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절이>의 공중 텃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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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릇한 가치를 심고 가꾸는 젊은이들의 옥상 농지

글  박한나 (자유기고가) / hanna_p@naver.com 


✽ 유기농이라 안전하게 먹을 수 있는 ‘공중 텃밭’ 수확 작물

 
9월 초, 서울 마포구 구수동. <파릇한 절믄이> (이하 파절이)의 광흥창 ‘공중 텃밭’이 있는 건물 앞. 약속 시간까지는 10분 정도 남은 상황. 마른 목을 축이기 위해 옆 건물에 있는 편의점행. 편의점에서 나와 음료를 마시며 두리번거리다 건물 입구 발견. 곧장 걸어서 이번엔 옥상행. 하지만 굳게 잠긴 옥상 문. 어라? 약속 시간 1분 전인데?!

문제는 편의점을 나왔을 때 시작됐다. 편의점 건물의 입구를 옆 건물(공중 텃밭 건물)의 입구라고 생각하고 들어간 것이다. 잘못은 세심하게 입구를 보지 못한 사람에게 있지만, 이 사건이 네모나게 생긴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도시의 모습을 반영한다고 말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아무튼. 부끄러워서인지, 5층짜리 등산을 연달아 해서인지 얼굴이 벌개졌을 때쯤 옥상에 도착했다.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그리고 진짜 사건은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문 밖으로 펼쳐진 파릇한 풍경을 마주하자 순식간에 벌갰던 얼굴은 환해지고, 문턱을 넘어 그 풍경 속에 자리하자 다른 세상에 온 기분이 든 것이다. 마치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 호그와트 마법 학교에 입학한 것처럼 말이다. 과장이 심하다 싶겠지만, 실제로 그랬다. 도시, 그것도 서울이란 곳에서는 본 적이 없는 밭이 보였기 때문이다. 

✽ 광흥창에 위치한 <파절이>의 ‘공중 텃밭’과 농사에 여념 없는 <파절이> 회원들

 
파릇한 옥상 이야기

‘공중 텃밭’은, 옥상에서 농사를 짓는다고 할 때 떠오르는 풍경-스티로폼이나 나무 상자 여러 개가 아스팔트 바닥 위에 놓여 있는 모습-을 생각하면 안 된다. 기업 건물 옥상에 보기 좋게 꾸며진 관상용 정원과도 다르다. 옥상 전체가 흙으로 뒤덮여 고랑과 이랑이 존재하고, 구획마다 다른 작물이 자라고 있다. 그야말로 농지를 옥상에 옮겨 놓았다. 

처음부터 옥상에서 농사를 지은 것은 아니다. 초기에는 로컬 푸드 운동에 관심 있는 청년들이 모여 ‘환경운동연합’ 건물의 자투리 땅에서 상자와 화분에 작물을 기르는 정도였다. 그 뒤 서울시에서 분양하는 노들텃밭으로 근거지를 옮겨 엽채류 농사를 지었다. 수확한 작물은 카페나 빵집에 납품하고 농산물 장터에서 판매도 했다. 옥상 입주는 그러다 맺은 인연 덕에 받은 제안이었다.

제대로 된 농사를 짓고 싶었던 이들은 상자 텃밭이라는 쉬운 길을 뒤로 하고 구조 진단을 받았다. 상상에 가능성이 더해지자 소셜 펀딩과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 옥상에 흙을 깔고, 배수시설을 마련했다. 거기서 거기인 삭막한 도시의 작은 빌딩에 ‘공중 텃밭’이 숨을 불어넣어 기분 좋게 생경한 풍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160㎡(약 50평) 크기의 옥상은, 부엌 겸 사무실로 사용하는 실내 공간과 다용도인 공터를 제외하고는 밭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덕분에 ‘공중 텃밭’에는 꽤나 다양한 작물들이 심어져 있었다. 김나희 대표에게 아파트와 빌딩이 보이는 곳에서 농사짓는 기분을 물었다. 김 대표는 언제 와도 힐링이 된단다. “회사 다닐 때 스트레스 받고 여기 오면 시원한 바람에, 파란 작물들이 자라고, 운치 있는 것이, 도시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거에 반했거든요. 공원이랑은 다른 생명력이 느껴지는 곳에 앉아 있으니까 좋더라고요.” 


✽ 파릇한 작물에 둘러싸인 옥상에서 열리는 영화 상영 문화 모임

 
파릇한 농사 이야기

<파절이>의 농사는 광흥창 옥상과 더불어 노들텃밭에서 이뤄진다. 작물별로 파종과 수확 시기가 다르기 때문에 밭을 차지하는 작물은 계절에 따라 다르다. 파종부터 수확까지 농사 전반은 농사반장 홍민경 씨가 주도한다. 올해는 허브와 방울토마토, 고추, 가지, 호박 등 다양한 작물을 재배했다. 김장용 작물을 수확하는 11월쯤이면 한 해 농사가 끝난다. 올해부터는 그 이후에도 작게나마 농사를 지어 보려고 공터에 작은 온실을 만들었다. 수확한 작물은 회원들이 자유롭게 가져가거나 같이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 그러고도 남는 것은 나눠 주거나 팔기도 한다. 

옥상이라는 공간을 제외하면 <파절이>의 농사는 여느 농부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다만 원칙이 있다면 농약을 쓰지 않는 것이다. 비료는 유기농 비료만 사용한다. 벌레도 많이 먹고 손이 더 많이 가는 대신 안전하게 먹을 수 있다. 수확해서 먹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 로컬 푸드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김 대표는 “도시에서 농사를 짓는 것은 먹을거리(식재료)와 음식을 연결하는 링크(link)”라고 표현했다.

<파절이>처럼 도시에서 농사를 짓는 것, 즉 도시 농업은 세계적인 관심사다. 미국 영부인 미셸 오바마가 ‘백악관 키친 가든’에서 농사를 지어 화제가 됐고, 우리나라도 서울시에서 텃밭 분양 등 각종 지원 정책을 펴고 있다. 도시농업은 미래 발전 전망을 떠나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 볼 문제라고 김 대표는 말한다. “사람들은 내가 먹는 것들이 어디서 왔고 어떻게 자라며 어떻게 소비되는지 잘 생각하지 않잖아요. 가까운 곳에서 작물을 길러 먹는 일을 실제로 경험하면 먹는다는 것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되거든요.”

그렇다. 이른바 먹방에서 시작해 요리와 요리사까지, 음식을 다루는 프로그램이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지만 음식의 재료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도시 농사를 지으면 자연스럽게 먹거리는 물론 환경과 산업까지 건강한 생각을 하게 한다. 김 대표도 그랬다. “유기농이 왜 필요한지, 작물 얻기가 얼마나 힘든지, 음식물 쓰레기가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부터 과소비를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까지 해요.” 


✽ ‘공중 텃밭’의 유일한 실내 공간인 부엌과 올해 마련한 온실

 
파릇한 젊은이 이야기

정기적으로 회비를 내는 <파절이> 회원은 약 120~130명. 가입 신청을 하고 매달 5천 원 이상의 회비를 내면 누구나 회원이 되어 농사와 밥상, 문화 모임에 참여할 수 있다. 농사에 대해 몰라도 상관없다. 그래서인지 다양한 사람이 온다. 고향에서처럼 농사를 짓고 싶은 사람, 농사를 어떻게 짓는 건지 궁금한 사람, 귀농을 준비하는 사람처럼 농사에 관심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파절이>라는 공동체가 좋아서 오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직업도, 사는 곳도 제각각이지만 놀이처럼 즐겁게 농사를 지으면서 파릇한 가치를 공유하자는 생각에는 모두 뜻을 같이한다. 

그래서 직접 키운 작물을 이용한 요리로 밥상 모임도 갖고, 옥상에서 영화를 상영하거나 책을 읽는 문화 모임도 한다. 최근에는 회원들의 냉장고를 공유하는 프로젝트도 시작했다. 이 모든 활동의 기본이자 중심은 언제나 농사다. 농사가 재미나고 활발하게 지속되는 것이 활동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공간이 가능하다, 지속 가능하고 건강한 문화를 가져다준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싶어요. 그래서 서울시에 이런 공간을 늘려 나갈 초석이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해요. 그러기 위해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잘 활용해서 계속 재미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나가는 게 제 목표입니다.” 김 대표의 바람대로 <파절이>가 건강한 도시와 먹거리 문화를 만드는 씨앗이 되고, 그들이 키우는 작물처럼 생명력을 갖고 실하게 자라나길 응원한다.  

[파릇한 절믄이]

위치           서울시 마포구 토정로 194 수협 건물 옥상

온라인        www.facebook.com/pajeori

                  cafe.naver.com/paje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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