. 그 후 <창작과비평>은 무크지로 발행되기도 하였고, 출판등록이 취소되는 어려움도 겪었다.

한 출판사, 특정 문예지에 대한 탄압과 폭압은 문화에 대한 폭력에 다름 아니었다. 그럴수록 당시의 시인은 시대를 노래하고 희망을 찾았다. 김정환 시인은 그 한가운데에 있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황색예수연작을 통해 시대에 대한 통렬한 서정의 분출을 보여주었다. 1980년대 대한민국에 나타난 노란 피부의 예수는 성경의 구절에 따라서 제 몸을 난도하며 80년대의 부조리 또한 가차 없는 언어로 지르고 부순다.

10년 가까이 지나 다시 창작과비평사에서 낸 시집 <기차에 대하여>는 겉으로 화려한 변화가 있었던 세태에 복속되지 않는 그 만의 서정이 아직 할 말이 많이 남아있음을 증거 하였다. 시편은 세련의 과정을 거치되, 시인이 갖고 있는 투박한 밀고 나감은 그 정신에서 팔과 다리까지 변함이 없다. 그의 서정은 이렇듯 뚜벅뚜벅 걸어가 세기말을 맞는다. 1996년에 발간된 <순금의 기억>은 지난 역사를 되새기면서, 새로운 세기의 불안을 불안 너머의 전망으로 껴안는다.

시대를 껴안고 그것을 부축하며 종내에는 미래를 전망하는 것, 김정환 시인의 시대정신이자 시정신이 먼 시간을 켜켜이 쌓아가며 지탱한 서정의 행진이다.

 

시인의 응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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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시의 정치성에 대한 논의가 문단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선배 시인이 살아온 폭력의 시대가 끈질기게 살아남아 지금 이 순간 다시 활개를 치고 있다. 그 속에서 시인은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어떤 글을 써야하는가. 이런 의문과 고민이 최근 시의 정치성이 담고 있는 논리의 핵심일 것이다.

1992, 그는 말한다. “사회성과 서정성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것, 정확히 말해 그것이 나의 관심사는 아니다. 내게 시의 문제는 사회적 서정의 수준을 높이는 문제다.” 그렇다 시의 문제는 사회와 서정의 관계를 고민하고 주저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정치와의 지난하고 다소 복잡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젊은 시인들에게 답안을 제시한다.

시의 문제에 답은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시대는 호락호락하게 시에게 정답을 알려주지 않아왔다. 그러니 우리의 고민은 시가 정치와 사회에 다가갈 방법을 강구하는 지점에 머무르면 안 되겠다. ‘사회적 서정의 수준을 높이기 위한 시를 쓰고 있는가 하는 근본적 질문에서 다시 시작해야겠다. 1980년대에서 2010년에 이르기까지 사회적 서정의 수준은 얼마나 높아졌는가. 제자리걸음이라면, 그것은 시인의 잘못은 아닌가.

김정환 시인은 치열한 글쟁이의 삶을 놓지 않으면서 동시에 왕성한 활동가로서의 시간을 달려왔다. 문화운동을 펼치며 조직의 기반을 잡았다. 시를 쓰고 소설과 희곡도 창작했다. 클래식에 관한 놀랍도록 방대하고 치밀한 책을 세상에 내놓았으며, 동료 후배 시인들과 밤새 술 마시기를 즐긴다. 그는 동네에 흔한 인상 좋은 어르신으로 보이다가, 날카롭고 뜨거운 지식인의 풍모를 보이기도 한다. 그의 삶과 그의 문학은 그렇게 카오스를 일으키며 아직도 그를 단단한 시인으로 존재케 하는 것 같아 보인다.

요즈음 시인은 겁이 많다. 겁을 내며 쓴다. 사회의 악독함이, 그 끈질김이 두렵기 때문이다. 이때 버팀목이 되어 줄 어른이 필요하다. 시인의 시를 손잡이 삼아 사막을 가로지른다.

단단한 언어가 시대를 지킬 것이다. 단단한 시인이 사막을 건널 것이다.

 

서시

 

그대는 살과 뼈와 피비린 인간의 모습.

인간됨의 사장 비참한 모습.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그대는 하늘 그냥 늘 푸른 하늘일 뿐

그대 못박힌 손발의 상처에

갈수록 아픔이 생생한 살이 돋는 사랑을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그대도 어쩔 수 없다, 사랑의 힘은 그대를 다시 태어나게 하고

우리가 그대의 사랑을 확인할 때

(그것은 항상 너무 늦었을 때)

그대가 확인하는 것은 우리의 돌아선 뒷모습.

그것은 그대의 위대한 슬픔

그대는 슬픔의 시공을 초월하여 있으나

처절함 비참 속에 더욱 처절하게 있어

625 전쟁이나

죽창, 도끼, 학살, 참상의 끝.

세상이 그대를 버릴지라도

그대는 어쩔 수 없다 버리지 못하고

그대의 가슴은 그대를 버림까지 품고 있으니

그대의 거대한 포옹 속에서

그대를 버린 사람들은 가시처럼 그대를 찌른다

그대 육신의 가슴을 찢어져라 찌른다

그러나 그대는 바로 찢어질 수 없는

깜깜한 사랑의 힘

그 자체,

언젠가 손끝, 발끝, 황홀한 마주침같이

입맞춤같이, 아주 가까운 귓전의 입김소리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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