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진화

드루와(OK in), 옥인상영관으로!

드루와(OK in), 옥인상영관으로! 
비주류 영상을 상영하는 감성 가득한 아지트

글  박한나 (자유기고가) / hanna_p@naver.com



 부모님이 계시지 않는 친구네 집. 학창 시절, 이보다 좋은 공간이 또 있을까? 냉장고엔 먹을거리가 있고, 친구와 무엇을 해도 뭐라 할 사람은 없고, 우리 집에는 확실한 알리바이까지 만들어 주니 말이다. 기껏해야 라면이나 끓여 먹고 게임을 하거나 만화책이나 비디오 보는 것이 고작일 테지만 그 순간의 그 공간은 이 세상 자유를 모두 얻은 듯한 해방감을 느끼게 한다. 

성인에게 부모님이 계시지 않는 친구네 집은 어떤 의미일까. 잠깐 동안이라면 큰 의미가 없고, 장기간이라면 십중팔구 아지트가 될 것이다. 이 아지트를 세상에 내놓은 사람들이 있다. ‘옥인상영관’을 운영하는 다섯 명의 친구들(김도균, 김종우, 김진호, 백호균, 이준우)이다. ‘옥인상영관’은 김도균 씨가 사는 단독주택 1층에서 주말마다 비주류 영상을 틀어주는 비영리공간이다. 
 


 일이 아니라 취미 생활

“몇 년간 빈집이었어요. 방치하기엔 너무 아까웠죠.” 친구네 집을 ‘옥인상영관’으로 고쳐서 써 보자고 친구들을 부추긴 사람은 김종우 대표였다. 집주인인 친구와 친구 부모님은 흔쾌히 허락하셨다. 전기요금은 알아서 내고, 하고 싶은 거 해 보라면서. 하지만 오랜 시간 돌보지 않았던 곳이었기 때문에 쓸 만한 공간으로 만드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수도를 연결하고 전기를 흐르게 하는 것이 관건이었을 정도다. 지인들 불러서 철거하고, 퇴근하고 배관 공사하고, 주말에 바닥을 깔면서 다섯 명이 직접 옥인상영관의 공간을 만들어 냈다. 

공을 들인 만큼 욕심을 낼 법도 한데, 옥인상영관 운영은 취미 생활이라고 선을 긋는다. 기조도 ‘느슨하고 엉성하며 허술하게’다. 난방이 되지 않는 겨울에는 과감하게 휴지기를 갖는다. “일이면 주중에도 하겠죠. 여기에 너무 열정을 쏟지 않고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고, 언제라도 본 줄기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하고 있어요. 취미 생활을 대하는 자세인 거죠.” 김 대표의 설명을 들으니 이 작은 상영관이 가지고 있는 매력의 원천을 알 것 같다. 취미 생활은 즐거움을 가져오게 마련이고, 즐거움은 저절로 전염되니까.   


영화관이 아니라 상영관

운영자들의 취미 생활이라고 해서 상영 프로그램의 질을 의심하면 곤란하다. 물론 프로그램 선정 기준은 기획자 마음이지만 그렇다고 아무거나 트는 건 아니다. 국내 유일의 국제 경쟁 단편영화제인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상영전>이 해마다 진행되고, 각종 영화제에서 초청받고 안성기·강수연 등의 배우가 출연한 <주리>처럼 경쟁력 있는 영상들이 상영된다. 이외에도 극장에서는 볼 수 없는 독립영화들을 묶어 매달 개성 강한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 서사 구조가 없는 영상이나 실험 영상이 상영될 때도 있다. 그래서 영화관이 아니라 상영관이다. “세상에서 소개하지 않으려고 하는 영상을 트는 곳이죠.”

김 대표가 기억에 남는 프로그램으로 뽑은 것도 옥인상영관의 취지가 드러나는 <옥인 오겠지>와 <이놈스키 저놈스키>다. <옥인 오겠지>는 단편영화 모둠 프로그램이고, <이놈스키 저놈스키>는 러시아 단편영화 프로그램이다. “<이놈스키 저놈스키>같은 경우에는 노력을 좀 한 거거든요. 러시아에서 영화도 직접 섭외하고, 번역도 직접 입히고, 여기서 기획하고 다 한 거라 애착이 가죠.” 러시아가 문학 강국이다 보니 시나리오가 탄탄한 영화가 많더란다.

이쯤 되니 씨네 키드끼리 뭉친 건가 싶지만 고개를 설레설레 내젓는다. 다섯 명 중에 영화 관련 일을 하는 사람도 없다. “공간이 대충 만들어졌을 때, 에디터 하는 친구랑 낮술을 마시다 카페에 갔어요. 그러다 <낮술(감독 노영석, 2008)>이란 독립영화 본 게 생각이 나서 ‘그거 진짜 재밌었지, 내 얘기 같았잖아’ 하다가 이런 거 틀자 했죠. 재미있고 좋은 영화들이 있는데 보고 싶어도 틀어주는 데가 없으니까 우리가 하자 한 거죠.” 


서촌 관광지가 아니라 동네 아지트

김 대표와 친구들처럼 비주류 영상을 보고 싶어도 볼 데가 없어 헤매던 이들에게 옥인상영관은 입소문이 꽤 났다. 이제 모르는 사람이 관객으로 오는 게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처음엔 관객 대부분이 지인이었고, 상영되는 영화와 관련된 사람들이었죠. 그래서 초반에는 모르는 사람이 오면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여길 왜 와요?’하고 다 물어봤어요.(웃음)” 하지만 관심 있는 사람들이 워낙 적다 보니 관객 수가 많지는 않다. “하루 관객 수가 2~5명 사이에요. 정말 많이 오면 10명 정도죠.”

대신 매주 한 건 이상의 인터뷰를 할 정도로 각종 매체의 주목을 받고 있다. 서촌이 이른바 ‘핫 플레이스’가 된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 마음만 먹으면 사람들이 북적이는 명소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역시나 그런 욕심은 없어 보였다. “사람들이 아지트처럼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단골들은 술도 사서 오고 그 친구들 오면 잠깐 좀 봐라, 난 나갔다 온다 그러기도 하고. 동네 사랑방처럼 감독님이랑 여기 온 사람들이랑 얘기도 하고 그랬으면 좋겠어요.”

 하긴 삼청동, 홍대앞, 연남동 등 개성 있는 공간으로 유명해진 지역들은 이름난 순간부터 특색을 잃어 갔다. 사람들이 늘어나는 만큼 맛집, 카페, 옷가게 등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오히려 애초의 거리의 색깔을 만들어낸 공간들은 터전을 잃었기 때문이다. 서촌도 ‘서촌’이란 말이 생긴 후부터 한적함은 사라졌다. 그래서일까. 김 대표는 옥인상영관이 서촌으로 묶이는 것을 경계했다. “여기는 서촌이 아니어도 돼요. 공간이 여기 있을 뿐이죠.”


담이 아니라 최소한의 예의
 

 “사람이 많이 안 왔으면 좋겠어요. 향유하는 계층이 많아지는 건 좋은데 의미가 희석되어 버리는 게 싫은 거죠. 제가 아무리 여기는 관광지가 아니라고 해도 사람들이 많이 오다 보면 ‘고기도 가져가면 구워 먹을 수 있고, 술도 사가면 마실 수 있는 곳’으로 알려질 수 있잖아요. 여기서 상영하는 영화가 궁금한 사람, 이런 게 뭔지 궁금한 사람, 보고 싶은 사람만 왔으면 좋겠어요.” 여기까지만 들으면 ‘비주류’나 ‘독립’이라는 단어들이 주는 미묘한 거리감이 느껴진다. 

그러나 김 대표가 꿈꾸는 옥인상영관의 모습은 “지키는 사람이 없어도 영화를 보고 싶은 사람이 와서 알아서 보는 것”일 정도로 열린 공간이다. 옥인이라는 이름에 ‘드루와(OK in)’이라는 의미를 담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때에 따라 전시를 하기도 하고, 파티를 하기도 한다. 영화를 보기 전이나 보고 난 후, 음료를 마시면서 수다를 떠는 것도 OK다. 

결국 옥인상영관이 내세우는 경계는 자유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예의이고, 비주류 영상과 그것을 즐기는 사람들을 위한 최소한의 보호막이다. 밖에서 외롭고 힘들었던 몸과 마음을 집이라는 공간이 품어주는 것처럼, 그렇게 이 작은 주택 상영관도 주류 문화계에서 고군분투하는 이들을 감싸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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