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만 넘기면> 갈 수 있다고 꿈꾸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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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만 넘기면> 갈 수 있다고 꿈꾸던 사람들

글 이은진 신나는 문화학교 대표/ jini0501@gmail.com




84년, 학내 기관원들이 철수하는 이른바 학원 자율화 조치가 시행된 이후 합법적인 공간이 열리자, 대중들의 욕구는 샘솟듯 솟아나기 시작하였습니다. 83년 민주화운동청년연합 결성을 시작으로 한국출판운동협의회, 민주교육운동협의회,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민족미술협의회, 민주언론운동협의회 등 많은 단체들이 발족되었습니다. 대학 내에서는 총학생회 부활을 준비하며 연일 집회가 열렸는데, 학내 집회가 많아졌음은 물론이고, 학교 밖의 공간에서도 다양한 소모임과 집회들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문화공연 또한 많이 만들어지고 인기를 얻었는데, 단조행진곡, 마당극, 시 등 민족예술의 엄청난 활동성과를 이루어낸 것도 이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만 넘기면>이라는 곡은 당시 아현동에 있었던 문화 공간 애오개소극장에서 공연된 ‘한돌의 노래이야기 <가지꽃>’ 중에 나온 노래입니다.

84년 3월 말에 만들어진 이 공연은 애오개소극장의 프로모션 차원으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그랬기 때문에 극장 측의 관극회원 모집과 같은 구체적 목표를 설정하기도 했었다고 하지요. 이 공연과 그 준비 과정을 통해서 문승현과 표신중이 처음으로 같이 작업을 했으며 대학 노래운동 초기의 멤버들이 노래모임 ‘새벽’을 결성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산파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오월의 노래>의 작곡자인 문승현, ‘노래얼’ 출신의 표신중이 연출을 맡고, 노찾사 초기멤버였던 박미선과 민요연구회, 꽃다지 대표를 지낸 김애영이 무대를 맡았습니다. 이들뿐 아니라 노래운동 1세대라 할 수 있는 많은 선배들이 각기 역할을 맡아 함께 만든 공연입니다.

당시 노래운동의 선배들이 ‘돌’의 노래를 선택한 것은 아마도 당시 민중가요들은 가사들이 너무 무겁고 강했기 때문에 돌의 동요 같기도 하고, 대중가요 같기도 한 노래들을 통해 대중적으로 쉽게 다가가고자 했던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당시 돌은 민중가요 진영에서는 <터>라는 노래로 알려져 있기도 했으나, 대중가요권에서 <유리벽>, <불씨>(신형원 노래)등의 노래를 통해 대중가요 작곡가로 알려져 있던 인물이었습니다. 당시 대중들의 억눌렸던 감성이 이렇게 대중공간을 통해 분출될 계기를 만나게 되자, 좁은 공연장에 관객들이 대거 몰려드는 바람에 이 공연의 중심 인물인 돌이 공연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돌아갔다는 일화가 전해지기도 했던 공연입니다.

공연의 형식은 제목에서 보듯 노래이야기 라는 독특한 형식을 띠고 있었는데, 두 여성가수들이 무대 의자에 독립적으로 앉아, 한 사람은 독백을 하듯 이야기를 하고, 또 한 사람은 노래를 부르는 형식이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대중공연도 쉽지 않았고, 노래극이나 집체극 형식의 공연은 거의 시도하지 않았던 시기인데, 이 노래이야기라는 형식을 통해 이후 노래극이 발전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이런 형식을 도입하게 된 것은 초기부터 의도했다기 보다는 연극적인 표현은 풍부하나 민요풍의 목소리로 당시 민중가요의 정서와는 약간 거리가 있었다고 여겨졌던 김애영이 독백을 하듯 연기를 했고, 80년대 초 민중가요 풍에 어울리는 전형적인 목소리를 가졌으나 연기력이 다소 부족한 박미선이 노래를 맡게 된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노래극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해서 적절히 역할을 나눈 것이 노래이야기라는 형식을 만들게 된 것이지요.

공연의 주요한 테마는 가난한 시골 농가에서 태어나 어려운 가정환경 때문에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서울에 올라와 공장에서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며 돈을 벌어야 했던 여성 노동자가 사랑을 하고, 사회에 의해 버림받고, 상처를 받아, 결국은 몸이 병들어 가면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이야기입니다. 어쩌면 식상하게 느껴지는 이야기 일 수 있지만 그 시대 많은 여성노동자들의 삶이 그러했고, 대한민국의 노동 현실이 그러했습니다. 그런 이야기 사이사이에 <외사랑〉, 〈불씨〉, 〈못 생긴 얼굴〉, 〈휴무일〉, 〈오늘만 넘기면〉,〈땅〉, 〈소〉, 〈난 서울 간다〉, 〈가지꽃〉, <갈 수 없는 고향> 등 한의 노래 중에서도 대중가요로 발표되지 않았던 곡들을 중심으로 엮어갔습니다. 곱고도 애절한 박미선의 노래에 많은 이들이 푹 빠져들었고 이 공연에서 불린 돌의 노래들은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 즈음에 결성된 많은 사회운동 단체들과 연합체들은 아현동 주변 몇 개 공간에 터를 잡고 소모임과 집회를 열었고 84년 결성된 민중문화운동협의회 역시도 이 동네에서 많은 활동을 했습니다. 지금도 애오개를 지날 때면 그 당시의 기억이 울컥하고 솟아나곤 하는 것은 비단 저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공연의 실황음반은 구할 수가 없습니다. 당시에는 비디오 카메라를 보유하고 있는 집은 거의 없었고, 테이프 녹음조차 쉽게 하지 못하던 시절이었던 데다가, 조금만 꼬투리가 잡히면 당장 붙잡혀 가던 상황이라 기록이나 정보 보관이 조심스러웠던 때라서 그랬을 겁니다. 다행히 그 이후에는 노래를 목적의식적으로 보급하려는 의도로 노래테이프 제작 등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박미선의 목소리는 아니지만 당시 느낌이 살아있는 ‘새벽’의 노래로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 음원 출처 : 민중문화운동연합 10집 [누이의 서신]

노래 듣기>>

오늘만 넘기면

한돌 작사, 작곡
내일이면 집으로 간다 오늘만 넘기면 집으로 간다
보고 싶은 우리 어머니 몸 편히 안녕하신지
짧기만 한 밤 시간이 오늘따라 왜 이리 길까
가고 싶은 그리운 고향 내일은 갈 수 있겠네

눈앞에 펼쳐지는 들판따라 쭉뻗은 미류나무길
오늘만 넘기면 간다네 내일이면 간다네

뒷뜰에 대추나무 작은 소나무 지금도 변함없겠지
오늘만 넘기면 간다네 내일이면 간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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