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와 시] 미친 춤의 시대 -김혜순 『나의 우파니샤드,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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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춤의 시대
-김혜순 『나의 우파니샤드, 서울』

글 서효인 humanlover@naver.com




댄스나 율동이 아닌 ‘춤’은 원래 제의적 성격을 지니고 있고 무의식이 춤의 동작을 결정한다. 1990년대 서울은 춤을 추고 있었던 것 같다. 개발 광풍이 서울 안에서 바깥으로 거대한 몸을 이동시키고, 부동산 시장은 계속해서 새로운 부자를 임명했다. 세기말적 분위기에 젊은이들은 조증과 울증을 반복했으며, 공산주의가 몰락하고 일본문화가 스며들었다. 군사정권이 우여곡절 끝에 정권을 내놓았고, TV에서는 세계화를 부르짖으며 당신의 경쟁상대는 누구냐고 자꾸 물었다. 그때부터였을까, 우리의 미친 경쟁은.

김혜순 시집 『나의 우파니샤드, 서울』은 긴 춤과 같다. 1994년에 출간된 시집은 시대적 감수성에 바투 붙은 시인의 필력을 느낄 수 있다. 김혜순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상하다. 요즘은 노스탤지어가 아니면 유토피아다.” 그렇다. 1990년대 우리는 노스탤지어 또는 유토피아로 도망쳤다. 도망하는 모습 또한 흐물흐물 힘이 없었다. 연령을 가리지 않고 술에 취해 있었고, 시대와 시대가 만나 바통을 터치하는 모습을 멀겋게 지켜보기만 했다. 당신의 경쟁상대를 묻던 TV는 곧 힘주어 우리를 이렇게 다그쳤다.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트렸다.”

실제로 여기저기에 샴페인과 폭죽은 터졌다. 히트하는 음반은 100만장은 우습게 팔려나갔고, 국민적 베스트셀러도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모두가 미친 춤을 추는 사이 이면에서 더욱 곪아가는 상처는 알면서도 모른 척 했다. 한때 분신정국을 이끌었던 대학 운동권은 연세대학교에 갇혀 곤봉에 의해 거의 궤멸했다. 샴페인과 폭죽의 기저를 지탱하는 사람들의 삶은 계속해서 팍팍했으나, 괜찮았다. 서울의 밤은 화려했으니까. 화려한 조명에 눈이 부신 우리는 춤 동작에 엄연히 묻어 있는 정념을 보지 못한다.

시대의 언술이 되는 시를 곱씹어보면 알 수 있다. 우리는 그때 무엇을 어떻게 살았는가. 왜 이렇게 살아남았는지를. 김혜순이 펼쳐놓은 콘크리트의 전경화를 살펴본다. 미친 춤을 추는 시대의 발바닥이 거기에 있다.


서울의 밤

김혜순

몇 개의 산맥을 타넘어야
네게 이를 수 있니
불개미 한 마리가
플라스틱 장미 꽃잎을
한잎 한잎 타 넘어가고 있다

몇십 개의 계단을 올라야
잠든 너를 깨울 수 있니
저 혼자 불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온몸으로 두근거리는 내가
잠든 너의 몸 속을
한밤중 소리도 없이 오르고 있다

어떻게 등불을 빨아먹을 수 있니
나방이 한 마리
혓바닥을 바늘처럼 곤두세우고
한밤내 가로등을 찔러보고 있다



시에서 ‘불개미’는 실제 꽃이 자연스럽게 피어 있는 흙을 걷지 못한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조화 위를 걸을 뿐이다. ‘나’는 불개미의 일부일 것이다. ‘너’에게 가기 위해 “불개미가 플라스틱 장미 꽃잎을 한잎 한잎 타 넘”어 가듯이, 엘리베이터를 탄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우리가 가는 곳에 당신은 있을까. 거기에는 두근거리는 나의 마음만 덩그러니 있을 가능성이 크다. 등불 하나를 두고 미친 춤을 추는 나방처럼, 그때 우리는 어떤 욕망을 향해 두서없는 발걸음을 옮겼다.

밤을 통째로 보내고 죽은 나방처럼, 기진맥진해질 때까지 우리의 춤은 멈추지 않았다. 어쩌면 그것은 꿈이었는지 모른다. (형식적으로)완결된 민주주의, (기형적으로)발전한 경제……. 사람들은 1980년대를 일찍 털어내려고 했다. 잊어버리고자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 경쾌하게 스텝을 밟았다. 발바닥에 상처가 터져나가고, 고름이 터져서 양말을 적시는 것도 우리는 몰랐다. 몰라야 했다. 모르고 싶었다. 이건 꿈이니까, 꿈같은 시절이니까 괜찮았다. 다만, 깊은 잠을 자고 난 후, 새벽이 되어서야, 단말마를 지르며 일어났을 뿐이다. 그건 악몽에 가까웠다.


서울의 새벽

새벽, 잠속으로 봉고차가 한 대
전속력으로 달려 들어온다
眼球가 큰 소리를 내며 파열된다
은행나무 잎이 한꺼번에 다 쏟아진다
봉고차에서 갓난아이를 업고 얼굴을 반쯤 가린
세수수건 쓴 여자가 제일 먼저 내린다
(업힌 아긴 그 여자의 아이가 아니다)
두 다리에 고무타이어를 잘라 붙인 남자가 내린다
(고무타이어 봉지 속엔 잘생긴 두 다리가 접혀져 들어있다)
얼굴에 검댕칠을 한 한쪽 팔 없는 아이와
그보다 작은 아이가 내린다
그 아이 둘이 더 먼 지하도에 부려진다
(그들은 형제가 아니다)
(꿈나라에도 그 나라 나름의 입력된 기정 사실이란 것이 있어
꿈속의 나도 알 건 다 안다)
봉고차에서 자꾸자꾸 거지들이 내린다
지하도에 거지들이 꽉 찬다
징징거린다 식식거린다 더듬거린다 기어간다 뒤집는다
예수를 믿으시오 천국이 가까웠어요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가 옆구리의 포대기에서
서양 아기들의 사진을 꺼낸다
엎드린다 아이를 울린다 없는 다리를 내뻗는다 상처를 뒤적인다
달리는 지하철 위를 맹인 부부가 서로 붙잡고 지나간다
(그들은 부부가 아니다)

다 꾸지 못했나, 꿈속 그림이 자꾸 되풀이된다
줄 선 가로수들이 바람도 안 부는데 부러지기도 한다
출근의 태엽을 감기도 전에
파열된 안구에 하루치 바스콘 렌즈를 얹기도 전에
망가진 자동인형들이 지하로 먼저 내려간다
나보다 먼저 내 이불을 젖힌 그들이
손바닥 대신 입 벌린 바구니를
태양보다 먼저 아귀굴 속에 벌린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누군가의 아기가 아니고, 당신과 형제도 아니다. 그리고 속도를 높이는 봉고차에 함께 올라, 아무런 곳에나 부려지는 짐짝이 되었다. 지하도에 가득 차서, ‘징징거리고 식식거리고, 더듬거리고. 뒤집는다.’ 이것이 춤이 아니고 무엇이랴. 이런 춤이 미친 춤이 아니고 무엇이겠나.

춤은 곧 끝나기 마련이다. 그림형제는 춤을 멈추지 않는 소녀에게 발목이 잘리는 형벌을 이야기로 주었다. 우리의 춤도 멈췄다. 광란의 파티가 끝나고, IMF가 터졌고 우리는 그전 속도에 가속을 덧붙여, 신자유주의 물결에 합류한다. 이런 반강제적인 방향 설정은 우리에게 더 이상 춤의 공간을 허용하지 않았으며, 미치지 않고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 것을 강요했다. 대신, 국가 권력이 제대로 미치기 시작한 것이다.
시인 김혜순은 말한다.

“나는 내 욕망을 벼르고 별러 타인(그대)들의 욕망에 구멍을 내보고 싶었다. 아. 욕망의 총체 서울의 콘크리트 심장에 나의 언술의 길을 내보고 싶었다.”
욕망의 끝이다. 미친 춤이 끝나고, 시간이 흘렀다. 2012년이다. 콘크리트 심장을 가진 사람들이 질서정연한 군무를 춘다. 사람이 아닌, 그저 세상 자체가 미친 것도 같다. 그래서 우린 여태 시를 읽는다. 시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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