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배우고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마을 <문탁 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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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한나 자유기고가 / hanna_p@naver.com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평생 “공부하라!”는 잔소리에 시달리는 것과 다름없다. 학생 시절은 물론이요, 사회인이 되어도 자기계발이라는 이름의 공부를 계속하라고 요구당한다. 공부의 내용은 반드시 입시, 취업, 승진에 도움이 되는 것이어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공부는 권리보다 의무에 가깝다. 그런데 여기, 성공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공부를, 자발적으로, 더 많은 사람들과 하고 싶어 하는 공동체가 있다. 바로 <문탁 네트워크(이하 문탁)>이다.

용맹정진(勇猛精進)하는 연구자

 


 

<문탁>은 그야말로 공부하는 공동체이다. 고전과 철학을 중심으로 경제, 과학, 문학, 평전, 외국어 강독, 글쓰기 등 여러 분야의 세미나가 거의 매일 열린다. 세미나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책을 읽고 함께 생각을 나누고 글로 정리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스스로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 운영회원 나은영 씨는 이러한 세미나의 특징을 “공부의 밀도를 높이기 위해서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계속 고민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각자들도 전진하고 동학들한테도 계속 계속 자극을 주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구성원 모두가 연구자가 되고 서로가 서로에게 스승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논어나 중용 등 고전을 한자 원문으로 읽거나 스피노자나 마르크스 등의 저서를 치밀하게 읽는 등 보다 어려운 공부를 할 때는 회원 중에서 선지식이 있는 ‘튜터’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내부 세미나만으로 부족하다 느껴지면 외부 전문가를 초청해 강좌도 연다. 각자가 공부한 것을 발표하고 토론하는 워크숍도 진행한다.

하고 싶은 공부가 있으면 누구나 세미나를 만들고 강좌를 기획할 수 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공부의 강도가 높아 꾸준히 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에 대해 “함께 하니까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운영회원 진성일 씨는 말한다. “공부하기 싫거나 귀찮을 때도 옆에서 놓지 않고 계속 끌고 가주는 친구들이 다 있어요. 그렇게 하다 보면 뭔가 쌓이고 또 쌓이는 것 같아요.” <문탁>은 이렇게 ‘가르치고 배우며 함께 걸어가는 용맹정진(勇猛精進)’의 모습을 꿈꾼다.

지행합일(知行合一)의 공동체

 


 

운영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문탁>에는 대표자도 없고, 강력한 규율도 없다. 세미나는 매달 2만 원만 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적극적으로 공간 운영에 책임질 의사가 생기면 일정 회비를 내고 운영회원으로 활동할 수 있다. 현재 운영회원은 26명으로, <문탁>의 모든 것은 한 달에 한 번 이들이 모이는 운영회의에서 함께 이야기하고 함께 결정한다.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을 때까지 토론은 끝나지 않는다. 소소한 관리나 외부 응대는 그 달의 추장이 맡는다. 추장은 연말에 진행하는 워크숍에서 각 달마다 두 명씩 제비뽑기로 선정한다. 실제로 <문탁>을 방문했을 때, 당시 추장이었던 나은영 씨와 진성일 씨가 안내를 해 주었다.

이러한 <문탁> 안에서의 활동은 모두 ‘선물’로 여겨진다. 가르침을 주고받고, 밥이든 능력이든 노동력이든 각자가 가진 것을 나누는 모든 것이 선물이다. <문탁>은 뜬구름처럼 들리는 이 원리로 7년 동안 큰 잡음 없이 흘러왔다. 뛰어난 지도자나 강력한 규율이 아닌 ‘배움’이 이들을 움직이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선물의 원리는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에서 따왔다. ‘배운 대로 말하고 말한 대로 행하는 지행합일(知行合一)’이다.

배움의 실천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일단 같이 밥을 만들어 먹으며 공부와 삶이 분리되지 않도록 한다. 작업단을 꾸려 화장품, 빵, 커피, 반찬 등을 생산하고, ‘복(福)’이라는 대안 화폐를 만들어 사용하는 등 경제 세미나에서 고민하고 익힌 것을 일상으로 연결하고 있다. 청년과 청소년의 공부 네트워크를 지향하는 ‘주권 없는 학교’ 또한 같은 맥락의 활동이다. 특히 1년 단위로 진행하는 ‘파지스쿨’은 기존 학교 교육에서 벗어나 공부와 밥과 우정의 공동체 안에서 학생 스스로 질문하고 사유하여 삶을 꾸리도록 돕는다. <문탁> 밖 세상의 일에도 무감하지 않다. 각종 환경과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연대가 필요할 땐 회원들 스스로 발 벗고 나선다. <문탁>의 공부는 지식으로 그치지 않고 삶 그 자체가 된다.

파지사유(破之思惟, 破之私有, 破之事由)의 공간

 


 

그래서 <문탁>의 공간들도 <문탁> 그 자체다. 세미나를 열고 공부를 하는 제1 공유지 인문학 공간 ‘문탁’, 품앗이 생산 활동을 하며 마을 경제를 실험하는 제2 공유지 작업장 ‘월든’, 때에 따라 카페로 식당으로 강의실로 공연장으로 모습을 바꾸는 제3 공유지 ‘874-6(파지사유)’까지 어느 하나 계획적이지 않았지만 필연적으로 마련됐다.

동네 친구들이 모여 이반 일리치의 책을 읽은 것이 시작이었다. 이들은 ‘공부가 구원이 될 수 있을까?’를 증명하고 싶어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을 열었다. 함께 읽고 쓰면서 배운 것을 일상으로 연결하려다 보니 작업장이 필요해졌다. 공부한 것이 쌓여갈수록 생산 활동 이외에도 하고 싶은 것이 늘어나 실험의 공간이 되는 마을 공유지를 만들었다. <문탁>이라는 하나의 마을이 탄생된 것이다.

<문탁>이라는 마을은 공유지 세 곳을 합한 물리적 공간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지역적인 의미를 넘어 국가와 자본이라는 거대한 단위에서 소외되는 개인의 문제가 외면당하지 않는 단위에 대한 고민의 결과가 바로 마을이다. 나은영 씨의 설명대로 마을에는 “지금 자기가 서 있는 공간 안에서, 지금 자기가 만날 수 있는 많은 사람들과,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는 함의가 있다.

특히 ‘874-6’은 이러한 일들이 보다 쉽게 이뤄지도록 만들어진 공간이다. 내외부에 폴딩도어를 설치한 이유도 공간의 자유로운 변형을 위해서다. 주소인 874-6번지의 발음에서 따온 ‘파지사유’란 이름도 익숙한 습속과 사유를 깨뜨리고, 구조와 관념을 깨뜨리고, ‘그렇다’고 믿는 사물의 근거를 다시 한 번 질문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사상마련(事上磨鍊)의 삶

 


 

도대체 누가 시키지도 않은 공부를 이토록 열심히 하는 이유가 뭘까? 이 질문에 진성일 씨는 이렇게 답했다. “현실에서 쓸 수 있는 것만 계발이 되면 좀 허한 느낌이 들잖아요. 물론 기술은 늘고 경력은 쌓이겠지만 뭔가 부족한 기분? 그런 갈증이 있는 사람들이 <문탁>에 똑똑 하는 것 같아요.” <문탁>에 접속한 계기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 기저에는 삶에 대한 고민이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나은영 씨 또한 “삶을 바꾸는 내공을 갖추기 위한 공부를 해보자.”가 시작이었다고.

공부가 의무이든 권리이든 기왕 평생 하는 공부라면 이렇게 삶으로 이어지고 일상의 모든 것이 공부가 된다면 더 좋지 않을까. ‘책뿐 아니라 세상 모든 곳에서 배우는 사상마련(事上磨鍊)’의 <문탁>처럼 말이다.

문탁 네트워크
위치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수풍로 131번길 5
온라인http://moontakne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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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 031-261-5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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