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교육과  민주주의

혁신학교가 만들어가는 민주·대안적 학습생태계

서용선 경기도교육청 장학사 / seoos@hanmail.net

민주적 자치공동체와 전문적 학습공동체를 구성하여
참된 학력을 실현하는 공교육 혁신의 모델, ‘혁신학교’



현재 혁신학교는 ‘행복더하기학교’, ‘무지개학교’, ‘빛고을학교’, ‘행복씨앗학교’, ‘행복학교’, ‘꿈나르미학교’ 등 이름은 달리하지만 전국적으로 1,000여 개로 확대되면서 다양하고도 역동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혁신학교의 시대정신은 기존의 입시중심 교육, 국가주도 교육개혁 정책이 갖는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흐름 속에 있다. 상명하달식 관행에서 벗어나서 학생들의 삶과 진정한 앎을 위해 민주적으로 소통하고 협력하는 문화를 형성하기 위해 단위학교의 총체적, 전면적, 구조적인 혁신을 추진한 것이다.

 

초기 혁신학교는 교사들의 자발적인 수업혁신과 학교장의 변혁적 리더십의 성격이 강했고, 학교 현장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이후 교육과정 재구성이나 학교조직과 생활문화에 이르기까지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변화를 확산시켰다. 이러한 흐름은 기존의 교사 개개인의 교육실천은 물론 10여 년의 대안학교의 흐름과도 연결된 것이라 시너지 효과가 높았다. 여기에 학부모들과 일반 시민들의 적극적인 지지와 지원운동으로 혁신학교가 탄탄하게 갈 수 있는 흐름을 만들어왔다.

학교민주주의를 실현하는 U혁신학교

여기서는 의정부에 위치한 U혁신학교의 사례를 통해 ‘생활양식으로서의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있는 혁신학교의 속살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U혁신학교는 1955년에 개교한 전통 있는 학교지만, 의정부 외곽 지역의 도시 재개발 이후 공동화 현상으로 적잖은 어려움을 겪었다. 학교 주변 지역은 슬럼화되고, 교육복지 대상 학생은 40%에 육박했다.



과거 U혁신학교에서는 통제와 억압 중심의 학교 문화가 팽배했다. 교문 통제나 복장 통제는 물론 일방적인 수업과 회의까지 비민주적인 모습이 많았다. 수업 시간에 잠을 자는 학생들이 많았고, 도주하는 학생들도 상당수에 이르렀다. 학생들의 자존감도 상당히 낮았다.

 

혁신학교를 추진하면서 지역교사들이 모여 관심사를 나누고 혁신적인 배움과 학교운영에 대한 실행력을 키워갔다. 혁신학교로서 5년의 세월을 보낸 이 학교를 이제는 전국에서 와서 보고 배운다. 수업은 물론 교육과정과 평가, 학급에서의 자치, 학교 조직과 문화 등에서 생기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교사와 학생들이 권리와 의무를 익혀가며, 나와 우리와 지역사회를 깊게 사고하고 실천해나가는 모습은 학교민주주의의 출발점이 어디여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민주적인 수업과 수업연구회

이 학교가 추구했던 수업혁신의 특징은 교사들이 ‘배움의 공동체’ 수업 철학을 공유하고, 학교 현실에 맞게 학습해간다는 점이다. 학생들은 자리배치를 ‘ㄷ’자 형태로 바꾸어 깊게 대화한다. 더불어 다양하고 입체적인 수업공개를 지속적으로 진행한다.

수업의 변화 속에서 가장 눈여겨볼 점은 교과서 진도 중심이나 참고서, 문제집 풀이에서 벗어나 ‘학생의 삶’을 중심으로 수업혁신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협력과 실천이 유기적으로 이루어진다.

수업 실천 이전에는 교사들이 개별 교사의 고민을 동료 교사들과 협업으로 해결하는 수업을 디자인한다. 이러한 교사들의 ‘수업연구회’에서는 공개한 교사의 수업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을 관찰한 결과를 사실과 의미 중심으로 논의해 나간다. 기초학력이 낮은 학생들에 대해서는 다른 교과수업과 연동해 판단하고 이 학생들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공유한다. 외부에서 온 교사, 학부모 등도 함께 참여하면서 학생들이 학교와 지역사회에서 배움의 공동체 안에 머무를 수 있도록 심리적이고 문화적인 울타리를 만들어준다.



국어 1학년에서 실시한 11차시 ‘여행을 떠나요’는 이러한 수업연구회의 대표적 수업이다. 한 국어교사가 ‘가족 여행이 드물고 바다를 보지 못한 학생들이 많다’는 고민을 수업연구회에 전하고, 학년부의 담임교사들과 함께 논의하면서 기존 수업 내용을 학생들의 삶을 중심으로 바꾸어나갔다.

 

교육과정 재구성

U혁신학교의 가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는 ‘교육과정 재구성’을 통해 교과를 본질적으로 재조직했다는 것이다. 수업 혁신의 한계로 받아들여져 온 진도 위주, 평가 위주, 교과서 위주의 수업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교사들의 집단지성에 기반을 둔 교과 안팎의 재구성의 필요성을 체감한 것이다.

교육과정 재구성은 학생들을 집단적으로 이해하고 분석하면서 학교의 철학과 비전을 만들어가는 일로 시작된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교사들은 학생들의 다양한 특징은 물론 놓치지 말아야 할 점들을 꼼꼼히 챙기고, 이를 다양한 각도에서 논의하면서 흐름을 구조화해 나간다. 학기 초와 학기 말에 열리는 교육과정 워크숍에서는 이러한 과정을 전체 교사가 함께 토론하고 협의하면서 공식화하고 더 깊은 학교 비전을 만든다.

이후 교육과정 워크샵을 통해 교과별 학년별로 교육과정을 만들기 시작한다. 먼저 교과서를 재구성하면서 ‘좁고 깊게 배우는 교육’, ‘교과 내용을 학습자의 경험으로’, ‘자존감과 배려의 교육목표 결합’, ‘활동과 협력 위주의 수업’으로 바꾸기 시작한다. 이후 교과 간 장벽을 허물고 교과 통합을 이루어나간다. 학생의 삶과 지식, 학교의 비전과 철학의 흐름을 마주하는 그림이다.

작은 학교 (small school)

U혁신학교 구성원들이 채택한 조직혁신은 ‘작은 학교(small school)’ 중심의 학년부 체제이다. 학년부가 하나의 학교처럼 구성되는 작은 학교는 일종의 ‘교육과정 실현팀’이 되어 학년의 모든 교사들이 모든 학생들의 돌봄과 학력을 책임져나간다. 학년부 체제로 수업과 생활지도가 동시에 이루어지고, 이때의 흐름이 학교 교육주체들로 하여금 민주적인 감각을 갖도록 한다.

학년부 교사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던 학급 수업의 문제를 함께 해결한 ‘수업공개를 통한 생활지도’는 작은 학교 시스템이 발현된 가장 성공적인 사례다. 또한 학기 초마다 학생들의 관계 형성을 돕는 ‘학급별 집단상담’도 학년부 체제에서 이뤄진다.

일상의 민주주의, 학생자치

U혁신학교는 수업은 물론 행사나 동아리 활동 등 일상에서도 학생자치가 이뤄진다. 대표적인 활동이 소풍, 수학여행, 수련회, 졸업여행을 없애고 교육과정 재구성과 맞물려 실시하고 있는 ‘교과통합 프로젝트 수업’이다. 스스로 준비해서 학생들의 삶과 마을을 연계한 통합수업을 준비하고 모둠별로 실천하면서 직접 마을에서의 일과 부딪혀 가며 배우는 시간이다. 기초학력 아이들도 기존 교과에서의 차이를 느낄 수 없다. 준비-시행-발표-전시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많은 학생들의 학습 도약이 이루어진다.

체험활동에서 무학년제로 실시되는 동아리 활동은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중요한 계기이다. 학생이 3명 이상 모여 자신들이 원하는 동아리를 만들고, 직접 지도교사를 섭외한 후 동아리 홍보와 모집을 한다. 이후 계획서를 제출하고 동아리추진위원회의 심의를 거친다. 그렇게 학생들이 스스로 만든 동아리만 50개가 넘고 수년째 지속되어 오고 있다.

 

더 나은 학교민주주의를 위하여

혁신학교에서 볼 수 있는 학교민주주의는 사실 더 다양하고 더 깊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학생 스스로 결정해 나가는 다양한 학교 활동, 교사들의 민주적인 회의와 협업문화, 정실 인사를 없애기 위한 인사혁신, 권한을 위임하고 지원에 주력하는 교장(감)의 민주적 리더십, 또 다른 교육주체로 협업해나가는 학부모 활동, 학교 밖 마을과 소통하고 실천하는 마을교육공동체 흐름까지 매우 다채롭다.

‘혁신학교’는 ‘학교민주주의’를 외치는 또 다른 이름이다. 혁신학교는 학교를 만들어가는 구체적인 구상과 실천 과정에서부터 구성원들의 의견과 상상력을 담고자 노력한다. 이것이야말로 ‘학교’가 ‘학교민주주의’로 가는 첫 관문이다. 학급자치, 무학년제 동아리 등은 학생들의 민주적 참여가 보장되면서 교육심리적 충족감을 배가시킨다. 교사들이 교육과정을 만들고 재구성하는 과정은 살아 있는 지식으로 배움을 채우면서 학생인권을 지키는 ‘민주적 책임감’이다. 수업혁신이나 또래학습 등은 학생들 사이의 학습 격차를 줄이려는 ‘차별에 대한 투쟁’이다. 학생들의 학습과 생활을 일상에서 살펴보고 성찰하는 학년부 체제는 ‘공공성과 투명성’이다. 마지막으로 수업을 통한 생활지도 등의 협력수업은 개인별 집단별로 깊은 사고와 학습관계를 통한 ‘인간 존엄’이다.

혁신학교가 모두 학교민주주의를 충분히 달성했다고 볼 수는 없다. 인권친화적인 학교규칙과 생활협약 제정은 물론 학교민주주의 문화를 위한 다양한 활동 등이 여러 각도에서 끊임없이 진행되어야 한다. 혁신학교에서 전개되어 온 다양한 활동을 기반으로 모든 학교가 학교민주주의로 한 걸음 나아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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