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홀로코스트’ 노근리사건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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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홀로코스트’ 노근리사건을 아시나요
정구도 이사장 “노근리를 세계적인 인권, 평화, 민주주의 교육의 장으로”

글 김남희 / knh08@kdemo.or.kr

상처는 아물어도 흉터는 남아 기억됩니다. 한국전쟁 초기인 1950년 7월의 노근리는 한국 현대사의 뼈아픈 상처이자 지울 수 없는 큰 흉터로 남아 있습니다. 노근리사건은 1950년 7월 25일부터 29일까지 5일 동안 충청북도 영동군 노근리 일대에서 미 공군기에 의한 공중폭격과 미 육군의 무차별적인 기관총과 소총 사격에 의해 수백 명의 무고한 피난민들이 희생된 사건입니다. 이 사건 당시 살아남은 생존피해자와 유족들은 사건의 진실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반세기가 넘게 투쟁해야 했습니다. 이는 역사적 진실규명 및 인권회복 운동이었지요.

그 덕분에 노근리사건은 1999년 9월 말, AP를 시작으로  ABC, NBC, BBC, ARD 등 세계 유수의 방송과 뉴욕타임즈, 워싱턴포스트 등 유력 신문들에 의해 보도되었고 마침내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세계 여론이 들끓자 한미 양국은 1년 3개월간 진상조사를 했고, 2001년 1월 마침내 당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유감표명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이는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한 후 130년이 넘는 한미관계사에서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고, 인권사 측면에서도 매우 의미 있는 성과로 꼽힙니다.  

이 일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일이 결코 아닙니다. 어려운 시대적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물밑에서 오랜 세월 준비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투쟁의 중심에는 대를 이어 헌신한 노근리사건 희생자유족회 정은용 회장과 그의 아들인 정구도 노근리국제평화재단 이사장이 있습니다. 정구도 이사장은 노근리사건의 진실을 국민에게 바르게 알리고,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들에게 전쟁의 무서움과 아픔을 알리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사건이 일어났던 쌍굴 인근에 위치한 ‘노근리평화공원’을 인권신장 및 세계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 역사의 산 교육장으로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 개인적으로 어떤 특별한 사명감에서 시작하셨고 계속 해오고 있는지요.
“노근리사건 생존피해자분들을 만나면 만날수록, 아무리 전쟁 중이라 할지라도 너무도 천부의 인권이 무시되고 잔혹하게 유린당했다는 사실을 더욱 절감하게 됐습니다. 또 한국전쟁 당시 노근리사건 말고도 또 다른 인권침해사건들이 많았다는 사실을 접하면서 큰 충격을 받았고요.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여러 나라에서의 내전으로 인한 민간인 희생, 러시아에 의한 체첸 유혈사태, 이라크전쟁 보도를 보면서 노근리사건과 유사한 인권침해사건들이 전 세계적으로 매우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노근리사건은 인권과 평화차원에서 대표성과 상징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노근리사건 진실규명과 해결을 통해 유사한 인권침해사건들의 발생을 최소화하고, 인권 및 평화증진을 위해 미력이나마 기여하는 것을 인생의 미션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아버님이 일종의 멘토이셨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어린 시절 기억에 남는 아버지의 모습이 있다면요. 
“부친은 군부독재가 한창이던 1970년대 후반에 노근리사건에 관한 중편소설 ‘『버림받는 사람들』을 발표했습니다. 그 당시의 상황이 문학적인 방법 말고는 노근리사건을 감히 말할 수 없었던 시대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제가 노근리 일을 처음으로 시작한 때는 22년 전인 1991년도 봄이었습니다. 당시는 6공화국 시절이었는데 부친께서는 중편소설에 이어 노근리사건에 관한 장편 실화소설을 집필하고 계셨습니다. 이미 연세가 70세인 고령의 나이에 글 쓰는 일로 고생하시는 부친이 너무도 안쓰러워서 부친의 집필 작업을 돕기로 결심했지요. 그래서 부친의 집필 작업을 위해서 참고자료를 구해드리고 글을 퇴고도 해드리고 종종 토론도 하곤 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전쟁, 그리고 한국의 근현대사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역사의 후면에 감추어져 있는 노근리사건의 진실이 역사적 사실(史實)로 인정받게 하여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 노근리사건을 알리는 과정도 험난했을 텐데요. 
“부친의 소설 출간만으로는 사건 해결이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서 1994년부터 4년 넘게 노근리사건을 국내외 언론기관에 홍보하는 일에 집중했습니다. 그 당시에 접촉했던 기자분들만 100명은 족히 될 것 같네요. 또한 사건 해결은 말로만 될 일이 아니라서 국내외에서 증거가 될 만한 문서자료 특히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의 소장 문서들을 발굴해서 노근리사건 등에 대한 역사학 논문 및 국제법 논문 등 10여편의 논문과 책들을 발표하는 등 약 10년간 학문연구에 매진하기도 했습니다.
노근리사건유족회는 한미 양국의 노근리사건 진상조사가 종료된 후에는 ‘노근리사건희생자 심사 및 명예회복에 대한 특별법’을 제정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습니다. 마침내 2년 넘게 특별법 제정을 위해 끈질기게 땀 흘린 덕분에 특별법이 2004년 2월, 국회에서 통과되었습니다. 이 특별법에 근거해서 노근리사건 현장 일대 4만평 부지에 희생자 추모사업의 일환으로 2011년 말에 노근리평화공원이 완공됐고, 공원 내에는 희생자추모탑, 노근리평화기념관, 교육관, 다양한 시설들이 들어섰습니다. 그러니까 노근리사건이 발생했던 바로 그 비극적인 장소가 이제 평화와 인권의 중요성을 가르치는 교육의 장으로 승화된 것입니다.”

▲ 당시 국내외 언론의 주목도 컸지요.
“노근리사건을 탐사보도했던 AP의 기자들은 저명한 언론상인 ‘퓰리처상’을 수상하고, 국내에서는 문화일보 및 경향신문 기자, MBC PD 등이 노근리사건 보도로 ‘이달의 기자상’과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상’을 수상했습니다. 이것만 보더라도 인권차원에서의 노근리사건이 지니고 있는 가치를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 영화나 소설 등 대중매체의 관심도 뜨겁습니다.
“수년전부터 국내외에서 여러 학자, 예술가 등 각계각층의 전문가들이 노근리사건에 깊은 관심을 표명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에서는 노근리사건을 주제로 한 박사학위 논문 두 편이 발표되었고, 유명 작가들이 네 편의 소설을, 그리고 미 육사 교수와 학자들이 다양한 다큐멘터리 책들과 논문집을 출간했습니다.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등에서도 노근리사건을 주제로 한 만화와 소설 등이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한국에서도 노근리사건을 주제로 한 영화 ‘작은 연못’이 유명 영화제작사의 투자로 제작, 상영되기도 했습니다. 이제 ‘노근리’라는 이름은 국내외에서 명실 공히 평화와 인권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 재단의 역점 사업은 무엇인가요.
“노근리평화공원이 국내외적으로 더욱 더 널리 알려지고 인권, 평화, 민주주의의 가치를 배우는 교육의 장(場)으로 적극 활용되는 것입니다. 저희 공원이 개원한지 1년 남짓 한데 벌써 많은 분들이 방문하고 있습니다. 금년 들어 매월 8-9천명이 다녀가고 있어서 금년 방문객 연간목표 10만 명을 훨씬 상회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작년에는 유럽, 아시아, 중남미, 아프리카 등지의 21개국 외교관을 비롯해서 30여 개국의 외국인들도 저희 공원을 방문했습니다. 내년 말까지는 적어도 80개국 이상의 관람객이 노근리평화공원을 다녀갈 것으로 예상합니다. 특히 웬만한 연수원보다 시설이 훌륭한 교육관을 활용해서 국내외의 여러 단체들, 초중고생, 대학생을 대상으로 인권, 평화, 민주시민교육을 적극 실시하고자 합니다.”

▲ 평화를 주제로 한 국제 컨퍼런스 등 세계적인 행사들도 준비하고 계시지요.
“2014년 9월말로 예정되어 있는 세계 평화박물관 국제기구인 INMP(International Network of Museums for Peace) 제8차 컨퍼런스 및 총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시아 국가로서는 일본에 이어 2번째로 유치한 국제행사인데 세계 각국의 인권 및 평화연구자, 평화박물관장, 평화운동가들이 참여하는 의미 있는 행사입니다. 이 행사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중앙정부, 충청북도, 영동군 등에 지원을 건의하고 협의하고 있는데 예산지원 등 여건이 마련되면 ‘노근리세계평화대제전’으로 확대 개최하려고 합니다. 한국은 아직도 분단국가이고, 최근 북핵문제 등으로 전쟁 위험이 높아져서 평화가 더욱 더 소중한 땅이지요. 그렇기에 한국이 인권, 평화,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는 나라로서 세계인들의 가슴에 새겨지기를 나아가 동북아 및 세계평화에 기여하고 한국의 국격(國格)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염원해 봅니다.”

▲ 아직도 풀어야할 숙제가 남아있는지요.
“노근리사건에 대해서 미국정부로부터 아직 배상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매우 안타깝고 유감입니다. 가까운 시일 내에 이 문제 역시 말끔히 해결되어 미국이 존중하는 인권의 가치가 세계인들에게 확인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비가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 는 속담처럼 한미 우호관계가 더욱더 증진되기를 기원합니다.

▲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한미양국 국민은 노근리사건이 한국의 아픈 현대사이자 미국의 부끄러운 현대사임을 분명하게 기억해야합니다. ‘망각은 망국(亡國)에 이르고, 기억은 구원(救援)에 이른다.’는 글귀가 있습니다. 이 글귀는 우리 한국처럼 수난의 역사를 살았던 유태인들이 좋아하는 글귀라고 하는데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큽니다. 제2, 제3의 노근리사건이 세계 역사 속에 다시는 재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가 노근리사건에서 배워야 할 역사적 교훈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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