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Theme] 민주화운동, 과거인가 미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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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삶의 질 높이는 새로운 감수성의 민주화가 필요
민주화는 분단체제 극복 때까지 주요 과제로 남을 것

이남주 성공회대 중어중국학과 교수 Lee87@skhu.ac.kr

역사로서의 민주화운동?

우리 사회에서 민주화운동을 평가하는 방식에는 차이가 존재한다. 이 차이는 여전히 사람마다, 혹은 정치세력마다 과거 민주화운동과 맺었던 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발생되는 경우가 많다. 민주화운동에 적극 참여했거나 이를 주도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민주화운동을 긍정적 역사로서 소환해왔고, 그 경험을 자신의 정치자산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87년 체제’라고도 불리는 현행 헌정체제가 민주화운동의 성과로 만들어졌고, 그 과정에 중요한 계기를 제공했던 5·18민주화운동과 6·10민주항쟁 등은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어 매년 기념되고 있다. 따라서 이들의 민주화운동에 대한 평가는 이미 상당한 정당성을 획득하고 있다.

반면 민주화운동과 거리가 멀었거나 심지어는 그와 대척점에 있었던 세력들이 민주화운동을 평가하는 방식은 다르다. 이들도 역사로서 민주화운동의 정당성을 전면적으로 부정하지는 않는다. 여전히 5·18민주화운동이 북의 지령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공식적인 자리에서 이 같은 주장을 하기는 어렵다. 다만 이들은 민주화운동이 이미 지나간 역사라는 점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선진화 또는 다른 어떤 개념으로 표현되든 간에 우리 사회가 산업화나 민주화 단계를 넘어 새로운 단계로 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논리에서 민주화의 현재적 의미는 약화될 수밖에 없다. 민주화라는 규범이 현재의 정치사회적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는 능력은 크게 줄어든다. 이 주장은 현실적으로 꽤 큰 호소력을 가진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다. 우리 사회가 1980년대까지의 ‘민주 대 독재’라는 퇴행적 구도에서 벗어나는 것을 바라는 사람들이 다수이기 때문이다. 최근 민주화운동의 의미를 강조하는 것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이러한 판단과 기대를 기저에 깔고 있다.


✽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초에 붙일 불을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서 정말 민주화는 유효성을 상실했는가? 민주화는 역사적으로 마무리된 과제이고, 이제는 새로운 목표를 향해 달려갈 때인가? 이에 어떻게 답하는가에 따라 우리 사회의 미래에 대한 설계가 달리진다.

현재적 과제로서의 민주화 운동

민주화를 지나간 역사로 간주하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우리 사회에서 절차적 민주주의가 성숙한 단계에 진입했다는 평가다. 사실 이러한 판단은 한때 진보세력 내에서도 상당한 공감을 얻었다. 많은 정치학자들이 주장한 것처럼 민주주의로의 이행, 혹은 민주화의 주요 과제가 선거경쟁을 통해 두 번의 권력교체를 경험하는 것으로 완성된다는 기준을 적용하면 한국의 민주주의는 민주화 단계를 지나 공고화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1997년 김대중 후보의 당선을 첫 번째 권력교체로 보더라도 2007년 대선에서 한나라당 후보 이명박의 승리로 두 번째 권력교체까지 평화롭게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 당시 대부분 정치세력들은 민주화를 넘어서는 한국사회의 새로운 과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2007년 대통령선거와 새로운 정부의 출범 직후에 이명박정부와 한나라당은 경제성장을, 진보세력들은 심화된 불평등 문제에 대한 대처를 각각 가장 핵심적인 의제로 제시했다.

그러나 이명박정부의 출범 이후 진행된 일련의 정치사회적 변화는 우리사회의 민주화에 대한 평가와 인식에 적지 않은 변화를 초래했다. 예를 들어 촛불항쟁을 촉발한 광우병 이슈는 여전히 과학적 논란거리이지만, 중요한 것은 생명 및 안전과 관련한 문제에서 자기결정권을 침해당했다는 시민들의 인식이었고, 그로 인해 청소년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오게 되었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구호가 울려 퍼지는 등, 민주주의 문제가 다시 거리에서 소환되었다. 그 이후 견제를 받지 않은 권력의 남용, 특히 검찰과 국정원 등 권력기관의 정치화나 대기업에 편향된 경제·사회 정책 등이 초래한 논란들은 이러한 추세를 계속 강화시켰다. 최근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이 이 지경에 이른 것도 상당 부분은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것과 관련이 있다. 민주화를 과거의 역사로만 다룰 일은 아니라는 점이 점차 분명해져왔다.


✽ 대안학교 학생들이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도둑맞은 민주주의’라는 팻말을 들고 국정원 규탄 시국선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없지 않다. 적어도 권위주의 시기와 같이 기본권에 대한 노골적인 침해는 없다는 점에서 민주주의를 중요한 정치목표로 내걸거나 거리에서 민주주의를 외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런데 이 같은 주장은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들의 감수성이 과거보다 훨씬 발달해 있는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단지 주기적으로 선거를 할 수 있고 당장 불법체포, 고문 등과 같은 노골적인 기본권 침해의 위협을 받지 않는 것만으로 시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가 충족되는 것은 아니다. 과거의 민주화도 이 같은 소극적인 목표만이 아니라 시민들이 자신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문제에 대해 자기결정권을 제고하는 것을 추구했다. 자기결정권을 침해하거나 왜곡시키는 심각한 언론, 사법, 교육적 관행과 행태 등이 민주주의와 관련한 중요한 문제들로 여전히 남아 있다. 정부 등의 통치집단이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시민과 갈등 관계가 형성되는 것을 피하기 어렵다.

동시에 이러한 변화는 민주주의 문제를 자신의 정치자산으로 활용하려는 이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하지만은 않는다. 정부여당의 비민주성에 대한 비판을 통해 반사이익을 얻고자 하는 행태에 대한 불만도 적지 않다. 이들이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는 것이 시민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의구심이 큰 것도 현실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도 시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감수성의 변화에 둔감한 것은 마찬가지이다. 실제로 이들이 민주주의 문제와 관련해 자신들이 마치 절대선인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시민들의 더 큰 반감을 부른다. 최근 정치권에서 소위 운동권 혹은 운동권적 행태에 대한 비판이 확산된 주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따라서 민주화라는 것은 현재적 과제이지만 동시에 민주주의에 대한 새로운 감수성을 수용하는 방식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특히 민주주의의 문제를 현재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방향으로 다루어야 한다.

미래로 향하는 민주화운동

그렇다면 미래로 향하는 민주화는 어떤 식으로 진행되어야 하는가? 사실 민주주의에 완성이 있을 수 없다. “다수의 지배”를 의미하는 민주주의가 현실에서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가라는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민국가 규모의 정치공동체는 물론이고 일정한 규모 이상의 정치공동체에서는 민주주의의 이상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대의제가 민주적 의사결정의 주된 형식이 될 수밖에 없다. 여기서 권력을 위임하는 자와 위임받은 자 사이의 긴장관계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최근 “포스트 민주주의론”은 일견 정상적으로 작동한다고 보이는 민주주의 체제가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들을 지적한 바 있다. 특히 소수의 정치계급과 경제계급이 결합된 엘리트 집단이 민주주의 과정을 지배한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결국 민주주의가 형식에 그치고 실제로는 과두집단이 정치적 의사결정을 좌우하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기 위해서는 위임하는 자와 위임받은 자 사이의 간극을 줄이고 다양한 정치주체들을 정치과정에 참여시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민주주의를 하나의 과정으로 보아야 한다.


✽ ‘민주주의의 꽃’ 선거. 지난 4·13총선 당시 사전투표에 참여하고 있는 시민들의 모습 ©연합뉴스

다만 어떤 사회의 발전과정을 민주화라는 개념으로 규정하는 것은 민주주의라는 원칙 자체가 갖는 딜레마나 제도로서의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사회 내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과정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이는 제도로서의 민주주의가 심각한 결격사유로서 가지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과정을 지칭한다. 한국사회의 민주주의는 이 문제를 여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과거 민주화운동이 대통령직선제와 같은 선거제도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선거 민주화로 민주화가 완성되었다는 인식이 꽤 광범위하다. 여기서 간과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절차적 민주주의, 제도적 민주주의가 갖고 있는 중대한 결함이다.

이는 분단체제라는 현실과 관련된 문제이다. 분단체제하에서 헌법상으로는 국가성격을 민주공화국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이와 동시에 기본권을 제약할 수 있도록 하는 국가보안법을 뒷문으로 끌어들인 법적 체계가 구축되었다. 그리고 ‘종북’과 같이 모호한 용어로 정치적 생명을 끊거나 사회적 활동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도 변하지 않고 있다. 이를 정치적으로 악용할 경우에는 민주주의의 원칙을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행태도 출현한다. “우리의 민주주의를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크다고 할 수 없다. 사정이 이러할진대, 민주주의 자체의 일시적 희생 따위야 정말 사소한 것이다”라는 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상황이 출현할 개연성이 항상 존재한다.

따라서 우리 사회에서 민주화는 분단체제를 극복하기까지 계속 주요 과제로 남아 있을 것이다. 몇 번의 정권교체만으로 민주화의 과제가 완수될 수 없었던 주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또 앞으로 정권교체가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분단체제하에서 우리 사회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반민주적 요소들이 자동적으로 소멸되지는 않는다. 1987년 이후 30년에 가까운 역사가 보여주는 것처럼 여전히 민주주의의 진전과 기득권 수호를 위해 이를 가로막으려는 시도 사이에 지루한 공방전이 반복될 것이다.

이는 분명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주관적으로 외면한다고 민주화 단계를 그냥 건너뛸 수는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진정으로 민주화 단계를 마무리하기 위해서 분단체제를 극복하고 한반도의 대전환을 이루는 것이 필수적이다. 민주화는 이 대전환에 동력을 제공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대전환을 통해 자신의 역사적 사명도 완수할 수 있다.

이때 민주화는 단순히 이미 이 과제를 완수한 다른 사회의 뒤를 쫓는 과정만은 아니다. 분단체제를 극복하기 위한 작업의 하나로 진행되는 민주화는 자기만의 풍부한 내용을 가질 수 있다. 선거 민주화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작업이 민주화의 중요한 내용으로 포함될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민주화가 우리의 민주화를 풍부하게 만들 수 있는 의제로 부상해있다. 그 과정에서 한국사회가 민주주의의 새로운 가능성도 만들어낼 수도 있다. 이 점에서 우리가 추구하는 민주화는 미래를 향한 길을 만드는 작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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