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민주주의

혁명 100주년, 푸틴의 러시아와 세계 질서

혁명 100주년, 푸틴의 러시아와 세계 질서

글 윤영순 경북대학교 노어노문학과 교수, ysyoon@knu.ac.kr

2017년은 러시아 혁명 100주년이자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집권한 지 실질적으로 18년째 되는 해이다. 2번의 연임 후 메드베데프에게 잠시 대통령직을 넘겨줬지만, 그때도 푸틴이 총리로서 실권을 휘둘렀다. 3차례 연임 불가 헌법 조항을 피해 2012년 다시 대통령으로 취임한 푸틴은 높은 지지율을 바탕으로 대체 불가능한 권력자로 자리를 굳게 지키고 있다. 게다가 최근 몇 년간 푸틴은 러시아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손꼽힌다. 80프로를 넘는 높은 지지율로 내년 대선에서도 4번째로 대통령에 선출될 것이 거의 확실한 분위기이다.

그렇다면 보편적 관점에서 독재에 가까운 푸틴의 장기 집권에 러시아인들은 왜 그토록 관대한 것일까? 만나본 각계각층 사람들 대부분이 정부를 비판하고, 부자 국가인 러시아에서 국민들이 가난한 이유는 권력층의 부정부패 탓이라며 불만을 토로한다. 여당의 압도적 승리로 끝난 작년 총선에선 부정선거 증거가 발견되어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그 와중에 푸틴은 사전 경고 없이 무력 사용이 가능한 막강한 권한의 국가 근위대를 신설했다. 테러 방지를 위해 창설되었다는 이 근위대가 실은 푸틴의 개인 친위대라고 러시아인들은 우려를 표한다. 그럼에도 푸틴의 입지는 여전히 굳건하고 많은 국민들이 푸틴 없는 러시아는 상상 불가능하며 대안은 없다고 입을 모은다. 그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정치가 푸틴의 노정과 소련 붕괴 후 러시아의 현실을 살펴보면 그 이유를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옐친의 퇴진과 푸틴의 등장
유럽의 변방에 불과했던 러시아가 세계 정치 무대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것은 공산주의 시절이었다. 2차 대전 승전국 소련은 미국과 함께 세계 정치의 양대 진영을 책임지는 한 축이 되었다. 그러나 이 경험은 길지 않았다. 1980년대 후반 고르바초프가 개혁과 개방을 주장하면서 철의 장막을 걷은 것이다. 1991년 개혁을 반대한 공산당 보수파의 쿠데타를 진압하고 단숨에 영웅이 된 옐친은 고르바초프 대신 러시아공화국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탱크 위에서 사자후를 토하던 옐친에게 러시아인들은 열광했다. 물자 부족과 감시, 통제에 시달렸던 소련 때보단 나은 삶이 있으리라 기대했던 것이다.


✽ 러시아 모스크바의 밤 전경 ©러시아관광청

그러나 현실은 가혹했다. 바뀐 체제에 적응하지 못한 국민들이 혼란을 겪는 사이 석유와 가스 등 막대한 국유재산은 몇몇 소수의 손에 넘어갔고 천문학적 자산을 챙긴 과두재벌이 나타났다. 이들은 호화로운 삶을 즐기며 옐친 권력에 뒷돈을 대고 정치에도 관여하면서 입지를 다졌다. 빈부격차, 마약, 매춘, 마피아, 청부살인 등의 키워드와 러시아가 연관되었던 시기가 바로 1990년대 중후반이었다. 당시 러시아인들이 경험한 최악의 사건은 1998년 모라토리엄 선언이었다. 하루아침에 루블화는 종잇장이 되어 버렸고, 거대한 영토와 자원을 가지고도 러시아는 불량국가로 낙인찍혔다. 게다가 러시아에서 독립하려는 체첸과의 전쟁으로 인해 국민들은 극심한 생활고와 전쟁의 공포라는 이중고를 겪어야 했다. 무엇보다 공산주의 종주국이었던 위대한 과거에 대한 자긍심이 무너진 것도 러시아인들을 힘들게 했다. 이런 전면적 위기 상황에서 1999년 12월 31일, 옐친은 대통령을 사임하고 46세의 푸틴 총리에게 직무 대리를 맡긴다고 선언했다. 새 천년을 새로운 인물과 맞이하도록 하라는 것이 옐친의 변이었다.

푸틴의 인기 요인
국가안전부 출신으로 정치계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푸틴은 체첸 전쟁에서 결단력 있는 지도자의 면모를 보여주며 두각을 드러냈고, 2000년 3월 대선을 통해 정식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과두재벌의 전횡을 경계했던 푸틴은 부패척결 명목으로 우선 이들부터 정리했다. 옐친의 돈줄로 불렸던 베레조프스키는 헐값에 재산을 처분하고 영국으로 망명했으며 2013년 석연치 않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최고의 석유 재벌 호도르코프스키는 탈세 혐의로 10년간 옥살이를 하다 2013년에야 석방되었다. 푸틴은 과두재벌 정리를 통해 개혁적 리더로서의 이미지 부각과 함께 미래의 정적 제거라는 이중 효과를 거두었다. 당시 푸틴은 단순한 정치 지도자가 아니라 암울한 러시아에 새 밀레니엄과 함께 등장한 메시아로까지 인식되었다.

푸틴의 인기 요인은 우선 국가 총생산 증가와 루블화 안정 등 경제 성장을 이룬 것이다. 이는 지도자로서 푸틴의 탁월한 능력과 더불어 운도 따른 결과였다. 러시아는 세계 1, 2위를 다투는 산유국으로 유가 변동이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 푸틴 집권기에 유가는 꾸준히 상승했고 경제도 따라 호황을 누렸다. 또 다른 인기 요인은 푸틴의 과감하고 마초적인 정치 행보라 할 수 있다. 골칫거리였던 체첸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반군에 의한 몇 차례 테러를 냉혹하게 진압하면서 결단력 있는 리더의 모습을 보였다. 외국 국가 원수들과의 만남에서도 무례할 정도로 본인 페이스를 유지했다. 몇십 분, 몇 시간 늦는 것도 다반사고 변명이나 사과를 하는 법도 없었다. 그렇지만 러시아에 위기가 발생하면 발 벗고 나섰다. 모스크바에 대형 산불이 났을 땐 휴가지에서 단숨에 달려와 화재 현장을 진두지휘하고 현장 관찰 카메라를 집무실에 설치했다. 국가안전부 요원이라는 특이한 이력, 유도와 삼보 유단자, 경비행기와 모터사이클 운전 등 스포츠 애호가로서의 모습도 푸틴의 남성적 매력을 더해준다. 내 것만은 안전하게 지킨다는 푸틴의 마초주의는 국가주의적 위험을 내재하지만 국민들에겐 지지를 얻는 요인이 된다.

이에 그치지 않고 푸틴의 러시아는 세계 패권이라는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것 같다. 크림반도를 병합하고 시리아에선 주도권을 쥐었다. 서방은 경제 제재로 러시아를 압박했지만, 오히려 러시아는 자생력을 길렀고 피해를 본 것은 수출시장을 잃은 유럽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서구와는 반목하지만 중국, 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과는 긴밀한 정치 경제 협력 체제를 구축했다. 대선 개입 의혹까지 받았던 트럼프 정권과의 밀월은 잘 알려져 있다. 브렉시트로 유럽연합이 내홍을 겪는 사이 불가리아와 몰도바를 비롯한 동유럽 국가들에는 친 러시아 정권이 수립되었다. 프랑스 극우 진영 르펜 대통령 후보와도 가깝게 소통하면서 푸틴은 21세기 세계 질서 개편에 적극 참여하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 푸틴 정권에서 석연치 않은 죽음을 당한 반정부 성향의 기자 안나 폴리트코프스카야

푸틴의 어두운 그늘
그러나 이토록 찬란한 푸틴의 왕국에도 그늘은 존재한다. 장기집권과 언론 통제에 반대한 야권인사들과 언론인들의 석연치 않은 죽음이 그것이다. 반정부 성향의 기자 폴리트코프스카야는 푸틴의 57세 생일에 자기 아파트 복도에서 살해당했다. 푸틴의 정적 베레조프스키 살해 명령을 받았지만 이를 거부하고 영국으로 망명한 국가안전부 요원 리트비넨코는 2006년 희귀 방사능 물질 중독으로 사망했다. 체첸 소녀 성폭행 사건을 다루던 인권변호사 마르켈로프는 대낮에 모스크바 시내에서 살해되었다. 2015년에는 야당 당수 넴초프가 크렘린 근처에서 피습당해 숨졌다. 이들 외에도 수많은 사망자의 이름이 존재한다. 이 사건들의 배후는 누구일까? 푸틴 개입설, 푸틴의 의중을 헤아린 누군가의 작품이란 설, 또는 푸틴 이미지 훼손을 위한 서방의 음모라는 설 등 여러 가설이 있다. 분명한 것은 푸틴이 이 죽음들의 책임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역사를 통해 내다보는 푸틴의 미래


✽ 러시아 내에서 푸틴 대통령의 인기를 보여주는 ‘푸틴 달력’

끔찍한 죽음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푸틴의 왕국에 도전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올해 야권인사 나발니가 유튜브를 통해 권력층의 비리를 폭로한 것을 계기로 지난 3월 러시아 젊은이들이 거리로 나섰다. 러시아 전역에서 반정부 시위가 발발했고 나발니를 포함한 수천 명이 체포되었다. 사실 러시아는 혁명을 통해 절대 권력을 전복한 경험을 가진 국가다. 지배자와 피지배자, 부자와 빈자가 바뀌는 경험을 한 세기 안에 두 번이나 겪었고 참혹한 전쟁과 혼란을 경험했다. 이 사실은 두 가지 함의를 지닌다. 모든 것을 단번에 뒤엎을 수 있는 유전자가 러시아 민족에게 있다는 것, 그러나 불안한 현실로 고통받았던 기억 때문에 안정된 절대 권력에 대한 열망 역시 강하다는 뜻이다. 푸틴의 러시아가 건재한 것은 그의 통치 방식이 아직은 이러한 국민의 뜻과 일치하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인내가 한계에 도달하면 세상을 전복할 수 있는 저력 역시 러시아인들에게 내재되어 있다. 혁명 100주년과 푸틴 통치 18주년을 맞이한 러시아의 미래가 흥미로운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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