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와 시] 청춘을 타전함 -안현미 시집 『곰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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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을 타전함 -안현미 시집 『곰곰』

글 서효인 humanlover@naver.com





청춘의 시기에 우리는 민주주의를 논하고, 인권과 평등을 생각해야 한다. 젊은이라면 무릇 더 나은 사회를 바라고, 더 좋은 공동체를 꿈꾸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외면하고 싶은 일이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우리’ 혹은 ‘타자’와의 만남에 고개를 돌리고 있다. 강이 파헤쳐지는 모습이나 제주 해안의 수만 년 된 바위가 파괴되는 일은 결코 ‘나의 일’이 아니다. 용산에서 사람이 불에 타 죽어도, 쌍용차 해고 노동자가 22명 죽었어도, 우리들 청춘은 ‘나만 아니면’ 된다. 무섭지 않은가. 나는 무섭다.

우리는 사회 시스템에 의해 심하게 휘둘렸다. 1970~80년대에 태어나서 IMF를 축으로 성인이 된 자들은 살아남는 것이 가장 윤리적인 일이었고, 살아남기 위해 내 모두를 바칠 준비가 되어있는 세대였다. 가장 즐겨보는 TV 프로그램에서는 복불복이 성행하고, 사소한 게임으로 기본적인 권리를 빼앗고, 우리는 그것을 보고 웃으며 즐긴다. 나만 아니면 된다며 소리를 지르고 눈을 부라리며 역시 우리는 그것을 보고 낄낄거린다. 그러는 사이에 주위 곳곳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아픔에는 눈을 감을 줄 알게 되었다. 그건 청춘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안현미 시인의 첫 번째 시집 『곰곰』에는 살아남으려는 청춘의 고민이 가득하다. 청춘은 고뇌하고 동시에 몸부림친다. 잘 살기 위하여, 혹은 제대로 살기 위해서 그렇다. 둘은 양립불가능한가. 잘 사는 일은 옳게 사는 일을 버려야 가능한가. 혹은 잘 사는 것이 곧 옳은 것인가. 이런 고민은 결국 시로 화했다. 이런 고민은 종래 거짓말일 테지만, 아름다운 거짓일 것이다. 아름다움은 때로는 그 자체로 진실이 되기도 한다. 아래의 시는 그런 진실을 품고 있다.


거짓말을 타전하다

  여상을 졸업하고 더듬이가 긴 곤충들과 아현동 산동네에 살았다 고아는 아니었지만 고아 같았다 사무원으로 산다는 건 한 달치의 방과 한 달치의 쌀이었다 그렇게 꽃다운 청춘을 팔면서 살았다 꽃다운 청춘을 팔면서도 슬프지 않았다 가끔 대학생이 된 친구들을 만나면 말을 더듬었지만 등록금이 없어 학교에 가지 못하던 날들은 이미 과거였다 고아는 아니었지만 고아 같았다 비키니 옷장 속에서 더듬이가 긴 곤충들이 출몰할 때도 말을 더듬었다 우우, 우, 우 일요일엔 산 아래 아현동 시장에서 혼자 순대국밥을 먹었다 순대국밥 아주머니는 왜 혼자냐고 한 번도 묻지 않았다 그래서 고마웠다 고아는 아니었지만 고아 같았다
  여상을 졸업하고 높은 빌딩으로 출근했지만 높은 건 내가 아니었다 높은 건 내가 아니라는 걸 깨닫는 데 꽃다운 청춘을 바쳤다 억울하진 않았다 불 꺼진 방에서 더듬이가 긴 곤충들이 나 대신 잘 살고 있었다 빛을 싫어하는 것 빼곤 더듬이가 긴 곤충들은 나와 비슷했다 가족은 아니었지만 가족 같았다 불 꺼진 방 번개탄을 피울 때마다 눈이 시렸다 가끔 70년대처럼 연탄가스 중독으로 죽고 싶었지만 더듬더듬 더듬이가 긴 곤충들이 내 이마를 더듬었다 우우, 우, 우 가족은 아니었지만 가족 같았다 꽃다운 청춘이었지만 벌레 같았다 벌레가 된 사내를 아현동 헌책방에서 만난 건 생의 꼭 한 번은 있다는 행운 같았다 그 후로 나는 더듬이가 긴 곤충들과 진짜 가족이 되었다 꽃다운 청춘을 바쳐 벌레가 되었다 불 꺼진 방에서 우우, 우, 우 거짓말을 타전하기 시작했다 더듬더듬, 거짓말 같은 시를!



등록금에 관련된 이슈에는 관심을 보이면서 사람이 죽어나가는 파업 현장에는 냉소를 보이는 사람의 내면에는 생존에 대한 욕구가 있을 것이다. 살아남는 것이 화두가 된 시대는 하루 이틀이 아니다. 긴 시간 1%를 위한 시스템에서 살아간 경험이 DNA처럼 남은 것이 아닐까. 나보다 잘난 사람을 보며 자신을 반성하고, 나보다 못난 사람을 보며 힐난하는 것은 더 이상 숨길 일도 아니게 되었다. 이제 세계의 모든 기준은 ‘나’이다. 정치 또한 나에게 있어 절실할 때 필요한 것이며 그러므로 선거 또한 나에게 필요할 때 할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선거를 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나의 직접적인 생계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그리하여 청춘의 DNA에는 참혹하게도, 선거를 하지 않는 유전자가 끼어들어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생존을 위해 눈치를 살피는 고아가 되었다. “고아는 아니었지만 고아 같은” 세대인 것이다. 죽지 않기 위해서 부지런해야 하고,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시간을 쪼개 써야 한다. 나의 스펙은 수치로 계량화되고, 나의 등급은 어지간해서 위로 올라가지 않는다. 반면 추락은 쉽다. 언제든 신용불량자가 될 수 있고 언제든 실업자가 될 수 있으며 사찰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사회는 정글이다. 우리는 고아다. 짐승이다. 우리를 탓할 수 있는가. 20~30대의 정치무관심을 탓할 수 있는가 말이다. 우리는 모두 발육부진이다. 오래된 일이다. 아래의 시처럼.


종이 피아노

  문방구집 아이가 피아노 가방을 들고 담쟁이덩굴 속으로 들어간다 나는 막다른 골목 다다미방에서 아이의 피아노 소리를 듣는 아이다 하얀 건반 위를 달리며 콩콩 뛰어다니는 문방구집 아이의 과외 시간 ‘파레스’ 주방으로 일하러 간 엄마는 매일 새벽에나 돌아올 것이므로 아이는 무섭다 피아노 소리가 담쟁이덩굴을 저렇게 무성하게 키우는 걸까, 발육 부진의 아이는 음악책을 꺼내놓고 누런 갱지 위에 피아노 건반을 그린다 도레미파솔라시도 도시라솔파미레도 검은 건반까지 꼼꼼히 그려 넣어도 시간은 더디 가고, 무서운 아이의 머릿속에선 레이스가 달린 하얀 드레스를 입은 아이가 아무도 모르는 곡을 연주하기 시작하면 엄마는 안 오시고, 못 오시고 엄마 대신 팬케익을 굽는 피아노 소리 따라라 라라 따라 아이는 담쟁이덩굴보다 높이 올라가 팬케익 같은 노란 태양을 따려는데 느닷없이 종이 피아노 현이 뚝,

  문방구집 아이가 피아노 가방을 들고 담쟁이덩굴 밖으로 뛰어간다 종이 피아노에선 더 이상 피아노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엄마는 새벽에나 돌아올 것이다 다다미방에서 발육 부진의 아이는 고장난 생을 살 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생을 살아가야 한다.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것이다. 세상에 던져진 이상 너와 나는 같이 사는 것이다. 많은 청춘은 이 사실을 간과하지 않을 것이다. 45%가 선거에 참여하지 않고 이번 총선은 지나갔다. 많은 선배들이 아스팔트 위의 전쟁을 견디며 성취한 민주화의 꽃이 선거다. 우리는 그 꽃이 예쁘지 않다 한다. 쳐다보지도 않는다. 우리의 삶이 그렇다. 이 땅의 구조가 우리를 그렇게 만들었고, 부끄럽게도 순응했다. 하지만 우리는 스스로를 변혁시켜야 할 것이다. 삶의 투표는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담쟁이덩굴 바깥으로 기어코 나갈 것이다.

아프니까 청춘인 것이 아니다. 아프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기 때문에 청춘인 것이다. 나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한 스펙의 시대에서 치유는 실패로 귀결된다. 우리는 벌레가 되었지만, 서로에게 가족 같은 벌레가 되어야 한다. 아현동 헌책방의 사내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갱지의 피아노를 그리고 소리를 내어 연주를 한다. 당신을 부르는 소리가 아닐까. 선거는 계속된다. 청춘에 의한 청춘에 대한 투쟁은 계속될 것이다. 청춘과 청춘이 ‘곰곰’ 싸운다. 거짓말처럼, 다시 실패의 토대에서 기적을 생각하는 2012년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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