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와 시

[시대와 시] 슬픔을 길어 올려, 지금 다시 광주로 -임동확 <매장시편>

슬픔을 길어 올려, 지금 다시 광주로 - 임동확 『매장시편』 


글 서효인 시인/ humanlover@naver.com



아우슈비츠 이후로 서정시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우리에게는 아마도 1980년 5월 이후가 그러했을 것이다. 하필 5월 광주에서 젊은 시절을 보내고, 5월의 남도에서 언어를 습득했으며, 5월의 한반도에서 삶을 지속시킨 많은 사람은 죄의식과 패배감의 등짐을 꾸려야 했다. 우연히 그곳에 없어서 목숨을 부지한 사람이 많았다. 그곳에 있었지만 용기가 없어 산 자가 된 사람도 있었다. 그곳에 있어서 죽은 자를 목도해야만 했던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누구인가. 그렇다. 그들은 바로 우리이다. 5월 죽음을 비켜난 우리 모두 죄인이어야 했고, 그래서 우리는 분과 아픔과 슬픔을 삭이고 말했던 것이다. 나는, 너다. 

임동확 시인은 80년 광주에서 20대 초반을 보내고 있었다. 그가 다니던 학교의 정문에서 국가의 잔혹한 폭력은 시작되었고, 곧이어 특수부대가 대학생과 시민을 상대하기 위해 도시로 몰려들었다. 어쩌면 시작하기도 전에 싸움의 귀결은 결정되었을지도 모른다. 시민은 시민이지 군인이 아니었다.
잠시 도시 바깥으로 빠져나가 전열을 정비한 군사 독재의 수하들은 도시를 고립시켰고, 외곽에서 사람들을 죽였으며 다시 도시로 들어왔다. 그리하여 “마침내 우리가 쓰러지고 죽어 가”야 하는 상황을 만들어냈다. 그 쓰러짐과 죽음이 민주화의 승리였음을 그들은 알지 못했다. 알 수 없었다.
피로 물든 희생제의에 시인은 무참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국가의 군대가 시민을 상대로 발포한 총알에 시인은 몸을 숨겼을 것이고, 그곳에서 죽은 이들에게 고개를 들 수가 없었을 것이다. 봄날의 죽음 앞에서 그에게는 “꿈꾸는 것과 침묵하는 일만” 남았을 것이다. ‘무효’라고 선언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가 쓴 일기를 살펴보자.

10 그날의 일기

오늘은 우리가 졌다고 하고
어느 날쯤 어딘가에 램프라도 켜 두었다고 하자
마침내 우리가 쓰러지고 죽어 가
아픈 기억만 남았을 때
길고 오랜 싸움에 지쳐 외로울 때
흐르는 강물 마른 갈대숲에
다소곳이 누워 보기라도 하자
어차피 돌고 도는 세상의 승패에 대하여
역사에 대하여
꿈꾸는 것과 침묵하는 일만 남았다고 써 두자
풀잎 같은 이 목숨
풀잎처럼 작고 쓰린 환한 미래를 위하여
올바른 증오를 위하여
언젠가 착한 소녀가 울며 기도하고
용서받을 수 있는 고해소가 있는 나라를 생각해 두자
내 땅의 이웃들이 서로 미워하고
헐뜯고 꼬집으며 살아온 모든 비애와 슬픔이
모두 우리들 운명이라 해 두자
아무도 이날의 뜨거움과 분노를
그날의 죽음과 함성을 못 잊는다고 해 두자
서로가 서로의 증인이 되어
가고자 하는 길은 하나이고
그 길은 바뀔 수도 없었다고
멈출 수도 없는 것이라고 다짐해 두자
기다림과 그리움이 전부인 내 나라
보리죽만 먹던 서러운 하늘에 서서
오늘은 졌다고 하고
오늘은 아무것도 안 보았다 하자
그대여, 오늘은 무효라고 해 두자


시인의 말대로 80년 광주를 지나온 이들에게 비애와 슬픔은 하나의 거대한 운명이다. 어찌 “이날의 뜨거움과 분노”를, “그날의 죽음과 함성” 잊을 수 있겠는가. 임동확 시인의『매장시편』은 매장된 기억과 분노와 슬픔과 함성을 다시 소환하는 작업이다. 매장된 다짐을 시를 통해 기어코 파내는 시집이다. 그는 20대를 매장하여 80년대를 소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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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시편』은 광주의 비극성을 신화적 상상력과 젊은이의 체험을 겹쳐 풀어놓는다. 광주를 짓밟은 독재의 그림자와 대대적인 폭력은 신성 모독이다. 광주에서의 체험은 삶의 지침이 되고 바이블이 된다. 피로 물든 산 교과서가 완성된 것이다. 그것은 책으로 존재하는 교재가 아니다. 무등산, 도청, 금남로, 망월동, 상무대 모두가 시의 근거지가 된다. 그는 근거지에서 최대한 투쟁하면서 일상어로 시를 쓴다. 감정의 객관화가 이루어지고 객관화된 시어가 광주를 소환한다. 감정의 배설이 아닌 감정의 재현이 가능한 이유다. 시인은 금남로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금남로에 서서 시를 쓰는 것이다.

7 금남로에 서서

그대와의 결별을 선언할 땐 그랬습니다
다시 피 흘리는 전쟁이 죽기보다 싫어
기다림과 그리움으로 채워진 조국의 밤이 너무도 고되고 길어
아, 이제는 피비린내 가득한 거리를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그 후 나는 석삼년 동안을 군대 생활로 메웠습니다
그럭저럭 복학해 뒷전에 물러나 일 년을 보내다가
그것마저 포기하고 해남 대흥사 암자에 은거하다가
어느덧 9년 만에 대학 졸업장마저 손에 쥐었습니다

나를 그토록 초라하게 만든 도시,
스스로 일어서야 했던 거센 운명의 싸움터
그곳에 서서 그대들에게 묻습니다
우리는 그때 사랑의 전부를 보지 않았던가요
우리는 또한 사랑의 최후를 목격했던 것 아닌가요

그러나 섣불리 우리들의 과거와 미래를 단정해선 안 됩니다
우리의 싸움은 현재 분명히 진행 중에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사랑은 싸움의 시작이고
싸움의 완성임을 이제사 깨닫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길은 그대와 내가 다시 만나는 길입니다
그 길은 그대와 내가 스스로를 이기는 길이기도 합니다
모든 억압과 억지와 자존심과 이별하고
물빛 맑은 가을 강의 달맞이꽃으로 피어나는 길입니다
한 번쯤 소중한 자신을 위해 눈물 흘리는 길이기도 합니다

모두에게 그 길은 일방적인 생사(生死)의 통로였으며
오욕이었으며 유보된 큰 희망의 거점이었습니다
모두에게 그 길은 아름답고 자발적인 익명의 길이었으며
기쁨이었으며 동시에 거대한 죽음의 바다였습니다

나에게 구속과 해방의 경계를 체험케 해 준 도시
나에게 사랑의 쓰고 단 열매를 깨물게 해 준 도시
나의 감시자여; 모두가 주인이 된 거리의 시가행진을 기억합니다
그날의 궐기대회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음을 믿고 있습니다
아무도지지 않은 채 푸른 은행나무 이파리로 흔들리고 있음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시는 증언과 기록이 될 수 없다. 시는 명확한 지향점이어야 하고, 인식의 확장이어야 한다. 5월 광주를 다룬 많은 시 중 많은 경우, 치솟는 감정 속에 갇히고는 했다. 어쩔 수 없는 시기였다. 그것 또한 시로의 가치가 살아있을 것이다. 하지만 싸움은 끝나지 않았고, 혁명은 싸움을 전제로 한다. 광주의 기억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기 위해서 시는 감정 바깥으로 빠져나와 언어 예술로 기능한다. 『매장시편』이 5월시의 올곧은 역할을 다하는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에게 구속과 해방의 경계를 체험케 해 준 도시 / 나에게 사랑의 쓰고 단 열매를 깨물게 해 준 도시”는 어디인가. 시를 읽은 사람은 알 것이다. 그곳은 이제 더 이상 광주가 아니다. 한 젊은이는 신화적 상상력으로 비극과 포옹했고, 그리하여 새삼 모든 곳이 광주가 됨을 2012년 5월에 느낀다. 당신이 좌절하고 있다면, 좌절의 밑바닥에서 매장된 분노를 길어 올린 임동확의 『매장시편』을 읽어보길 권한다.

우리는 아무도, 지지 않았다.
아직, 여태, 지금껏, 우린 광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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