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 사람들] 난민 마웅저가 꿈꾸는 버마의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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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마웅저가 꿈꾸는 버마의 희망
난민 지위 포기 최초 사례…“버마 평화를 위하여” 


글 김남희/ 
knh08@kdemo.or.kr

 

 

한국과 버마(미얀마)의 청소년‧시민사회를 이어주는 평화의 가교 역할을 한, 시민사회단체 ‘따비에’의 마웅저(45) 대표가 20년 만에 본국으로 돌아간다. 그의 이러한 결단은 국내 난민 지위 반납의 첫 사례로 남게 됐다.

   

“‘2~3년 만에 돌아가리라’ 마음먹고 몸도 마음도 준비해왔지만, 벌써 20년이 흘렀어요. 버마가 어떤 상황인지, 돌아가도 괜찮은 것인지 걱정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버마의 상황을 한국역사와 비교하면, 지금은 노태우 정권 시절 정도라고 말할 수 있어요. 시민들이 20년 넘게 민주화를 위해 열심히 싸웠고, 이제는 김영삼, 김대중 시대로 만들어 가는 중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버마 시민들과 함께 하고 싶어요.”

 


마지막 인사를 위해 지난 11월 29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를 찾은 마웅저씨가 담담하면서도 당당한 표정으로 설명했다. 마웅저는 고등학교 재학중이던 1988년 8월 8일 버마 군부 독재에 항거하는 ‘8888민주화항쟁’에 참여했다가 1994년 한국으로 망명했다. 말이 망명이지 들어와서는 불법체류자로, 이주민노동자로 차별을 겪다가 2008년 겨우 난민 지위를 얻었다.

 

“한국이 훌륭한 민주주의 국가인줄 알고 들어왔는데, 처음 부천 공단에서 일하게 되었을 때는 ‘우리나라보다 인권 상황이 심각하구나’하는 생각에 잘 못 들어왔다 싶었어요. 그래서 이주민 노동자들의 인권운동부터 시작을 했지요. 또 난민에 대한 인식이나 지원책이 부족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도 노력했지요.”

 

마웅저씨의 활동으로 오히려 한국사회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3년간에 걸친 난민 지위 인정 소송에서 승소한 덕에 이후 370여명의 난민들이 줄이어 난민으로 인정받았고, 버마에 대한 사회인식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무작정 ‘버마를 도와주세요, 버마의 평화운동에 동참해 주세요’라는 구호를 외치기만 했어요. 그러던 중에 어느 한국인이 ‘우리가 어떻게 도우면 되냐’고 물어보시는데, 저도 잘 모르겠더군요. 그래서 생각한 것이 두 나라의 청소년들의 교류예요. 서로 만나 친구가 되면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되니까요.”

 

 

마웅저씨는 버마 어린이와 청소년 교육을 지원하는 시민단체 ‘따비에’를 운영하고 있다. ‘따비에’는 버마에서 평화와 행복을 상징하는 나무로, 버마인들은 따비에 나뭇잎을 ‘따비에꽃’이라고 부르며 이 나무 가지를 잡고 기원을 드리기도 한다.

 

“아이들이 저를 ‘아저씨’, ‘삼촌’, ‘선생님’ 하고 불러주는 순간들이 가장 행복했어요. 버마에 돌아가서도 한국사회를 평생 기억할거예요. 그만큼 한국도 저를 기억해주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기억만 하면 안 되잖아요. 다들 바쁘게 살다보면, 시간이 지나면 잊을 수도 있겠지요. 그 중간역할을 따비에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버마에 제2의 따비에를 세울 거예요. 그리고 한국 시민사회와 연대운동을 계속하고 싶어요. 제가 없더라도, 꼭 따비에를 계속 관심 갖고 지켜봐 주세요.”

 

 

마웅저는 2003년 APEBC(버마아동교육지원프로그램)을 만들어 태국-버마 국경 지역의 난민촌에 학교와 도서관을 세우기 위해 모금 운동을 펼쳐왔다. 또 2004년 경기도 성남시의 이우학교 학생들을 시작으로, 지난 10년간 1년에 100여명의 학생들을 태국과 버마의 국경지대 난민촌으로 해외교류를 보냈다. 이렇게 버마 국경 난민촌의 현실을 직접 보고 체험한 학생들은 학교 내의 ‘따비에’ 동아리 활동을 통해 자연스럽게 버마 민주화운동 지원군으로 활약하고 있다. 그는 조만간 버마 따비에를 세우고 이러한 청소년 국제교류와 시민교육 사업들을 이어갈 예정이다.

 

“한국에서 열심히 살 수 있었던 것은 다 한국 시민사회와 민주화운동 선배들 덕분”이라며 “2000년대 초,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생긴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한국에 민주화운동을 배우러 온 사람으로서 정말 반가웠다”고 회상한 그는 사업회에도 당부의 말을 남겼다. 지인을 통해 사업회를 방문한 그는, 이후 사업회가 주최한 여러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김장 품앗이, 민주가족 등반대회 등의 행사에도 활발히 참여했다.

 

“사업회는 아시아의 민주화 문제도 항상 고민하고 행동했지요. 이제 그 역할을 더 확대했으면 좋겠어요. 특히 버마 문제에도 관심을 더 가져주세요. 버마의 김영삼·김대중 시대는 시민들이 거리로 나오는 것만으로는 해결하기 힘들어요. 사업회 같은 기관의 도움이 절실해요. 아시아 민주화운동의 모델이 바로 한국이잖아요. 버마에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같은 기관이 생기면 얼마나 좋을까요.”

 


마웅저는 12월 중 비자가 발급되는 대로 출국할 계획으로 준비하고 있다. 한국 경험을 담은 책 『난민, 마웅저의 꿈』(가제)도 내년에 발간할 계획이다. 따비에를 후원하고 싶으면 홈페이지(
http://thabyae.net)에서 관련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마웅저 환송회 현장 속으로
<마웅저, 집으로 가는길-마웅저와 함께 꾸는 꿈>


마웅저를 인터뷰하기 하루 전인 11월 28일 저녁에는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20년 만에 귀국하는 버마 사람 마웅저의 환송회가 열렸다. 따비에 동아리 활동으로 인연을 맺은 청소년들을 비롯해, 시민사회 동료 등 400여명이 모여 성황을 이뤘다.

 

치과의사로서 해외 의료봉사를 하다가 마웅저를 만나 든든한 지원자가 되고, 지금은 따비에의 공동대표까지 맡고 있는 정보임씨는 “귀국을 축하하는 자리지만, 마웅저와 오랜시간을 함께한 친구 입장으로는 아쉬움을 남기는 시간이기도 하다.”는 소감을 전했다.

 

또 부천에서 이주민노동자 지원사업을 활발히 벌이고 있는 부천 석왕사의 영담스님은 “94년에 불법체류자 신분이던 마웅저를 만났다”는 인연을 소개하며, “돌아가서 버마 지역의 버팀목이 될 수 있도록, 비빌 수 있는 언덕이 되어주겠다.”고 다짐했다.

 

윤정숙 전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도 “수도 없이 많은 행사를 다녔지만, 오늘처럼 청소년이 많은 것은 처음본다. 마웅저와 버마에 희망이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며 “가서 여자친구를 꼭 만들어라. 결혼하게 되면 꼭 가겠다.”고 말해 관객들로부터 많은 호응을 얻었다.

 

마웅저씨는 “한국에서 이주민으로, 난민으로 사는것도 많이 힘들었지만, 고국에 있는 시민들에 비하면 엄청 자유롭고 편하게 살았다. 그래서 항상 미안한 마음이었다. 이제 머리만이 아니라 진짜로 버마 시민들과 함께 하려 한다. 버마가 한국처럼 민주화할 수 있도록 기원해달라.”는 당부를 전했다.

 

환송회는 김은희와 마을어린이하방단, 신나는 섬, 페스테자 등의 공연으로 흥겹고 따뜻한 분위기로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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