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규모 출판물의 사랑방, 헬로인디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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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하고, 장을 보고, 밥을 먹고, 뛰어놀고, 공부하고, 잠이 드는 것까지 우리의 일상은 공간 안에서 이루어진다. 각각의 공간들은 집이나 직장, 서점, 식당, 놀이터 등의 이름이 붙여지고, 같은 이름이 붙여진 공간의 모습은 대부분 비슷비슷하다. 여기, 조금 색다른 공간들이 있다. 보기에는 똑같은 건물이고, 언제나 그 자리에 있던 공간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지금껏 보아온 공간과는 다르다. 변주된 공간들을 둘러보고, 그 공간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을 만나 보자! 

 

스마트폰의 지도 어플을 따라 가도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지 불안할 만큼, 미로처럼 수많은 골목들이 이어진 연남동 주택가. 도착한 곳은 낡은 건물에 간판도 없고,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생경하기만 하다. ‘책방 오픈’이라고 적힌 입간판과 유리창의 ‘헬로인디북스’라는 글자를 보고서야 한숨을 내쉰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주인이 친절하게 인사를 건네지만 얼마동안은 불안한 눈빛으로 고개를 이쪽저쪽 촌스럽게 돌리고 만다. 그동안 보아 온 책방과는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동네 작은 서점이든 시가지의 대형 서점이든 책방에는 책이 빽빽하게 꽂혀 있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곳의 책들은 빼내기도 힘들만큼 나란히 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같이 표지를 뽐내며 선반에 전시되어 있다. 더욱이 얼핏 보기에도 책이라고 하기엔 대부분 얇고 책등도 없는 것이 많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기분이다. 어색함을 감추기 위해 서둘러 아무 책이나 집어 든다. <월간 교통체증>? 교통 체증에 대한 연구 보고서인가? 표지를 넘기니 ‘빨리 집에 가고 싶다’라는 심상치 않은 공감 문구가 보인다. 혼잡한 버스에서 사람들이 기피하는 물건을 들고 있으면 신속하게 하차할 수 있단다. 저절로 ‘풋’ 하고 웃음이 샌다. 살짝 여유가 생긴다. 좀 더 찬찬히 책들을 둘러본다. 이번엔 속옷만 입은 중년의 여성이 빨간 꽃을 들고 미소 짓는 책에 손이 간다. 엄마가 젊었을 때 찍은 사진과 대학 노트 등에 엄마와의 인터뷰를 엮어 딸이 만든 <about mama>다.

 

새롭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는 친숙하다. 작가가 하고 싶은 것을, 상황이 허락하는 한 마음껏 풀어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재도 내용도 꼴도 가격도 제각각인 이 책들은 모두 독립출판물이다. 독립출판물은 자본과 정해진 틀, 대중 등에 영향을 받지 않는 소규모 출판물을 말한다. 한마디로 출판계의 인디다.

 

‘헬로인디북스’는 독립출판물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서점이다. 2013년 11월 창전동에서 문을 연 이후, 작년 9월 연남동으로 옮겨 왔다. 현재는 약 1년 5개월 만에 독립출판물 서점, 개성 있는 동네 책방의 대표로 자리매김했다. 최근에는 뉴스부터 미니 다큐멘터리, 잡지와 신문 등의 기사에서 여러 차례 소개됐다. 연남동 일대가 인기를 얻은 것도 한몫했다.

 

하지만 여전히 아는 사람만 아는 독립출판물. 있던 서점들도 문을 닫는 상황에서, 잘 알려지지도 않은 독립출판물 서점이라니. 주인장의 배짱이 두둑하겠지 지레 짐작했다. 그러나 이보람 대표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오랫동안 쌓아 온 독립출판물에 대한 애정이 ‘헬로인디북스’를 탄생시켰음을 알 수 있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잡지 <PAPER>를 봤어요. 아마 창간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을 거예요. 그땐 무가지였는데, 패션지와는 전혀 달랐어요. 필자였던 박광수 씨나 김원 씨가 친구처럼 느껴졌죠. <PAPER> 배포처를 쫓아다니면서 홍대 문화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자연스레 다른 무가지들도 보게 됐어요. 그게 다 독립출판물이었던 거죠.”

 

그렇게 독립출판물과 가까워진 이 대표는 서른을 넘기도록 십 년 이상 꾸준하게 다양한 독립출판잡지를 모았다. “회사를 관두고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보니 질리지 않고 해 온 일이 독립출판잡지 수집이란 걸 깨달았어요.” 이 대표가 독립출판물 시장에 뛰어든 것은 자연스러운 삶의 귀결이었다. 하지만 독립출판물 유통으로 돈을 벌어 임대료를 내고 생계를 이어 나가기로 결정하기는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판매 기능이 없는 독립출판물 소개 블로그를 운영했어요. 그러다 창전동 공간을 알게 돼서 생각보다 빨리 책방을 열었죠.”

 

그런데 왜 서점일까? 대개 독립출판물의 매력을 느끼면 직접 책이나 잡지를 만들 생각을 하는데 말이다. “독자이던 시절, 서점에 가면 유명한 잡지가 아니고서는 제목도 잘 모르겠는 책들이 그냥 박스에 담겨 있었어요. 하나하나 살펴보면 재밌는데도 말이죠. 하지만 도대체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르겠고, 진열도 제대로 안 되어 있으니까 보기도 힘들었어요. 그때부터 독립출판물의 뒷얘기를 들려주는 일을 하자 생각했죠.”

 

이 대표의 이러한 의지는 책방 곳곳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크게 여행과 사진, 글, 그림, 매거진, 장르 구분이 어려운 책 정도로 종류를 나누고, 모든 책을 공평하게 진열한다. 입구 쪽 벽면에는 주기적으로 내용을 바꿔 전시도 하고 있다. 신간이나 잘 나가는 책이라고 잘 보이는 곳에 두는 일은 없다. “한번은 친한 저자들이 내 책 좀 앞에 놔두면 안 되냐고 하더라고요. 전 되려 독립출판물 중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책들을 알리고 싶어요. 예전에 서점 상자 안 이름 모를 책처럼. 거기서 읽은 책 후기에 ‘조금 더 꿈꿔도 좋아.’라고 쓰여 있었거든요. 그렇게 꿈을 꾸고 있는 사람들인데 관심을 못 받으면 한두 번 내고 없어질 거 아니에요.”

 

창전동에서 연남동으로 공간을 옮긴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공간이 좁아서 일반 서점처럼 꽂아 놨는데 사람들이 보기도 힘들고, 저도 책을 못 찾겠더라고요. 그래서 공간이 넓은 곳으로 가면 책을 펼쳐 놔야겠다고 생각했고, 연남동 와서는 그렇게 한 거예요. 그런데 여기도 공간이 점점 부족해지고 있어요.(웃음)” 그도 그럴 것이 엽서와 수첩 등을 포함해서 취급 품목이 대략 500~600종이나 된다. 요즘에는 신간이 하루에 한 권씩 입고될 정도다.

 

하지만 아직도 독립출판물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훨씬 많다. “연남동으로 옮기고 손님이 늘었어요. 그만큼 관광객도 늘었죠. 관광객이란 말이 맞는 게 카메라 들고 와서 사진만 찍어요. 블로그 후기를 보면 연남동 투어의 한 곳일 뿐이죠. 모르고 들어오시는 분들도 많아요. ‘이건 뭐예요? 여기 뭐하는 곳이에요?’ 물으시곤 해요. 그래도 음지 같은 곳에 있다가 사람들이 관심 있건 없건 접근성이 좋은 곳에 있다는 건 만족스러워요.”

 

이 대표는 정말, 책방에 오는 모든 사람을 반겼다. 손님이 보고 있는 책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도 건네곤 한다. “손님들에게 많은 정보를 주려고 해요. 책 소개보다 만든 사람에 대해 소개할 때가 더 많지만요.(웃음)” 사람에 대한 이 대표의 애정은 그녀가 하는 일들만 봐도 금세 알 수 있다. 홈페이지에는 ‘PEOPLE' 꼭지가 따로 있고, 독립출판물 생산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팟캐스트까지 진행하니 말이다.

 

그만큼 독립출판물 저자들도 자주 드나든다. 제작자보다 친구로, 독자로 올 때가 많다. <9여친 1,2집>의 저자인 박영경 씨(필명 팜므팥알)도 그 중 한 사람이다. “금요일 밤에 헬로인디북스에 모여 맥주 마시면서 공연 영상이나 영화를 함께 봤어요. 초면인 사람들과 새벽이 다 되도록 영화, 책, 연애 이야기를 했죠.” 그래서 박씨는 ‘헬로인디북스’에 ‘홍대 사랑방’이라는 별명을 붙여 줬다. “손님, 제작자, 대표님 모두가 독립출판물을 구경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곳이거든요.”

 

이 대표의 꿈과 계획은 지금처럼 계속 재미있는 공간으로 ‘헬로인디북스’를 꾸려 나가는 것이다. “마켓, 워크숍, 팟캐스트, 전시 모두 즐겁고 재밌자고 하는 일들이거든요. 책을 만드는 사람들과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책방을 지키는 이보람이 다 어울려서 노는 책방을 만들고 싶어요.”

 

만약 연남동 투어를 계획하고 있거나, 시간은 있는데 할 일이 없어 심심할 때, 너무나 외로울 때 ‘헬로인디북스’로 놀러 가자! 책이 전시되어 있는 외관만 구경하지 말고, 아무 책이나 한 권만 집어 들어 보면 좋겠다. 수많은 우리들의 이야기가, 사랑방 주인 이 대표가 당신을 반겨 줄 거다.

 

▶ 헬로인디북스의 외관. 입간판이 없으면 정체를 파악하기 쉽지 않다.

▶ 책 표지가 보이도록 진열된 책장. 한쪽에는 소규모 전시 공간이 있다.

소규모출판물을 만나보세요!

헬로인디북스

영업시간 : 수 ~ 월 오후 3:00 ~ 오후 9:00

                 화요일 휴무    

위치 : 서울 마포구 연남동 227-16 

온라인 :  http://www.hello-indiebooks.com

              https://www.facebook.com/helloindiebooks 

※ 헬로인디북스에서 만날 수 있는 독립출판물 ※

 월간 교통체증 / 범시민교통체증해소실천협회 월간교통체증편집부

 사실은 비정기 간행물이다. ‘월간’은 멋있어서 붙인 이름이다. 도시에 인구가 ‘집적’된 탓에 발생하는 엄청난 교통체증 해소를 내세우면서도 ‘치약’이나 ‘FIFA의 골라인’과 같은 다양한 주제의 글도 실려 있다. 웃으면서 가볍게 읽기 쉬우나 만든 이들이 10대라는 것을 알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시 보게 된다. 


 About mama / 딸 조윤경

우리 엄마가 젊었을 때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이 책을 읽고 나면 엄마가 태어날 때부터 엄마는 아니었다는 걸 새삼 깨닫고는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된다. 엄마 이영형의 청춘이 담긴 사진, 그때의 엄마가 찍은 사진, 대학 노트 등과 인터뷰를 엮은 엄마 청춘 수집서. 딸 조윤경이 만들었다. 

  

  

 9여친 1집과 2집 / 팜므팥알 

독립출판계의 베스트셀러. 애인과의 이별 후, ‘구여친’으로서 마주하는 감정과 구남친에 대한 기억, 지질한 모습들까지 적나라하게 담겨져 있다. 욕까지도 진솔한 저자 본인의 이야기라 그런지, 친한 친구한테도 차마 말하지 못했던 묵은 감정이 이 책을 통해 해소할 수 있다.  

 일상채집 / A low hill (낮은 언덕)

몇 년 사이의 글과 사진을 연도와 상관없이 3월부터 2월까지의 순서로 엮여 있다. 저자가 일상에서 보고 느끼고 생각하며 담아두었던 순간들이다. 모든 문장에서 저자의 마음을 느낄 수 있지만 감정적으로 읽히지 않고 감성적으로 다가온다.

  

  

<0,0,0> / 신지혜

자신의 삶에 있어 <0,0,0>, 즉 원점은 언제나 집이라고 말하는 저자. 서른 해 남짓 살아오면서 저자가 거주했던 모든 집의 평면도와 각 집에서의 삶이 담담하게 기록되어 있다. 미우나 고우나 함께해야하는 집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라 생각이 많아진다. 그리고 책장을 덮고 난 후엔 반드시 집안을 두리번거리며 살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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