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교육과  민주주의

[기획1] 민주시민교육의 쟁점과 학교의 역할

글 손병노 한국교원대학교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sbyungro@knue.ac.kr

학교가 모든 것을 해야 한단 생각 접고 학교의
고유성, 특수성, 자기 발현성에 주목해야

 

 

민주시민이나 민주시민교육이란 말 속에는 매우 복잡하고 논쟁적인 국면들이 들어 있다. 민주주의라는 삶의 원리, 삶의 이상, 삶의 가치가 그 기저에 깔려 있고, 시민이라는 삶의 주체, 자격의 주체, 행위의 주체가 포함되어 있으며, 교육이라는 인간의 의도적인 가치 추구 과정이 상정되고 있다. 여기에 우리나라의 특수한 상황까지 고려하면 더욱 까다로워진다. 개별 주체로서의 성장이나 발달을 넘어 사회적 맥락까지를 포함하여 다루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민주시민교육을 둘러싼 주요 쟁점이나 논란은 바로 그러한 국면들과 연관되어 일어난다. 민주시민교육과 관련해 학교교육에 거는 사회적 기대가 높다. 그렇지만 그 실효성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는 것이 사실이며, 앞서 언급한 논란들이 학교교육의 맥락에서도 그대로 발생하고 있다. 좀 더 차분히 학교에서의 민주시민교육에 관해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학교가 모든 것을 할 수 있거나 해야 한다는 생각을 접고, 학교에서 담당해야 할 초점들을 세워가야 한다. 학교의 고유성, 특수성, 그리고 자기 발현성과 같은 측면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이를 격려하고 인정하려는 사회 풍토가 필요하다.

어떤 ‘시민’인가?

교육에 대한 우리의 생각 속에는 모종의 교육받은 인간이라는 모습이 상정되고 있다. 민주시민교육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민주시민교육에서 그려볼 수 있는 교육받은 인간의 모습은 다양하다. 기존의 문화나 가치 질서에 순응적이고 동조적인 인간, 민주적 삶과 관련해 풍부한 지식과 이해를 겸비한 소양 있는 인간, 학문적 안목과 사고방식으로 도야된 인간, 공적인 문제의식을 개발하고 이를 이성적으로 다룰 수 있는 인간, 현실 비판적 눈과 변혁적 의지를 품은 인간 등 그 줄기가 많다.

그렇다면 학교교육에서 추구해야 할 민주시민의 모습은 무엇일까? 답하기 쉽지 않은 물음이고 생각의 차이나 논란의 소지가 큰 질문이다. 여기서 다시 따져 볼 점이 있다. 학교교육의 본질 또는 임무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학교는 한 사회의 가치 있는 문화를 전수하고 전달하는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기본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입장이다. 문제는 학교가 전달해야 하는 ‘문화’를 무엇으로 규정하느냐는 것이다. 대개는 기존의 제도나 가치, 또는 삶의 조건에 대한 이해방식을 바람직한 것으로 설정해 왔다.

그렇지만 사회나 역사의 발전은 기존의 문화나 인식 방식에 대한 합리적 의심과 비판적 성찰 노력에 의해 이루어져 왔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학교교육을 통해 공유하고 다루어야 할 ‘문화의 또 다른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학교는 ‘어떤 또 하나의 추가된 교육’을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회제도를 통해서는 다루기 힘든, 그러면서도 매우 소중한 문화의 영역에 그 중심을 두어야 한다는 말과 같다. 이렇게 보면 학교의 민주시민교육에서 추구하는 시민의 모습에 대해 다른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우리의 삶의 조건과 사태, 그리고 공공 쟁점들에 대해 합리적으로 의심하고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정향과 능력을 지닌 인간’이 그러한 예가 될 수 있다.

 

 

민주시민교육과 관련해 우리가 바라는 ‘민주시민’의 모습을 지속해서 고민하는 과정은 참으로 중요하다. 방만하고 느슨하게 진행되기 쉬운 교육을 넘을 수 있을뿐더러, 크게 보면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사회의 모습을 기획하는 것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물론 큰 쟁론이 뒤따를 것이다. 하나의 시민상이 설정되면 그에 대한 비판과 반박이 가해지고, 이념의 영향으로 하나의 ‘민주시민상’이 다른 측에 의해 ‘반민주시민상’으로 폄하될 가능성도 있다. 그렇지만 그러한 과정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합의란 갈등 없이 얻어지기 힘들며, 그래서 그 가치가 높아진다. 쉽게 얻어지는 합의는 표피적 동의이며, 실제는 어정쩡한 조정이나 타협이기에 그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누가 교육의 ‘주체’인가?

중요한 또 하나의 문제는 ‘누가’ 학교에서 민주시민교육을 이끌어갈 것인가 하는 것이다. 당연히 교사가 먼저 떠오른다. 상식 같은 이야기를 꺼내는 까닭은 교사의 권한과 역할을 다시 검토해 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생각나는 사례가 하나 있다. 제6차 교육과정 시기 우리나라의 사회과 교육계는 희망과 소망의 분위기에 젖은 적이 있다. 이른바 문민정부가 등장하면서 새로운 사회과 교육을 추구할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시민을 열쇠말로 하여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고 비판하는 능력과 자격이 사회과 교육에서 길러야 할 인간의 특성으로 강조되었다. 사회적 논쟁거리나 관심 사안이 학습의 주요 주제가 되고, 합리적 의사결정 과정에 기초한 수업이 주목을 받았다. 특히 여러 지역에서 자생적인 사회과 교사모임을 형성하여 새로운 실험을 위해 땀과 노력을 모아가는 모습은 전례를 찾기 힘든 것이었다. 아직 낯설었지만 당시 강하게 활성화되던 시민사회 담론이나 시민단체들의 등장은 교사들에게 큰 뒷받침이 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어느 시점부터인가 분위기가 크게 달라졌다. ‘이념 편향’이라는 잣대가 교사들의 실험적 노력들을 크게 위축시켰고, ‘중립성’이라는 법적·문화적 기준들로 인해 자기검열의 분위기가 확산되었다. 학교 문법을 규정하는 외부 세력의 목소리와 힘이 갈수록 커지고, 그로부터 벗어나는 교육적 입장이나 접근을 눌러 왔다.

우리 문화에서 교사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분히 이중적이다. 어떤 때는 도덕적 천사나 마치 신과 같은 능력의 소유자가 되기를 요구한다. 또 다른 경우 교사를 밖이나 위에서 정해준 것을 그대로 전달하거나 실행하는 이들로 생각한다. 사회적 논쟁이나 이념이 관여되는 교육 부분에서는 더욱 그렇다.

 

 

과연 이런 속에서 민주시민교육이 의미 있게 전개되고 발전적인 모습을 일구어갈 수 있을까? 학교에서의 민주시민교육이 실효를 얻기 위해서는 그 주도적 역할을 교사들에게 맡기는 사회적 결심과 보호가 필요하다. 교사들로 하여금 민주시민교육이라는 중차대한 과제를 부여잡고 함께 고민하고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교육적 흥과 성찰의 기운을 회복하도록 믿고 격려하려는 풍토가 절실하다. 교육자를 신뢰하고 존중하지 않는 사회에서 민주시민 ‘교육’을 꿈꾼다는 것은 어불성설이 아닐까?

‘학교’의 한계를 극복해 갈 수 있을까?

학교에서의 민주시민교육과 관련해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입시 중심 교육이나 지식 중심 교육의 문제는 말할 것도 없고, 외부에서 밀려오는 정치·경제적 입김이 큰 장애가 되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처방이 내려지고 각종 제안이 쏟아지지만, 그 실효성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그렇지만 이런 때일수록 한 걸음 물러서서 민주시민교육과 관련해 학교라는 특수한 맥락이 갖는 잠재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보다 근원적인 교육적 씨앗이나 가지들을 확인하고, 그것들을 키우고 넓힐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 가야 한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자.

우선 학교는 사회의 다른 조직이나 집단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다양성과 다원성을 지닌 곳이라는 점이다. 그야말로 전체 사회의 축소판이나 다름없다. 사회의 기초단위를 이루는 거의 모든 가정의 자녀나 후손들이 배경과 환경의 다양성 및 생각과 판단의 다원성을 품고 서로 교류하며 배움의 과정을 거치는 곳이 학교라는 장소이고 공간이다. 민주시민교육의 기본 토대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다양하고 일상적인 삶의 경험과 고민, 그리고 바람들이 만나 소통하고 부딪치는 과정이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학교는 최적의 조건을 지니고 있다. 문제는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도록 할 것인가의 선택에 있다. 현실을 보면 다양성보다는 통일성을, 다원성보다는 일원성을 선호 내지 강제하는 경향이 짙다. 학교를 향해 우세한 정치·경제·사회적 힘이 작용하는 방식이 특히 그러하다.

둘째, 학교는 순수한 마음을 가진 구성원들로 만들어진 공간이라는 점이다. 학생이나 교사 모두가 이해관계에 대한 집착이나 특정 이념에 대한 경직된 몰입도가 덜하고, 판단과 생각의 유연성이 높다는 것이다.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다. 민주적 삶의 실현과 관련해 우리가 현실 사회에서 직면하고 있는 중대한 문제는 굳어진 편견과 맹목적 신념, 심지어 서로를 향한 적대적 혐오나 불신과 같은 것이다. 합당한 근거에 기초한 사유나 판단, 자기 생각에 대한 회의적 성찰과 같은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민주시민교육에 관한 그 어느 논의에서도 맹목과 편견, 집착과 아집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 반대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학교의 교육 맥락에 다시 주목해야 한다.

셋째, 학교는 상호신뢰에 기초한 공간이라는 점이다. 아무리 학교에서 발생하는 각종 문제가 사회적 걱정거리로 거론된다고 하더라도 교사와 학생, 교사와 교사, 학생과 학생의 관계 속에는 서로를 향한 믿음과 사랑, 그리고 애착이 강하다. 다른 생각을 표현하고, 자신을 고백하며, 남에 대한 서운함과 비판을 드러내는 것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는 여건을 갖고 있다. 배려와 비판이 어색하지 않게 공존하고, 상대적 무지와 미숙함이 자연스럽게 품어질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 구체적인 이념 갈래나 가치 선택과 상관없이, 민주시민교육이라는 거창한 지향이 미시적 맥락 안으로 의미 있게 포섭되어 갈 수 있는 토대를 학교는 이미 갖고 있는 것이다.

넷째, 학교는 학생들을 강제로 참여시킨 공간이라는 점이다. 의무교육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강제를 통해 의무를 부과한다는 것은 일정 부분 자유를 박탈하는 측면을 갖는다. 따라서 국가와 사회는 그러한 박탈에 상응할 수 있는 좋은 것, 가치 있는 것을 제공해 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 최소한 비판과 성찰을 통해 더 발달하고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막아서는 안 된다. 다면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보다 나은 그들의 세계를 꿈꾸는 일에 장애를 주어서는 안 된다. 지성이 닫히고, 특정한 이념의 잣대에 휘둘리거나 남에 대한 증오를 견고히 하도록 이끌어서는 안 된다. 민주시민교육은 자유와 선택의 제한을 받은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더 가치 있고 아름다운 교육적 선물을 제공할 수 있는지를 놓고 고민하는 토대 위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정치 영역을 포함해 사회 전반의 민주적 삶의 조건과 풍토에 대한 우려가 높다. 실제로 지금의 상황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 정부나 정부 정책에 대한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를 예로 보자. 긍정 혹은 부정의 판단에서 단순한 ‘세대 간 차이’를 넘어 ‘세대 간 갈등’, ‘세대 간 단절’, 심지어 ‘세대 간 혐오’의 징후마저 있다.

우리의 사고와 판단에 큰 영향을 끼치는 미디어 환경도 좋아 보이지 않는다. 외양은 다양하고 기술적으로 화려해 보이지만 그 속은 다르다. 의제의 설정에서부터 내용의 구성에 이르기까지 편협하고 일방적이다. 다수의 삶의 문제를 비껴가며, 특정의 것들만 보고 듣도록 강요한다.

분단이라는 우리의 특수한 상황이 민주시민교육을 소극적으로 만드는 것 역시 아쉽고 아픈 부분이다. ‘자유’보다는 ‘제한’을, ‘실험’보다는 ‘안전’을, ‘신뢰’보다는 ‘우려’를, ‘다양’보다는 ‘통일’을 요구하는 분위기를 지속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한 단계 도약하여 사고하는 풍토와 여유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 볼 것은 이러한 현상들이 일정 부분 학교교육의 직간접적 결과일 수 있다는 점이다. 서로 다른 시대에 받은 학교교육이 영향을 미치고, 미래 시민을 기른다고 하면서도 합당한 지적 저항력이나 면역력을 길러주지 못했으며, 우리 문제를 실험적이고 반성적으로 성찰하도록 도와주지 않은 책임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학교에서의 민주시민교육은 반드시 거대 프로젝트나 일련의 체계화된 프로그램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인식의 전환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그에 더한 작은 실천과 일상의 경험들이 더 큰 의미를 만들 수 있다. 구호나 외형에 치우친 민주시민교육이 아니라, 학습자들의 일상 삶에서 배어나고 그들의 삶을 담아내는 교육을 마련해가야 한다.

 


 * 본 기사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발행하는 기관지  '민주누리 2016.04'에 실린 글입니다.

   민주누리 보러가기 >> http://www.kdemo.or.kr/book/nuri/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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