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Theme] 교과서 속 1980년대 민주화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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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의 원인, 성과, 향후 과제 제대로 설명 못해 새 국정 한국사 교과서, 상투적 언사로 호도할 가능성 커

왕현종 연세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yclass80@yonsei.ac.kr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의 ‘민주주의 성장과 발전’ 기술에는 1980년대 이후 여러 가지 수정·보충과 동시에 왜곡이 가해졌다. 80년대 민주화운동은 평가 없이 간단한 서술에 그쳤으며, 정권의 입맛에 따라 자의적으로 서술되기도 했다. 2003년부터 『고등학교 한국 근·현대사』 검정교과서의 도입으로 근·현대사의 서술 비중이 늘어나고 민주화운동을 긍정적으로 서술하기 시작했다. 이제 역대 한국사 교과서에서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역사 서술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이는 향후 국정교과서의 왜곡 기술에 대응하는 잣대가 될 것이다.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와 민주화운동의 왜곡·편파 서술

우선 제 4차 교육과정에 의거한 『고등학교 국사(하)』(1982)를 보자, “10월 유신 이후 성립한 제4공화국은 … 10·26 사태를 맞았다. 그 이후 한때 혼란 상태가 나타났고, 이러한 혼란 속에서 북한 공산군의 남침 위기에서 벗어나고 국내 질서를 회복하기 위하여 정부는 국가 보위 비상 대책 위원회를 구성한 뒤, 각 부문에 걸쳐 과감한 개혁을 추진하였다. … 그 후, 국민 투표로 확정된 새 헌법에 따라 당선된 전두환 대통령이 취임하여 새 정부를 이끌어 나감으로써 제5공화국이 출범하였다(1981).” 이 교과서는 전두환 취임과 제5공화국 출범의 배경으로 “한때 혼란 상태가 나타났고 … 국내 질서를 회복하기 위하여”라는 문구를 채택하고 1980년 5·18민주화운동을 삭제, 말살하였다. 또한 1960년 4월 의거(4·19혁명)와 5월 혁명(5·16군사쿠데타)을 대비해서 설명하고 군사쿠데타에 의한 헌법 개정과 제5공화국의 출범을 미화하는 등 현대사 왜곡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이어 제 5차 교육과정 개편에 따른 『고등학교 국사』(1990)에서는 다음과 같은 서술로 바뀌었다. “10·26 사태 이후, 위기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12·12 사태가 일어났다. 이를 전후하여,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들의 시위가 계속되었고, 그 과정에서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다. 한편 … 이로써 민주 정의당의 전두환을 대통령으로 하는 제5공화국이 성립되었다(1981).” 여기에서는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들의 시위’,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언급하였지만, 민주화운동에 대한 평가는 없었다. 서술은 ‘한편’으로 문맥을 바꿔 대통령 7년 단임제 헌법 공포와 제5공화국 성립으로 끝냈다. 이때까지만 해도 1980년대 민주화운동에 대한 역사교육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소년은 다양한 역사교과서를 원한다’는 현수막을 들고 ‘국정교과서반대 청소년행동’ 관계자들이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6차 교육과정 시기에 나온 『고등학교 국사』(1996)에서는 보다 진전된 서술이 이루어졌다. “이 시기를 전후해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과 대학생들의 시위가 거세게 일어났다. 민주화를 열망하는 국민의 요구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이어졌다(1980). 이 때 민주주의 헌정 체제의 회복을 요구하는 시민들과 진압군 사이에 충돌이 일어났으며, 이 과정에서 다수의 무고한 시민들도 살상되어 국내외에 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

민주화를 열망하는 국민의 요구가 5·18민주화운동으로 이어졌다는 서술 아래 계엄군의 광주 시민 학살에 대한 사실을 기술하였다. 이어 “그러나 당시 정부는 민주화 운동에 대한 탄압과 인권 문제, 각종 부정과 비리로 국민의 비난을 면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전두환 정부의 권위주의적 통치와 강압적 통제에 반대하는 국민적 저항이 전국적으로 일어나, 마침내 1987년의 6월 민주 항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고 하여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의 계기와 발전과정, 국민적 저항운동으로서 6·10민주항쟁을 강조하였다. 이전과 이후 발행된 국사교과서 가운데 처음으로 구체적인 사실과 함께 의미 있는 민주화운동으로 평가되었다.

그렇다면 2002년 새로 시작된 제7차 교육과정에서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고등학교 국사』(2002년 3월 1일 초판, 2006년 재판, 2011년 3월 6쇄 발행)1에는 부분 개편이 있었다. 원래 초판에서는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민중의 끊임없는 저항과 독재체제에 대한 도전 속에서 10·26 사태가 일어나 유신 체제는 막을 내렸다(1979). 이 무렵 새로 등장한 이른바 신군부 세력은 병력을 동원하여 군권을 차지하였고(1979.12.12.), 5·18 민주화운동(1980. 5. 18.)을 비롯한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무력으로 진압한 뒤 통치권을 장악하였다.로 한 문장에 불과했다. 5·18민주화운동은 겨우 날개주에서 자세히 사전적 설명을 보충하는 정도였다. 2006년 ‘수정판’ 국사교과서에서는 다음과 같다. “마침내 박정희 대통령은 10·26 사태로 피살되었고, 유신 체제는 종말을 고하였다(1979). 이후, 국민은 민주화를 요구하였으나, 12·12 사태로 군사권을 장악한 전두환 등 신군부 세력은 이를 억압하였다. 신군부 세력은 계엄령 철폐와 김대중 석방을 요구하며 시작된 5·18 민주화 운동도 무장 군인을 동원하여 무자비하게 탄압하였다. 5·18 민주화 운동은 비록 실패하였지만, 1980년대 이후 한국 민주화 운동의 밑거름이 되었다.” 이전의 서술과 차이라면 사실관계(앞 문장)와 더불어 역사적 평가(뒷 문장) 두 문장으로 확대되었을 뿐이다. 이 사건의 진실 해명을 가로막은 12·12쿠데타 집권세력과 제5공화국의 통치 비판은 거의 없고, 5·18민주화운동의 교훈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


전남대 학생들이 학내에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거부’ 선언문을 발표하고 한국사 교과서를 길 위에 놓았다 ©연합뉴스

이 ‘수정판’ 국정 국사 교과서의 특징은 바로 그 다음 쪽에 실린, ‘6월 민주 항쟁과 민주주의의 발전’에 대한 기술에 있었다. 1987년 6·10민주항쟁의 의미는 6·29 민주화 선언으로 수렴된 것으로 축소 기술되었으며, 이후 대통령 선거와 연이은 정부의 구성, 그리고 역대 정부의 치적을 내세우기 바빴다. 이것이 2010년까지 국정 교과서 체제하에서 이루어진 1980년대 민주화운동에 대한 기술의 전부였다. 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이유와 성과, 향후 과제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만일 학교 현장에서 민주적 훈련을 받은 교사의 역할이 없었다면, 학생들에게 민주주의의 기초 학습도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근현대사’ 검정교과서와 민주화운동의 자료 학습 활용

1997년 공포된 제7차 교육과정 개편에 따라 2003년부터 ‘한국 근·현대사’ 검정교과서가 처음으로 선보였다. 이때 1980년대 민주화운동에 대한 기술이 대폭 변경되었다. 금성출판사의 ‘주제 3. 민주화 운동과 민주주의의 발전’을 살펴보자. ‘생각열기’에서 1980년 5월 기독교회관 6층에서 광주학살의 진상을 밝힐 것과 서울 시민의 총궐기를 촉구하며 계엄군 탱크 위에 투신한 김의기 열사의 ‘동포에게 고하는 글’을 내세웠다. 발문은 “5·18 민주화운동은 이후 우리 사회의 민주화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였다. 종전 국정교과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생각열기’와 ‘발문’에 이어 본문에서는 1980년 ‘서울의 봄’을 구체적으로 서술하면서 신군부의 등장을 비판하였고, 5·18민주화운동과 민주주의를 위하여 일어선 광주시민들의 요구와 행동을 상세하게 기술하였다. 이어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평가와 학습 활동이 주목을 끌었다. 5·18민주화운동의 발발 원인을 다루는 <자료 1 : 계엄사령관의 담화(1980.5.21.)>와 <자료 2 : 시민군의 ‘우리는 왜 총을 들 수밖에 없었는가’(1980.5.25.)>를 놓고, 각 자료에 대한 이유를 묻는 추론 문제를 싣고 평가가 달라진 이유들을 물었다. 이렇게 3쪽 분량에 걸쳐 5·18민주화운동에 관해 상세한 자료를 제시하고 내용 서술 및 역사적 평가를 묻는 구성을 통해 주제 학습 활동으로 학습자들의 공감적 이해를 돕고 역사적 평가를 검토하게 했다.

다른 출판사의 검정교과서에서도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서술은 대폭 증가된 분량(약 2쪽)으로 사실 기술의 확대와 긍정적 평가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학습 자료의 경우 민주화 운동을 소개하는 정도에 그쳤다. 금성출판사의 경우와 같이 쟁점이 되는 상반된 자료를 제시하고 그 이유를 추론하게 하는 비판적 사료 읽기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국정화 시도와 민주화운동의 왜곡 우려

『한국 근·현대사』 검정교과서의 민주화운동 서술 내용에 대한 보수 우파의 반발은 교과서포럼의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기파랑, 2008)로 나타났다. 이들은 4·19혁명을 ‘의거’로 폄하하고, 5·16을 ‘혁명’으로 미화하는 시안을 발표한 데 이어, 5·18에 대한 사실 기술에서는 사태가 악화된 원인으로 ‘유언비어’, ‘지역감정’도 부각시켰다. 소위 뉴라이트 인사들은 한국 근현대사 검정교과서를 ‘자학사관’, ‘민중 민족에 갇힌 좌파적 입장’이라는 정치적 편향성으로 몰아세웠고, 미화된 식민지근대화론과 대한민국의 정통성, 박정희 시대의 긍정적 재평가를 내세웠다.2

2013년 8월 검정 통과된 『고등학교 한국사』(교학사, 2014)에서는 ‘4. 자유 민주주의를 위한 제 운동과 87년 체제’라는 제목으로 5·18민주화운동을 서술하고 있다. “이에 5월 18일 광주에서는 [=>비상 계엄 해제를 요구하는] 대학생의 시위가 일어났다. [=>그러나 신군부는 공수 부대를 투입하여 시위를 진압하고 학생과 시민들을 체포하였다. 계엄군이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진압하자 시위는 대규모로 번지게 되었다. 신군부는 언론을 통제하고 교통을 차단하였고, 광주 시민들을 폭도로 몰았다. 광주 시민들은 계엄군의 발포에 대항하여 시민군을 결성하여 저항하였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시민들이 희생되었다(5·18민주화운동).”(고딕체로 표시한 부분은 교학사 검정 제출본에서 수정하도록 지적받은 부분이고) 꺾쇠 안은 새로 수정된 내용이다.3 원래 검정 제출본에는 민주화운동의 요구와 활동은 뒷전에 놓은 채 신군부와 제5공화국의 권력 장악 과정만 주로 기술하였다. 특히 신군부의 진압 행위를 공권력의 합법적인 대응으로 서술하면서 다만 양자의 충돌로 ‘유혈화’되고 시위대의 일부가 무장하여 도청을 점거하였다고 강조하였다. 이 부분은 마치 신군부의 발표문 그대로를 옮겨놓은 듯하다. 이렇게 서술해서는 5·18민주화운동에 나섰던 저항 주체가 불분명하고, 또한 민주화운동의 목적과 요구 등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게 된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개최하고 있는 민주주의 현장탐방 프로그램들.
왼쪽은 대학생 민주주의 현장탐방 ‘민주야 여행가자’,오른쪽은 초등학생 대상의 ‘민주야 소풍가자’

2016년 3월에 배포된 초등학교 『사회 6-1』 교과서를 보자, “1980년 초부터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과 학생의 시위가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서울에서 시작된 민주화 시위는 대도시와 지방으로 확산되었다. 1980년 5월 18일, 광주에서는 민주주의의 회복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5·18민주화운동, 1980년).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일부 군인들은 군대를 동원하여 이를 폭력적으로 진압하였고, 이 과정에서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였다. 5·18민주화운동은 아시아 여러 나라가 민주화를 이루는 데에도 영향을 주었다.”(134~135쪽).

이렇게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서술은 각 문장의 서술 주체를 달리한 채 서로 연결되지 않는 다섯 문장으로 나열되어 있다. 이를 통해 과연 이 사건의 주체와 그들이 주장한 내용 및 목적 등을 알 수 있을까.

그런데 2017년, 박근혜 정부의 국정 한국사 교과서가 학교현장에 배포될 예정이다. 더욱이 새로 나올 국정 한국사 교과서 집필기준안은 아직도 공개되지 않은 상태다. 과연 80년대 민주화운동에 대한 기술이 어떻게 될지 초미의 관심사다. 몇 줄을 더하고 뺄지, 어떠한 상투적 언사로 호도할지 지켜보아야 한다.

1. 왕현종, 「‘수정판’ 고등학교 국사교과서의 개편내용과 근대사 서술 비판」, 『역사교육』 99, 2006, 29~67쪽
2. 역사교육연대회의 지음, 『뉴라이트 위험한 교과서 바로 읽기』, 서해문집, 2009, 참조
3.『고등학교 한국사』, 교학사, 2013년 검정 제출본 326쪽 ; 2014년 3월 초판 3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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